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한자로 보는 문화] 陶冶 (질그릇 도 / 쇠 불릴 야)
|
| 魂을 기울이듯 정성을 다하는 것이 陶冶 |
|
인류의 文明(문명) 생활은 불의 사용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인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질그릇과 철기의 이용 역시 불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불은 물론 흙과 쇠를 얼마 만큼 다룰 수 있느냐가 文明의 발달 척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陶藝人(도예인)들은 명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冶金의 수준이 곧 국가의 산업경쟁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전 공정을 통하여 순간의 방심이나 추호의 오차 없이 魂(혼)을 기울이듯 정성을 다해야 명품의 陶器(도기)와 刀劍(도검)이 만들어 지는 법이다.
생명 없는 그릇이나 칼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올곧은 인격을 이뤄감에 있어서랴. 그러기에 스스로 인격을 함양하거나 스승이 제자의 재능을 啓發(계발)해 주는 것을 陶冶라 일컫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聖君(성군)의 상징적 인물인 堯(요)임금이 陶에서 살았고 舜(순)임금이 강가에서 질그릇을 구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창세기의 기록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또한 신라의 脫解(탈해)가 자신이 冶工(야공)의 후손임을 내세웠던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대사회에서는 흙과 쇠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곧 권력일 수 있었던 것이다.
陶의 金文(금문)은 계단식으로 이뤄진 가마터에서 사람이 질그릇을 손에 들고 늘어놓는 형상을 하고 있다. 즉 가마터에서 그릇을 굽는 것이 陶이다. 陶工 陶器 陶藝 등의 陶가 그러하다. 이에서 파생하여 그릇을 만들 듯 사람을 교화하는 것 역시 陶라 한다. 陶冶와 薰陶(훈도)의 陶가 그러하다. 이밖에 陶는 陶潛(도잠) 陶弘景(도홍경)에서처럼 성씨로도 사용된다. 陶에는 '근심하다' '기뻐하다'는 뜻도 있다.
冶의 冫은 얼음을,臺는 얼음 따위가 녹는 것을 나타낸다. 즉 얼음이 녹듯 쇠붙이를 녹여 무엇을 만드는 것이 冶이다. 冶工 冶金의 冶가 그러한 뜻이다. 冶는 결국 쇠를 불리고 鍛鍊(단련)하면서 좋은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쇠를 단련하듯 정성을 들여 얼굴을 치장하는 것 역시 冶라고 한다. '周易'(주역)에 나오는 冶容誨淫(야용회음:예쁘게 단장하면 음란해지기 쉽다)의 冶가 그러하며 酒色雜技(주색잡기)에 빠진 사람을 冶郞(야랑)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陶冶를 함에 있어 경계해야 할 것은 근심과 기쁨 또는 酒色雜技에 빠지는 것이다. 陶와 冶에 그런 訓이 있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
|
첫댓글 冶에 그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