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술
안이숲
시속 120Km로 급발진하며 달려오는 입술을
키스로 받을 때
저녁은 수심 200미터 지하에서 헤엄치는 한 쌍의 아귀가 됩니다
입술을 담보로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허기는 깊었고
식탁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집주인의 모습을
창문 밖으로 쳐다본 적 있습니다
네 면을 스틸, 목조, 콘크리트, 벽돌로 마감을 하였다는
저 집을 좀 압니다
외벽에 다른 질감의 디자인을 마감하느라 미장의
4번 척추가 휘었고
형광등이 노출되는 게 싫다고 천장을 파내라는 집주인의 호소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듯 매달려 있던
당신 그림자에
작은 바다 하나 들어차곤 했다는 것을요
아귀는 뜨거울 때 먹어야 돼
100T 판넬 작업을 마친 당신이 시뻘건 아귀찜을 먹으며
잘린 아귀 입 한 조각을 쓰윽 내밀 때
저 화사한 집은 우리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죄지은 인간들의 혼이 변하여 태어난 것이 아귀라는데
바다가 집인 우리는
비린내를 온 동네에 풍기는 한 쌍의 아귀 가족
하얀 접시 위에서 시속 120Km의 과속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남자의 겨드랑이에 붙여진
키스, 라는 부적을 불살라 버릴 그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요?
입술이라는 질긴 짐승이 살고 있어요
안이숲 (본명 안광숙)
경남 산청 출생. 2021년 계간 《시사사》 상반기 신인상 당선.
시집 『요즘 입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