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감정 / 나금숙
마취도 없이 치르는 개두술 때, 뜨거운 골수를 만지는 감정,
밤새 기어서 바다에 닿자마자 파도에 휩쓸리는 어린 바다거북의 감정,
몇 개의 계단 위 제단에서, 깃털이 벗겨지고, 내장이 훑어지고, 둘로 쪼개어진 새 한 마리와 그의 피에 대한 감정,
발트해 리가 골목, 검은머리전당 옆에 놓여 사람들의 첫 발을 받아들이는 네모난 돌의 감정,
여름 궁전 숲 그늘에서 너와 처음 헤어질 때, 뒤돌아보는 얼굴로 떨어지는 햇빛의 감정,
머리에 쓰는 새장 화관 속에서 우는 찌르레기의 울음은 울 때마다 최초의 감정이려니,
쇳물을 끓여 부어 만든 동종이 처음 울릴 때 종의 유두,
팔월 한낮 마당에 내리꽂히는 소낙비의 첫 발바닥,
내가 누구야 하고 그대를 부를 때마다 목젖 깊이 차오르는 최초의 감정,
임종 때 사람들이 서로 부르는 간절한 이름,
그 마음으로 천지에 가득한 최초의 감정
— 시집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천년의시작,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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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금숙 시인
1957년 전남 나주 출생.
200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그 나무 아래로』 『레일라 바래다주기』,
공동 시집 『12시인의 노래』 4, 5, 6, 7권
서울시 공무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