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운문극 <돈 카를로스, 스페인의 왕자 Don Carlos, Infant von Spanien>
대본 프랑수아 조제프 메리 및 카미유 뒤 로클(프랑스어)
초연 1867년 3월 11일 파리 오페라 극장(초연판)
1884년 1월 10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개정판)
배경 1560년경 스페인의 마드리드(제2막~제5막)와 프랑스(제1막)
<1986 잘츠부르크 축제 / 178분 / 한글자막>
빈 필 & 빈 국립극장 합창단 연주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연출
필리포 2세......................스페인 왕............페루치오 푸를라네토(베이스)
엘리자베타 디 발루아.....스페인의 왕비.....피암마 이초 다미코(소프라노)
돈 카를로........................스페인의 왕자.....호세 카레라스(테너)
로드리고.........................포사 후작............피에로 카푸칠리(바리톤)
에볼리.............................공녀....................아그네스 발차(메조소프라노)
종교재판장.................................................마티 살미넨(베이스)
테발도.............................왕비의 시종........안토넬라 반델리(소프라노)
천상의 소리................................................안토넬라 반델리(소프라노)
---------------------------------------------------------------------------------------------------------------------
=== 프로덕션 노트 ===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1986년 잘츠부르크 축제 실황
거장 카라얀과 최고의 가수들이 총출동한 베르디의 가장 감동적인 역사 오페라
<돈 카를로>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깊이 있는 작품의 하나다. 실러의 원작은 16세기 스페인 왕가의 역사에 픽션을 가미했다. 정혼한 사이였던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가 아버지 필리포 2세의 왕비가 되자 큰 충격을 받은 돈 카를로는 신교도를 처형하는 부왕에 저항해 칼을 뽑아든 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히고, 친구 로드리고는 왕자를 대신해 희생을 자처한다. 여기에 필리포의 고뇌, 왕비를 모함했던 에볼리의 속죄까지 더해져 엄청난 감동을 안겨주는 대작이다. 본 영상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는 물론 연출까지 맡은 1986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실황이다. 카레라스, 카푸칠리, 푸를라네토, 발차 등 초일급 출연진에 카라얀이 발탁한 피암마 이초 다미코까지 다시는 꿈꾸기 힘들 명연이다.
<돈 카를로>(1867)는 베르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도 생각했던 대작이다. 파리 오페라의 의뢰를 받고 5막의 프랑스 오페라로 초연되었으나 이후 이탈리아어 4막판과 5막판도 등장했다. 본 영상물은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이탈리아어 4막 판본이다.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타가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정혼과 뜻하지 않은 파혼, 그리고 돈 카를로가 죽은 지 겨우 2개월 만에 엘리자베타도 세상을 떠난 사실과 맞물려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상상했지만 실러의 연극으로 다뤄졌고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들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돈 카를로>는 뒤로 갈수록 극적, 음악적으로 묵직해져서 베르디의 휴머니즘이 최고로 발휘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역 자리에 위치한 필리포 2세, 에볼리 공녀의 캐릭터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정의로워야 할 늙은 종교재판관은 모든 신교도를 처단하고 싶다는 태도를 드러내 선악에 대한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카라얀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입지가 공고해진 1950년대에 원래 장기였던 오페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라 스칼라에서 지휘뿐 아니라 연출까지 담당한 경력이 보이고, 1957년부터 7년간 빈 슈타츠오퍼의 감독도 겸했다. 바이로이트에도 1951년에 진출했다가 빌란트 바그너와 불화가 생기자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빈 슈타츠오퍼를 떠난 1964년 이후 카라얀의 오페라 지휘는 대부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집중된다. 카라얀은 1956년부터 이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기존의 여름 페스티벌 뿐 아니라 1967년부터는 '부활절 페스티벌'을 창설하여 지휘만이 아니라 연출, 심지어 직접 제작까지 총괄하는 기회를 확대했다. 특히 잘츠부르크의 대축제극장은 좌우로 긴 무대를 자랑했기에 대작에 잘 어울렸다. 본 영상은 카라얀의 이런 면모를 충분히 만끽할만한 기념비적 실황이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돈 카를로
주세페 베르디
〈돈 카를로〉는 베르디의 최고의 야심작으로 그의 오페라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5막 대하 오페라 형식으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오페라에 정치와 종교의 대립, 신교와 구교의 대립, 우정과 사랑의 갈등 등 소재를 충실하게 사용했다.
두 가지 판본
파리 오페라하우스는 베르디에게 파리지앵들의 구미에 맞는 그랑 오페라를 위촉하였다. 베르디는 대본가와 극장 측과 오랜 검토 끝에 〈돈 카를로〉를 선택하였다. 파리 그랑 오페라에 걸맞게 규모와 음악 모든 면에서 웅장함을 자랑하는 이 오페라는 2년 이상의 작업 기간이 걸렸고 비평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파리 초연에서는 대중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돈 카를로〉 이탈리아 판의 개정작업을 시작한다. 가사는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5막은 4막으로 줄인 후 〈돈 카를로〉라는 제목으로 다시 무대에 세운다. 개정판 초연 이후, 베르디는 삭제했던 첫 번째 막을 다시 첨가시켜 두 번째 판을 만들었다. 이렇게 〈돈 카를로〉는 현재까지도 판본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돈 카를로〉 공연은 판본에 대한 설명과 항상 함께 한다. 오리지널(프랑스어) 5막판은 파리국립도서관에, 4막판은 밀라노의 리코르디 사에 있다.
극을 움직이는 가공의 인물
〈돈 카를로〉는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극시 《돈 카를로스, 스페인의 왕자》를 각색한 것이다. 실러는 16세기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와 그의 아들 돈 카를로스의 갈등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희곡을 썼다. 〈돈 카를로〉의 네 명의 주인공, 필리포, 카를로, 엘리자베타, 에볼리 공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유일한 가공의 인물이 원작자 실러가 창작해 낸 로드리고이다. 로드리고는 〈돈 카를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목하는 부자 필리포와 카를로, 사랑하지만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두 연인 카를로와 엘리자베타, 짝사랑 관계인 카를로와 에볼리라는 네 명의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중재하고 소통의 통로의 역할을 하는 이가 로드리고이다. 로드리고는 이렇게 소통과 중재를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이나 의문의 죽음을 맞는 비극적 인물이기도 하다.
웅장한 규모의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베르디 오페라 중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공연 시간도 가장 길다. 5막의 무삭제판의 경우, 공연 시간이 5시간이 넘을 정도로 긴 장편 오페라이다. 길이를 넘어 〈돈 카를로〉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소프라노(엘리자베타), 메조소프라노(에볼리 공녀), 테너(카를로), 바리톤(로드리고), 베이스(필리포 왕)라는 다섯 명의 주역 배우가 필요하다. 그 밖에도 종교재판장과 수도승을 연기할 두 명의 베이스가 필요한 캐스팅으로, 무대에 총 3명의 베이스가 필요한 작품이다. 거기에 더해 무대 뒤에 배치되는 또 하나의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포함하여 두 개의 오케스트라, 대형 합창단과 무용단 등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는 비단 사람 수를 떠나, 최소 7개 이상의 무대 세트가 필요한 대규모의 웅장한 오페라이다.
정략결혼이 빚어낸 왕실의 비극
〈돈 카를로〉는 1560년경 프랑스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돈 카를로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혼을 위해 약혼녀인 엘리자베타를 만나러 간다. 카를로와 엘리자베타는 서로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국혼은 엘리자베타와 카를로의 아버지, 필리포 2세로 결정된다. 두 사람의 결혼에 카를로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필리포 2세는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다.
로드리고가 플랑드르에서 돌아오자 카를로는 친구인 로드리고에게 자신이 엘리자베타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로드리고는 파리에 있는 엘리자베타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편지를 카를로의 편지와 함께 엘리자베타에게 전한다. 이를 엿들은 에볼리 공녀는 카를로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오해한다. 에볼리 공녀는 카를로에게 만나자는 쪽지를 보낸다. 에볼리 공녀를 엘리자베타로 알고 있던 카를로는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 카를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에볼리 공녀는 분노한다.
한편, 카를로는 왕에게 플랑드르 통치권을 요구하지만 왕은 이를 거절한다. 이에 분노한 카를로가 칼을 뽑는다. 로드리고가 이를 저지하지만, 카를로는 체포된다. 종교재판소장은 카를로의 사형에 동의하고 로드리고를 이교도라고 단언한다. 엘리자베타의 보석함에 있는 카를로의 초상화를 발견한 필리포는 그녀를 간음죄로 고소한다. 로드리고는 카를로를 면회하러 갔다가 살해당한다. 이에 분노한 카를로는 필리포에게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 아님을 말한다. 감옥에서 무사히 탈출한 카를로는 엘리자베타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는 플랑드르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이별을 고할 때 필리포 왕이 나타나 체포하려고 한다. 그 순간 카를로 5세의 혼령이 나타나 카를로를 무덤으로 데려간다
주요 음악
막 구분은 초판을 기준으로 한다.
2막,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이중창 ‘함께 살고 함께 죽으리다[Dio, che nell’alma infondere (Vivremo insiem e morremo insiem)]’
카를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된 엘리자베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그의 친구 로드리고에게 고백한다. 로드리고는 카를로에게 사랑은 그만 잊어버리고 고통 받는 플랑드르 지방의 백성을 구하는 데 힘을 합치자고 설득한다. 로드리고의 충고를 들은 카를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다짐하는 우정의 이중창을 부른다. 이 노래의 주제는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난다.
2막,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이중창 ‘나는 왕비에게 청하러 왔네(Io Vengo A Domandar)’
홀로 있는 엘리자베타와 그녀 앞에 나타난 카를로가 서로의 마음을 감추고 부르는 두 사람의 처절한 이중창이다. 카를로는 자신을 아들로 대하는 엘리자베타의 태도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플랑드르로 갈 수 있도록 왕에게 청해달라고 엘리자베타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엘리자베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녀를 안으려고 한다. 엘리자베타는 그런 카를로에게 흔들릴 뻔했지만, 단호하게 “아버지를 죽이고 피묻은 손으로 왕좌로 데려가라”며 처절하게 외친다.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카를로는 자신이 저주받았음을 외치고 절망하며 달려 나간다.
4막, 필리포 2세의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Ella giammai m'amò)’
늦은 밤 잠 못 이루고 있는 필리포 왕은 자신이 젊은 아내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아들에게도 배신당한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한다. 첼로의 저음으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권력자의 외로움이 녹아들어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베이스 아리아라 칭할만하다. 필리포 왕의 괴로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현의 트레몰로 반주가 인상적이다.
4막, 로드리고의 긴 내레이션과 아리아 ‘나의 최후의 날... 나는 죽지만 행복하오(Per me giunto e il di supremo···Io morrò, ma lieto in core)’
카를로가 수감되어 있는 곳에 면회 온 로드리고가 죽음을 예상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내레이션 이후 아리아 ‘나의 최후의 날... 나는 죽지만 행복하오’를 부른다. 아리아를 부르는 중 로드리고는 저격수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로드리고는 마지막 숨을 다하면서 마지막까지 카를로에게 플랑드르의 미래를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로드리고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저격수가 누구인지는 대본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많은 공연에서 수도승 복장을 한 이를 저격수로 연출한 것으로 교회가 로드리고를 제거한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5막, 엘리자베타의 아리아 ‘세상이 덧없음을 아시는 신이여(Tu che le vanità)’
생 쥐스트 수도원에서 카를로를 기다리는 엘리자베타가 퐁텐블로의 숲에서 그를 처음 만난 날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아리아이다. 그녀는 카를로에게 로드리고의 유언과 함께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을 결심한다. 엘리자베타의 괴로움과 슬픔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리리코 스핀토의 유명한 아리아이다.
---------------------------------------------------------------------------------------------------------------------
=== 작품 해설 === <2012년 2월 27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베르디, 돈 카를로
쉴러의 희곡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스>를 바탕으로 한 대본
1867년 3월 11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5막으로 초연
19세기 유럽에서는 대규모 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위해 유명 오페라 작곡가에게 신작을 의뢰하는 것이 관행이었고, 1867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베르디를 택했습니다. 당시 파리는 세계 오페라의 중심이었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은 음모와 뇌물, 스캔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베르디는 이 의뢰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고전문학 작품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베르디는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스 Don Carlos, Infant von Spanien]의 정치적 이상과 휴머니즘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소재를 대본가 프랑수아 조제프 메리 및 카미유 뒤 로클에게 의뢰해 프랑스어 오페라로 탄생시켰습니다.
군주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정혼시킨 여자를 정략적인 이유에서 왕비로 맞아들입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을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게 된 아들은 그 고통과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경계하죠. ‘베르디 오페라의 진수’로 불리는 [돈 카를로]는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를 바탕으로 정치적 이상의 좌절과 비극적 가족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실존인물 돈 카를로스는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 펠리페 2세(1527-1598)의 아들로 왕위계승권을 지닌 왕자였지요. 하지만 세계를 호령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카를로스 왕자는 심약한 데다 정신질환이 있었고,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왕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버지는 발작을 일으킨 그를 감금해 스물셋의 나이에 홀로 죽어가게 만들었답니다. 뒤주에 갇혀 죽은 조선시대 사도세자와 비슷한 운명이었던 셈이군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 속에는 이 왕자(카를로스는 이탈리아어로 카를로가 됩니다)가 테너 주인공으로, 아버지 펠리페 2세(오페라에서는 필리포 2세)는 베이스 주인공 배역으로 등장합니다.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원래는 동갑내기 카를로스 왕자와 약혼한 사이였으나, 두 명의 왕비와 사별한 펠리페 2세의 세 번째 왕비가 됩니다. 오페라 속 소프라노 여주인공 엘리자베타가 그녀죠. 마드리드 최고의 미녀로 불렸고 펠리페 2세의 정부라는 소문이 있었던 실존인물 에볼리 공녀(公女) 역시 메조소프라노 배역으로 오페라에 등장합니다.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창작된 인물은 돈 카를로 왕자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이상주의자 로드리고(포사 후작)로, 바리톤 배역이랍니다. 1867년 3월 11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5막으로 초연된 이 작품을 베르디는 이탈리아어 4막본으로도 개작해 1884년 1월 10일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 재초연 했습니다. 4막본에서는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트가 처음 만난 퐁텐블로 숲 장면이 생략되었는데요, 오늘은 초연판 5막본의 줄거리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권력자의 고독, 정치적 이상의 좌절
1막은 1560년경, 프랑스의 퐁텐블로 숲에서 시작됩니다. 스페인의 카를로 왕자는 정혼상대인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가 궁금해, 외교사절단에 끼여 슬쩍 프랑스로 옵니다. 퐁텐블로 숲에서 처음 마주친 두 사람은 곧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전령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죠. 펠리페 2세가 스페인과 프랑스의 화의를 위해 엘리자베타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아버지에게 연인을 빼앗긴 카를로 왕자는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2막은 스페인의 산 주스토 수도원이 배경입니다. 연인 사이가 모자관계로 변한 운명에 절망하는 카를로 왕자 앞에 플랑드르에서 막 돌아와 나타난 절친한 친구 로드리고(포사 후작)는 이런 개인적인 고통을 극복할 처방으로 ‘플랑드르로 가서 억압받는 백성을 구하고 평화를 건설하라’고 왕자를 격려하죠. 두 사람은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라고 노래로 영원한 우정을 다짐합니다. 귀족부인들이 모여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수도원의 정원에서 왕의 정부 에볼리 공녀는 ‘베일의 노래’를 부르며 암시적으로 왕비를 조롱합니다. 로드리고는 왕비 엘리자베타에게 카를로를 만나보라고 당부하는데, 카를로는 왕비에게 자신을 플랑드르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는 과거의 환상에 빠져 왕비를 포옹하려 합니다. 갈등으로 마음이 찢기는 엘리자베타는 "그처럼 나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 묻은 손으로 나를 결혼제단으로 이끌라"며 카를로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한편 필리포 왕은 ‘무력으로 다스려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자신의 신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로드리고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게 됩니다.
3막은 마드리드 왕궁의 정원입니다. 카를로 왕자를 연모하는 에볼리 공녀는 그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 밀회를 약속합니다. 사실 엘리자베타의 편지인 줄 알고 밀회장소에 나온 카를로는 다른 여자를 발견하고 놀라 마음을 들키게 됩니다. 에볼리는 왕자와 왕비 엘리자베타의 관계를 알고 불같이 화를 냅니다. 로드리고가 달려와 에볼리를 죽이려 하지만 왕자는 이를 말립니다. 에볼리는 질투에 눈이 멀어,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로드리고는 카를로에게 반역의 증명이 될 만한 문서가 있으면 자신에게 맡기라고 충고합니다.
아토차 성당 앞 광장. 이단자들의 화형식을 보기 위해 군중이 광장에 모여듭니다. 왕이 등장하자 카를로는 플랑드르의 사절들을 데리고 와 왕에게 자비를 간청합니다. 성직자들은 반역자들의 처형을 주장합니다. 카를로가 아버지에게 칼을 빼들어 대들자 로드리고가 나서서 칼을 빼앗아버리죠. 카를로가 놀라는 가운데 천상의 소리가 ‘이단자들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4막은 왕의 집무실입니다. 필리포 왕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왕비 때문에 서글퍼하면서, 군주의 외로움을 노래합니다. 종교재판장이 들어오자 왕은 카를로의 반역죄를 어떻게 처벌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재판장은 사형을 주장합니다. 왕은 여전히 교회의 권력에 굴복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죠. 이때 왕비가 보석함을 도둑 맞았다며 달려 들어옵니다. 왕은 보석함에 들어있던 카를로의 초상화를 내보이며, 왕비가 왕자와 더불어 간통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엘리자베타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기절하고 맙니다. 이 상황에 방에 들어온 에볼리는 죄책감을 느끼고는 자신이 보석함을 훔쳐 왕에게 주었으며 사실은 왕의 정부라고 왕비에게 고백합니다. 왕비가 에볼리를 수도원으로 추방하자 에볼리는 자신의 미모를 저주합니다. 로드리고는 카를로가 갇힌 감옥에 찾아와 자신이 플랑드르 반란의 선동죄를 뒤집어썼으며 곧 왕의 자객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카를로에게 꼭 플랑드르로 가서 선정을 베풀라고 간청합니다. 이때 자객이 로드리고를 총으로 쏘고, 쓰러진 로드리고는 카를로에게 최후의 작별을 고합니다. 필리포 왕은 감옥에 찾아와 카를로를 풀어주려고 하지만, 카를로는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비난합니다. 군중이 감옥으로 몰려와 왕을 협박하지만 종교재판장의 개입으로 잠잠해집니다.
5막은 다시 산 주스토 수도원이 배경입니다. 엘리자베타는 수도원에서 카를로를 기다리며 카를로 5세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 찬 노래를 부릅니다. 왕비는 카를로 왕자를 격려해 플랑드르로 떠나보내려 하지만, 왕비와 왕자의 관계를 의심한 필리포 왕은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현장을 덮쳐 왕자를 종교재판관에게 넘겨주려 하죠. 그러나 그때 무덤에서 선왕이자 카를로 왕자의 조부인 카를로 5세가 걸어나와 손자를 데리고 사라집니다.
바리톤과 베이스, 관현악의 오페라
권력자의 고독, 정치적 이상의 좌절,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 부자관계와 군신관계, 종교와 정치의 상관관계 등 인간사의 다양한 주제와 인간 심리를 밀도 있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돈 카를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입니다. 쉴러 원작에서는 계몽주의 사상과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 더욱 강조된 반면, 오페라에서는 남녀주인공의 사랑과 부자간의 갈등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그 때문에 극적인 재미는 원작보다 오페라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돈 카를로와 로드리고가 함께 부르는 ‘우정의 이중창’, 그리고 ‘왕의 망토 아래 잠들어’, ‘아, 나는 죽는다, 그러나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의 허무함을 아시는 이여’ 등의 가슴 저미는 아리아가 특히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오페라에는 비중 있는 저음역 남성가수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로드리고와 필리포 왕의 바리톤/베이스 이중창, 종교재판장(대심문관)과 필리포 왕의 베이스/베이스 이중창 등은 다른 오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합의 중창들이죠. 모놀로그의 피아니시모에서 합창의 포르티시모까지 강약의 폭이 넓고 그 전환이 극적인 [돈 카를로]의 음악적 매력은 베르디 중기에서 후기로 가는 과도기적 혼융과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어둡고 깊은 화성이 가수들의 저음과 어우러져, 베르디 전기 및 중기 초반의 명징하고 통일성 있는 오페라 음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진보적인’ 음악이 탄생한 것이죠.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 [아이다] 만큼 자주 공연되지 않는 [돈 카를로]가 음악인들이나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베르디 오페라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
=== 참고 자료 === <2011년 2월 3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시는 분
베르디, <돈 카를로>
교회의 정치 개입, 종주국 스페인의 탄압에서 해방을 꾀하는 훌랑드르(플랑드르, Flandre)의 신교도에 대한 스페인 황태자의 공명(共鳴) 등 16세기 유럽의 정치사를 배경으로 하여, 스페인 황태자 돈 카를로와 사랑하면서 그 아버지 휠리포 2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 불란서의 왕녀 엘리자베타가 겪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또 복잡하게 얽힌 사랑과 미움의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왕비를 모시는 여관(女官)이며 국왕의 애인, 황태자를 은밀히 사랑하는 에볼리 공녀(公女)[여기까지가 역사상의 실존 인물]과 또 한 사람인 원작자 쉴러(Schiller)가 자기 사상의 대변자로 등장시킨 포자(Posa)의 후작인 로드리고이다. 이러한 역사극 속에서 음악의 힘으로 인간관계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부각시키는 것은 베르디의 특기이다. 베르디가 53세 때 빠리(파리, Paris)의 제2회 만국 박람회(1867)를 위해 작곡한 이 작품 [돈 카를로]는1867년 3월 11일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불란서인이 좋아하는 취향에 맞추어 발레와 합창이 들어간 그랜드 오페라 형식의 5막극이었으나, 그후 불란서어를 이탈리아어로 바꾼 4막의 개정판(1884)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1886년 삭제했던 제1막을 살리고 오케스트레이션도 고쳐서 5막의 제3판을 남겼다.
음악의 힘으로 인간관계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부각시키는 역사극
1560년대의 스페인이다. 전왕(前王) 카를로 5세의 무덤이 있는 마드리드의 산 쥬스트 수도원의 이른 아침에 왕자 돈 카를로는 약혼녀였던 엘리자베타가 지금은 아버지 국왕의 왕비가 되어버린 데 대한 분노와 슬픔을 친구 로드리고에게 알린다. 왕비의 여관(女官)인 미모(美貌)의 에볼리는 남몰래 돈 카를로를 사랑하며 그 뜻을 편지에 적어 보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왕비에게 가 있음을 알고 국왕과 밀통(密通)하며 왕비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알린다. 구교도(舊敎徒)인 스페인 왕은 신교도가 많은 훌랑드르 지방을 탄압한다. 그러나 동정적인 로드리고는 왕에게 사태의 심각함을 직언하고 그에 찬동하는 돈 카를로가 왕에게 간언하지만 왕은 오히려 왕자를 감옥에 넣는다. 책임감 때문에 돈 카를로를 구출하기 위해 감옥에 침입했으나 왕의 부하에게 습격을 받아 돈 카를로에게 훌랑드르의 장래를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 마지막 막은 산 쥬스트 수도원이다. 돈 카를로는 엘리자베타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훌랑드르로 떠나려고 한다. 그 때 국왕과 종교 재판장 일행이 나타나 불의(不義)의 현장을 포착했다고 하며 왕자를 처형하려 하나, 마침 선왕의 묘가 열리고 일동이 꿇어 엎드리자 왕관을 쓴 수도사가 돈 카를로를 어디론가 데리고 사라진다.
베르디, <돈 카를로>, 이 세상이 덧없음을 아시는 분
이 세상이 덧없음을 아시는 분인
당신은 석관(石棺) 속에 깊이 잠들어 있지만,
혹시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신다면
내 괴로움 위에 부어 주시고
내 슬픔을 주님 곁으로 실어가 주세요.
카를로가 여기 옵니다!...
지금! 떠나서 잊어 주신다면...
그의 생애를 지켜보자고 포자에게 맹세했어요.
그가 자기 운명을 따른다면 영광이 따라올 겁니다,
내게 인생은 이미 다 저문 날에 불과합니다!
불란서여, 내 청춘의 그리운 고귀한 나라!
폰텐블로여, 생각은 그곳을 향해 날개를 편다.
하느님은 그곳에서
내 사랑의 영원한 맹세를 들으셨지만,
그 영원은 불과 하루 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이 이베리아 땅의 우아한 정원에,
혹시 카를로가 해질녘에 다시 한 번 발을 멈춘다면
흙도 시냇물도 연못도 나무들과 꽃들도
목소리를 합쳐 우리의 사랑을 노래했으련만.
잘 있거라, 아름다운 황금의 꿈...
잃어버린 환영(幻影)!...
매듭은 끊어지고, 빛은 빗나갔다!
안녕, 다시 한 번 청춘에!...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에는 단 하나의 소원, 관 속의 편안함!
이 세상이 덧없음을 아시는 분인
당신은 석관(石棺) 속에 깊이 잠들어 있지만,
혹시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신다면
내 괴로움 위에 부어 주시고
내 슬픔을 주님 곁으로 실어가 주세요.
혹시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신다면,
아, 내 슬픔을 주님의 발치에 전해 주세요.
사랑하는 이의 아버지와 정략결혼한 여자의 절규
산 쥬스트 수도원에서 카를로를 기다리며 그를 처음 만났던 폰텐블로의 숲을 그리며 로드리고의 유언을 전하고 카를로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고 나가게할 결의를 노래한다. 고뇌와 슬픔을 선명하게 그린 리리코 스핀토의 유명 아리아이다. 위의 엘리자베타의 호소는 기도라기 보다는 날카롭게 규탄하는 비통(悲痛)한 절규이다. 정략결혼으로 비극의 원인을 만든 사람을 힐책(詰責)하는 강렬한 성격이 이 아리아에는 필요하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산티니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61) 안토니에타 스텔라(S) DG
[돈 카를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탈리아 오페라 레코드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명연주로 평가받는 음반이다. 스텔라(Antonietta Stella), 코쏘토(Fiorenza Cossotto), 라보(Flaviano Labo), 바스티아니니(Ettore bastianini), 크리스토후(Boris Christoff), 뱅코(Ivo Vinco) 등 주역 6명이 각기 뛰어난 개성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노래한다. 개성적인 성격이 서로 교묘하게 얽혀 상승작용을 하면서 극적인 힘과 오페라의 매력을 만끽하게 해준다. 산티니(Gabriel Santini)의 지휘는 전체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치밀하고 강력하게 통솔하면서 선율을 풍성한 화음으로 흘러넘치게 한다. 그 선율은 다양한 성격과 효과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며 극적인 박력과 긴장감을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여기 넘쳐 흐르는 음악의 응집력과 다채로운 음향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앙상블이 자랑하는 실력이라 하더라도 아무 때나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산티니는 개정 제3판 전 5막의 이탈리아어 판본을 사용하고 있다.
[CD] 쥴리니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앰브로지안 오패라단 합창단(1971) 까바예(S) EMI
데뷔 당시 도밍고의 싱싱한 주역, 그 친구 역에 밀른즈(Sherril Milns), 전성기의 까바예(Montserrat Caballe)를 오랜만에 로이열 휠하모니로 돌아온 쥴리니(Maria Giulini)가 매력 넘치는 지휘를 하여 녹음한 음반이다. 가수들을 충분히 분별하여 노래케 하는 쥴리니의 이탈리아인다운 혈기와 그 밑바닥을 흐르는 서사시풍(敍事詩風)의 묘사가 역사극으로서의 풍격을 이루고 있다.
[DVD] 카라얀 지휘, 베를린 휠하모니 관현악단/잘쯔부르크 음악제 합창단(1986) 다미코(S) 카라얀 연출 Sony
잘쯔부르크 음악제 공연을 실황 녹음한 영상이다. 그가 만든 다른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무대 장치는 호화롭고 카라얀이 직접 연출한 영상은 이해하기 쉬어 누구나가 납득할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주역인 로드리고 역은 카프칠리(Pietro Cappuccilli), 에볼리 공녀는 발짜(Agnes Baltsa)가 적역(適役)이다. 에리자베타 역은 당시 22세의 늘씬한 미모이며 미성(美聲)의 다미코(Fiamma aizzo D'Amico)라는, 역시 카라얀이 좋아하는 프리마돈나 가수의 전형적인 소프라노로 화제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가수 배역은 최고이고 카라얀 취향으로 선발되어 있다. 격조 있는 차분한 색조의 무대에 극적 긴장감이 뛰어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 세상이 덧없음을 아시는 분 - 베르디, [돈 카를로] (내 마음의 아리아)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6.06 07:4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6.09 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