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봄날 / 박경희
가수 윤복희 씨가 TV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데 담금통에 담아두었던 눈물이 힘없이 떨어졌다 아파 누운 지 열흘 된 그녀가 살구꽃으로 피었다가 살구꽃으로 지고 벚꽃으로 피었다가 벚꽃으로 졌다 괜스레 가는 봄날 잡아놓고 윤복희 씨 목소리에 쓸쓸해져서 잠든 그녀 얼굴 눈으로 쓰다듬는데, 길눈 어두운 딱새가 집 안으로 들어 퍼덕였다 그 소리에 눈뜬 그녀에게 부은 눈 들킬까 문이란 문 다 열어놓고 온몸으로 휘젓다가 문지방에 발가락 찧어 아파 핑곗김에 운 날
ㅡ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창비, 2019) -------------------------
* 박경희 시인 1974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1년 《시안》 등단.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미나리아재비』, 동시집 『도둑괭이 앞발 권법』,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쌀 씻어서 밥 짓거라 했더니』, 『차라리 돈을 달랑께』 2013년 조영관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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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는 표현은 1953년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 발매된 음반(레코드)으로, 가수 전영록의 친모인 가수 백설희의 노래가 효시입니다.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이 곡은 실질적으로 백설희 가수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으로 유명합니다. 그 후 많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애틋한 사랑과 아쉬움을 그려내는 대명사로 씌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윤복희와 장사익이 불렀던 ‘봄날은 간다’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윤복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에 익숙한 두 화자를 등장시켜 아련한 청춘의 사랑을 노래한 ‘봄날은 간다’의 가삿말을 현재의 쓸쓸하고 슬픈 상황과 함께 엮어낸 시입니다. 아마도 시 속에 등장하는 아픈 그녀는 화려했던 봄날 내내 병상에 누워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간절한 마음으로 돌보고 있는 또 다른 화자는 마침 켜 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윤복희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의 가삿말에 눈물이 울컥 쏟아져 혼자 눈이 붓도록 서럽게 울었던 듯합니다. ‘길눈 어두운 딱새가 집 안으로 들어 퍼덕’이는 모습이 마치 ‘살구꽃으로 피었다가 살구꽃으로 지고 벚꽃으로 피었다가 벚꽃으로’ 지는 그녀의 현재의 처량한 모습과 같아서 서러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퍼덕이는 딱새의 소동에 눈을 뜬 ‘그녀에게 부은 눈 들킬까 문이란 문 다 열어놓고 온몸으로 휘젓다가 문지방에 발가락 찧어 아파 핑곗김에 운 날’은 이 시의 시적 은유가 되어 TV 속에서 열창하는 윤복희의 ‘봄날’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되살아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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