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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말레이 반도를 종주하며
7월 7일 맑음
새벽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일찍 깨었는데 요술쟁이 밍키처럼 생긴 옆 침대의 美소녀 영국애가 짐싸고 나간다고 무얼 찾는지 손전등을 들고 헤매다가 나의 눈인사에 잠시 싸인만하고 후다닥 뛰쳐 나갔다. 뱅기 시간이 급한 모양이다.
그녀는 약 1年 半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맘마있는 영국으로 간다는데 이제 솜털이 벗겨질까 말까했을 정도의 앳띤 나이로 그제 내가 쬐금 이뻐해주니까 내
앞에서 이소령의 쌍절권 비슷한 줄 쌕쌕이로 별의별
패션-쇼까지 연출해 보였는데 아무래도 서투르기만한
것이 더욱 귀여웠었다. 한국도 가보았고 어디가 좋고
어디가서 무엇무엇을 했는데 그저 해피였단다.
발랄한 소녀였다. 제대로 사귀어 볼 여가도 없이 그저 휑하고 사라져 버리니 방안의 선풍기 바람껼 한켠으로 허전한 마음이 맴돈다.
잠시후 우리도 짐싸고 멀고도 먼 말레이 반도를 종주하는 장도에 올랐다.
후아람 퐁 역에서 차표를 끊으니 12시 20분 發, 완웨이 티켓이 없어 태국 국경의 종점까지인 핫야이 역에
다음날 새벽 7시경에 도착예정. 3등 열차로 무려 20시간 가까운 일정을 쭈그리고 가야만 한다.
조폭女는 무조건 침대칸은 사양하고 돈좀 아껴서 맛있는 것 먹는다는데 억척파 여성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토요일이 되어 침대칸도 없고 수수료 몇푼
아낄라고 여행사에서 미리 예매표도 않끊고 역전으로
달려 나가서 겨우 차표를 손에 쥐었는데 쟈-바 헹님과 건강이 별로 좋지 못한 미스터 김이 걱정이다. 나야 뭐 산전수전 겪은 몸으로 산으로 들로 때로는 돌부처모양 서서 자는 재주도 있으니 신경꺼도 되지만....
기차는 안다만과 타일랜드만 사이로 길게 뻗은 반도를 우리의 비둘기칸 정도의 수준에서 고물 선풍기 달랑 몇 개 달아 놓고 삐꺽삐꺽 덜컹덜컹대면서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달려 나갔다.
한 번쯤 가보았어야 될 치앙마이, 꼬 피피, 꼬 싸멧 그리고 국경 저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허전한 마음을 한켠 접어 두고 무작정 또 이상한 여행길에 괴상한 엽전들과 일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래 이 길을 달려 갈 때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가다가 중간 중간 들러서 후아힌의 해변에서 때로는 첨퐁에서 내려 배를 타고 코 따오에도 가보면 좋으련만 그나마 내일정으로는 요번 루트도 벅차기만 하여 다음에 언젠가는 하고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미지의 스케줄로 남겨 두어야만 했다. 그저 시간 여유가 많은 양코들의 생활 文化가 부럽기만 하다. 1년에 이래저래 휴가를 몽땅 합쳐서 3달 정도(미국인들은 2~3주 정도에 불과함)가 된다는데 왜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부지런하게 살면서도 겨우 3일에서
1주일 정도의 시간으로밖에 여유를 부릴 수 없는가?
그러면서도 어느 나라에서도 못 볼 정도로 혹독하게
일해도 먹고 살까 할 정도이고 보니 말이다.
흔히 우리 엽전들은 우리가 GNP가 일만불을 넘는 선진국에 다가 왔다고 뻥치는데 외국사람들 앞에서 GNP얘기를 하면 상당한 고등교육을 받은 친구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잘 모르는 단어이다. 그만큼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홍보정책에 말려 들어 그 개념으로만 각 나라의 생활 및 소득수준을 점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GNP와 GDP도 아울러 생각해야 되고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자원하나 없는 우리네가 먹고 살려고 빨리 빨리를 외치며 겨우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삶의 질을 잘 생각해 보면 나의 생각으론 방글라데쉬 등 일부 기아 국가를 제외하곤 아마도 세계에서 꼴찌에 가까운 나라가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이 든다.
☞철학,역사를 조금 안다는 서양인들과 얘기해 봐도 그렇고 나역시 지난 10년간 세계 각지를 떠돌며 보고 느껴온 시각적인 체험이기도 하다. ⇒ 이러한 시각에서는 그들은 개미 쳇바퀴처럼 먹고 사는 세계제일의 경제대국 일본도 우습게 알 정도다. 우리나라보다 GNP에서 쬠 뒤떨어 지고 서양에서는 제일 못사는 축에 드는 그리스인들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알만하지 않겠는가?
13편.코카콜라와 양코
휴양지인 후아힌이나 또 어느 유명한 관광지 주변으로 기차가 지나칠 때 수 많은 아파트와 우리식의 연립빌라를 보고서는 태국의 시골에서는 잘 못보는 풍경인지라 쟈-바 헹님에게 물어 보니 거의가 양코뱅이들이 코카콜라를 하나씩 붙잡고 일정기간 동안 임대해서 낮에는 해변에서 뒹굴고 저녘엔 코카콜라 껴안고 그렇고 그렇게 한세월 보내다가 훌쩍 즈그들 고국으로 날라버린다나... 한편 미친놈들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는데 유부남의 내 신세가 가련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코카콜라는 예쁘장한 로컬와이프를 말하는데 前에 나온 코카콜라의 음료는 숫자 '팔'자 형태의 기가막힌 곡선미와 각도를 유지하여 서유럽의 바람둥이들이 곧잘 써 먹었던 예술적(?)인 단어이다. ⇒ 또한 코카콜라만 챙기는게 아니고 더러는 양코 여자가 현지 남자를 조달해서 엔조이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태국에서 만난 현지 남자들도 여러번 이었으니까.
☞앞서서 이야기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잘 고르면 미화 400불 정도로 수영장딸린 호화 저택을 약 1년간 임대해서도 살 수있다니 꼬방의 노총각,노처녀들도 고민.상심 끝내고 이런 곳으로 눈길을 돌려 세계로 뻗는 한국인의 위상도 떨칠겸 새로운 인생을 본격적으로 개척해보면 어떨까???~~~~~
인도네시아의 여성들(특히 무슬렘)은 지 서방이 몸져 눕거나 돈을 잘 못벌어도 끝까지 일편단심 민들레라나............ 요즈음 엽전 여자들도 옛날 같지는 않으니까...
기차는 다음날 오전 7시가 넘어서(약 1시간 가까이
연착) 국경지방의 핫야이 역에 도착했는데 약 1,000칼로를 넘게 주행한 비용(189밧 : 한화로 5600원)으로는 무척 싸기도 했다.(이 기차는 내가 혼자 돌아올
때 탓던 국제특급 열차와는 달라서 완웨이 국제열차는 아니다)
핫야이 역에서 내려 다시 표릎 끊고서 역 앞으로 나가 누들을 시켜 먹고나니 조금있다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특급열차가 다가왔다.
침대칸으로 제대로 배정(샤-워도 가능)을 받으니 우리 팀은 인자 신이 나기 시작했는데 조폭녀는 신혼여행이라도 온 것모양 들떠서 이동식 시-트를 이리 저리 밀고 땡겨서 지 혼자 쭉 뻗어 버렸는데 얼마 못가서 태국 출국 및 말레이시아 입국 수속하라고 짐 몽땅 싸서내리라고 방송하니 혼비백산이다.
나는 태국 입국 당시에 이미그레이션 페이퍼를 보관하고 있지 않아서 쬐금 떨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무자는 인상을 부릅뜨며 한 쪽으로 제껴놓고 수속도 꼴찌로 통과시키면서 일장 훈시를 들어야만 했다. 아! 조폭녀도 그 페이퍼를 입국당시 주지 않았다는데 계집은 스마일 한방으로 통과시키고 왜 나만 들볶아대는지.....
국경을 넘으니 열대 야자가 태국과는 비교도 않될 정도로 늘어서 있는 쟝-글이 쭉쭉 펼쳐 지는데 역시 열대의 남국에 온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14편.페낭 입성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말레이지아 북서부의 종점인 '부터워스' 역에 도착.
쬐금 걸어 나가니 페낭으로 가는 선착장이 보인다.
도선료는 0.6링기(1 RM은 약 350원 된다니까 우리돈
200원 가량)인데 돌아 나올 때는 짜공이란다.
페낭은 여기서 30분 정도만 슬슬 배가 달려도 금방 도착할 정도로 지척에 가깝고 동양 최대의 페낭대교를 옆에 두고 있다.
페낭은 랭카위 등지로 나가는 관광 휴양지로 일명 동양의 진주라는 리조트 섬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섬에서는 '바투페링기' 비치 산책을 빼고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주변에 가볼만한 곳이 별로 없는 것같아 나만은 아예 도미토리 숙소에 쨩박혀서 그동안 밀려온 여독을 풀고 있었다.
☞죠지타운에 있는 플라쟈 호스텔로 도미토리급은 8링기 : 우리 돈 약 2800원 정도인데 쬐끔 않싸다.
조폭녀, 미스터 김 그리고 도미토리에서 만난 하야시상과 어울려 시내관광을 나갔던 일행이 저녘 늦게서야 돌아 왔는데 갈데가 없어서 산등성이 하나있는 곳으로 케이블-카 타고 올라갔다가 반대편으로 걸어서 내려 왔는데 길이 가파라서 무척 힘들게 내려 왔단다.
도미토리에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어느 한국 女학생에게 누군가 말을 걸으니 경주 대학교 관광학과에 재학중이고 방콕에서부터 승합車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 서바이벌 게임中이라나 뭐라나, 이들 두 여학생이 한 조가 되어 다른 팀과 대결중이라는데 애들은 즈그들끼리는 영어로만 씨부렁대곤 하는데 이런 것도 관광학과에서는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원정 훈련을 빙자한 모양이다.(도대체 즈그들 영어해서 뭐 남노, 양놈들하고 좀 해보돈 않고.....) 당최 짜모없는 자슥들은 어찌 관광학과라도 다닐라치면 학교에서 권장하는 해외 패키지에 기죽기 쉽상일 것이다.
서양애들은 이런 것 주선 않해도 즈그들 알아서 혼자 잘 여행하는데 왜 우리 엽전들만 영어 못해서 못다닌다고 하고, 짜모 없어서 그런다고 하고, 시간 여유가 없다고 하고, 누구는 혼자 무서워서 그런다고 하니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 엽전女들은 내가 말레이시아를 떠나서 인도네시아를 갔다가 다시 페낭에서 방콕으로 혼자 돌아갈 때까지 부딪혔던 유일한 엽전이기도 하였다.
15편.세계의 4대 성인
7월 9일 맑음
페낭의 국제 페리터미널까지 갔다가 배가 고장나서
우리 일행은 헛탕치고 기냥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많은 승객들이 인도네시아의 메단으로 떠나는데 재수없이 양놈 몇하고 우리 일행만 낙오되어 김이
빠져 성깔 난 쟈-바인이 표를 다른 회사 페리로 바꾸어 버렸다.
☞페낭-메단간의 국제 페리노선은 현재 4개 회사가 각축을 벌여 음식도 주고 영화도 보여주며 서비스에 열중이다
오후에 나의 귀국行이 차질이 생길까 다급한 마음이
들어 숙소를 떠나 메인타운의 관광회사를 세군데나
찾아 보았는데 내가 끊은 그룹 티켓으로는 변경이 어려울 것이라고 아예 쿠알라룸프行 뱅기표를 새로 끊는게 어떠냐고 어느 여직원은 권장하는데, "미치었나, 내가 몇 십만원씩 버려가며 표를 또 사라구~~~
않돼져!"(나는 빛을 내고 나온 놈인디)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다. 가만히 또다시 일정을 따져
보니 하루라도 지연되면 돌아가는 일정은 너무 빡빡해서 쬐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예약된 뱅기타임 도루묵이 된다. 하필 돌아 가는 일정도 주말이 되지않나. 휴-우~~~~~
남들은 다 오픈티켓(연중 내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슴)인데 재수없게도 그룹 티켓으로 삐져 나온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기냥 나 혼자 돌아 갈 수도 없고 기냥기냥 가보기로 생각을 접어 두는 것이 편했다.
우리는 저녘에 하야시상 대동하고 맘마 먹으러 나가서 일어와 영어를 섞어 가면서 이바구를 나누었는데
내가 前에 미쯔이 會社(일본을 대표하는 3대 그룹중
하나임)에 약 2년간 근무했었다니까 약간 놀라 보인다.
그는 22세의 쪽발이 청년으로 한국에도 가보았고 젊은 도모다찌 한국인들도 많이 사귀고 있다는데 요즘
소위 말하는 신세대 사고방식을 가진 엑스(또는 엔)세대 일본인이기도 하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발이
사고방식은 두 발로 차버린 코스모폴리탄이기도 했다.
재학중 미국 뉴욕근처의 '브롱스'가(여기를 아냐고 해서 물론이라고 하니까 놀래면서 흑인 빈민 밀집지역이고 매우 위험하다고 하길레 낸 한 밤중에도 여기를 휘젓고 다녔다고 공갈빵쳤슴)에서 1 년간 어학연수를 다녔다는데 상당히 스피드하고 그놈의 쪽발이 발음은 어디다 팔아 먹었는지 세련된 발음과 어휘력을 구사하니 내가 쪼매 딸리어서 얼마 않가서 나의 부로컨 잉글리쉬와 깡통 영어가 들통날까봐 아주 조심 조심하며 그저 쓸데없이 "오 예!"나 "쏘우데스까"를 연신 남발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우스개 소리로 각국의 로컬와이프(현지처는 본인한텐 해당무)의 실정을 얘기하다가 코카콜라로 표현하자 도대체 코카콜라가 뭐냐고 물어 보길레 잘빠진 여자의 몸매를 요염한 포즈로 흉내내며 설명해 주니까 일행과 함께 한참을 웃어 제꼈다.
식당 맥주가 비싸서 구멍가게에 들러 맥주 두 병사서
숙소의 도미토리 테라스에 나와 한.일간 빽패커 친선교류를 벌이는데 조금 떨어져 앉은 중년의 독일 여성이 영어와 일어가 섞여 나오니가 희안하게 듣고 있다가 엽전과 쪽발이 언어가 같지 않냐고 묻기도 하고
때로는 중간 중간 말 참견도 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어제부터 그녀가 양놈들끼리 어울릴 때 살짝 엿들으며 이 여성을 눈여겨 봤는데 이 게르만 아즈매는 이바구 좋아하는 수다쟁이이기도 하고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게 일반적으로 만나는 독일인들과는 판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역시 코스코폴리탄이었다.
나보고도 어찌 아침 일찍 휘딱 떠나더니만 왜 돌아
왔냐고해서 어찌어찌해서 돌아 왔는데 개인적인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봐서 걱정된다니까 다 잊고 오늘 하루를 더 엔조이하라나....
그녀는 파라슈트(고공낙하)도 했던 맹렬파 여성이기도 했는데 동남아 여행중 돈 떨어지면 영어 선생질도 하면서 그저 그렇게 즐기며 인생을 산단다.(운동신경도 무척 발달되어 보였고 존경심이 앞섰다.)
'코스모폴리탄' 얘기 나왔으니까 정반대로 대치되는 인종들이 빽패커 사이에서도 일맥상통하기에 심심풀이로 열거 해보자면,
▶유대(이스라엘)인 --- 신과 유일하게 유대맺은 선민들이라서 지들만 잘난 척하고 산다
▶더-취(독일)인 --- 더 취해서 주정부리면 개스로 살상시킨다
▶쪽발(일본)인 --- 족발 먹고서 오리발 내밀다가 쪽팔리면 할복한다
▶카레(인도)인 --- 아무데나 카레같은 침도 잘 뱉고 도대체 매너는 풀빵이다
내 나름대로 표현해 봤는데 재미있을 것같지는 않지만 이들 민족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해 보았다. 열거한 4대 성인들은 즈그들만 잘났다해서 따로 따로 노는 족속들이다.(소수는 않그렇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유대인들이 발을 못붙이게 비자를 막고 있다.
16편.메단으로 가는 돌부처
7월 10일 맑음/바다 잔잔함
새벽같이 튀어 나와 아침부터 지루하게 국제 페리터미날에서 출국 수속을 대기하다가 내 앞으로 어느 무슬렘 아즈매가 새치기하면서 미안했던지 인살라!(신의 뜻으로 용서해 주세요)하길레 내도 인살라!(신의
뜻대로 댁을 용서하리다)하면서 합장해댔는데 이런
것도 신의 뜻대로 용서를 빌고 신의 뜻대로 관용을
베푼다는 생각에 우습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배가 출항을 하는데 '말래카' 해협을 건너서 무려 6시간 정도를 항해하여야만 했다.
초과 탑승인원으로 일찌감치 승객석을 포기한 쟈-바인은 후갑판으로 나와 꼼짝없이 바다만 응시해 대는데 무얼 그리도 골똘한지 등 뒤로 보이는 돌부처모양
등신불 석가좌상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인지 모를 전륜에 휩싸여 시계가 멈추어진 시간 속의 영혼으로 떠돌아 에드가 알렌포우가 헬렌을 그리던 그 옛날 '나이씨아'의 木船을 타고 방랑에 지치고 야윈 나그네를 조용히 저 피안의 해안으로 실려가는 것과도 같이 초록 빛 바다의 파도넘어 아득하게 들려 오는 운명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時空의 이 세상 한계로부터 나를 멀리 헤엄쳐 가게 하였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것인가>
삶을 둘러싼 침묵 속에서
生과 死를 헤매면서 결국은 헛된 망령처럼
욕구와 분노와 경멸에 취해
존재의 술통에서 허부적거리며
그대는 허무의 술잔을 들이켜야 하는가?
지나간 불안과 슬픔에서 세월이 맴돌아 갔을 때
거둘 수 없는 눈물도 그대 가슴에 어둠의 상처로 신음하며
쓸쓸한 파도의 거친 고독 속에서
걷잡을 수 없던 불타는 노여움은
아무도 허무없이 존재않는 것처럼
다만 그대의 청춘이 잠시 동안 헛된 꿈으로
존재에 맞섰던 비련의 작별을
세월의 어스름 속에 묻혀 사라져 간다.
말래카 해협을 떠도는 이 작은 새들도
아무런 울음도 없이 사랑도 욕망도 헛된 희망처럼
희롱하는 운명에 한숨 짓는다.
그대가 지나는 고독은 숙명처럼 어두운 상실의 빛으로
아름다운 미래와 과거가 텅 빈 무지 속에 존재하고
그 화사한 날들은 시간 속에 갇혀서
언제 어디에서 환희를 부러워 했던가?
존재의 모든 원천이 침묵에 차 있듯이
나를 증오한 명예는
울어도 소용없는 탄식과 호소에 허물어지고
파도의 거품 속에 가이없는 신음뿐...........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것인가?
방황에 지쳐 몸소 간구하고자 할 때,
神이 그대를 위해 또 하나의 노래를 가르친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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