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논쟁이 복지 재원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보편복지론에 반발하는 보수언론이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부유세, 사회복지세 등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진보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금이야말로 긴 안목에서 복지재정 대책을 따져볼 적기인 듯하다.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가파르게 자연증가가 일어난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박사팀 연구에 따르면,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8%대인 정부 복지지출은 2050년까지 20%대로 올라간다.
이런 복지지출 증가는 고령화가 진행된 결과다. 노인 연금 지출이 커지고 의료비도 늘어나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위해서는 사회보험료 인상 외에도 조세수입이 지디피의 3~4% 정도는 늘어나야 된다고 한다.
국민의 15%를 빈곤으로 몰아넣는 양극화에 무대책인 엉성한 복지제도를 손보려면 더 큰 재원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후대에 빚더미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복지재정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정책 고집은 나랏일에 모르쇠하는 소아적 이기주의일 뿐이다.
재원 분담에 앞장서야 할 가진 자들이 세금 폭탄론으로 국민의 조세저항을 선동하는 행태는 반역사적이다.
탐욕에 빠진 금융산업 구제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를 복지국가 탓으로 돌리는 왜곡까지 일삼는 이데올로기 공세에서는 최소한의 양식을 찾기가 어렵다.
부유세 등 부자 증세로 재원 마련을 서두르자는 주장은 시대적 요구에 진지하다.
경기회복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서민층보다는 부유층에 재정 부담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도 순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증세 방안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 따져보아야 한다.
사실 부유층에 대한 높은 누진세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대표주자는 복지 수준이 낮은 미국이다.
부자 증세만으로는 보편복지에 요구되는 큰 재원을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식 선별 복지는 국민적 지지 기반도 약하여 세금 확대가 어려우니 저복지의 악순환에 빠진다.
민주당의 증세 없는 무상 복지론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치적 신뢰를 얻는 데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빈약한 복지재정의 현실을 알리고 복지 재원 분담을 국민에게 호소하는 솔직하고 용감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복지재정의 진실을 아는 데에는 조세와 사회보험료 국민 부담 실태를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게 도움이 된다.
우리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 규모는 지디피의 25%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가 35%를 넘으니, 우리는 10%포인트 정도 적은 것이다.
이 격차의 절반은 우리 소득세 수입이 오이시디 국가들보다 적어 생긴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부가가치세와 사회보험료율이 낮기 때문이다.
소득 세수가 적은 이유로는 세금 감면 등으로 근로자의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고 세 부담을 피하는 자영자층이 큰 것이 중요하다.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율도 낮은 편이지만, 나머지 계층의 소득세 부담 또한 매우 낮다.
따라서 세수 확대를 위해서는 전국민의 세금 납부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늘어난 재원은 보편복지의 밑천이 된다.
보편복지로 알려진 유럽 국가들은 세금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고복지 국가들은 최고 소득세율이 50%대에 달한다.
평균 임금소득자보다 조금 더 벌면 최고세율이 적용되니 그 부담이 소수 부유층에 그치지 않는다.
또 우리가 10%를 유지하는 부가가치세가 이들 나라에서는 25%에 달한다.
이런 보편세제는 보편복지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보편적 복지는 전국민이 재원을 분담하는 사회적 연대를 촉진하고, 보편적인 세금부담은 보편복지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이런 고복지-고부담의 복지국가를 꿈꿀 수 있을까?
참으로 멀고 먼 세상 이야기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비참과 불행으로 가득 찬 선별적 저복지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새로운 비전으로 국민들이 세금 낼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지도력이 아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