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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주님의 기도를 보다 정성껏 바치면서 우리 기도의 부족함을 수정하고 보완합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근동 이방 국가 사람들이 바치던 장황하고 요란스러운 기도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시며, 오늘 우리가 드리고 있는 기도 생활에 대한 성찰에로 초대하십니다.
그들이 바치던 기도는 엄청 요란스럽고 장황했습니다. 너무나 길고 정신 사나워 견딜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어찌 보면 우리 전통 안의 무속 신앙과 꼭 빼닮았습니다. 기도 주관자는 우선 자신의 청을 들어줄 이 신, 저 신, 있는 대로 신들을 불러냅니다. 신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길길이 뛰고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협박합니다.
기도란 것이 자연스럽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한데, 그들 기도의 분위기는 음산하고 기괴했습니다. 부자연스럽고 끔찍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신들과의 한바탕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그런 해괴망칙한 기도는 자연스럽게 유다인들의 기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가 아니며 신들을 협박하고 강요하는 행위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델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 한 구절 한 구절을 짚어가며 묵상해보니 참으로 균형 잡힌 기도요, 우리 기도 생활의 이정표가 되는 바람직한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바치면서 내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내랍니다. 내 나라를 청하지 말고 아버지의 나라를 청하랍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바치면서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말 것이며, 자신의 한계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며,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께 자신의 필요를 있는 그대로 청하랍니다. 매일 매일 일용한 양식도 청하지만,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용서의 힘과 유혹을 극복할 힘을 청하랍니다.
매일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보다 정성껏 바치면서 우리 기도의 부족함을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는 사순시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2)전삼용 요셉 신부님
마태오 6,7-15
모든 청원을 주님의 기도로 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분심이 드는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청하는 것이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일까?’ 입니다.
그래서 조금 기도하다가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거였구나!’ 하고 포기해버립니다.
하지만 꾸준함이 부족하여 들어주시지 않을 것일 수 있습니다.
이미 들어주셨다고 믿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청하는 것이 어떻게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이었음을 믿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시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기도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 모든 청원을 포함합니다. 내가 청하는 것이 주님의 기도 안에 싸일 수 있다면 그것은 계속 청해도 됩니다.
그러나 내가 청하는 것을 주님의 기도를 통해 청할 때 왠지 어색하면 그것은 주님 뜻에 맞는 게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모티브로 한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란 영화가 있습니다.
카메론이란 친구가 한 고등학교에 전학을 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비앙카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비앙카는 캣이란 언니가 있었는데 캣은 성격이 유별나서 어떤 남자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카메론은 돈 많은 친구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위태로운 재정 상황에 있는 매력적이지만 문제가 많은 남자 잭을 선택합니다.
잭에게 많은 돈을 걸며 캣을 꼬셔보라고 합니다.
잭은 돈도 벌 겸 캣을 꼬셔보기로 합니다.
처음엔 여러 번 차이지만 잭의 매력에 캣도 빠져듭니다.
결정적으로 첫 키스 하려고 캣이 시도하자 잭의 양심이 발동합니다.
순진무구한 캣의 첫 키스를 돈 받고 장난으로 해버리는 사람은 되기 싫은 것입니다.
이에 캣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잭이 그런 일은 더는 하지 않겠다고 해도 카메론은 친구들을 선동하여 더 많은 돈을 겁니다.
잭은 진정한 마음으로 다시 캣에게 다가가고 그녀의 마음을 되돌려놓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돈을 받고 접근했다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그를 계속 괴롭히고 결국 모든 것이 밝혀지고 맙니다.
커다란 상처를 입은 캣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잭을 떠납니다.
그러나 잭은 자신이 모은 돈으로 캣이 소원하던 기타를 선물하며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 그는 돈을 받고 접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캣은 다시 잭을 받아주고 둘의 진짜 사랑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우리 양심이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그 양심을 먼저 정화하지 않으면 내가 청하는 것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 양심을 정화하는 역할을 주님의 기도가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닙니다.
하느님 자녀만이 가져야 하는 양심을 선물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내가 청하는 내용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에 집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 앞부분은 내가 청하는 것이 주님 뜻에 맞는지 알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내가 청하는 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드리는 것인지, 또 내가 하느님 나라에 머물게 하는 것인지, 혹은 아버지의 하늘의 뜻이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뒷부분은 내가 청하는 것들을 내가 청할 자격이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내가 하늘의 양식을 매일 먹고 있는지, 이웃을 용서했는지, 유혹 거리를 멀리하는지, 또 악에서 돌아섰는지를 살피게 합니다.
따라서 나 스스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기도하면
내가 청하는 것이 주님께 청하기에 합당한 것인지 분별이 되고 또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이미 받았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모든 청원을 주님의 기도로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기도가 청하는 이의 양심을 정화하고
결국 하느님 자녀의 양심이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6,7-15: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9절)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아들을 믿는 이들의 특권이며, 믿음의 어머니인 교회에서 우리가 받고 그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이며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우리에게 아버지라 불리기를 원하신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9절) 이는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로 더욱 거룩해지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우리 안에서 나날이 거룩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10절)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먼저 우리 안에 서고 하느님께서 다스리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시민들은 이미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안에 사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의 모습에 따라 나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10절) 이는 우리의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하며, 당신의 뜻이라는 힘과 그 뜻을 실행하는 능력을 주십사 청하는 것이다. 그분의 뜻은 그분께서 자녀로 삼으신 이들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11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한다. 이것은 구원의 양식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죄로써 그리스도와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양식으로 주님의 신성에 참여한다. 이 양식은 딱 하루에 충분한 만큼 주어진다. 이 양식은 내일을 위한, 영원을 위한 양식을 뜻하며 물질로 바뀌지 않는 양식이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12절) 우리는 죄의 용서를 청한다. 그러나 용서받기 위한 조건은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이 청원은 우리가 우리에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전제한다. 우리에게 용서를 청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를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용서받았으므로, 용서에는 하느님과의 확고한 계약이 담겨있다. 용서는 잘못한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13절) 우리는 이미 저지른 죄의 용서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주십사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탄에게 이끌려 가도록 두지 마십사고 청하는 것이다.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13절). 이 기도는 앞의 모든 청원과 기도를 간결하게 요약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를 하면 더 청할 것이 없다. 악에 대해 하느님께 보호를 청하고 그것을 받게 되면 세상에서 하느님을 보호자로 둔 셈이니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주님의 기도를 잘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 9)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가지고 사는
기도의
자녀들입니다.
사람은
기도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너무나 잘
가르쳐 주십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기도의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온종일 흐르는
기도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삶을
속일 수 없고
우리의 마음도
속일 수 없는
하느님과 우리의
진실된
관계입니다.
우리의
일용할 생활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기도로 살 수 있는
우리의 생활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주님의 기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우리는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기도의 이야기이며
기도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기도로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우리의
만남입니다.
5)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많은 회사에서 직원 교육을 합니다. 저 역시도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많은 회사에서 특강 부탁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돈을 굴리는 법도 모르고, 회사 구조도 잘 모릅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강의가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회사에서 인성 교육을 해 달라고 했고, 자기 회사에 꼭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금융, 회계, 인사, 마케팅, 가격 책정 등의 인지적 기량 훈련을 받은 회사가 있고, 주도력, 자제력, 결의 등의 품성 기량 훈련을 받은 회사가 있습니다. 이 두 회사 중에서 어느 회사의 교육 효과가 더 컸을까요? 이 교육은 똑같이 5일 정도에 걸쳐서 이루어졌는데, 그 후 2년에 걸쳐 회사 수익이 평균 30% 증가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인지적 기량 훈련을 받은 회사가 아니라, 품성 기량 훈련을 받은 회사였습니다. 품성 기량 훈련을 통해 훨씬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신제품을 선포였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상 것을 통해서만 이 세상 안에서 더 잘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예수님께서 강조하셨고, 실제로 이 사랑에 집중하며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또 현명하게 지금을 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하느님 나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큰 사랑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맺어야 하는 단순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했습니다. 모욕받았음에도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존심도 상하고, 상대방이 나를 우습게 볼 것 같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지금을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고 굳게 믿기에 그분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라는 사랑 실천이 지금 삶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더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한다(조지 오웰).
6)이병우 루카 신부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9)
'기도하는 방법!'
오늘 복음(마태6,7-15)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하신지 알고 계신다."(마태6,7-8)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이자 가장 완전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입니다.
신자들은 말합니다.
"기도가 어렵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기도가 어렵고 힘들까?'
'그 이유는 형식과 시간에 얽매인 율법적인 기도, 교회가 신자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예수님.주님)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일곱 개의 청원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세 가지 청원'입니다. 후반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네 가지 청원'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판기처럼' 일정한 돈을 넣으면 필요한 것이 곧바로 나오는 것처럼, 지금 내가 바라는 청원이 곧바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고, 그다음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나는 지금 주님의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너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칠 수 없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너를 용서합시다!'
7)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사 55,10)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와
결코
그리로 올라가는 법이 없다네.
땅 위에서
이미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을
흠뻑 적시며
영혼의 싹을 틔우고
씨앗을 뿌린 이들은
열매를 맺게 하고
양식을 먹는 이들에게는
양식이 되어준다네.
복음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 6, 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