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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일 신문사설 및 칼럼 2006.10.02 | 블로그명 : 野村村 | ||
2006년 10월 2일 월요일, 주요 6대 조간 신문사설
[한국일보] 콩나물대학에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전임 교원 1인당 학생수는 32.2명(겸임ㆍ초빙 교수 포함 28.2명)으로 초ㆍ중등학교(25.1~15.1명)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대학교원 1인당 평균 학생수(14.9명)의 2배가 넘는다. 한마디로 콩나물 대학이라는 얘기다. 새삼스러운 통계는 아니지만 대학의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한심스러운 일이다. 현장에 가 보면 한 강의실에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토론이나 실험ㆍ실습 중심의 강의는 어렵고 교수의 설명을 듣고 리포트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이 이런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대학 투자는 적고 대학은 대학대로 재정 규모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타파하려는 대학 사회의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달 29일 교육부가 주최한 국립대 법인화 관련 공청회가 국ㆍ공립대 교수들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됐다. 국립대 법인화가 경쟁력 강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토론마저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립대학들도 학교 간 내지는 학교 내 통ㆍ폐합을 통해 경쟁력 있는 분야는 덩치를 키우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다른 대학에 넘겨 주려 해도 교수를 비롯한 교직원들의 반대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방 사립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해 우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타개책을 찾는 데는 극히 소극적이다. 올해 3월 기획예산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립대 통ㆍ폐합 등 구조조정과 함께 단과대와 학과별로 특성화 방안 및 구조개혁안을 미리 제시하고 그에 따라 정부가 차별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권고한 바 있다. 기업이나 각종 재단의 지원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대학을 살리고 대학의 힘을 키우는 방안이 없거나 이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대학 구성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전국 시·도가 지난 5년 동안 학교 신설에 드는 비용 분담금을 무려 1조4천억여원이나 체납한 사실이 국감 자료에서 드러났다. 지난해엔 대부분의 시·도가 학교 용지값을 단 한푼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개발지역 학교 터 매입비를 시·도와 교육청이 절반씩 분담하도록 한 현행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을 버젓이 무시해온 것이다. 지자체들은 민간업체한테 거둬 쓰던 학교용지부담금이 지난해 위헌 결정으로 제대로 걷히지 않는데다, 정부의 교부금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학교용지 특례법에는 부담금 외에 개발부담금, 취득세, 등록세 등을 두루 재원으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개발사업으로 얻은 막대한 세수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정부 교부금만 탓하는 건 억지 논리다. 특히 가장 많은 7200억원을 체납한 경기도는 2004년부터 수천억원을 들여 영어마을을 지었고 해마다 200억원이 넘는 운영 적자를 도비로 충당하고 있다. 생색나는 사업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학교를 제공할 의무를 게을리하는 건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한테 돌아간다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집중된 경기 고양·용인·의정부 지역은 학교가 제때 지어지지 않는 바람에 원거리 통학과 교실난이 심각하다. 운동장과 특별실을 쪼개 교실을 급조하는가 하면 학급당 학생수가 10여년 전인 40명대로 다시 늘어난 콩나물 교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교육청이 예산 부담을 떠안다 보니 수업 기자재 등 다른 교육 여건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니 지방 교육재정은 파산 직전이다. 현재 각 시·도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 부채는 2조6천억원이나 된다. 2003년까지는 연간 수백억원대였지만 2004년 5800억원, 지난해에는 무려 1조8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학교 신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40%를 차지한다. 시·도의 분담금 체납이 급증하면서 그 부담을 지방채 발행으로 메워온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상당수 교육청이 한해 예산 대부분을 학교용지 매입비로 써야 할 판이다. 국채건 지방채건 국민 부담은 마찬가지다. 교육자치란 명분으로 국가의 교육 의무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지자체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하루빨리 손봐야 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간한 ‘2006 북한인권 백서’는 법률 전문가들이 탈북자 100명을 직접 탐문해 북한인권의 참혹한 실태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고발한 내용이다. 백서에 따르면 북의 수사기관은 사람을 체포할 때 법 절차를 지키지 않고 고문을 예사로 한다. 겨울에 발가벗겨 밖에 세워 놓는 ‘동태고문’은 인명을 하찮게 여기는 저들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말해 준다.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정치범 수용소는 강제 낙태와 중노동이 일상화된 생지옥이라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백서를 보며 부끄러워해야 정상이다. 인권위는 북한인권 백서는커녕 권고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초중고교 남학생에게 여학생보다 앞 번호를 주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출석부 번호까지 간섭하는 인권위가 남한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 당하는 북의 인권 지옥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인권위 결정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는 곧잘 유엔 인권위 결의를 인용하면서도 북의 인권 참상에 대한 유엔 인권위 결의는 모른 체한다. 역겨운 이중성이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들의 명예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한 바 있다. 법조 비리에 변호사들이 단골로 등장하는 현실에서 변호사업계의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 혼자 우리 사회의 인권을 완벽하게 수호할 수는 없다. 일선 수사기관과 교도소는 물론이고 검사실과 법정을 드나들면서 인권문제의 현장에 접하는 변호사들도 마땅히 인권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솔선해야 한다. 대한변협은 이번 백서를 통해 장관급 위원장에 차관급 고위직이 세 명이나 되는 국가기구가 외면한 일을 했다. 대한변협은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인권보고서를 발간해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인권위가 세금만 축내며 제 구실을 못하는 실정에서 대한변협이 북한인권을 감시·고발해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에 더욱 값지다.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이 정부와 지방자체단체의 예산 낭비를 견제할 수 있는 납세자소송제도의 도입을 바라고 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지난 29일 1000명에게 물어본 결과다. 設問설문에서 응답자 76.9%는 “정부가 예산을 공공사업에 잘못 투입하고 있다”고 했고, 85.3%는 “생활 주변에 예산 낭비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납세소송제란 納稅者납세자인 국민이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예산낭비와 불법적인 예산 쓰임새에 대해 직접 소송을 내 부당한 예산집행을 중단시키거나 낭비된 예산을 還收환수할 수 있는 제도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국가예산의 일부를 소송을 낸 납세자에게 주기도 한다. 미국에선 1847년 뉴욕시장을 상대로 한 납세자소송을 처음 인정한 이래 매사추세츠 등 여러 州주정부가 납세자 소송법을 만들었다. 일본도 1948년부터 미국 납세자소송제를 일본식으로 바꾼 주민소송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같은 내용의 법이 처음 국회에 제출됐고, 이 정부 들어서인 2004년 일부 與黨여당 의원들이 참여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국회의 외면으로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됐었다.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이던 나랏빚은 이 정부 4년 동안 283조8000억원으로 2배가 불어났다. 그 결과 국민이 부담해야 할 1인당 나랏빚도 280만원에서 577만원으로 2배가 늘어났다. 1인당 세금은 2002년 284만원에서 올해 356만원으로 4년 새 25%가 뛰어올랐다. 이 정부 들어 감사원이 타당성과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며 시정을 권고한 국책사업 총 사업비만 해도 39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가 부당 수의계약, 공무원 횡령, 부실시공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끼친 손실만 따져도 2조원을 넘는다. 게다가 이 정권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자주국방, 지방균형발전이니 하며 수십조, 수백조짜리 國策국책사업들을 국민 여론조차 듣지 않고, 또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앞으로 수십년간 그 부담이 세금 告知書고지서로 국민에게 날아들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국회가 납세소송제 도입에 앞장설 때가 됐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양국이 그동안 껄끄러웠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다. 교역량이나 인적 교류 등 밀접한 양국 관계를 감안할 때 정상들만 만나지 못하는 괴이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9일 일본 의회 연설에서 한.중 양국을 "중요한 이웃 나라"라면서 "미래를 향해 솔직히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한국.중국과의 관계 복원 의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아베 총리의 이런 의지 표명을 환영한다. 물론 평소 아베 총리가 밝힌 헌법.교육법의 개정 방향 등 여러 정책들이 한.중과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 정상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만 해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이미 참배한 적이 있고 앞으로 참배 여부는 밝히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웃과의 미래지향적 대화를 중시한다고 천명한 것을 취임 초기부터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한.일 관계는 침략의 역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돌출적 행동으로 부침(浮沈)을 반복해 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그런 행동의 극치를 보여준 예다. 한.중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들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군사강국화 경향을 우려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오히려 정당화하려는 일본 내 일부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일본이 재차 침략성을 띠게 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물론 전후 반세기 이상의 일본 역사를 살펴볼 때 일본 스스로는 이러한 경계가 기우일 뿐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 세력과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언행이 아시아 각 국민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아베 총리가 내세우는 '아름다운 일본'이 주변국들과 힘보다는 호혜와 평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솔직하고 공정한 일본'이 될 것임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복역 중인 재소자의 자살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가 국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3년간 재소자 사망 인원 및 사유’라는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사망한 재소자 32명 중 자살은 5명(15.6%)뿐이었다. 그러나 2004년에는 사망자 39명 중 12명(30.8%)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05년에는 사망자 32명의 50%인 16명이 자살하는 등 해마다 자살자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올해는 9월말 현재까지 사망자 대비 자살률이 47.4%에 이르러 연말이 되면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비록 죄를 지어 갇힌 몸이 되긴 했어도 재소자 역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기본권만큼은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올해만 해도 2월 초 어느 여성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목을 매 사경에 빠졌다가 결국 숨졌고, 7월에는 독방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도(矯導)’가 무엇인가. ‘바로잡고 이끌어준다’는 뜻 아닌가. 언필칭 교도행정이 ‘교도’의 본래적 의미에 조금만 충실했더라도 어쩌면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교정당국은 “매년 재소자 사망 인원에는 큰 편차가 없는데도 유독 자살자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당국자들의 문제의식 부족과 재소자 관리 소홀 때문”이라는 최의원의 지적을 경청해야 마땅하다. 이전보다는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교도행정이 전근대적·반인권적 ‘징벌 지상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또한 자살의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재소자에 대해 체계적이고도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는지도 꼼꼼히 되돌아봐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련 기관·단체들의 지속적이고 애정어린 관심도 필요하다. 인권위는 2003년에도 어느 재소자가 징벌기간 동안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자살 예방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지만 이같은 서면적 조처를 뛰어넘을 필요도 있다고 본다. 법무부와 협의해 재소자들의 인권 침해 사례와 민원 사항 등을 정기적으로 접수하고 처리하는 등의 방안이 그것이다. 교도소가 재소자들을 바로잡고 이끌어주기는커녕 이들의 자살을 방조하거나, 그 원인을 제공하는 장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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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56년 역사의 미 8군이 한국을 떠난다는데 한국 군 고위 소식통은 지난달 29일 “미 육군은 주한 미 8군을 포함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6개의 군 사령부를 특정 전쟁 구역의 지원을 담당하는 ‘UEy(작전지원사령부)’로 개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군이 새로 선보일 UEy는 平時평시엔 사령부 형태로 유지되다 有事時유사시 전쟁지역에 투입돼 부대의 수송과 유류공급 등 지원임무를 맡게 되는 부대다. 주한 미 8군은 한반도와 일본·대만 등 태평양 전 지역에 대한 지원 업무를 맡는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육군 사령부를 軸축으로 한 UEy에 편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950년 대구에 자리잡은 뒤 한국 전쟁에서 미 2사단 등을 직접 지휘하며 38선 이북으로 북한군을 밀고 올라간 전투사령부였던 주한 미 8군이 조만간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도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8군 사령부의 미래에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전투역량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 8군의 변화에 관한 결정이 임박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미연합사의 요직을 거쳤던 한국군 고위 인사들은 주한미군의 상징인 8군 사령부의 철수는 주한미군 감축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당장 8군 그 隷下예하에서 지원 업무를 맡아온 19지원사령부의 기능이 축소되고, 그에 따라 유사시 투입될 미 증원 부대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주한 미 8군의 철수 또는 축소 개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 8군과 대치해왔던 북한에게 던져 줄 메시지도 걱정스럽다. 북한의 誤判오판 소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 군 당국은 이 같은 미 8군의 개편·철수 설에 관해 설령 8군 사령부가 철수하더라도 8군 사령부 6개 부대가 새로 설치될 주한미합동군사령부로 소속이 바뀌는 것뿐이어서 실제 줄어드는 인원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는 말로 8군의 위상 변경에 따른 파급 효과를 축소 평가하고 있다. 여러 우려 속에서도 대통령 역시 1일 국군의 날 치사에서 “한미동맹은 앞으로도 전쟁을 막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려 없다는 대통령과 걱정하는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민의 안보적 混沌혼돈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설] 테러로 신문의 입을 잠글 수는 없다 方又榮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피습사건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고, 국민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는 언론이 지금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를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테러범이 내리 찍은 벽돌에 두께 5㎜의 승용차 특수유리가 움푹 꺼지고 그 충격에 떨어져 나간 유리조각이 차 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장은 범인들의 殺意살의를 분명히 느끼게 한다. 테러범들이 서울 외곽이라지만 인적이 끊이지 않는 길목에서, 야밤도 아닌 白晝백주 대낮에, 여든을 바라보는 신문사 경영주 老노부부의 생명을 노리는 폭력을 휘두르고 태연히 자취를 감출 수 있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테러범들은 가족과 친지 등 극소수만이 알고 있던 추모예배 일정을 비롯해 차랑번호와 이동경로 등을 속속들이 꿰고, 차량이 좁은 길에서 커브를 돌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을 골라 습격할 만큼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현장에 남아 있는 ‘민족의 敵적 조선일보 謹弔근조’라는 벽돌과 ‘3m 가까운 담장을 훌쩍 뛰어 넘던 신장 180㎝ 가량의 건장한 남자’라는 목격자 증언만으론 테러범들이 누구인지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를 가릴 길은 없다.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2006년의 대한민국이 60년 전 백주 대낮에 총격과 암살이 되풀이되던 1945년 무렵의 解放政局해방정국의 상황으로 後退후퇴하고 있다는 걱정스런 조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안보상황이 급변하고 정권이 點火점화한 左좌·右翼우익 간의 이념갈등이 대결과 충돌의 양상으로 번지면서 수십년간 대한민국의 건설자들의 목숨과 피로 바꾼 사회적 안정이 불과 3년 반 만에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념갈등과 대결이 招來초래한 사회 불안이 增幅증폭되는 과정에서 정권이 특정 언론에 대한 법적·제도적 직접 억압과 일부 외곽단체를 동원한 선전·선동적 간접 공격을 加重가중시켜 감에 따라 공격의 標的표적이 비판 언론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대한민국이 지난 60년에 걸쳐 쌓아 온 번영과 그 번영 위에서 구축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번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공격에 굳건히 맞서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언론을 향한 테러가 노리는 단 하나의 목적, 언론을 침묵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분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번영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우리 몸을 던질 각오다. 그것만이 이번 사태를 맞아 걱정과 염려, 위로과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국민과 독자분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사설] 국민에게 예산낭비·불법사용 감시 권리 줘야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이 정부와 지방자체단체의 예산 낭비를 견제할 수 있는 납세자소송제도의 도입을 바라고 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지난 29일 1000명에게 물어본 결과다. 設問설문에서 응답자 76.9%는 “정부가 예산을 공공사업에 잘못 투입하고 있다”고 했고, 85.3%는 “생활 주변에 예산 낭비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납세소송제란 納稅者납세자인 국민이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예산낭비와 불법적인 예산 쓰임새에 대해 직접 소송을 내 부당한 예산집행을 중단시키거나 낭비된 예산을 還收환수할 수 있는 제도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국가예산의 일부를 소송을 낸 납세자에게 주기도 한다. 미국에선 1847년 뉴욕시장을 상대로 한 납세자소송을 처음 인정한 이래 매사추세츠 등 여러 州주정부가 납세자 소송법을 만들었다. 일본도 1948년부터 미국 납세자소송제를 일본식으로 바꾼 주민소송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같은 내용의 법이 처음 국회에 제출됐고, 이 정부 들어서인 2004년 일부 與黨여당 의원들이 참여해 국회에 제출했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국회의 외면으로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됐었다.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이던 나랏빚은 이 정부 4년 동안 283조8000억원으로 2배가 불어났다. 그 결과 국민이 부담해야 할 1인당 나랏빚도 280만원에서 577만원으로 2배가 늘어났다. 1인당 세금은 2002년 284만원에서 올해 356만원으로 4년 새 25%가 뛰어올랐다. 이 정부 들어 감사원이 타당성과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며 시정을 권고한 국책사업 총 사업비만 해도 39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가 부당 수의계약, 공무원 횡령, 부실시공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끼친 손실만 따져도 2조원을 넘는다. 게다가 이 정권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자주국방, 지방균형발전이니 하며 수십조, 수백조짜리 國策국책사업들을 국민 여론조차 듣지 않고, 또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숫자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앞으로 수십년간 그 부담이 세금 告知書고지서로 국민에게 날아들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국회가 납세소송제 도입에 앞장설 때가 됐다.
[강인선 칼럼] “다음 행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한·미 동맹에 대한 워싱턴의 인식은 대체로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누구도 ‘50년 혈맹(血盟)’이라는 말을 현재적인 의미로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서로 간에 해결할 문제가 많은 냉정한 비즈니스 파트너쯤으로 대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과거의 한·미관계가 갖고 있던 기본 틀은 거의 다 사라질 판인데, 두 나라 모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분위기라는 점이다. 동맹의 장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다면, 한국의 전시작통권 단독행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북핵 문제가 지금처럼 불안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별 이슈들이 제각각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의견들도 들어보면 부처 간 조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간에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이 잘 안되고 있어 문제라는 이야기는 워싱턴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큰 틀은 생각하지 않고 한·미 관계에서 불거진 이슈들을 급한 대로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미국의 대한(對韓) 외교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화’와 ‘실무화’다. 작통권 이양은 국방부가, 북한이 6자 회담의 거부 구실로 삼는 위폐 조사 문제는 재무부가 담당한다. FTA는 미무역대표부(USTR)가 맡고 있고, 비자면제협정은 국토안보부가 쥐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다 외교문제다. 미국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이다. 미국은 몇 개 부처가 달라붙어서 하는 일을 우리는 많지도 않은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의 대미외교 담당자들이 일당백(一當百)으로 해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당장은 이 방식이 편리할지도 모른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작통권은 군사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둘러대고, 북한 위폐 관련 조사는 재무부 고유의 영역이라 외교정책에 장단 맞춰 달라고 할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비자면제협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가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국토안보부가 융통성이 없어서 문제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한·미 모두 이런 식으로 해나간다면 아무런 이득도 없다. 한·미 관계의 장래에 대한 비전이라는 큰 보자기로 싸주지 않으니까 개별 사안들이 합해져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진도가 나가지 않는 데 대한 변명거리 역할만 서로 해주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큰 그림도 없이 한·미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중요한 결정을 서둘러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편에서는 일시적인 대응책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노무현 정부와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차이가 있으니 일단 이렇게 실무적으로 대응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자꾸 큰 결정을 내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신중해야 하는 의견도 나온다. 어느 학자는 “미국의 다음 행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한·미관계를 이런 식으로 그냥 두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워싱턴에서 만난 관리와 한국전문가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한국의 다음 대선 후보의 ‘국제감각’에 대해 물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중앙
[사설] 한·일 정상회담, 신뢰 회복의 장 돼야 [중앙일보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양국이 그동안 껄끄러웠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다. 교역량이나 인적 교류 등 밀접한 양국 관계를 감안할 때 정상들만 만나지 못하는 괴이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설] 고령화 핵폭탄 보고만 있을 건가 [중앙일보]
오늘은 제10회 노인의 날이다. 정부는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장수 지팡이를 선물하고 모범 노인 등에게 훈.포장을 준다. 65세 이상 노인은 10년 전보다 180만2000명 늘어나 올해 459만7000여 명이 됐다. 이는 전체 인구의 9.5%이며 10년 전에 비해 3.4%포인트나 늘었다.
[사설] 집값 잡는 확실한 방법은 공급확대다 [중앙일보]
[이홍구칼럼] 블레어 정권 10년의 교훈 [중앙일보]
[시론] 준비 없는 공판중심주의는 위험 [중앙일보]
동아 [사설]大權아닌 ‘대책(大責)’ 어떻게 감당할지부터 고민해야
그러나 내년에 치러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결코 특정 세력의 ‘집안 잔치’일 수 없다. 국정을 추스를 역량을 갖춘 ‘검증된 지도자’를 선출하는 장(場)이다. 따라서 예비후보들도 ‘대권(大權)’이라는 표현에 담긴 권력쟁취적 의식보다 국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진다는 ‘대책(大責)의식’부터 가져야 한다. 7월 전당대회 때처럼 ‘줄 세우기’ 경쟁에 몰두하거나 양측 지지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벌였던 비방전 같은 추태를 되풀이하면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후보가 되든지 권력의 대주주(大株主)이기 전에 책임의 대주주가 되라는 것이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자기 개혁과 국가 운영의 청사진 제시에 실패해 패배했다. 특히 2002년 선거에서는 집권세력의 국정 파탄에 따른 반사(反射)이익에 기대다가 쓴잔을 마셨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지금 여권의 실정(失政)으로 당 지지율이 4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자 일찌감치 승리감에 도취해 내부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양상이다. 오죽하면 당 안팎에서 “고질병이 도졌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여권이 주도하는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도 어느 쪽에 이득이 될지를 따지는 정략적 계산만 앞선다. 100% 일반 국민 투표로 대선후보를 뽑겠다는 여당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이벤트성 ‘흥행’에 성공할지는 모르나 당의 정체성이 실종될 우려가 크다. 한편으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가 국민 참여 경선을 요구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력(前歷)이 있다는 사실도 되돌아볼 일이다. 그런데도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을 위해 책임지겠다는 공당(公黨)의 모습을 보이는 과정이 바로 정당 경선 레이스의 본령이 돼야 한다.
[사설]국가인권委 대신에 ‘北 인권’ 조사한 대한변협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백서를 보며 부끄러워해야 정상이다. 인권위는 북한인권 백서는커녕 권고안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초중고교 남학생에게 여학생보다 앞 번호를 주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출석부 번호까지 간섭하는 인권위가 남한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 당하는 북의 인권 지옥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인권위 결정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는 곧잘 유엔 인권위 결의를 인용하면서도 북의 인권 참상에 대한 유엔 인권위 결의는 모른 체한다. 역겨운 이중성이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들의 명예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한 바 있다. 법조 비리에 변호사들이 단골로 등장하는 현실에서 변호사업계의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 혼자 우리 사회의 인권을 완벽하게 수호할 수는 없다. 일선 수사기관과 교도소는 물론이고 검사실과 법정을 드나들면서 인권문제의 현장에 접하는 변호사들도 마땅히 인권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솔선해야 한다.
대한변협은 이번 백서를 통해 장관급 위원장에 차관급 고위직이 세 명이나 되는 국가기구가 외면한 일을 했다. 대한변협은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인권보고서를 발간해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인권위가 세금만 축내며 제 구실을 못하는 실정에서 대한변협이 북한인권을 감시·고발해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에 더욱 값지다.
[사설]한미 FTA 부진에 국회 꾸짖는 대통령, 本心 뭘까
FTA가 지지부진한 진짜 책임은 정부에 있다. 북한을 의식한 나머지 미국이 저토록 반대하는 개성공단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려놓은 것부터 그렇다. 여기에다 노 대통령은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를 한미FTA특보로 임명해 활동하도록 하면서, 한편에서는 한미 FTA를 공개적으로 극력 반대하는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을 아직도 정책특보로 두고 있다. 반(反)FTA 방송을 자주 내보낸 KBS 정연주 전 사장의 연임에도 집착하고 있다. 청신호와 적신호가 동시에 켜지는 것을 유도하는 것인가. 이래서야 실무자들이 확신을 갖고 협상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더욱이 FTA 반대론자들의 일방적 주장이 먹혀들면서 반대 여론이 힘을 얻는데도 노 대통령은 변죽만 울릴 뿐 FTA 반대론에 총력 대응하는 모습이 아니다. 진정 뜻이 있다면 TV에 출연해 불필요한 논란만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할 것이 아니라 한미 FTA의 필요성을 호소하기 위한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어야 했다. 오죽하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척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결렬시키면서 미국 책임론으로 반미(反美)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계산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돌겠는가.
노 대통령의 느닷없는 ‘국회 때리기’는 문제만 생기면 ‘남 탓’을 해 온 자신의 고치기 어려운 체질을 거듭 확인시킨 셈이다. 한미 FTA 하나만이라도 정권의 성과로 남기려는 의지가 있다면 “지지부진한 것은 내 탓”이라는 반성부터 하고 재출발해야 옳다.
[동아광장/김정호]원가공개 대가는 ‘시장의 복수’
이번에는 정부가 100채의 분양가를 평당 700만 원으로 끌어내렸다고 해 보자. 분양 후 아파트 값은 700만 원에 머물러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분양가가 얼마든 아파트는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1000만 원에 거래될 것이고, 동네의 다른 아파트 가격도 1000만 원 그대로일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운 좋게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100명이 평당 300만 원의 횡재를 했다는 사실뿐이다.
강제로 분양가를 끌어내린다고 주택의 시장가격이 낮아지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길게 볼 때 주택의 시장 가격은 분양가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분양가가 단기적으로 주변의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따지자면 분양가를 낮추어도 여전히 문제다. 낮은 분양가가 청약 경쟁률을 높일 것이고, 그 때문에 잠시 주변 아파트 값이 동요할 수 있다. 분양가는 이래도 저래도 문제다. 원래 단기적인 가격 움직임은 예측하기도, 막기도 어렵다.
조금만 길게 보면 주택 가격은 수요 공급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금리가 낮아지면 집값은 뛰기 마련이다. 지난 5년이 그랬다. 수요가 줄어드는 연립과 단독주택의 값은 정부의 간섭이 전혀 없어도 오히려 떨어져 왔다. 백만장자의 수는 세계 최고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재건축 억제다, 분양권 전매 규제다 해서 고급 주택의 공급을 억제하니 기존의 좋은 주택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그게 버블세븐 지역이다. 재건축을 막아서 새 아파트의 공급을 줄이면 아무리 세금을 때려도 기존 주택의 값은 올라간다. 분양가 역시 억지로 낮추면 새 아파트의 공급이 줄어서 기존 주택의 가격이 오른다. 조금만 길게 보면 아무도 수요 공급의 법칙을 거역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견을 뒤집은 원가 공개도 결국 분양가 규제가 목적이다. 분명히 지방마다 ‘원가심의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 것이다. 성격은 결국 분양가 규제 위원회가 될 것이다. 분양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벗어나 운 좋은 ‘실수요자’에게 충분한 프리미엄을 보장하도록 책정될 것이다. 운 좋으면 나도 한몫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서 시민단체는 지지를 얻고 정치가는 표를 얻겠지만, 그것이 옳은 길은 아니다.
원가 공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도 무관하다. 소비자는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이미 갖고 있다. 기존 주택을 구입할 때를 생각해 보라.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아파트단지의 위치와 학군, 규모이고 조망과 건축자재의 수준 같은 것이 뒤를 따른다. 자재의 품질을 제외하고는 원가와 상관없이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주인이 원가를 공개하지 않아도 구매자는 수억 원의 돈을 내고 기존 주택을 살 수 있다. 새 아파트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새 아파트의 경우 건설업자가 당초 약속보다 열악한 자재로 지을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원가가 아니라 자재의 품질을 밝히게 하면 된다.
지금도 고칠 것은 있다. 분양가를 낮춰서 당첨자에게 횡재를 주는 것이 옳지 않듯이 건설업자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택지를 매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경쟁 입찰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일이지 원가 공개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집값을 낮추려면 택지 공급을 늘려서 새 아파트의 공급을 촉진하거나 금리를 높여야 한다. 좋은 아파트의 공급이 대폭 늘면 분양가를 어떻게 해도 주택 가격은 낮아진다. 분양가에 간섭하면 시장은 공급 축소와 높은 시장 가격으로 복수를 해 온다. 운 좋은 몇 명에게 특혜를 주는 대가치고는 너무 크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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