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4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개천절 대체 공휴일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잠시 즐길 수 있는 하루입니다.
- 어제는 주일 예배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 충만, 말씀 충만 하신 줄로 믿습니다.
- 우리는 변함없는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겸손하게 섬김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강력한 기도로 능력 있게 구원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삶 속에 그 사랑을 실천하여 보람 있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누가복음 6장1-11절 }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 가사 가르치실 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 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 하니라.
◑◑◑◑ 제 목 ◑◑◑◑
◗◗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치심들
◑◑◑ 본문 이해와 요약 ◑◑◑
◗ 6장에서는 이해와 요약 ♥♥♥
☞ 6장에서는 안식일과 금식문제로 야기 된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표면화시킨 안식일 논쟁이었습니다.
-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 신앙인들의 바른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교훈과 삶의 방식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므로 신앙으로 응답할 것은 우리가 담대히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생명이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 이제 6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 1-5절에서 안식일의 주인에 대하여, 6-11절에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모습을 봅니다.
- 그리고 12-16절에서 열 두 사도를 세우시고, 17-19절에서 예수님의 치료하시는 능력을 보게 됩니다.
- 한편 20-23절에서 복 있는 자가 누구인지, 24-26절에서 저주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리고 27-36절에서 원수를 사랑할 것과, 37-42절에서 비판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한편 43-45절에서 나무와 열매에 관하여, 46-49절에서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우선 1절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신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 그리고 2-4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가르치는 의미를 읽고 본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 한편 5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으로도 구속받지 않으십니다.
- 한편 9절에서 복음은 세상의 부분적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새 창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그리고 10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결코 주저하시지 않습니다.
- 한편 11절에서 진정한 의인이란 규칙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 결론적으로 예수님 자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심과, 구약의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그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인간의 죄악 된 속성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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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키고 말씀이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선한 행실에 따른 상급이 주어집니다.
-
-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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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예수께서 보장하신 것이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상급이므로 이것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의인의 삶은 그 사랑을 사랑한다. (누가복음 6장 10-11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진정한 의인이란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겸손히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유대교 회당 안에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되어, 회당으로 들어가셨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그 회당 안에는 두 종류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이 두 종류의 시선은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 하나는 예수님의 시선이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 한 회당 안에서도, 이렇게 매우 다른 두 시선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달랐습니다.
- 특히 2절에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어떤 시선이었는가 알 수 있습니다.
- 2절에서, 그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엿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는 “주시하고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그들의 시선은 예수님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을 찾아내고 고발하려고 엿보고 주시하는 그런 시선이었다는 겁니다.
- 그래서 그들의 눈은, 항상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눈이었고, 교만한 눈이었고,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눈이었습니다.
- 심지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까지도 죽이려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율법을 공부한 학자들이었기에 교만한 눈도 가졌을 것이며, 거기에, 인간의 죄 된 본성과도 같은 질투와 시기의 눈도 있었을 것입니다.
- 특별히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예수님을 더 따르는 것을 보고는 보이지 않는 질투와 시기의 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그들의 시선을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10-11절을 살펴보면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 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것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반사적으로 보인 반응을 기록한 것입니다.
-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일은 분명 선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토록 분노한 이유가 무엇일까?
-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율법을 토대로 만든 여러 가지 규례를 범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히 라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철두철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들은 주전 200년경에 율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소위 ‘대회당 운동’이라는 것을 일으켰습니다.
- 그리고 보다 율법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이에 대한 해석으로 ‘미쉬나’라는 것을 만들면서 수많은 계명과 율례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 그래서 안식일 규정만 해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는 율법에 39개의 세목으로 이루어진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 이를 율법의 아버지에 해당된다고 하여 ‘조상들’, 즉 ‘아보트’라고 불렀고, 뿐만 아니라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 규정에 부속 된 또 다른 세칙들을 추가로 만들어 이를 자손들에 해당하는 율법이라는 의미로 ‘톨도트’ 라고 불렀습니다.
- 그런데 이렇듯 율법에 규칙을, 그리고 규칙에 또 수많은 세칙들을 만들어 지키던 그들은 어느덧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잊어버리고 오직 규칙에만 얽매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 그리하여 그들은 일종의 규칙 중독자들이 되어 본질인 하나님의 사랑보다 형식인 그 규칙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 이토록 분노하며 치를 떨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믿는 기독교도 어느덧 이천 년이라는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신생 종교가 아니라 그 어느 종교보다도 장구한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세월을 거치면서 불행하게도 분열 된 것을 통합하기보다 오히려 제각기 서로 다른 원리와 원칙을 기준으로 각 종단과 종파의 분열을 거듭하며 적대와 반목을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각 교단과 교파 내부에서도 많은 세월을 거쳐 오면서 일종의 판박이 모습 (스테레오 타입)의 불문율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을 지키는 자는 의인이요 이에 어긋나면 죄인이라는 일종의 공식이 성도를 구속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 하지만 개신교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수많은 계명과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으로 십계명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사도 바울도 이웃 사랑 한마디에 온 율법이 완성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갈라디아서 5장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구약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어떤 규례와 규정에 매여 있는 신앙은 아닌지? 가령 안식일에 외식하고 돈을 쓰면 안 된다는 규정안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닌지? 새벽 기도회에 참석 못하는 지체를 질책하는 일은 없는지? 이것으로 인하여 신앙척도를 계산하는 모습은 없는지? 진정한 성경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신앙의 본질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지? 오늘에 성령님께서 내가 어떤 자세로 이웃을 보고 실천할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진정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란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겸손히 섬기며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삶은 사랑을 사랑합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서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였습니다.
-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분의 시선이 머문 곳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그 사람에게 이었습니다.
- 그 사람은 회당 안에서 조차 교인들에 의해 외면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시선은 바로 그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의 손을 뻗어, 그 사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랑하는 교인들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주변의 이웃들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손으로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전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먼저 깨어 말씀의 본질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수많은 전통과 율례의 껍데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사랑이라는 본질을 그 무엇보다 실천하는 자들이 되도록 하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당부하신 새 계명도 다름 아닌 바로 사랑이었음을 명심하고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나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삶의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겸손히 섬기고 선한 이웃으로 살아내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