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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재사랑산악회-제179차 산행] ♣ 홍천 공작산 *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 [산행 코스] ☞ 공작고개→ 능선→ 정상(887m)→ 안공작재→ 동작골→ 휴양림(하산)
* [프롤로그] — 유난히 뜨겁고 답답하고 불안한 2017년 여름 …
2017년 삼복의 뜨거운 폭염과 긴 장마가 지나갔다. 이제 처서를 앞두고 있으니 혹독한 여름도 물러가는 시기가 되었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 복잡하고 뜨거웠다. 단순히 이상고온의 더위 때문이 아니다. 나라의 안팎에서 야기되는 여러 정황(情況)이 국가적 위기감으로 압박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존 문제가 이렇게 절박하게 다가온 때는 없었다.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북한이,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의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고도의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한폭탄과 같은 북한을 두고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 편이 갈려서 자국의 이해(利害) 관계에 따라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제 한반도 안보(安保)는 단순히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의 정치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설치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대화의 메시지만을 계속 보내고 있다. 이러한 우리 정부에 대해 북한은 응답은커녕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핵과 미사일로 미국에 대해 전쟁 불사의 호언을 연발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크게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국론 분열(分裂)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우리의 안보를 담보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미군 철수를 외치며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서 엄청난 치욕과 상처를 남겼던, 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그리고 한일합방 등 국가 패망의 상황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위정자들은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정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는 일에 너무나 안일했다. 그리고 서로 싸우고 정적을 죽이는 일로 영일이 없었다. 결국 외침(外侵)은 내부의 분열상이 자초한 결과였다.
‘… 1589년 서인(西人)인 정철(鄭澈)의 주도로 동인 계열 반대파를 무려 1,000여명이나 처단한 기축옥사(己丑獄死)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조선 사회는 정신적인 공황에 빠졌고 3년 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륙의 주인이 청(淸)나라로 바뀌는데도 명(明)에 대한 충성만 고집했다. 조정은 하루빨리 국력을 키울 생각보다는 인조의 생부를 왕으로 추숭할지 문제를 두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서로 싸우며 허비했다. 1635년 인조는 결국 부모님을 종묘에 모시는 데 성공했지만 그 다음 해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다.’ … <인조실록>에 보면 ‘후금[淸]군이 철수하면서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 명을 잡아가서 노예로 팔았다.’
(2017.8.14.) <김대기 칼럼> 중에서
역사는 살아 있는 현재이다. 국제사회의 냉혹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한반도의 운명이 또다시 우리가 아니라 남에 의해 좌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적대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하나의 권력만이 독주하고 있다. ‘포용’과 ‘협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철저하게 편향된 인사(人事)에서부터, 지금의 권력은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지난날의 정권이 그 독선(獨善)으로 패가망신했는데, 그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새 정권이 다시 그 전철(前轍)을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우리끼리 계속 싸우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살길은 '한마음'이다. 어떻게 하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 [한강기맥(漢江氣脈)] — 한반도 동서(東西)를 가로지는 산줄기
한반도 남단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기맥(漢江岐脈)’은 백두대간 오대산(五臺山) 두로봉에서 갈라져 나와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며 서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이다. 그러므로 기맥의 북쪽은 홍천, 가평 등 북한강의 수계이고 남쪽은 평창, 횡성, 양평 등 남한강의 수계에 속한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비로봉(1,564m)을 위시하여 남한의 여섯 번째 고봉인 계방산(1,577m)을 비롯하여, 수많은 오지(奧地)의 산군을 거느리며 서진(西進)하여 용문산(1,157m)의 거대한 산체로 솟은 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두물머리) 부용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62.6km의 산맥이다.
한강기맥에는 오대산 비로봉, 계방산, 청량봉, 삼계봉,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태학산, 덕구산, 응곡산, 만대산, 오음산, 금물산, 시루봉, 갈기산, 폭산(문례봉),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 옥산, 청계산 등이 포진하고 있다. 한강기맥 청량봉에서는 북으로 춘천지맥이 갈라져 나가고, 삼계봉에서는 남으로 백덕지맥과 영월지맥이 뻗어 내려간다.
* [오늘의 산행지 <공작산>] — 한강기맥 수리봉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
오늘 우리들의 산행지 홍천의 공작산(887m)은, 한강기맥의 횡성 수리봉(960m)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가 응봉산(868m)을 경유하여, 마지막으로 홍천군 한 복판에서 솟은 산봉이다. 홍천의 구성포 홍천강 앞에서 그 맥을 다한다. 홍천군 화촌면과 동면에 걸쳐 있는 공작산은, 그 산세가 공작(孔雀)이 나래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으로 수리봉, 발교산, 태학산 등이 겹겹이 솟아 있고, 동쪽, 북쪽으로는 홍천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지맥의 골들이 부채살같이 펼쳐진 곳이다.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로 꼽힌다. 공작산 기슭에는 천 년 고찰 <수타사>가 있다.
공작산 수타사(壽陀寺)는 신라 성덕왕 7년(708년) 우적산(牛寂山) 일월사(日月寺)로 창건한 후, 조선시대 선조 2년(1569년) 현 위치로 이전 수타사(壽陀寺)로 개칭하였다. 수타사에는 보물 745호 ‘월인석보(月印釋譜)’를 비롯하여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지장탱화, 삼층석탑, 홍우당, 부도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수타사를 감고 흐르는 덕치천의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수타사 앞에 조성된 수생식물원의 싱그러움이 넘치는 곳이다.
* [비오는 날, 산으로 가는 길] — 빗속에 마음을 씻는 신선함이…
오전 7시 38분, 서울 군자역을 출발했다. 밤새도록 내리는 비가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빗속의 출행(出行)이었다. 오늘은 남정균 회장, 호산아·장병국 고문을 비롯하여 김의락 자문위원과 김준섭·한영옥·장태임 부회장, 민창우 기획, 유형상 부대장이 자리를 잡았고, 늘 한결같은 우정으로 참석하는 안상규·강재훈·전진국 님, 향이 허향순과 유쾌한 이명자 님. 김재철 님 내외분, 다정한 친구 김숙이·정석희 님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간밤에도 비가 내리고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속에도 산행에 나선 대원들이다. 우중에도 변함없이 나온 분들이 마음이 굳건하다. 일단 산(山)에 들면 늘 신선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금강버스는 하남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I.C까지 원활하게 질주했다.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동홍천I.C에서 서석-구룡령으로 가는 56번 국도로 내려서 진행하다가, 홍천군 화촌면에서 동면으로 넘어가는 406번 지방도로로 진입했다. 오전 9시 30분, 산행들머리인 동작고개에 도착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 [오늘의 산행] — 공작고개[孔雀峴]에서 산의 능선을 타다
오전 9시 45분, 공작고개[孔雀峴]에서 산행에 돌입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장(雨裝)을 한 대원들이 열을 지어 산길에 들어섰다. 공작재는 동쪽의 수리봉에서 갈라져 나온 응봉산 산줄기에서 공작산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오늘은 민창우 대장에 선두에서 길잡이를 하고 유형상 부대장이 후미를 챙기기로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그야말로 우중산행이다. 오늘은 동작산의 능선 길을 거쳐 정상을 치고, 장장 7km의 ‘굴운계곡’을 따라 하산할 예정이다. <산행 들머리> 관리사무소를 출발하여 100여 미터 정도의 완만한 산비탈을 오르고 나서 산의 능선(稜線) 길에 들어섰다. 한여름의 활엽수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산길이었다. 산은 토산(土山)이어서 물기를 흠뻑 먹은 길은 쾌적하고 부드러웠다.
* [빗속을 능선 길] —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오늘은 8월 하순(下旬)에 접어드는 날이다. 그러나 산(山)은 아직 한 여름이고, 산 속은 여전히 울창하고 싱그러운 숲이었다. 비는 그침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활엽수를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자연의 음악을 탄주하는 산길이다. 물기를 흠뻑 머금은 장대한 소나무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언제 보아도 기개가 넘치는 거목의 장송(長松)들이다. 우장(雨裝)한 몸에서 금방 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완만한 산길이지만 우의를 입고 빗속을 걷는 것은 여간 번거롭지 않다. 길목의 나뭇가지나 잎들이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우의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기도 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등산화가 무겁다. 대원들은 묵묵히 빗속의 산길을 걸었다.
* [우중 산행의 어려움] — 그러나 신선한 엽록소의 숨결이 …
조금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난 산봉에서 모두 모여 휴식을 취했다. 그냥 선 채로 더운 몸을 식히는 것이다. 비록 불편한 우중산행이지만, 대원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편안하고 밝았다. 빗속을 걷는 호젓한 분위기가 좋다. 어떤 여성대원이 말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일단 산길에 들어서니 이렇게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울창한 숲속에 들어서 비를 맞으며, 그 신선한 엽록소의 생명을 몸으로 느끼는 기분, 그것은 우중 산행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빗줄기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지만, 심한 폭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빗속의 산행 풍경을 담아야 할 카메라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카메라에 빗물이 스며들거나 렌즈에 습기가 차면 아무 풍경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의 속에 감추어서 걷다가, 풍경이나 대원들의 포즈를 잡기 위해서 수시로 꺼내야 한다.
산의 능선은 늘 오르내림으로 이어진다. 산봉과 안부가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이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는 안부(鞍部)를 지나갔다. 나무의 둥치는 굵지 않지만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그 아래를 걷는 대원들의 모습이 아주 작게 보인다. 비가 내리고 산안개의 주변의 나무와 숲을 뒤덮고 있었다. 다시 또 하나의 산봉을 치고 오른다. 매우 가파른 산길이다. 대원들의 간격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자기 몸 상태를 조절하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 [비를 맞으며 걷는 산길] — 일상에 느끼지 못하는 신선한 고행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와 동행하는 산길, 속으로 흘리는 땀과 겉으로는 맞는 비가 범벅이 되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비를 맞는 얼굴은 시원하지만 우의 속의 몸을 뜨겁다. 더운 숨을 몰아쉬며 고행(苦行)의 길을 간다. 마음이 가는 길이다. 산이 좋아서 이렇게 비를 맞기로 작정하고 산길에 들었으니 이 정도의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부러 비를 맞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산(山)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는 대로 그 자연의 진면목을 그대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의 눈밭 산행이나 뜨거운 여름날의 숲길이나,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우중 산행의 묘미가 그런 것이다. ‘묘미(妙味)’라고 했다. 무연한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자연 속에서의 신선함, 묵은 땀을 아낌없이 흘리는 쾌감, 그로 하여 느끼는 마음의 정화(淨化) 같은 것이다. 산(山)은 살아있는 생명(生命) 그 자체이므로, 우리는 산을 통해서 몸을 되살리고 마음의 생기를 회복한다.
*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 — 가파른 바윗길과 아찔한 벼랑길
울창한 숲 속의 산, 비가 내린다.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주변은 온통 산안개가 자욱하다. 평원을 이루는 안부를 이르렀다. 이정표(里程標)가 있다. 안말계곡을 지나 56번 도로의 군업리로 내려가는 길(6.6km)이 갈라지는 곳이다. 정상까지 0.73km를 앞두고 있다. 이제 정상이 가까운 지점이다. …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 바위와 돌들이 쌓인 험난한 코스다. 뿌연 안개 속, 나무 사이로 뿌연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우의를 입은 상태에서 카메라를 간직하면서 올라야 하는 불편한 바윗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랐다. 어느 정도 오르는가 했더니, 다시 경사진 벼랑길이 이어진다. 아주 가파른 벼랑길이다.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길목이다. 산봉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있다. 우리가 올라온 공작고개와 정상으로 가는 길목이다. 여기서 남쪽으로는 안공작재-공작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상까지 0.24km이다. 뒤따라 올라오는 대원들을 기다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 [공작산 정상에 서다] — 우리가 구름 위에 서다
공작산 정상(887m)은 암봉이다. 하늘로 치솟은 첫 암봉을 우회하면 정상의 암봉이 앞을 가로 막는다. 두 암봉 사이의 좁은 절벽에는 차가운 골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정상을 오르는 가파른 바위절벽에는 손잡이 철봉과 자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바위가 매우 위태로웠지만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산행을 함께 한 모든 대원이 산의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정상비를 세워 놓았다. 빗줄기는 상당히 약해졌지만 사방의 풍경은 오리무중(五里霧中), 비와 운무로 인하여 주변의 풍경을 모두 안개 속에 잠겨버렸다. 후둑후둑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원들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등정의 인증샷을 찍었다.
민창우 대장이 결단을 내렸다. 예정된 하산길인 ‘7km의 굴운계곡’은 비로 인해서 위험하다고 판단, 안공작재를 경유하여 공작골-휴양림으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굴운계곡 길은 길이 멀 뿐만 아니라 평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길을 내면서 가야하고 또 비로 인해 계곡에 물이 불어날 경우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모든 대원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 [정상에서 공작재까지] — 가파르고 험난한 절벽 길
대원들은 다시 갈림길 산봉으로 건너왔다. 이정표에는, 여기서 남쪽으로 가는 안공작재 방향의 길은 약수봉(→4.6km)을 경유하여 수타사(6.9km)로 가는 길이다. 공작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아주 가팔랐다. 바위를 타기도 하고 벼랑의 돌길을 내려가는 길이다. 위험한 바위에는 안전자일과 바위에 레더가 박혀 있어서 조심스럽게 내려 올 수 있었다. 다행이 빗줄기가 많이 약해졌다. 가파른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낙락장송은 여전히 의연하다. 안개 속의 노송(老松)의 품격은 고절하고 아름답다. 신선의 분위기가 풍기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숲 속의 나무 사이로 산 아래의 계곡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 안개의 살짝 걷힌 시야에는 우리가 내려가야 할 동작골이 보인다. 울창한 원시림이 우거진 깊은 숲의 계곡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지만 장엄한 소나무와 싱그러운 활엽수가 생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한참을 내려왔다.
* [공작재에서의 점심식사] —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낮 12시, 안부(鞍部)의 공작재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동쪽의 아래로 내려가면 동작골이요, 남쪽으로 산줄기를 타고 계속 가면 약수봉(4.04km), 수타사( 6.34km)에 이른다. 다행히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으므로 숲속의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했다. 나무에서 가끔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대원들은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내어놓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오늘도 ‘숙이 대원’이 풋고추도 볶아오고, 배추전을 부쳐와서 모두 맛있게 먹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장만한 그 정성이 고마웠다. 식사는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 [동작골로 내려오는 하산 길] —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개울물
오후 12시 35분, 식사 후 하산 길에 돌입했다. 다시 내리막길, 바윗길이 아닌 흙길이지만 경사가 아주 가팔랐다. 길은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직벽의 길에는 안전자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작산은 멀리서 보면 공작이 날개를 쫙 펼치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상은 우뚝한 암봉으로 공작새의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면 그 주변의 산줄기와 계곡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정상 부근 가파른 경사면을 이루고 그 주변의 모든 산줄기가 완만하게 아래로 내려오면서 수많은 계곡을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가는 동작골은 그 중의 하나이다.
계곡은 원시림으로 울창했다. 물먹은 나뭇잎들이 수림 사이로 내려오는 하늘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순결한 생명의 빛깔이었다. 빗물에 씻긴 초록의 숲이 더없이 싱그러웠다. 비가 내려서 골골이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완만한 산길로 내려서면서 한결 마음이 상쾌했다. 청랑하고 맑은 물소리가 더운 가슴을 씻어내린다. 빗줄기가 많이 성글어졌다. 카메라의 렌즈에 뿌연 김이 서려 풍경이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안개와 비에 휩싸여 환상적으로 보이는 산천(山川) 그것이 이날의 풍경이었다.
* [오늘의 산행 하산점] — 동작골 휴양림 주차장에 이르다
오후, 1시 30분, 공작골 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모든 대원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산행을 끝내고 났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비가 멎었다. 가까운 계곡에 내려가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산행의 거리나 시간을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우중 산행의 상쾌한 고행을 했다.
* [귀경 길의 별식 ‘친절막국수’] — 강원도 순메밀로만 빚은 구수한 맛
귀경 길, 홍천군 화촌면 구성포리에 있는 이름난 식당을 찾아 별식을 맛보았다. ‘누르는 막국수 전문점’ <친절막국수> 집이었다.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민창우 대장이 안내한 것이다.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44번 국도에서 서석-구룡령으로 가는 56번 도로로 내려서는 홍천 구성포의 신내 사거리에 있는 집이다. 서울-안양고속도로 동홍천I.C 가까운 곳이다.
강원도 메밀로 직접 빚어내는 막국수, 순 국내산 메밀만을 써서 주인이 직접 손으로 반죽하여 뽑아낸 메밀국수인데, 그 맛이 아주 담백하고 시원하고 깊었다. 밀가루나 전분은 일절 섞지 않아서 면발이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고 거기에 곁들인 반찬은 뽀얀 ‘백김치’ 딱 한 접시, 심심하게 익은 백김치, 사각사각 씹히는 미감이 아주 산뜻했다. 이 맛집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벽을 가득 메운 사진을 보니, KBS ‘생생정보통’을 비롯하여 MBC, SBS, EBS 등 많은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고 방송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김영사)에 소개된 이름난 맛집이었다. 강원도산 메밀로 순수하게 빚은 그 유명한 막국수, 사실 더 유명한 것은 이 메밀국수를 손수 반죽하여 뽑아내는 주인장 홍성만(洪性萬) 씨였다. 올해 나이 87세인데, 이 자리에서 35년 전 개업한 이래 지금까지 국수 뽑는 일은 직접 해오고 있다. 오늘도 주방에서 그가 국수를 반죽하여 뽑았다. 부인과 나이 든 두 아들이 그를 돕고 있었다. 온 가족이 운영하는 토종식당이다.
* [미스터 덤벨 홍성만] — 15kg 덥벨을 1만 8882번을 들어 기네스북에 오른 사나이
홍선만(洪性萬) 옹(翁)은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미스터 덤벨>이다. 벽에 붙여놓은 신문의 기사 내용이 그 내력을 밝혀 놓았다. … ‘홍성만 씨는 2001년 7월 기네스북 심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5kg 덤벨을 12시간 55분 12초 동안 1만 8천 882번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리고 ‘그해 11월 SBS 창사 12주년 특집 ‘진실 게임’에 출연하여 15kg 덤벨을 1만 번 이상 들어 올려 전국의 시청자를 놀라게 하였다. 합기도 7단인 홍(洪) 씨는 강원도에서 4개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당시 나이가 70세,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다. 그래서 간판 하단에 '깜짝 이벤트'를 내걸었다. “덤벨 (17kg) 80회 이상 하시는 개인·단체 식사 무료 제공”이었다.
우리는 오늘 ‘미스터 덤벨’이 빚은 정품(精品) ‘막국수’를 먹었다. 울창한 공작산의 숲 속, 쏟아지는 빗속에서 유별난 산행을 하고, 또 유별난 분이 빚은 유별난 막국수를 맛보았다. 나라의 안팎 사정이 예사롭지 않은 2017년, 그 여름의 하루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함께 한 모든 대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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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래 노란 꽃은 마타리 꽃입니다 이름 이 외래어 같은데 왜래어가 아니고 순우리 이름입니다
줄기가 말다리 같다고하여 말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뿌리가 된장썩은냄새 또는
장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하여 생약명으로는 패장이라불립니다 봄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짱아찌로 담아 먹기도합니다. 꽃이 필때 잎과 줄기를 효소로 담아 효소로먹기도합니다.
뿌리는 어혈 또는몸속 고름 제거에 도움이된다고합니다
우중 산행 기록 하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우중산행에 모든 새재가족여러분
고생많으셨어요^^^^
고문님 산행기 잘읽어답니다
못가서 아쉬움 글로 대리만족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