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너른 꽃밭
삼월 셋째 토요일은 마산역으로 나갔다. 먼저 매표창구로 가서 다가오는 주중 서울로 외래 진료 갈 집사람의 KTX표를 구했다. 이어 역 광장 모퉁이에서 진동방면으로 다니는 농어촌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가고자하는 목적지는 진북 서북산 자락에 있는 의림사였다. 의림사행 74번 녹색버스는 배차 간격이 뜸해 하루 몇 차례 밖에 다니질 않아 시간을 잘 가늠해 기다려야했다.
10시 조금 지나 출발한 버스는 어시장을 거쳐 댓거리를 지날 때 몇몇 아낙들이 탔다. 옷차림으로 봐 교외로 나가 쑥을 캐려는 사람인 듯했다. 밤밭고개를 넘은 버스는 동진터널을 지나 진동 버스환승장에 들렀다가 진북면소재지에서 의림사로 향했다. 나는 인곡마을 못 미쳐 요양병원 앞에 내려 의림사로 들었다. 절간 입구 줄지은 벚나무 가로수는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나는 일주문 밖 해우소 곁 산기슭으로 오를 일이 있었다. 낙엽 쌓인 검불을 헤집고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나선 걸음이다. 내가 창원 근교 산자락과 들녘을 하도 많이 나다녀 그곳 식생에 대해 훤하다. 어느 계절 무슨 들꽃이 피고 어떤 철새가 찾아오는지 현장을 찾지 않고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이른 봄 이맘때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보려고 나선 걸음이다.
서북산 줄기에서 뻗친 인성산 끝자락이다. 내가 들린 산이나 들녘 가운데 노루귀와 홀아비바람꽃과 산자고와 얼레지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명당이다. 창원 근교 웬만한 산자락은 골골마다 훤히 다녀보았지만 이른 봄 피는 야생화를 한 곳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데가 의림사 계곡이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그 봄꽃들의 유혹에 홀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한다.
요즘은 여가사간을 품격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남저수지에선 철새를 찾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들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사진 동호인들은 전투복 같은 위장복을 입고 전방의 박격포 포신을 연상하게 하는 길쭉한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들여다보았다. 용추계곡에선 철마다 야생화를 찾아 카메라에 담는 사람도 보았다. 생태환경에 관심을 갖는 그들이 기특했다.
교외의 화원이나 분재원에서 야생화를 화분에 키워 파는 것을 보았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들꽃은 들녘에서 비바람 맞고 자라야 제 격이지 온실에 키우면 들꽃에 대한 고문이다. 나는 화분에 심겨진 야생화를 거실에 두고 감상하려는 사람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이는 산토끼나 노루를 주택의 뜰에 가두어 키우려는 심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진정으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거실 화분에서 감상할 것이 아니라 발품 팔아 산을 오르거나 들녘을 거닐어야 한다. 그러기에 봄이 오면 주말이면 나는 발걸음이 바쁘다. 불러주는 이 없어도 내가 스스로 찾아갈 곳이 너무 많다. 불모산동에서 용제봉을 오르고 싶고, 용추계곡에서 진례산성 동문을 넘어가고 싶고, 달천계곡에 들어가거나 양미재에서 작대산으로도 가고 싶었다.
야생화 탐방지로 떠올려 본 여러 곳 가운데 의림사 계곡이 우선순위였다. 봄이 오는 길목이면 내가 연례행사로 찾아가는 의림사다. 절간 입구 응달 산기슭은 창원 근교에서 가장 넓은 야생화 군락지다. 낙엽 검불을 비집고 돋아난 새순 새싹은 송이송이 꽃잎을 펼친 군무를 보여주었다. 지표면 다년생 초본들은 나뭇잎이 돋아 그늘을 드리우기 전 서둘러 꽃을 피워 임무를 완수했다.
인적 드문 응달 산기슭에서 두리번두리번 무엇이가를 찾아 나섰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떼 지어 피어나는 들꽃 군락을 만났다. 먼저 노루귀가 눈에 띄었다. 연보라 현호색이 피어났다. 얼룩덜룩한 잎맥의 얼레지는 꽃잎을 펼치지 않은 채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아직 이른 때 찾아왔다만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너른 꽃밭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14.03.15
첫댓글 멋지십니다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