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마태 18,1-5)
10월 첫 날입니다. 가을이 익어 갑니다. “가을”이라는 시 한편을 읊어드립니다. 지은이는 모르지만, <소월시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 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 속 논두렁에 새 하얀 억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바라보는 농부와 그의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낯선 길섶에 붉은 물 복숭아꽃 고마리 꽃 그 꽃 속에 피어있는 서늘한 구절초 꽃 몇 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 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아이도 농부도 암소도 없이 저녁연기 오르는 산 아래 마을까지 가서 하얗게 저녁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 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새 그치는 한수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무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이 시는 가을의 잔잔한 정겨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고귀하게 여겨집니다. 작고 사소한 일인 것 같아 놓쳐버리기 쉬운, 너무도 익숙하고 낯익어 타성에 젖어버리기 쉬운 것들이 그 존귀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 안에서도 가장 큰 것을 퍼 올렸던 이가 바로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그의 이름에 붙어있듯이 “아기 예수”의 삶, 곧 영적 어린이다움으로 ‘작은이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장 작은 것 안에서도 가장 큰 것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녔던 성녀께서는 그야말로 사소한 일상을 하느님께 바치는 고귀한 꽃송이로 드렸습니다. 이 ‘어린이다운 작은 길’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관심은 ‘큰 사람’에게 있습니다. ‘자신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사람인가?’(루카 9,46)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큰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누가 큰 사람인가보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느냐가 더 먼저이고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이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만, 단지 천부적인 어린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어린이같이 된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사람’이란? 어린이처럼 어머니께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함을 받아들이고, 주인께 신뢰로 의탁하는 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먼저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야, 예수님께서는 이제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자신의 무력함으로 낮추는 이, 자신이 미천하기에 타인을 우러르는 이가 바로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하십니다. 곧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타인을 우러러 존경하는 이가 회개한 어린이이며 동시에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러한 ‘어린이’와 동일시하십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그것은 우선 무력함을 받아들이는 일, 미천한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지향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모범으로 보여주는 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소화 데레사 성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사소한 작은 것에서도 언제나 예수님을 지향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일상을 ‘꽃송이’로 바치는 小花(작은 꽃송이)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일상의 모든 삶은 순간에 바쳐지는 ‘작은 꽃송이’는 시간을 성화시켜 성무일도처럼 꽃다발이 되어 올려 졌고, 시간으로 묶어진 꽃다발은 나날의 꽃밭으로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짧은 삶은 사랑의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은 꽃송이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축일을 지내며, 동시에 또 하나의 작은 꽃송이로 우리의 작은 일상들을 바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