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회 소풍 가는 날(260125), 주일 아침 7시 ㅇ배 후에 출발한다고, 늦게 오면 불이익이 있다고 광고를 했는데 80% 이상이 7시 전에 왔다.
11시에 시작해도 한 10%는 항시 지각을 하는데 그날 늦게 오면 번호표도 안 주고 안 데려간다고 했더니 그렇게 일찍이 모여들었다,
60이 넘은 두 사람만 빼고서...
그분들은 먼 길이라 불편하신 모양이다.
8시에 ㅇ배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분주하다, 아니 난리다.
아이들 챙기고 돗자리 챙기고 25리터 물통 4개, 접시들, 수박 8통, 칼, 쟁반. 추첨용 선물, 100Kg가 훨씬 넘는 밥통...
그 북새통에 6시부터 나와서 점심때 밥에 넣어 먹는다고 주방 팀이 준비한 10Kg 쯤 되는 파채리를(커드에 오이, 양파등 야채를 넣은)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갔다.
거기에 예약한 버스 하나는 뒤에 짐 싣는 칸이 없고 다른 버스는 뒤쪽에 짐 싣는 짐칸 열쇠가 부러져서 문을 열 수가 없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큰 짐을 싣고 가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운전기사는 아무 관심도 안 보인다.
고치려는 시도도, 어찌하느냐고 사무실에 전화 한 번도 안 한다.
자기가 열쇠를 부러트려 놓고는 일이 이리됐으니 짐을 가져가든 말든 니네들이 알아서 하라는 투다.
그래서 드럼통보다 더 넓은 밥통을 그보다 좁은 출입문 쪽으로 거의 45도 기울여서 그 뜨거운 밥통을 겨우 차에 실었다.
7, 80Kg 체격의 우리 청년들이 있어서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버스 두 대에 다 앉히고 보니 버스는 관광용이 아니고 출퇴근용이다.
그 버스는 단거리용이라 의자가 딱딱하고 바퀴 크기도 다르고 음악도 틀지 못한다.
또 출발하려니 기사 하나가 사라졌다가 20분 후에 온다.
도착해 보니 우리 현지 ㅁ사 사모가 별것을 다 챙겨 가지고 왔다.
출발 전부터 아이들에게 Vomit(오바이트)용 비닐과 알약을 나눠주더니 도착해서 보니 응급용 약품과 붕대며 쓰레기를 담을 봉투 등 온갖 것을 준비해 왔다.
실로암 초등학교, 주일학교 학생, 주교 교사였는데 2011년에 ㅅ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 실로암에 온 초짜 ㅈ도사, 지금 ㅁ사와 결혼했는데, 사모가 된 지 10년이 되어도 그간 ㄱ인들 챙길 줄 몰라서 시키고 본을 보여야만 눈치를 챘는데 이제야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이제 애들 둘 키우고 서른이 넘고 하다 보니 자기 역할이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꼬맹이 하나가 소풍에 같이 왔다.
테자스, 2020년 8월 24일생, 실로암 초등학교의 유치부의 다섯 살 된 남자아이인데, 실로암 주일학교에 다니는 자격으로 당당히 참가한 것이다.
이른 아침에 물병과 간식, 그리고 갈아입을 옷이 든 가방 하나만 달랑 매고 왔는데 부모와 같이 온 또래들은 있어도 그 나이에 혼자 온 애는 지금껏 없었는데 용감하다 못해 우리를 놀래킨다.
3시간이 넘는 버스 안에서, 줄 서서 배식한 밥을 혼자서 먹을 때도, 형들과 누나들이랑 같이 물놀이를 할 때도 잘도 놀고 한 번도 울지도, 보채지도 않은 아이다.
물에서 놀았으니 소변 문제야 모르겠지만 물놀이 후에 누군가 옷을 갈아입혀 준 외에는 전혀 손이 갈 일이 없었던 꼬맹이다.
어린것이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도 놀길래 친척 중에 누가 같이 왔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혼자서 그 먼 길에 참여했다.
저녁 8시 넘어서 돌아오니 그 애 엄마가 애를 데리러 와있다.
어떤 부모는 낮에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몇 시에 오느냐고 몇 번 이나 전화를 했는데 한 25, 6세 된 그 아이 엄마는 그 꼬맹이를 보내놓고도 연락도 없었고 걱정한 흔적도 없이 생글생글하다,
큰 애라도 외부에 아이 혼자 보낼 때는 대부분 부모들이 어떤 식으로든 담당하는 교사에게 질문을 하는척하며 그 사실을 주지시킨다.
혼자 간다고, 보호자가 없다고... 아이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무사히 데리고 오라는 의미 같다.
그런데, 그 엄마에게 어린 외아들을 어떻게 혼자 그렇게 보냈냐고 하니 그냥 웃기만 한다.
한국에서 요즘 부모는 다 큰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훈련소에 따라가는 것은 기본이고 훈련 기간에는 ‘더 캠프’라는 앱을 통해 아들 상황을 확인한다고 한다.
자대 배치 이후에는 소대 동기들 부모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남의 아들을 통해 자기 아들 상황을 교차 확인한다고 한다.
군대에 보급품이 있어도 엄마는 아들에게 고함량 비타민, 홍삼, 유산균은 물론이고, 위장크림 대신 바를 순한 선크림과 마스크팩까지 챙겨서 보낸다고 한다.
또 아들이 고생할까 봐 겨울엔 핫팩이나 최신 방한용품, 여름에는 쿨링 용품을 박스채로 보낸다고 한다.
또 자기 아들 기죽지 말라고 소대원 전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나 피자 등을 부대에 배달시킨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대에서 운영하는 밴드에서 사진으로 본 아들의 표정이 안 좋으면 군 간부에게 따로 개인 메시지를 보내 아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우리 아들 무릎이 안 좋은데 이번 행군에서 빼달라, 어제 목소리가 안 좋던데 무슨 일 있느냐는 식의 민원을 부대장이나 행정반에 직접 넣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극히 일부일 수도 있고 또 아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군대가 못 미덥고 또 불안해서 그런 것 같은데 성인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도 부대 대신 아들을 관리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국은 4, 50대가 된 부모가 20대가 된 아들이 불안해서 그렇게 걱정할 때 여기 20대 엄마는 겨우 다섯 살짜리, 피붙이 외아들을 그 먼 곳으로 대담히 보내놓고도 한 마디 부탁도, 안부 전화도 없다.
물론 그녀가 특이한 부모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가난한 아이들은 부모의 특별 관리나 부탁이 없어도 잘 놀고 잘 살아가고 있다.
부모가 무덤덤해서 또는 무지해서 그런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결과는 강한 아이들이 만들어진다.
어린 아들을 아무 부탁 안 하고 내보내는 부모도 대단하고 그런 꼬맹이를 수용해서 데려가는 우리 주교 교사들도 대단하다.
그녀는 아침에 어린 아들을 어떻게 혼자 보내냐고 물었던 우리 교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실로암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진: 중앙에 노랑색 옷 입은 꼬맹이가 그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