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영성과 기도
-겸손과 나눔의 미덕
낯섦의 길을 떠났다. 그곳은 ‘올리베따노베네닉도수녀원’이다. 수녀원 앞에는 광안리 바다 해안선이 길게 뻗어 있으며 광안대교가 육지와 섬을 연결하여 차들이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 그곳을 바라보니 2003년 광안대교(7.5km) 개통 기념 하프 마라톤 대회에 뛰었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수녀원은 이해인 수녀님이 계시기에 더 유명한 곳이다.
수녀님의 특강이 ‘길 위에서’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낯섦의 길을 떠난 지 60년이라며 살다 보니 거리낌 없이 생각을 쏟아내곤 한다고 하셨다. 큰 스님은 아니지만 어디 가면 인생에 대해서 물으면 나도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구나 싶단다. 오래 전에 남천동 성당에서 대림 특강을 했을 때 ‘일상의 영성과 기도’의 시에서 서울 주보에 썼던 글인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다섯 가지의 저의 인생에 대한 지침을 나누고 시도 읽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고 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저의 신간 ‘소중한 보물들’ 중에서 그리움이란 시인데 그리움을 향한 사람, 자연을 향한 그리움, 사물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이 내 인생의 그리움이다. 이승의 여정에서 먼 길을 떠날 때 그리움의 시를 쓰다 마침내 누군가에게 그리운 존재가 되었다고 말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상의 영성과 기도’라는 시집을 우리에게 주었다. 거기에는 다섯의 영성이 담겨 있었다. ‘순례자의 영성’에서 ‘순례자의 기도’라는 시에 순례자라는 말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오늘도 부산교구에 40대의 젊은 신부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또 저희 본원에도 저랑 같이 사는 수녀님들이 다섯 달 동안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선종 준비는 위독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살면서 죽음 준비를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절실히 다가온다. 저희가 하루의 끝 기도를 할 때마다 ‘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한다.
용서와 화해가 어려울 때 십자가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는 순례자의 영성을 살다 보면 정말 주님이 나를 그만하고 오너라고 할 때 ‘예’ 하고 가는 죽음 연습을 미리하다 보면 큰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꿈에 법정 스님도 보이고, 고모님도 보였는데 ‘저세상 사람들이 꿈에 놀러 오는구나.’ 생각하면서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시간을 사랑하는 영성’이다. ‘시간의 선물’ 시를 다 같이 읽었다. 끝 연은 “살아서 나를 따라오는 시간이 이렇게 가슴 뛰는 선물임을 몰랐네요”이다. 어린 소녀 시절에 친구들이 지금 만나면 다들 백발에 아프고 우울증과 치매도 달고 시간을 사는 거란다. 시간은 허무하고 간다고도 하지만, 오기도 한다. 거울을 보면서 그 시간들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든다. 일상의 길에서 한 번이라도 더 감사하고 더 웃고 용서하는 수련생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내게 오는 시간을 새롭게 사랑한다.
‘평상심의 영성’은 ‘수도원의 아침 식탁’의 시이다. “침묵 속에 감사하며 엄숙하게 먹는 밥도 수십 년이 되었건만 나는 왜 좀 더 거룩해지지 못할까.” 2014년 교황님이 수녀원에 오셨을 때 그분께서 한 말 중에 거룩함은 특별한 것을 행함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으로 평범한 것을 행하는 것이라 했다. 누가 사인해달라고 하면 늘 평상심으로 오늘도 새롭게 하라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 때로는 사막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시간 속에 길들이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바로 평범함을 견디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판단보류의 영성’이다. ‘내가 외로울 때’의 시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 되는 벽을 느낄 때 <중략> 누군가 나를 험담한 말이/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도착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어 외롭다/ 쓸쓸하고 쓸쓸해서 하늘만 본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다른 이의 등 뒤에서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에게 터놓고 말하기를 바란다. “주님 함부로 다른 이를 험담하는 악습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판단의 말은 보류하되 사랑의 행동은 빨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
‘기쁨 발견의 영성’이다 ‘기쁨의 맛’의 시는 ‘바람에 실려 푸르게 날아오는/ 소나무의 향기 같은 것/ 꼭꼭 씹어서 먹고 나면 더욱 감칠 맛 나는 잣의 향기 같은 것’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 요리하는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기쁨의 개임’에서 주어진 상황이 안 좋을 때, 우울할 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인간관계가 어긋나고 복잡해질 때 상황에 맞는 화살기도와 기쁨의 개임을 한다. 꼬마에게 인형이 아닌 지팡이를 뽑았을 때 서러워 할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나에게 필요 없다는 걸 기뻐하면 된다는 것이다.
수도자의 길은 항상 조바심이며 긴장의 연속이다. 어찌 휴가를 얻어 동생네 집에 가면 그렇게도 소화가 잘된다고 하셨다. 수녀님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많은 분께 수도자로 시를 쓰면서 많은 분과 교류하면서 귀찮고 번거러움에서 벗어나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수도 생활 60년이 나에게 준 선물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수녀님은 찾아오는 그가 천사일지도 모르며,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수녀님은 항상 겸손을 미덕으로 수도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신다. 감사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따뜻하고, 웃게 된다고….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며 여러분도 행복하라며 끝을 맺으셨다. 수녀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2024. 07. 26. 올리베따노 수녀원 피정 이해인 수녀 특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