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 받아내기 위해
느티나무는 그늘을 펼치는 것이다
느티나무 발등 흥건하도록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전생을 쏟아야 하는 슬픔인 것이다.
어깨가 넓은 느티나무 그늘은
울기 참 좋은 곳이어서
언뜻언뜻 하늘도 눈가를 훔친다
느티나무도 덩달아 글썽해져서
일부러 먼 산에 시선을 메어 두고 있다
저녁 산이 붉어지는 까닭이다.’
매미 울음을 절묘하게 노래한 청산도 시인 유은희 님의 시,
‘느티나무 그늘은 울기 좋은 곳이다’ 중 일부다.
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연일 대지를 달구며 열대야 현상까지 겹쳐 밤잠을 설치게 하더니,
매미는 장마 기간에 울지 못한 한이라도 푸는 듯 더 열정적으로 울어댄다.
수컷이 마지막 짝짓기를 위해 애절한 울음을 목청껏 토해 내는 것이다.
김해정 시인의 시 ‘매미는 울었다’에서
‘무더운 여름을 푸르게 장식한다.
울어야 하는 삶, 귀뚜라미가 오기 전까지
기다림의 서사시를 만들어 간다.’ 와 같이...
매미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여름이 야속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하루빨리 짝을 만나 이승에서의 사랑을 나누고 떠나야 하기에,
허향숙 시인은 시 ’울음통‘에서
“매미의 몸은 죄다 울음통이에요.
울음을 쏟아내지 않고는 이 여름을 건너갈 수 없어요.
울고 또 울다 보면 빈 껍데기만 남겠죠"라고 묘사했다.
수컷 매미가 목청껏 울어서 짝짓기에 성공하면 매미의 알은 나무줄기 속에 있다가
다음 해 6~7월에 유충이 되어 땅속으로 들어가서 약 7년 동안 굼벵이로 지내게 된다.
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땅 위로 나와 허물을 벗고 또 다른 '나'로 환골탈태한 매미는
종족보존을 위해 다시 짝을 지은 후 1주일 아주 짧은 기간을 살다 죽는다.
그나마 짝짓기 확률은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절규에 가까운 울음에도 불구 암컷이 구애를 받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생을 마치게 된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방선부(放蟬賦)를 보자.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매미를 날려 보내주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둘 다 똑같은 동물이고 매미를 살려주면 거미는 굶는데 왜 놓아 주었느냐”고 힐난했다.
이러자 ‘거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매미는 심성이 맑을세라,
배 부르려는 욕심은 채워지기 어려우나 이슬 먹는 창자야 무슨 욕심이 있을 것인가,
욕심 많고 더러운 놈이 맑은 놈을 박해하니 내 어찌 동정이 없을 소냐’라고 답했다.
중국 진나라 육운(陸雲)은 그의 한선부(寒蟬賦)를 통해 매미가 다섯가지 덕을 갖춘 곤충이라 했다.
‘머리에 관대가 있으니 문인의 기상을 갖춘 것이요<문(文)>,
천지의 기운을 품고 이슬을 마시니 청정함을 갖춘 것이요<청(淸)>,
곡식을 먹지 않으니 청렴함을 갖춘 것이며<렴(廉)>,
거처함에 둥지를 만들지 아니하니 검소함을 갖춘 것이요<검(儉)>,
때에 응하여 자신의 할 도리를 지키어 울어대니 신의를 갖춘 것이다<신(信)>.’
'익선관(翼蟬冠)'을 아시는가?
조선 시대에 왕이나 세자가 시무복인 곤룡포에 쓰던 모자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 중인 만원권 지폐 도안에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그 익선관이다.
날개 익(翼), 매미 선(蟬), 모자 관(冠).
매미가 가지고 있는 오덕(五德)을 본받고자 관모에 새긴 것이다.
그래서 옛 임금은 매미의 양 날개를 위로 향하게 하여 이를 형상화한 익선관을 쓰고 국정을 돌보았다.
매미의 성덕과 날개처럼 투명하게 선정을 펼치라는 뜻이다.
최근 드라마 채널에서 가장 열린 생각을 갖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포용했던 현군,
정조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이산‘ 재방송을 보면서 익선관이야말로,
세종에 이어 정조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의 문무백관도 양 날개를 옆으로 행하게 한 관모를 썼다.
그 이유 또한 매미의 오덕을 망각하지 말고 공직자로서 품격을 지켜나가라는 뜻이었다.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를 통해 공직자의 덕목으로 염결(廉潔)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했다.
이렇듯 짧고 청빈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매미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늘도 시끄럽게만 들리는 매미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소음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매미의 오덕(五德)을 떠올리면서 우리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다시 태어나는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