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谷驛館(유곡역관)
홍언충(洪彦忠: 1473~1508)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직경(直頃), 호는 우암(寓菴).
아버지는 참찬 홍귀달(洪貴達)이다.
부수찬, 이조좌랑, 교리(敎理)를 역임한 문인으로
문장에 능통했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문경의 근암서원(近嵒書院)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 『자만사(自挽辭)』가 있다.
잠자리 맑은 바람 외로운 객사에
一枕淸風孤館裏 일침청풍고관리
늙은 느티나무가에 앉아 막걸리 석 잔을 마신다
三杯薄酒老槐邊 삼배박주로괴변
이번 귀양살이 살아서 돌아갈지 알 수 없고
此行不料生還日 차행불료생환일
만사가 멀고 아득하여 하늘에 맡기련다.
萬事悠悠只付天 만사유유지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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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를 거쳐서
마성(麻城) 들판을 지나다오면,
경북 팔경 중 제1경 진남교반과 고모산성이 있다.
고모산성 옆으로 ‘토끼비리’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난 길인데
예전에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 그 길로 다녔다.
그 험준한 길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것이
유곡역관(幽谷驛館)이다.
머나먼 길에 쉬어가거나, 말을 바꿔 타고 가는 곳이다.
유곡역관(幽谷驛館)은 산마루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치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유곡(幽谷)의 마을과 초등학교는 남아 있다.
초등학교 정문 앞 도로 옆으로
일렬횡대로 그 당시 거쳐관 목민관(牧民官)의 송덕비(頌德碑)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온종일 차 먼지를 덮어쓰고 있다.
유곡(幽谷)은 말 그대로 그윽한 골짜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는 화장터가 있다.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
6.25 전쟁 당시에
그곳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 할머니도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그곳에서 지아비를 잃고
한평생 수절과부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조선시대 귀양 가는 선비들이 묵고 가는 유곡역관에
늙은 느티나무가 있었나 보다.
그곳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번에 가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귀양길이다
술 석 잔에 마음을 내려놓고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본다.
어차피 태어나면 가야 하는 길이기에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선비의 길이 아니기에..........
나도 그렇고
조상 대대로 문경에서 집안끼리 혼인을 맺다 보니
예전에 근동(近洞)에 많은 친척들이 계셨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고향에 돌아가도 수척해진 산과 강이
무어라고 말을 건네도 사람이 없으니,
낯설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