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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8월 1일) 오늘은 그레고리력으로 213번째(윤년일 경우 214번째) 날에 해당한다 |
| 🍁1800년대🍁 | |
| ✿1834년 영국 노예해방 선언 미국 워싱턴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노예를 묶었던 쇠사슬. 영국 수상 찰스 그레이가 1834년 8월 1일 모든 영국 식민지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총 75만에 달하는 노예를 해방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노예를 해방하면서 노예소유주들에게 총2천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영국의 노예해방 선언은 10여년전부터 이어져 온 노예폐지운동과 산업혁명을 통해 노동자가 많이 필요했던 산업자본가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데 따른 것이었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윌버포스, 벅스턴 등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며 노예폐지운동을 벌여왔고 산업자본가는 노예를 해방시켜야 공장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이를 적극 지지했다. | |
| ✿1894년 일본, 청에 선전포고로 청일전쟁 본격화 프랑스 언론인 비고가 1904년 그린 만화. 청일전쟁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킨 일본이 조선을 짓밟으며 러시아와의 전쟁에 나서는 당시 정세를 한 눈에 보여준다. 청나라에 대한 일본의 선전포고로 청일전쟁이 본격화됐다. 청일전쟁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청국은 조선의 종주국임을 주장하여 다툼이 격화되던 중 조선에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양국이 그 진압을 위해 출병함으로써 충돌하게 됐다. 근대적인 군비를 갖춘 일본은 아산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과 대전, 청국 해군을 대파 시키고 육지에서는 성환에서 대승을 거둔 뒤 계속 북상, 평양과 요동을 거쳐 여세로 여순 위해위를 공략, 청나라의 북양함대를 격멸했다. 이에 청군은 강화전권대사 이홍장을 파견해 화의를 요청, 이듬해 4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내용은 1.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 파기 2. 요동반도와 대만, 팽호섬 할양 3. 배상금 2억냥 지불 4. 통상상의 특권 부여 등이었다. 청일전쟁의 결과 열강의 중국분할이 본격 시작돼 동아시아에 제국주의 시대의 막이 열렸다. | |
| 🌹1900년대🌹 | |
| 🌲05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 |
| 🌲07년 일제, 대한제국 군대 해산(7월31일 해산 조칙 발효, 8월1일 해산식) 해산되기 전 대한제국 군대의 단체 사진 모습.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일본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과 하세가와 일본군 사령관은 한국군의 반발에 대비, 먼저 한국군의 화약과 탄약고를 접수케 한 다음 해산을 감행했다. 무장해제된 군대가 훈련원에 소집되어 해산식을 거행할 때 서울 시위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권총으로 자결하고 이 소식이 각 부대에 전달되자, 제1연대는 물론 제2연대 병사들까지 병영사수를 외치며 무장봉기해 대한제국 군대와 일본군 사이에는 서울 시가전이 전개됐다. 해산된 지방의 진위대에서도 항일의 불길이 일었다. 원주 진위대와 강화 분견대에서도 해산에 저항하며 봉기했지만, 이미 한국에 증파된 대규모의 일본군에게 진압될 수 밖에 없었다. 군대해산은 하루 전인 7월 31일 순종의 군대해산 조칙에 따른 것이지만, 실은 7월 24일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가 체결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부속된 비밀각서에 근거한다. 군대가 해산됨에 따라 1910년의 경술국치는 이미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다. 이날부터 한달동안 해산된 군인은 모두 8천8백여명에 달했다. | |
| 🌲07년 한국군 봉기: 일본군과 충돌하여 몇십명이 사망 했으나 주력 부대는 시외로 빠져 이후 항일 의병에 참가 🌲21년 무장독립군 240여명이 장진에서 일본군과 전투 | |
| 🌲27년 중국 공산당 최초의 대규모 전투 `남창기의(南昌起義)` 발발 남창기의를 주도한 주은래. 중국 중국 공산당이 일으킨 남창기의(南昌起義)가 1927년 8월 1일 발발했다. 남창기의는 주은래를 중심으로 주덕, 엽정, 섭영진 등이 참여한 대규모 공농(工農) 홍군의 봉기였다. 당시 전투에 참가한 병력수는 약 2만에 달했다. 그때 남창을 지키고 있던 국민당 군 병력은 3000명에 불과했다. 초반의 승리는 기의(起義)군의 몫이었다. 병력도 우세했고, 사전계획과 작전도 치밀했고 지휘체계도 통일적이어서 남창시는 이내 기의군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러나 남창 인근 무한과 남경 방면의 지원세력의 사정이 여의치 못한데다, 남창시를 에워싼 적의 규모 역시 기의군의 몇배에 달하는 엄청난 병력이었다. 결국 남창에서 철수하여 남하할 수 밖에 없었고 봉기는 실패하고 말았다. 남창의기는 중국 공산당이 자체 병력으로 적과 대규모로 전투를 벌인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남창의기의 첫 총성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자체의 인민혁명군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자체 군대로 무장혁명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새로운 노선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이 날을 기념해 8월 1일을 건군 기념일로 삼고 있다. | |
| 🌲31년 장항선(천안-장항) 철도 개통 🌲34년 혜산선(惠山)철도 개통 | |
| 🌲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 마지막 성화주자 루이스가 도열해 있는 나치 돌격대 사이를 지나고 있다. 1000여명의 합창단이 당대의 거장 슈트라우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행진곡에 맞춰 큰 목소리로 합창하는 가운데 나치 돌격대 수천명이 12만명이 운집한 베를린 경기장 안을 거위걸음으로 행진한다. 환영사에 이어 히틀러가 개회를 선언하자 스타디움에 들어선 제1회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루이스가 성화를 점화한 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가져온 올리브 가지를 히틀러에게 건넨다. 1936년 8월 1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은 이렇게 개막됐다. 당초 히틀러는 “올림픽은 유대인이 지배하는 추악한 제전”이라며 반대했지만 “올림픽이야말로 나치 독일의 힘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는 선전상 괴벨스의 설득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리스로부터의 릴레이 성화봉송을 처음 채택해 개막식 분위기를 극적으로 고양시켰고, 레니 리펜슈탈에게는 기록영화 ‘올림피아’를 찍게 했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정치쇼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차질을 빚었다. 100m 세계신기록을 포함, 200·400m계주·멀리뛰기에서 우승, 4관왕에 오른 미국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가 히틀러를 난감하게 한 주인공이었다. 히틀러는 오언스가 메달을 받을 때 분노한 표정으로 대회장을 떠났다. 한국인들에겐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나가 마라톤에서 우승을 한 올림픽으로 잊지 못할 대회였다. | |
| 🌲43년 조선인에 징병제 실시-해군 특별지원령 공포 🌲46년 제주도, 道로 승격 🌲46년 조선손해보험협회 설립 (조선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서울화재) 🌲48년 국회,이범석 국무총리 인준 | |
| 🌲50년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 1950년 6월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전쟁 발발 3일만인 6월 28일에 서울을 점령했다. 이후 7월 5일에는 오산전투에서 미군을 격파하고, 7월 24일에는 대전을, 7월 말 목포와 진주를 함락시켰다. 결국 7월말, 아군은 영덕·안동·상주·진주를 잇는 선까지 밀리고 말았다. 이제 남은 지역은 대구와 부산뿐, 국토의 5%에 불과했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그 해 8월15일 부산에서 통일기념식을 갖겠다고 호언했고, 여의치 않자 대구 점령의 날로 못박고 총공세에 나섰다. 대구마저 빼앗기면 한반도에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지리적인 공간조차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던 미 8군사령관 월턴 워커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8월1일, 워커 사령관은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의 산악 지대를 잇는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른바 ‘낙동강 방어선’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이 바로 칠곡이었다. 칠곡 왜관을 거점으로 동북쪽은 국군이, 서남쪽은 미군이 맡았다. 최후의 배수진인 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가장 치열했던 곳이 왜관 동북쪽 다부동이었다. 다부동은 대구로 가는 길목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이 뚫리면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낙동강을 건너고 다부동을 넘어 이곳에서 20여㎞ 떨어진 대구를 삼키려 했다. 적의 주력부대가 칠곡 다부동에 집중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 |
| 🌲53년 대외활동본부(FOA) 원조 도입 시작 (원조책정액 4억 8000만불, 도입실적 2억 6000만불) 🌲55년 파랑새 담배 발매 당시가격 50환-풍년초 담배 발매 당시가격 30환 🌲56년 북, 초등 의무 교육제 전면 실시. 🌲57년 미국 제1기갑사단 한국으로 이동 🌲61년 KBS 서울 중앙방송국, HLSA에 채널을 신설 하여 경인지구 방송 개시 🌲66년 새마을 담배 발매 당시가격 10원 🌲69년 창랑 장택상 전 총리 세상 떠남 | |
| 🌲75년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 헬싱키선언 조인(몬트리올 시각-7.31/한국시각-8.01) 유럽의 모든 국가(알바니아 제외)와 캐나다, 미국, 소련 등 35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가 1975년 7월 30일부터 헬싱키 핀란디아 홀에서 개막됐다. 이 회의는 동서 양진영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상태로부터 탈피, 긴장완화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개막되어 참가국들은 회의 마지막날인 8월 1일 `헬싱키 선언`을 채택했다. 1973년 7월의 제1단계(외무장관 회의), 같은 해 9월부터 1975년 7월 21일까지의 제2단계를 통해 준비된 이 선언은 유럽의 안전보장에 관한 10원칙과 사람과 정보의 교류, 경제-과학-기술협력, 재검토회의 개최에 관한 4부로 구성돼 있다. 문서는 400페이지 길이에 무게만 3kg에 달했다. 조인식은 프랑스어 알파벳 국가명 순으로 행해졌는데 제일 먼저 조인한 사람은 서독의 슈미트 수상이었다. 86세의 유고 티토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조인한 후 회의는 오후 5시30분 폐막됐다. | |
| 🌲76년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해방 후 첫 금메달 획득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운데)가 광복 후 첫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제21회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 경기가 열린 1976년 8월 1일 캐나다 몬트리올 모리스리처드 경기장. 한국의 양정모는 몽골의 강호 오이도프를 맞아 3라운드 한때 8대 6으로 앞섰지만 결국 8대10으로 역전패했다. 심판은 오이도프의 팔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오이도프는 고개를 푹 숙였고, 기쁨의 만세를 부른 것은 오히려 양정모였다. 양정모는 미국의 진 데이비스를 폴승으로 제압, 데이비스에게 판정패한 오이도프에게 폴패만 하지 않으면 우승이 확정되어 있었다. 양정모의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은 국가적 경사였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해방 31년 만의 쾌사요, 건국 28년 만의 개가요, 1948년 런던올림픽 처녀출전 이래의 숙망의 달성이요,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 실로 40년 만에 맛보는 국민적 감격"이라고 흥분했다. 양정모는 1980년 은퇴 후 조폐공사 레슬링팀의 트레이너-코치-감독을 지내다가 1997년 퇴직했다. | |
| 🌲76년 김해 국제공항 개항 🌲77년 북한, '해상군사경계선'(동해 50마일.서해 200마일) 설정, 한국은 이를 인정 않는다고 성명 | |
| 🌲80년 컬러TV 국내 시판 개시 컬러TV 방송 개시에 맞춰 삼성전자 수원공장 생산라인에서 컬러TV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 | |
| 🌲80년 국보위, 신원기록 일제정리와 연좌제 폐지 결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에게 피해와 불편을 주어온 신원기록을 일제히 정리하는 한편, 연좌제를 폐지함으로써 국민화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과감한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신원기록정리는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심사를 거쳐 신속히 진행될 것으로 발표했는데 주요 정리대상은 1. 6.25 당시 착오나 과장된 소문 등을 확인없이 기록한 내용 2. 적치하에서 생명보존책으로 부득이 부역했거나 그 죄질이 경미한 것 3.위의 두가지 기록이 있더라도 본인 또는 가족이 국가를 위해 충실하게 봉직하는 경우 4. 기타 기록에 있어서도 현재의 대공상 위해도가 약하다고 판단되는 내용 등이었다. 국보위는 이번 조처는 6.25 전란 중 불가피한 상황아래서 본의 아니게 저지른 경미한 과오, 또는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좌경입장에 있던 가족 친지 등 제3자와의 관계에 의해 등재된 기록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공사생활에서 불편과 불이익을 받아왔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 🌲80년 솔 담배 발매 당시가격 450원 | |
| 🌲81년 미국의 24시간 음악방송 MTV 개국 미국의 워너 아멕스 새털라이트 엔터테인먼트사가 24시간 방송하는 유선TV방송 MTV(Music Television)를 1981년 8월 1일 개국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유선오락TV사인 워너 아멕스사는 3천만달러를 투입해 뮤직비디오, 인터뷰, 콘서트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48개주 250만 가구에 송출했다. 12세부터 34세를 대상으로 한 MTV는 폭넓은 시청자를 확보하려는 기존의 대형 TV방송국과 달리 시청대상폭을 좁히는 ‘Narrow Casting’을 지향했다. 개국 1년 만에 시청가구수가 3배로 증가했고 10년후에는 미국과 영국의 록음악을 위성을 이용, 세계각국에 송출했다. MTV는 흑인 음악가를 소홀히 하고 남성 음악가를 노출이 심한 여성들로 둘러싸이게 하는 성차별의 비디오가 많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
| 🌲81년 한국, 월드게임(산타클라라) 태권도 종목에서 종합우승 🌲81년 해외 여행 자유화 조치 발표. 🌲83년 '한국 고대문화전 신라천년의미' 동경서 개막 (∼9월11일), 순회전시 🌲83년 한국, 24개국 27개지역과 국제전화자동화 개시 🌲83년 베레콘월 안티과 바부다 수상 내한 🌲83년 중공 민간항공기 납치범에 징역 7∼10년 구형 (18일 주범 6년 선고) | |
| 🌲84년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향년 55세의 나이로 타계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62㎏급) 금메달리스트 김원기가 향년 5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김원기는 27일 오후 강원 원주시 치악산 산행 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 이대목동병원 특 1호실,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8시. 김원기는 1983년 국가대표에 발탁, 1984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
| 🌲84년 전기통신공사, 아르헨티나 등 21개국과 국제 통화 자동화 🌲85년 이민우, 신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총재 재선. 부총재 선출 싸고 진통 🌲85년 민정당, 신민당의 새 체제에 대응하여 사무총장 ·원내총무 전격 경질 🌲85년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인 선언 🌲86년 서동권 검찰총장, 국회사법위에 부천 성고문 사건 수사자료 제출 거부 🌲87년 중앙지의 지방주재기자 제도 부활. 각 신문 지방판 제작 🌲88년 김종필 공화당총재, 방미중 지역감정 해소위해 내각책임제 개헌강조-윤길중민정대표.김윤환민정총무도 🌲88년 새세대육영회, 찬조금기탁자 871명 명단 발표 🌲89년 국내 최대 야외수영장 2개소가 한강시민공원 고수부지 뚝섬과 잠원지역에 각각 개장 🌲89년 문화재연구소 경주시 황남동 제3호 적석목곽분 에서 금귀걸이 1쌍 추가 발굴 🌲90년 재일한국거류민단, 평화통일촉진을 위한 대화에 협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연락기구를 설치키로 합의 🌲90년 정부, AFKN-TV(주한미군방송)채널 VHF (초단파) 2를 UHF34로 바꿔 2년 6개월이내 이전해 간다고 발표. 🌲90년 정부, 8월을 `장영실'의 달로 선포. 🌲90년 농어업재해대책법 발효. 🌲90년 동력자원부, 에너지 소비억제를 위해 국내 유가 구조의 전면 재조정 작업에 착수. 🌲91년 정부, 경부고속전철 차량 형식 선정을 위한 입찰 요청서(RFP) 확정 🌲91년 외무부, 우리나라 인권보장에 관한 312개 제반 사항의 인권보고서를 유엔인권국에 제출했다고 밝혀 | |
| 🌲91년 경찰청 발족 1991년 8월 1일 경찰청으로 발족하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정문에서 정원식 총리와 김원환 경찰청장, 이상연 내무부 장관이 서있다. 경찰청 개청식이 1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정원식 국무총리, 이상연 내무부 장관, 김원환 경찰청장과 경찰관계자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노태우 대통령은 정 총리가 대신 읽은 치사를 통해 “국립경찰 46년의 숙원이었던 경찰청의 출범으로 경찰은 막중한 임무와 방대한 규모에 걸맞는 기구와 조직을 갖추었다”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개청식이 끝난 뒤 정 총리와 김 청장은 경찰청사 앞 현관에서 현판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김원환 경찰청장은 오후1시 경찰청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경찰청 독립은 국가와 국민이 요구하는 참다운 민주경찰로 탈바꿈하는데 의미가 있다”며 “단순히 외형적인 변신이 아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창조적인 변화에 임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찰이 되자”고 다짐했다. | |
| 🌲91년 정부, 총사업비 2조2734억원을 투입, 12월 부터 96년까지 아산항 및 아산 공업단지를 본격 개발키로 🌲91년 서울경찰청,서울특별시 지방경찰청으로 발족 🌲91년 인천직할시 지방경찰청 개청(5개서, 96개 지 · 파출소) 🌲91년 해양경찰대,경찰청 소속 해양경찰청으로 변경 🌲92년 민자당, 단독으로 요구한 제158회 임시국회가 개회되다 🌲93년 정부, 북한 핵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경수로 원자력 발전기술 이전에 참여키로 방침을 결정 🌲93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견인차량의 보관장소를 시내 5개소 가운데 어디에 연락해도 확인해 주기로. 🌲95년 국무회의, 5ㆍ31교육개혁조치와 관련 `교육개혁추진위원회' 설치안 의결 | |
| 🌲96년 고려대 박춘호 교수,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피선 박춘호 교수 고려대 박춘호 교수가 1996년 8월 1일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됐다. 박 교수는 해양법 협약에 가입한 102개국 중 1백개 협약 당사국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판관 선거 1차 투표에서 3분의 2가 넘는 69표를 얻어 재판관으로 선출됐다. 재판관이 받는 예우는 유엔 사무차장급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19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에 근거해 1996년 10월 발족됐다. 이에 앞서 유엔은 지난 1982년 점증하는 해양분쟁의 틀을 잡기 위해 15년간의 작업끝에 전문과 부칙 4백50개조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바다에 관한 세계법`인 해양법을 만들었다. 해양법재판소는 이 법률을 만든 뒤 협약 가입국들이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를 상정해 강제수단으로 창설케 된 것이다. | |
| 🌲96년 방주현 애틀란타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 획득 | |
| 🌲97년 러시아 피아니스트 리히터 사망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피아노의 큰 별이 떨어졌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82)가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1997년 8월 1일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독일계로 우크라이나서 태어난 리히터는 달관의 연주, 고집스런 자기세계로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었다. 그에게는 천재성, 재능이니 하는 상투적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노력ㆍ집착ㆍ극기 따위, 땀 냄새 물씬한 단어들이 제격이다. 리히터는 만학이었고, 늦깎이였다. 1915년 우크라이나 지트미르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 겐리히 네이가우스 문하에 들어갈 때가 22살이었다. 길렐스 로스트로포비치 프로코피예프와 교유한 것도 이 무렵이었고,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소나타 6번을 초연하면서 모스크바에 데뷔했다. 30살 때 소연방 콩쿠르에 우승했고, 모스크바 음악원을 33살에 졸업했다. 그의 존재를 미국에 알린 것은 밴 클라이번과 에밀 길렐스. 45살(1960년)때 뉴욕 카네기홀 데뷔연주는 일대 센세이션이었다. 서방세계에 그의 명성은 레코드로나 전해질 뿐이었다. 독일에는 1971년 56살 때 데뷔했다. 상업적 명성과 담을 쌓고, 자기방식을 고집한 기행은 유별났다. 공연당일 연주를 취소하는가 하면, 연주곡도 즉흥적으로 골랐다. 외국 연주 때는 비행기를 싫어해 피아노를 배에 싣고 다녔고,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하라며 연주장 스태프를 골탕 먹였다. 앙코르 사절, 인터뷰 사절도 유명한 일화다. | |
| 🌲97년 베트남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 사망 베트남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83)가 1997년 8월 1일 프랑스 파리 발 드 그라스 육군병원에서 타계했다. 바오 다이는 지난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프랑스의 전 인도차이나 보호령인 안남의 황제로 제위했다. 본명이 구엔 빈 수이인 그는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인 지난 1925년 12세의 나이에 `바오 다이(위대한 자)`라는 칭호와 함께 구엔 왕조의 13대 황제자리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공부를 계속했던 그는 19세 때 돌아와 `현대화`를 내걸고 의욕적인 통치를 시작했다. 바오 다이는 국민들로부터 독립, 개혁, 현대화의 열망을 한 몸에 받았으나 프랑스의 방해로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45년 3월 일본이 베트남에 진출하자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그 해 8월 일본군이 퇴각하고 호치민이 베트남 공화국을 선포한 뒤 통치권을 빼앗겼다. 호치민과 프랑스에 모두 환멸을 느낀 바오 다이는 1946년 홍콩으로 건너가 쾌락에 탐닉, 플레이보이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1949년 프랑스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국가원수로 돌아왔으나 이미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는 국가통치는 뒷전에 두고 향락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대패한 이듬해인 1955년 고 딘 디엠 총리가 주도한 국민투표를 통해 영구 추방됐다. 그 후 40여년 간 줄곧 프랑스 남부도시인 칸의 별장에 칩거하며 사치스런 삶을 살았다. | |
| 🌲97년 인천 연수경찰서 개서(7개과, 9개 파출소) 🌲97년 LA다저스 박찬호 투수 10승 기록 🌲98년 전남과 경남ㆍ북 등지에 내린 폭우로 33명이 사망하고 62명이 실종 🌲99년 대구구장 삼성-롯데전 이승엽 홈런 1999년 8월 1일 오늘...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삼성-롯데전에서 홈런을 친 이승엽이 관중의 환호에 모자를 벗어 답례하고 있다. | |
| 🌸2000년대🌸 | |
| ✿2000년 지하철 7호선 전구간 개통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8월 1일 전구간을 개통한 서울지하철 7호선을 시승하기 위해 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하철 7호선이 1일 오후 3시 이수역에서 개통행사를 갖고 6시부터 전구간 운행을 시작했다. 이날 개통식에는 민중미술가 임옥상씨 등 작가 15명이 꾸민 ‘달리는 미술관’ 전동차가 운행되었고, 3일까지 7호선 전구간에 걸쳐 무료운행이 실시되는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마련됐다. 개통열차로는 유명작가 15명의 작품이 설치된 ‘달리는 도시철도 문화예술관’ 차량이 운행되었다. 미술가 1~2명씩이 8량짜리 열차 한 칸씩을 전담해 ‘역사야 노올자’ 등의 특색있는 테마로 꾸민 이 열차는 9월까지 2개월간 7호선을 운행했다. 개통일인 1일부터 3일까지 7호선 전 구간이 무료로 운행되어, 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이 7호선 각 역 매표소에서 2구간 승차권(600원 상당)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도시철도공사는 “3년여간의 지하철 건설 공사기간 중 교통체증과 인도 통행의 불편을 감수한 시민들에게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무임승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편 개통시점에 맞춰 광화문역, 김포공항역, 천호역, 이수역 등 5~8호선 지하철역 중 공연이 가능한 4곳에 상설무대를 만들어 ‘메트로 아티스트’로 선정된 아마추어 예술가 20여팀이 교대로 음악, 무용, 연극, 댄스, 패션쇼 등 각종 공연을 실시했다. 개통행사가 펼쳐지는 이수역에서는 도시철도공사 음악동호회인 ‘메트로매니아’의 공연이 열렸다. | |
| ✿2000년 의약분업 본격 시행 | |
| ✿2001년 원로가수 고운봉 별세 원로가수 고운봉씨 `선창`의 가수 고운봉(81·본명 고명득)씨가 2001년 8월 1일 별세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칠순이 넘어서도 무대를 지키며 흐트러짐 없이 `선창`을 열창하던 고운봉씨는 한국가요 1세대 스타였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17세 때 가수를 꿈꾸며 30원을 훔쳐 무작정 상경, 1938년 태평레코드에서 노래 인생을 시작했다. 구성진 노래 솜씨로 악극단에 발탁돼 이듬해 `국경의 부두`로 데뷔한다. 1942년 발표한 `선창`은 일제 치하에 고통받던 대중들의 심경을 쓸쓸한 유랑자의 모습에 투영시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평생 부른 노래는 `홍등야곡` `남강의 추억` `백마야 가자` 등 200여곡. "국악만 해도 인간문화재가 있는데 대중가수는 좋을 때만 즐기는 소모품 정도로 여긴다"며 가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1990년대 말까지도 KBS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는 열정을 과시했다. 1998년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 |
| ✿2003년 프랑스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 사망 프랑스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 프랑스가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연기파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 (Trintignant·41)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트랭티냥은 지난 1일 파리 부근의 한 병원에서 뇌출혈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트랭티냥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서 TV 영화 ‘콜레트’를 촬영하던 중 지난 달 27일 현지 호텔에서 동거남인 록 가수 베르트랑 캉타(Cantat)에게 머리를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31일 프랑스로 돌아온 뒤 숨졌다. 언론들이 일제히 그녀의 사망을 톱 뉴스로 다루고 있는 가운데 자크 시라크(Chirac) 대통령은 추모 성명을 통해 “고인은 아름다움과 감수성, 지성을 통해 자신의 예술에 봉사했다”며 “갑작스레 부서진 운명의 부당함에 누구나 전율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 |
| ✿2004년 파라과이 쇼핑센터 화재 발생, 320여명 사망 | |
|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 별세 고(故) 파드국왕(왼쪽), 압둘라 새 국왕(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를 23년간 통치해온 파드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이 1일 오전(현지 시각) 수도 리야드의 한 병원에서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우디왕실은 파드 국왕의 이복 동생으로 지난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를 실질적으로 다스려 온 압둘라 왕세제(81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발표했다. 파드 국왕은 지난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대부분의 국정을 동생인 압둘라에게 맡긴 채 상징적인 국왕으로 있으면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 신임 압둘라 국왕은 사우디 왕실 왕자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정직한 성격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정치적, 경제적 유대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온건 보수 성향으로 알려졌다. 외교 전문가들은 세계 석유 생산과 공급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 정책이 전임 파드 국왕 때와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 |
| ✿2006년 이승엽 통산 400호 끝내기 401호까지 이승엽이 끝내기 2점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 한·일 통산 400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이승엽은 2006년 8월 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1회말 2사 3루에서 상대 선발 이가와를 상대로 선제 투런 홈런을 날렸다. 1995년 프로에 데뷔해 삼성에서 9시즌 동안 324개의 홈런을 친 이승엽은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가 2년 반 만에 76개의 홈런을 더하며 통산 400고지에 올라섰다. 이승엽의 홈런 드라마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2-2 동점이던 9회말. 2사 1루서 타석에 선 이승엽은 다시 이가와를 상대로 4대2로 경기를 마감하는 통산 401호 및 시즌 33호 끝내기 2점 홈런을 터뜨려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 | |
| ✿2009년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타계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전(前) 대통령.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코라손 아키노(Aquino·76) 전(前) 대통령이 암 투병 끝에 2009년 8월 1일 타계했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16개월간 결장암과 싸워오다 최근 암이 간까지 전이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평범한 주부였던 아키노 전 대통령은 1983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Marcos) 대통령 치하에서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의원이 군부(軍部)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암살되자, 남편의 뒤를 이어 반(反)정부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는 남편을 대신해 ‘피플 파워’로 불린 비폭력 무혈혁명을 일으켜 당시 20년간 장기 집권한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 체제를 종식했다. 이후 독재자 마르코스와 부인 이멜다는 하와이로 도피했고 아키노는 1986년 필리핀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당시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은 한국, 태국 등 주변국뿐 아니라 동유럽, 남미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민주화 혁명으로 집권한 아키노 대통령의 재임(1986~1992년) 기간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많은 군사 쿠데타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등 필리핀 민주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 |
| ✿2010년 경북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경북 안동 하회마을(위)과 경주 양동마을(아래).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2010년 8월 1일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14-15세기 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 사상을 잘 반영한 경관 속에 전통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유교 교육의 중심지답게 유교적 삶의 양식과 전통문화를 현재까지 잘 계승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유씨(豊山柳氏),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가 모여 하는 씨족마을로, 하회마을은 16세기에 새로운 정주지(定住地)를 찾아 이주해 정착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경우이고, 양동마을은 15세기에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를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을 대표한다. 하회·양동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된 명당이며, 마을 곳곳이 문화유산의 보고로 두 마을에서 보물로 지정된 가옥만 6건이다. 또한 하회마을에 있는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국보 132호)과 양동마을의 금속활자본 ‘통감속편(通鑑續編)’(국보 283호) 등 국보급 문헌자료도 풍부하다. 하회마을의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등 무형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WH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행정 구역이 다른 두 마을을 통합관리하는 체계가 없는 점 등을 우려해 ‘보류(refer)’ 결정을 내렸지만, WHC에서 이를 뒤집고 ‘등재’가 결정되었다. |
8월 1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13번째(윤년일 경우 214번째) 날에 해당한다.
| 구 분 | 내 용 |
| 사건 | 1714년 - 조지 1세, 영국 국왕으로 즉위. 1798년 - 나일 해전에서 허레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다. 1834년 - 영국, 노예 해방 선언 발표 1907년 - 일본,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1914년 - 제1차 세계 대전, 독일, 러시아에 선전포고. 1919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 원효정 1정목에서 한국 최초의 고무제품 제조공장인 대륙고무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대륙고무주식회사에서 한국 최초로 검정고무신, 고무공이 생산되었다. 루마니아 군대가 부다페스트로 진격하면서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소멸 1927년 - 중국, 난창 봉기. 1943년 - 일본,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 1944년 - 폴란드, 제2차세계대전중 바르샤바봉기 개시 1955년 - 제1차 중국-미국 회담개시 (제네바) 1961년 - 대한민국, 중소기업은행 발족 1980년 - 대한민국,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 신원기록 일제정리와 연좌제 폐지[1] 결정 발표. 1981년 - 대한민국, 해외여행 자유화 및 새여권법 발효. 1985년 - 대한민국,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학인 401명의 시국선언 발표. 2000년 - 대한민국, 대한민국 의약 분업 이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 2002년 -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아세안)국가들 미국과 반테러협정 체결. 2014년 - 중화민국 가오슝시 첸전구에서 가스 누출 연쇄 폭발 사고가 나 1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2024년 -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
| 문화 | 1909년 - 한국은행(한국은행의 전신) 발족. 1910년 - 미국에서 최초로 자동차 운전면허제도가 시행되었다. 1936년 -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개막. 1946년 - 제주도, 도(道)로 승격. 1954년 - 이창 개봉. 1957년 - 서독에서 탈리도마이드 약을 판매하기 시작. 1961년 - 중소기업은행 발족.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서 레슬링 선수 양정모, 해방 후 첫 올림픽 금메달 획득. 대한민국, 김해국제공항 개항. 1983년 - 청주문화방송(현. MBC충북)에서 FM4U가 개국했다. (FM 99.7 MHz) 2000년 - 서울 지하철 7호선 신풍 ~ 건대입구 구간이 개통되었다. 2009년 - 광화문 광장이 개장하였다. 2010년 - 대한민국의 한국직업방송, 소비자TV 개국. 2013년 -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국제공항내 최대규모인 제2격납고를 개장하였다. 2014년 경기도 고양시 인구 100만 돌파. 대한민국의 걸그룹 레드벨벳 데뷔 KBS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15년 만에 종영되었다. 2015년 - 대한민국의 우편번호가 6자리에서 5자리로 변경되었다. 2021년 - 강릉선 KTX의 운행열차가 KTX-산천에서 KTX-이음으로 교체되었다. |
| 탄생 | 기원전 10년 - 로마의 제국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기원후 54년) 992년 - 고려의 제8대 국왕 현종. (~1031년) 1738년 - 프랑스의 장군 자크 프랑수아 뒤고미에 (~1794년) 1744년 -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 (~1829년) 1770년 - 미국의 탐험가 윌리엄 클라크. (~1838년) 1819년 - 미국의 소설가, 작가 허먼 멜빌. (~1891년) 1841년 - 조선·대한제국의 황족, 고종의 이복 형 이재선. (~1881년) 1917년 - 대한민국의 작사가, 가수 반야월. (~2012년) 1923년 - 대한민국의 기독교 페미니스트 겸 노동운동가 이우정. (~2002년) 192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6대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2015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조르주 샤르파크. (~2010년) 192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6·7·8·9·10·13·16대 국회의원 이병희. (~1997년) 1927년 대한민국의 승려 숭산. (~2004년) 일본의 정치인 미쓰즈카 히로시. (~2004년) 1933년 대한민국의 시인 고은. 이탈리아의 출신 윤리 정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 (~2023년) 일본의 야구 선수, 야구 감독 가네다 마사이치. (~2019년) 1934년 - 대한민국의 배우 남궁원. (~2024년) 1936년 대한민국의 법조인 최광률. (~2024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2008년) 1937년 - 대한민국의 언론인 현소환. (~2018년) 193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혁규. 1942년 대한민국의 가수 겸 미술가 차중락. (~1968년) 이탈리아의 배우 지안카를로 지아니니. 1948년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알린 코민스키크럼. 대한민국의 가수 김국환. 대한민국의 정치인 진석규. 1949년 - 중국의 금융인, 정치인 진리췬. 1952년 - 일본의 기업인 나가노 가즈오. (~1985년) 1953년 대한민국의 기자 출신 방송기관단체인 유연채. 미국의 블루스 음악가 로버트 크레이. 1954년 - 일본의 배우 겸 성우 모리타 준페이. 1955년 대한민국의 전 배우 조은덕.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제20대 국회의원 김종석. 1956년 - 대한민국의 골프 선수 구옥희. (~2013년) 195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영호. 일본의 전 축구 선수 야마구치 사토시. 1960년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홍상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선 6기 경상남도 창녕군의원 박재홍. 1961년 대한민국의 성우 홍승섭.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다니 블린트. 1962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김삼화. 1963년 미국의 래퍼 쿨리오. (~2022년) 멕시코의 배우 데미안 비치르. 196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김홍남. 1965년 - 영국의 영화 감독 샘 멘데스. 1968년 - 미국의 전 농구 선수 스테이시 오그먼. 1969년 - 대한민국의 가수 김명철. 1970년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제임스. 대한민국의 음악감독 방준석. (~2022년) 197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류여해.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전 야구 해설가, 전 야구 선수 손혁.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오규택. 1975년 - 대한민국의 카피라이터, 정치인 김진아. 1976년 대한민국의 배우 김남진. 나이지리아의 축구 선수 느왕쿼 카누. 1977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심광호. 1978년 - 대한민국의 가수 앤. 1979년 미국의 배우 제이슨 모모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민수. 1980년 대한민국의 배우 임재근. 인도네시아의 배우, 가수 샤리니. 1981년 - 대한민국의 미용전문가 이승지. 1982년 - 대한민국의 배우 김광민. 1984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유지원. 독일의 축구 선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유현. 1985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쥬니. 네덜란드의 격투기 선수 게가드 무사시.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김리나. 대한민국의 필드하키 선수 김영란. 푸에르토리코의 배구 선수 카리나 오카시오. 1987년 스페인의 축구 선수 이아고 아스파스. 슬로베니아의 바이애슬론 선수 야코우 파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캐런 카니. 1988년 미국의 역도 선수 세라 로블스.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네마냐 마티치. 1989년 대한민국의 배우 노지연. 한국계 미국인 가수 티파니(소녀시대). 대한민국의 가수 변흥수. 미국의 프로야구 선수 매디슨 범가너.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살만 알파라지. 1990년 대한민국의 배우 김희정. 영국의 배우 잭 오코널. 1991년 -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정민수. 1992년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Clovd. 1993년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이유진. 중화민국의 탁구 선수 천쓰위. 1994년 - 일본의 가수 와다 아야카 (스마이레지 리더). 1995년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문환. 대한민국의 근대5종 경기 선수 전웅태.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체이서. 일본의 야구 선수 후타키 고타. 필리핀의 권투 선수 아이라 비예가스. 1996년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연우 (모모랜드). 프랑스의 배우 루 루아레콜리네. 1997년 대한민국의 펜싱 선수 전은혜. 대한민국의 가수 고한승. 1998년 이란의 태권도 선수 나히드 키아니. 태국의 태권도 선수 테윈 한쁘랍. 2000년 대한민국의 가수 김채원 (아이즈원).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이선미. 일본의 아이들 후쿠오카 세이나. 2001년 - 대한민국의 배우, 가수 박시은 (STAYC). 2002년 대한민국의 가수 자한. 대한민국의 가수 도희. 2003년 - 대한민국의 가수 오넷. 2004년 - 케냐의 육상 선수 이매뉴얼 와뇨니. 2005년 - 대한민국의 가수 휘연. (라잇썸) 200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정하연. |
| 사망 | 기원전 30년 - 로마제국의 장군, 정치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기원전 83년~) 527년 - 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 (450년~) 1646년 - 조선 중기의 무신, 명장 임경업. (1594년~) 1907년 - 대한제국의 군인 박승환. (1869년~) 1967년 - 오스트리아의 생화학자 리하르트 쿤. (1900년~) 196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제3대 국무총리 장택상. (1893년~) 1977년 - U2 정찰기 격추 사건의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 (1929년~) 199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석광렬. (1968년~) 2009년 - 필리핀의 제11대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1933년~) 2016년 - 루마니아 왕국 미하이 1세의 왕비 루마니아의 안. (1923년~) 2018년 - 캐나다의 모델 릭 제네스트. (1985년~) 2019년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할리 레이스. (1943년~) 일본의 황족 오규 기요코. (1919년~) 2020년 미국의 배우 레니 샌토니. (1939년~) 미국의 배우 윌퍼드 브림리. (1934년~) 2021년 - 미국의 배우 알빈 잉. (1932년~) 2022년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권이종. (1940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윤명노. (1934년~) 일본의 성우 오오타케 히로시. (1932년~) 2023년 대한민국의 소설가 강기희. (1964년~) 코트디부아르의 제2대 대통령 앙리 코낭 베디에. (1934년~) 미국의 정치인 셰일라 올리버. (1959년~) 2024년 대한민국의 교육자 윤오남. (1960년~)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1963년~)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조춘제. (1942년~) |
| 기념일 | 독립기념일: 스위스 세계 스카우트 스카프의 날 인민해방군 창립일: 중화인민공화국 국군의 날: 레바논 아제르바이잔어와 알파벳의 날: 아제르바이잔 |

첫댓글 소중한 역사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