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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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곱씹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그 영향을 남기는데, 다만 그게 어떤 성질의 것인지에서나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다.
뒤늦게 수행처에서 알게 된 여성은 예술 활동을 하는 분으로 조용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호감을 느끼게 된 사람인데, 몇 년 전부터 남편이 암을 앓게 되면서 병시중을 드느라 전처럼 수행처에 열심히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의 병세가 악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생사(生死)에 대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수행에 대한 절실함이 더 폐부에 와닿으며 간절해지더라고 했다.
절박함이 가져다주는 절실함 때문인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현실적으로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존재라는 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삶 자체가 완전하지 않아 괴롭다는 사실을, ‘나’라는 존재는 그저 조건에 따라 구성된 가변적이라는 것을 그녀는 차분하게 알아가는 듯했다.
며칠 전에는 잘 알고 지내던 여의사가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람에 졸지에 큰 사고를 당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여기저기 골절은 입었어도 머리는 다치지 않아 정신은 멀쩡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九死一生)이었으니, 천운이었다.
그녀를 방문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평소 억척스럽게 일하며 살던 그녀가 막상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고 보니 죽으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즉 병원을 운영하던 것도, 자녀들에 대해 걱정하던 마음도,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주 단순해졌다고 하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살아난 것에 감사하며 주어지는 대로 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에 전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바람이나 욕심은 살아있을 때의 사안으로 죽으면 다 부질없는 것들에 불과하지!’하고 동의하였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나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삶과 죽음을 가르는 교통사고가 그녀의 집착을 순식간에 여의도록 했구나.’하며 곱씹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 영향을 남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내 성격적 특성이 그러한지, 나는 뭔가에 대한 호오(好惡) 감정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크게 신나는 것도 없고, 극도로 싫은 것도 없다. 그냥 ‘그렇구나’하는 정도로 인식되는 게 대부분이고, 그런 상태에서 당기면 그냥 하는 식이다. 일단 체력이 받쳐 주지를 못하고, 그래서인지 많은 것들이 밋밋하게 지나간다.
10여 년 전에 시작한 수행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고 되돌아본다. 꾸준하게 마음을 기울이긴 하지만 맹렬하게 달라붙질 않으니 큰 진전을 이룩하지도 못하는 듯하다. 이러한 나에 비해 앞서 말한 두 여성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탓에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긴 해도 비약적인 도약을 이룩하는 것 같다.
큰 우여곡절이 없는 듯한 나의 삶, 그 대신 눈에 띌만한 도약도 없는 듯하다.
아무튼 지난달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 여성과 교통사고를 당한 그 여의사, 그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그런 성장의 도약이라도 주어지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 보상이 없다면 현실의 시련이 얼마나 야속했겠는가.
새삼스레 인생살이는 가까이에서 보면 서로 간에 간극이 크게 벌어지는 듯한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이지 않을까 한다. 뭔가를 잃었으면 잃은 만큼 절실해져 주어지는 게 있고, 뭔가 얻은 게 있으면 얻은 만큼 느슨해져 잃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소한 차이나 상실에 앙앙불락하기보다 닥쳐오거나 흘러가는 것에 그냥 ‘그렇구나’하고 의연히 지켜보는 태도가 필요하지 싶다.
첫댓글 "닥쳐오거나 흘러가는 것에 그냥 ‘그렇구나’하고 의연히 지켜보는 태도"
광야인생 길...
나그네 인생 길...
감사합니다..
심령평안 하세요..
강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