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임지은
사람들이 둥근 것을 좋아해서
서울에는 원이 많다
학원 병원
식물원 동물원 유치원
동그란 식탁에 모인 동그란 얼굴
동그란 컵에 담아 마시는
동그란 웃음
태어난 자리에서 죽은 나무가
밑동만 남겨진 채 잘려 나가는 걸 볼 때
동그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식물도 특별히 살고 싶은 곳이 있을까?
한여름에 얼음을 껴안고 있는 펭귄은 남극을 기억할까?
사람들이 좋아해서
심은 나무와 좋아해서 잡은
생선과 좋아해서 데려온 동물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에게 좋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시간이 원을 좋아해서
시계가 둥근 것이 아니듯
세상엔 좀 더 많은 모양이 필요하고
휴일에 찾은 식물원은 문을 닫았다
식물도 깊은 잠이 필요하니까
잠자는 나무를 따라 눈을 감았다 뜨면
하늘에 새들이 피어 있었다
횡단보도가 얼룩말인 척 누워 있었다
침대에 심어 놓은 인간이 뿌리로 걸어 다녔다
임지은
대전 출생. 201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 「때때로 캥거루」
카페 게시글
#......詩 감상실
식물원에 와서 쓰는 동물원 시 - 임지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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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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