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 (5~6)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에 해당하는 '와이트맛체브 임모 샴'(waithyatseb
immo sham)은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와 함께 거기에 섰다'이다.
여기서 '그가 섰다'라는 뜻의 '이트얏체브'(ithyattseb)는 '서다'(탈출14,13),
'대적하다', '등을 돌리다'(2사무18,13)라는 뜻을 지닌 '야차브'(yatsab)의 재귀형이다.
그런데 '야차브'(yatsab)는 단순히 '서다'(탈출32,26)라는 뜻을 지닌 '아마드'(amad)
나 '(굳건히)서다'(탈출33,21)라는 의미를 지니는 '나차브'(natsab)와는 달리 주로
'~와 대적하여 서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이다.
따라서 '함께 서다'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모세와 한편이 되어 어떤 대상을 대적하여
섰음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함께 선 장면이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형용할 수 없는 지극한 위엄을 발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달라는 모세의 간구(탈출33,12.13)에 대한
분명한 응답으로서(탈출34,10.11) 주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서서 앞으로 맞게 될
가나안 족들(탈출34,11)과 싸우실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탈출기 34장 5절에서 모세는 백성을 위한 중재 기도를 드리면서 과거에 처음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처럼(탈출3,13~15), 자신과 함께 하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백성들에게 선포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역시 하느님의 동행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지금 모세의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야훼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직접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탈출34,6).
'주님은,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6)
주님께서는 처음 모세를 부르실 때 '나는 있는 나다'(탈출3,14)라고 자신을
계시하시며 그 이름을 '야훼'('예흐와'; yehwa)로 알려 주셨다(탈출3,15).
바로 그 '야훼'께서는 이집트에서 기적들을 행하시고,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며,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임으로써 그 어느
다른 존재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시는 '(스스로)있는 자' 라는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 '야훼' 되심을 입증해 주셨다.
이제 주님께서는 자신과 동행하여 달라는 모세의 간구(탈출33,12.13)에 대한 응답으로
다시 한번 그 이름을 선포하심으로써, 당신이 바로 과거에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그 주님인 사실과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당신 백성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탈출기 34장 6절의 '하느님'에 해당하는 '엘'(EL)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방의 '신'(신명32,13)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천지(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느님'을 의미할 때에는 그 '하느님'(EL)의
속성을 묘사하는 형용사들이 수반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는 특별히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그 '선하심'의 속성들이(탈출33,19;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즉 하느님의 속성들 가운데 본절의 '자비하고 너그럽고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한' 그 속성이야말로 다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들로 회복시키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하신 하느님 당신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