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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승려와는 별개로
닝마 등 일부 종파에는
대승불교의 재가 수행자 전통을 계승한 응악빠(sngags pa, 남성)/응악마(sngags ma, 여성)라는 재가 수행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대승 불교는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동등한 수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대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은 대부분의 도상(iconography)에서 천신(天神)의 복식을 입은 재가자로 묘사되며,
대승 경전의 도입부에서도
성문 승가와 별도의 집단인 보살 승가
혹은 보살중(菩薩衆)으로 등장한다.
이들 보살 출가자 및 재가자들은
성문의 출가자들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교단을 지탱하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도의 마하싯다(mahasiddha)와
빤디따(pandita) 중에는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자도 존재하며[123]
티베트의 빠드마삼바와, 예세 초겔, 돔뙨빠, 밀라레빠 등도 불보살의 과위를 성취한 재가자 출신의 성현으로 여겨진다.
특히 불교 딴뜨리즘의 경우 요기니 딴뜨라(yogini tantra)의 등장 이후 승원 외부의 재가자 요기, 요기니들 중심으로 딴뜨릭 수행이 성행했으며, 출재가자 여부와 신분 계급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을 통해 밀교의 성취자인
싯다(siddha)가 될 수 있었다.
최경아, 《인도초기대승의 수행문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의 기원과 전개》
안성두, 《대승경전 찬술의 배경과 과정》
재가 수행자인 응악빠/응악마는 밀교 수행자로서 밀교계를 받고 그들의 사원에서 각종 의식을 집전하며 수행에 전념하므로 일반적인 세속의 재가 불자와는 구별된다.
이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질 수 있다.
응악빠에는 혈통을 통해 대(代)를 거쳐 이어지는 전승과 법맥의 전수를 통해 이어지는 전승
두 종류가 있다.
사캬의 수장인 사캬 티진(sa skya khri 'dzin)의 직위도 쾬(Khon)족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응악빠의 일종이다.
10.3. 육식에 관한 오해[편집]
티베트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농경보다는 목축이 주를 이루었다.
식생활도 보리같은 곡물과 육류, 유제품 위주이며 여기에 차(茶)를 더하여 부족한 비타민 등을 보충한다.
농작물을 구하기 힘든 티베트 민족에게 육식은 불가피한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124]
이러한 티베트 민족의 식습관을 두고
육식을 기피하는 동아시아 불교권의 불자들은
혹 육식이 불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할 때가 있다.
1. 계율의 관점에서 본 육식
동아시아 불교권의 통념과 달리 불교 율장(律藏)에서는 육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따르는 근본설일체유부 계통의 《율경근본율(Vinayasūtra) 》이나 동아시아 불교에서 따르는 법장부 계통의 《사분율(四分律)》, 남방 상좌부 불교의 《위나야 삐따까(Vinaya Piṭaka)》 등은 모두 '삼종정육(三種淨肉)'과 같은 예외 사항을 두어 육식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이 가운데 채식ㆍ재식(齋食)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율장의 별해탈계와는 별도로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인 《범망경(梵網經)》의 대승계를 통해 육식 금지를 계율로 확정지었다.[125]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범망경》의 대승계가 아닌 《입보살행론(Bodhisattvacaryāvatāra)》, 《대승집보살학론(Śikṣāsamuccaya)》의 대승계와 《유가사지론(Yogācārabhūmi-Śāstra)》 〈계품〉의 대승계를 따르는데, 여기에는 육식을 직접적으로 금하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계의 주류적 해석에 따르면, 티베트 불교도가 삼정육을 섭취하는 것은 별해탈계나 대승계(보살계)를 어기는 것이 아니다.
2. 밀교적 관점에서 본 육식
무상요가 딴뜨라의 회공(會供, gaṇacakra)에서는 청정과 비청정의 집착을 벗어난 '이원성의 초월(不二性, advaya)'을 목적으로 고기와 술을 형식적인 수준에서 미량 섭취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한 뚬모(Skt.caṇḍālī, Tib. gtum mo) 수행 같은 특수한 밀교 수행 중에도 고기와 술 섭취가 가능하다.
단, 외적인 청정을 중시하는 소작(所作) 딴뜨라, 행(行) 딴뜨라는 의궤를 행할 때 육류, 어패류, 계란, 오신채 등의 섭취를 엄격히 금한다. 또한 무상요가 딴뜨라에 속하는 칼라차크라 딴뜨라(Kālacakratantra)에서도 수행 중 육식을 금하는 항목이 있다.
3. 티베트 불교 내 채식주의
티베트 불교에도 채식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 일부 존재한다. 티베트 불교를 단지 육식이 허용되는 불교로 알고 있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티베트에는 과거부터 채식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였다. 계율과 경전 해석에 따라 육식의 허용 범위에도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밀교 회공(會供, gaṇacakra) 때 형식상의 육류 섭취는 가능하다고 보는 측(18세기 닝마의 직메 링빠, 17세기 까르마 까규의 까르마 착메 등), 병들었을 때 약(藥)으로서의 육류 섭취는 가능하다고 보는 측(19세기 겔룩-닝마의 샵카르 등), 어떠한 맥락에서도 육류 섭취는 불가하다고 보는 측(15세기 싸꺄의 올첸 꿍가 상뽀, 16세기 까르마 까규의 제8대 까르마빠 미꾜 도제 등) 등으로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수행자들 가운데에서도 의견이 분화되었다.Geoffrey Barstow, 《Food of Sinful Demons: Meat, Vegetarianism, and the Limits of Buddhism in Tibet》
현대에는 닝마의 차트랄 상게(Chatral Sangye) 린뽀체, 뻬마 왕걀(Pema Wangyal) 린뽀체나 까르마 까규의 제17대 까르마빠(Karmapa) 오걘 틴래 도제(Orgyen Trinley Dorje), 밍규르(Mingyur) 린뽀체, 그리고 겔룩의 삼동(Samdhong) 린뽀체, 라마 소빠(Lama Zopa) 린뽀체 등이 티베트 불교 내의 대표적인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도 인도 망명 이후 1964년부터 스무 달 가량 완전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급격한 식습관의 변화로 인해 심한 황달이 발생하고 담낭에 결석이 생겨[126] 담낭을 적출하는 수술 끝에 채식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육류 섭취를 제한하며, 공장식 축산업을 지양하고 불살생과 채식을 권장하는 법문을 여러 차례 설한 바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을 맞아 "생명 존중과 환경 보호를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동물 착취를 줄이고 채식을 하는 것이 보다 자비롭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가령 티벳 북부나 몽골처럼 추운 기후 때문에 대대로 가축에 생계를 의지하던 사람들까지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반면 인도는 농작물이 풍부하고 채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메세지를 전했다.
2012년 세계 자비의 날(World Compassion Day) 제정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동물복지 진흥 및 채식 장려 메세지 # #
2020년 세계 동물의 날(World Animal Day) 기념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채식 장려 메세지 # #
4. 결론
'삼종정육'과 같은 티베트 불교도의 제한적 육류 섭취는 계율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볼 수 없으며, 현재도 티베트 불교 주류는 계율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육류를 섭취한다. 다만 특정 의궤나 수행을 행하거나 중요한 불교 명절을 맞이했을 때 육식을 금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개인의 신념이나 교리 해석에 따라 채식을 선택하는 티베트 불교도들도 일부 존재한다.
10.4. 기타 오해[편집]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원대(元代) 몽골인들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상 루머 취급을 받으며 주류 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나무위키를 포함하여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몽골 초야권설 대부분은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학술적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초야권 설은 야사(野史)에 해당하는 《신여록(燼餘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였지만 근대 학자들에 의해 《신여록》은 위서(僞書)로 판명되었고, 몽골의 잔혹성을 입증하기 위해 원대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27] # 정사(正史)인 《원사(元史)》, 《신원사(新元史)》 등에는 초야권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청말민초(淸末民初)에 출간된 민속학자 저우쭤런(周作人)의《담룡집(談龍集)》 등 초야권과 관련된 민담, 풍습을 다룬 산문집과 그 영향을 받은 일부 대중역사서들로 인해 실제 초야권이 실시되었다는 루머가 퍼진 적도 있지만, 현재는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부정되고 # # 바이두 백과 초야권 항목 # 이나 중국어 위키백과 초야권 항목 # 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바이두 백과 초야권 항목에는 百科TA说로[128] 원대 초야권의 허구를 상세히 입증하는 글이 링크되어 있다.《“蒙元初夜权”,一个历史谣言的原型、变形与事实。 》
원대 초야권이 실시되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현대 중국의 언론인 중 신리지엔(信力建)이란 인물이 있으나 신리지엔은 중산대학(中山大学) 중문과를 졸업하였을 뿐 역사학 관련 학위가 없는 비전문가이며# 그의 주장들 역시 앞서 언급한 《신여록(燼餘錄)》같은 위서나 《담룡집(談龍集)》 같은 민담에 근거하여 신뢰도가 매우 낮다.
초야권설이 유포된 배경에는 원(元)과 원을 계승하여 몽골의 대칸을 자처한 청(淸) 등 전대(前代) 이민족 왕조에 대한 한족 지식인들의 반감이 존재한다. 이들의 역사관은 이른바 "원청비중국론(元清非中國論)" 혹은 "만몽비중국론(滿蒙非中國論)"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이란 이데올로기를 따라 원, 청도 중국 왕조 중 하나로 인식하는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이 강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굳이 근거 없는 초야권 설로 원나라를 비하하고 한족 스스로를 치욕스럽게 만들 이유도 사라졌다.
또한 인터넷상에는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베트 불교권 지역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승려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syphilis) 감염의 주요 경로가 되었다는 출처 불분명한 주장이 있다. 근현대 몽골에서 매독이 창궐했던 것은 사실이나 매독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분명치 않다. 청이 몽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독, 임질 등 성병에 감염된 죄수를 일부러 몽골에 유배보냈다는 설, 마을의 우물에 매독균을 풀었다는 설, 초야권을 행사하는 승려들을 통해 매독을 전파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어 왔으나 모두 불확실한 추측성 루머에 해당한다.
불교학자 바차이칸 노로브(Batsaikhan Norov)에 따르면 몽골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매독이 전파된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몽골의 상당한 비혼(非婚)인구 비중이다. 비록 청 왕조가 불교 전파를 지원했지만 몽골의 각 구역 당 단지 40명의 남자만 출가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제한은 점차 효력을 잃고 총 승려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1918년까지 승려 수는 105,577명으로 칼카(Khalka) 몽골 남성 중 거의 절반(44.5%)에 이르렀다. 이 시기까지 내몽골에는 1600여 개에 달하는 사원과 10만 여명의 승려가 존재했다. 비구계를 받은 승려는 결혼을 할 수 없기에 상당한 수의 몽골 여성 또한 비혼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가볍고 혼외(婚外)적인 성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낮은 개인 위생 또한 감염 전파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전염병에 대한 지식과 전염병 예방을 위한 의학적 치료 및 노력은 부족했다. 성병(性病)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몽골의 문화도 감염된 환자가 의학적 치료 받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티베트 불교 학승(學僧)들은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몽골에서 대유행했던 천연두, 매독같은 감염병의 예방에 기여하였다. 이들은 사부의전(四部醫典, gso dpyad rgyud bzhi)에 기초한 티베트 불교 의학과 티베트, 몽골, 중국의 전통의학이 결합된 자신들의 의학지식을 활용하여, 청의 군인과 상인들을 통해 유입된 감염병들의 예방법과 치료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질병 퇴치를 위한 종교적 의식을 행할 뿐 아니라 홍분(紅粉), 경분(輕粉), 주사(朱砂) 등 당시 매독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던 수은이 포함된 약재들을 치료에 활용하였다(이들은 신장 질환같은 수은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감염자 및 감염 매개물을 격리하는 한편 위생 증진을 위한 생활수칙과 마늘, 유황, 사향 등의 약재를 활용한 소독법 등을 연구하였다.
Batsaikhan Norov (2019), 《Mongolian Buddhist Scholars’ Works on Infectious Diseases (Late 17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1] 1. 용수(150~250 / 龍樹 / དཔའ་མགོན་ཀླུ་སྒུབ་ / Nagarjuna)
2. 성천(170~270 / 聖天, 提婆, 聖提婆 / འཕགས་པ་ལྷ་ / Aryadeva)
3. 덕광(394-468 / 德光, 功徳賢 / ཡོན་ཏན་འོད་ / Gunaprabha)
4. 진나(480~540 / 陣那, 域龍, 大域龍 / ཕྱོགས་ཀྱི་གླང་པོ་ / Dinnaga)
5. 청변(490, 500~570 / 淸弁 / ལེགས་ལྡན་འབྱེད་ / Bhavaviveka)
6. 불호(470-540 / 佛護, / སངས་རྒྱས་སྐྱངས་ / Buddhapalita)
7. 월칭(600~650 / 月稱 / ཟླ་བ་གྲགས་ / Chandrakirti)
8. 적천(685~763 / 寂天 / རྒྱལ་སྲས་ཞི་བ་ལྷ་ / Shantideva)
9. 무착(395~470 / 無着 / ཐོགས་མེད་ / Asaga)
10. 세친(400-480 / 世親 / དབྱིག་གཉེན་ / Vasubandhu)
11. 석가광(8세기 초 / 釋迦光 / ཤཱ་ཀྱ་འོད་ / Shakyaprabha)
12. 법칭(6-7세기 / 法稱 / ཆོས་གྲགས་ / Dharmakirti)
13. 사자현(8세기 중엽 / 師子賢 / རྒྱལ་སྲས་སེང་གེ་བཟང་པོ་ / Haribhadra)
14. 성해탈군(6세기경? / འཕགས་པ་རྣམ་གྲེལ་སྡེ་ / Araya Vimuktisena)
15. 적호(725~790, 728~788/ 寂護 / ཁན་ཆེན་ཞི་བ་འཚོ་ / Shantarakshita)
16. 연화계(740~795 / 蓮華戒 / པད་མའི་ངང་ཚུལ་ / Kamalashila)
17. 아티샤(982-1054 / 燃燈吉祥智 / ཇོ་བོ་རྗེ་ / Atisha Dipankara Shrijnana)
[2] 가로로 긴 낱장 앞뒤에 경문이 기록된 패엽경(貝葉經) 형태를 취한다.
[3] 각 종파 별로 열리는 대(大)기원 법회. 사부대중이 모여 수 일간 기도, 공양, 토론, 명상 등을 하며 세계 평화와 불법(佛法)의 지속 및 흥왕을 기원한다. #
[4]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 테라와다 불교(Theravada buddhism)에 이어 불교 종파 중 규모 3위에 해당한다.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5] 《입보살행론》과 《중론》의 게송은 각각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리심과 공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오온(五蘊)은 푸드갈라(pudgala, 個我)를 구성하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란 다섯 가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가리킨다. 달라이 라마는 아침마다 《입보살행론》의 게송을 사유하며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와 보리심을 일으키고, 《중론》 게송의 '여래'를 '나'로 바꾸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늘 사유한다고 한다.
[6] 티베트인은 티베트 자치구 외에 병합 전 티베트 영토였던 쓰촨성, 윈난성, 칭하이성, 간쑤성 등지에도 많이 살고 있고, 혹은 티베트인이 아닌 중국의 다른 민족 중에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
[7] 용수보살의 탄생을 예언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성(佛性)에 관한 10대 경전 중 하나이다.
[8] 대승 불교 전통에서는 석가모니가 반열반 이후에도 용수보살을 비롯한 미래의 선지식들로 화현하여 계속 중생 제도를 이어갈 것임을 예언한 구절이라고 해석한다.
[9] 이와 유사하게 한역 불전에서도 불교를 내도(內道)/내교(內敎), 불교 외의 종교, 신앙, 사상은 외도(外道)/외교(外敎)라고 지칭한다.
[10] 기존에 마하연은 북종선 계열 선승으로 알려졌으나 남종선 계열 혹은 양자 모두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수경(성제), 《티벳 불교의 쌈예 논쟁에 대한 재검토》
[11] 화상(和尙)이란 승려를 높여 부르는 한자어이다.
[12] 윗 열 : 티베트 불교의 장수삼존(長壽三尊)인 백색 따라(Tara), 무량수불(Amitayus), 불정존승모(Namgyalma). 아랫 열 : (左) 아티샤의 수제자인 돔뙨빠 걀웨 중네('brom ston pa rgyal ba'i 'byung gnas), 호법존 비사문천(Vaiśravaṇa), 돔뙨빠의 수제자 뽀또와 린첸 쌀(po to ba rin chen gsal)
[13] 그 밖에 주로 신흥 상인계급과 왕족의 지지를 받아 민중계급에는 불교가 널리 퍼지지 못한 점, 불교의 힌두이즘화(Hinduism 化) 등 여러 가지 원인설(說)이 제기되었다.
[14] 모든 번뇌를 자르는 반야이검(般若利劍)과 모든 경전 중에 가장 중요하다는 《반야경》을 지물(持物)로 갖고 있다. 지혜의 화염에 휩싸인 반야이검은 각각 무지(無知)의 어둠을 밝히는 불, 무지의 뿌리를 끊는 검으로 해석한다.
[15]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재세시부터 프라크리트로 설해진 소승 전승 뿐 아니라 산스크리트로 설해진 대승 전승 역시 존재하였다. 그러나 소승 전승과 달리 대승 전승은 석가모니 사후 극소수 수행자들에게만 전해지며 단절의 위기를 겪었고, 이후 나가르주나와 아상가 등에 의해 다시 그 전승이 회복되었다.'라는 불교사적 기술을 통해 대승의 불설(佛說)로서의 정통성을 옹호하였다.
[16] ཉི་ཚེ་བའི་ཐེག་པ་(니체와 텍빠): 일부승. 단편적인 부분의 승인 소승(小乘) མཐའ་དག་པའི་ཐེག་པ་(타닥빼 텍빠) = ཐེག་པ་ཐམས་ཅད་པ་(텍빠 탐쩨빠): 전체승. 대승(大乘)
[17]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18] 행, 소작, 요가, 무상요가 딴뜨라
[19]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체 번뇌를 제거하고 일체 가르침을 배워 최상의 불도(佛道)를 이루겠다는 목적의식은 비단 티베트 불교만의 이상이 아니라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란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발원문(發願文)인 《사홍서원(四弘誓願)》에서도 알 수 있듯, 대승 불교 공통의 지향이기도 하다.
[20] 《람림》은 가르침을 청하고 듣는 법부터 공성에 대한 심오한 견해까지 거의 모든 불교 교리의 핵심을 빠짐없이 다루기 때문에, 처음 불교에 귀의한 자부터 소승 수행자, 대승 수행자까지 모든 대상을 포괄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로종》은 체카와 예셰 도제(chad kha pa ye shes rdo rje) 이전까지 인도와 티베트에서 뛰어난 보살 수행자에게 비밀리에 전수되던 가르침이었으며, 《람림》기준으로는 상사도(上士道)에 해당한다.
[21] 김성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람림》을 기독교의 조직신학/교의신학에 비견할만한 체계적 불교학의 전형(典型)으로 평가한 바 있다.김성철, 《체계불학:신념체계로서의 불교학》
[22] 《람림》과 《로종》을 심리학, 신경과학 등 현대 학문과 연계하여 재해석한 현대 서양의 세속적/비종교적 명상법으로 에모리대에서 개발한 Cognitively-Based Compassion Training(CBCT)와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 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CCT) 등이 있다. 이 중 CCT는 한국의 경우 공감과자비연구소에서 CCT 공인 자격을 갖춘 명상지도자에 의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관련 서적으로는 CCT의 개발자인 툽텐 진파가 지은 툽텐 진파, 《두려움 없는 마음》(임혜정 譯)이 있다.
[23]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의 논서인 《진실강요(Tattvasaṃgraha)》에서 인용한 경전 어구이다. 현존하는 경전(經, sūtra)에서는 1차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Śrīmahābālatantrarāja》라는 밀교 속전(續, tantra)에서는 거의 동일한 어구를 찾을 수 있다. 초기 경전 중《깔라마 경(A3:65)》 역시 어구나 표현은 다르지만 유사한 취지로 설해진 경전으로 볼 수 있다.
[24] 전통적인 티베트 불교 역사서에서는 아리야 위묵티세나를 바수반두의 직계 제자로 서술하고 있으나 현대 불교학계에서는 실제 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본다.
[25] 바수반두, 아상가, 디그나가는 유식학파인데 비해《입중론》등에서 공성(空性)에 대한 유식의 견해를 비판한 짠드라끼르띠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에 해당한다.
[26] 요가(Yoga)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수행을 통칭하는 말로 궁극적인 요가의 목적은 마음, 의식의 변화에 있다. 요가는 비단 요가학파 뿐만 아니라 인도 종교와 사상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용어이다.
[27] 제임스 도티(James Doty), 폴 에크만(Paul Ekman), 에밀리아나 사이먼-토마스(Emiliana Simon-Thomas), 아서 자욘스(Arthur Zajonc) 등
[28] 동영상 설명에는 개최연도가 2016년으로 기재되어있지만, 정확한 개최 일시는 2013년 1월 17-22일이다.
[29] 티베트 불교의 인식론인《심류학(心類學, blo rig)》에 의하면 '의식의 종류 중 분별식(분별인식)으로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에 현현하는 이미지(image)'를 공상(共相, spyi'i mtshan nyid)이라고 정의한다.
공상의 종류에는 1) 의공상(義共相, don spyi), 2) 성공상(聲共相, sgra spyi), 3) 의공상과 성공상의 혼합체 3가지가 있다. 의공상은 대상의 의미(개념, 기의)를 알고 마음으로 떠올린 대상의 이미지이며, 성공상은 대상을 지칭하는 소리(음운, 기표)를 알게 된 후 마음으로 떠올린 대상의 이미지이다.
예를 들어 '염주'라는 대상을 분별식으로 인식할 때, '염주'라는 대상의 의미를 알고 마음으로 '염주'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의공상이다. 그리고 '염주'라는 대상의 의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 '염주'를 가리키는 소리만을 알려주었을 때 마음에 떠올린 '염주'의 이미지는 성공상이다.
[30] 지혜법신(智慧法身)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나, '인지(認知, cognition)'의 의미를 가진 '알 지(知)'자를 써서 '지법신(知法身)'으로 번역하는 것이 산스크리트어 'jnana'나 티베트어 'ye shes'의 의미에 더욱 부합한다. 영역(英譯)에서도 'wisdom'보다는 'awareness', 'gnosis', 'knowing' 등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31] 객진(客塵, གློ་བུར།)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미세하고 수가 많으므로 진(塵)이라 함.
[32] "논구한다(vyutpadyate)"란 그릇된 이해(vipratipatti)를 물리침으로써 이해(pratipadyate)하는 것이다.《니야야빈두, 니야야빈두띠까》
[33]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주요 언어로는 비교적 다수의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출간되었다. 예를 들어《뒤다(섭류학攝類學)》, 《로릭(심류학心類學)》, 《딱릭(인류학因類學)》등의 강원 교재는 중국어로 완역된 바 있고 관련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다르마끼르띠의《인명칠론》에 관한 케둡제의 주석서 중 핵심 부분이 《Freedom through Correct Knowing》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영역자인 게셰 텐진 남닥(Geshe Tenzin Namdak)의 관련 강의도 Wisdom Publications 홈페이지에서 수강 가능하다.
[34] 동아시아 불교의 경우 현장에 의해 디그나가의 《인명정리문론》, 상카라스와민의 《인명입정리론》이 한역(漢譯)되었고 이에 관한 주석서인 규기의 《인명대소》, 원효의 《인명입정리론기》, 《판비량론》, 문궤의 《인명입정리론소》, 젠주의 《인명론소등명초》 등이 저술되었다. 관련된 국내 서적은 다음과 같다.
*《인명정리문론》: 《한글대장경 250 논집부5 입세아비담론 외 (立世阿毘曇論 外)》
*《인명입정리론》: 《인도 불교철학의 원전적 연구》, 《니야야빈두 외》, 《인명입정리론의 분석》, 《인명입정리론 산스끄리뜨문 번역》( 《인명입정리론》에 관한 김성철 동국대 명예교수의 강의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일반인도 청강 가능하다. 김성철 동국대 명예교수 불교인식논리학 강의)
*《판비량론》: 《중변분별론소 제3권 외》, 《원효의 판비량론(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 《원효 판비량론의 신역주》, 《원효의 논리사상과 판비량론》
[35] 상부: (左) 붓다 (右) 금강살타보살.
[36] 자성신(自性身), 법신, 보신, 화신
[37] 지금강불의 짙은 푸른색은 허공같이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의미하고, 금강저와 금강령의 교차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의미한다. 84명의 마하싯다는 고대 인도의 대표적인 밀교 대성취자들이다.
[38] 대승 불교의 불신론(佛身論)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교화 대상인 중생의 근기를 따라 화현한 화신불(化身佛)이다.
[39] 업을 짓고 쌓는 힘이 왕성하고 쉽게 성숙해서, 생의 전반에 쌓은 업이 생의 후반에 익는 땅을 말한다.
[40] 문수보살의 성불 후 불호(佛號)
[41] 석가모니불 외에도 현겁의 부처 중 몇 분이 추가로 금강승을 가르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가령 겔룩에서는 현겁의 11번째 부처로 성불할 겔룩의 창시자 쫑카파와 현겁의 마지막 부처인 누지불(樓至佛) 또한 금강승을 가르칠 것으로 예상한다. 쫑카파의 경우 (쫑카파 자신이 부처로서 교화하는 시기가 아닌) 석가모니불의 교화 시기에 이미 금강승을 크게 선양하였으므로, 쫑카파 본인이 부처로서 교화할 시기에 금강승을 가르칠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누지불은 현겁의 나머지 999명의 부처가 행한 불사(佛事)를 모두 실행할 부처이므로 누지불 또한 자연히 석가모니불처럼 금강승을 가르치게 된다.
[42] 대치(pratipaksa, 對治)는 선법(善法)으로 번뇌를 끊는 것을 가리키며 대치법은 대치하는 방법 또는 수단을 가리킨다.
[43] 부처와 달리 중생에게는 승의제와 세속제를 각각 별개의 현현으로 인식하는 착란이 있음을 의미한다.
[44] 원심이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직접 지각하면 그 때의 원심이 승의광명이 된다.
[45] 현교에서는 지혜와 방편을 번갈아 수습하며 둘이 상호 영향을 주는 쌍수(雙修)만을 언급하지만 밀교에서는 지혜와 방편을 동시에 수습하는 합일(合一)이 가능하다.
[46] '실현'과 '증득(證得)'의 줄임말로, 실제로 드러내보여 증명하고 깨닫는 것을 일컫는다.
[47] 소작, 행, 요가 탄트라.
[48] 부수적인 원인.
[49] 주된 원인.
[50] 《람림》의 삼사도를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보리도차제 참조.
[51]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을 수준의 기초적인 밀교 교리를 바탕으로 밀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지어진 글이다.
[52] 밀교에서 등장하는 미세한 소지장이나 그것의 대치법인 미세의식 등의 개념은 단순히 추가된 개념 정도가 아니라 만약 생략될 경우 논리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현교 경론에서는 간략히 언급만 되거나 생략되어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밀교 경론들을 참고해야 하며, 여기서는 밀교의 개념들이 '옥상옥(屋上屋)'이 아니라 수행 체계의 정합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개념들이라는 점만을 언급한다.
[53] 일부 학자들은 부처의 일체지(一切智)나 색신을 부처에 대한 신격화의 일환이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경론에서는 (부처 자신을 위해) 더 위대해지거나 숭배받기 위함이 아닌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수단이라고 그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54] 보리(菩提)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선근공덕 (善根功德)
[55] 예를 들어 진언을 하루에 몇 번 외우거나 사다나(sadhana, 본존 성취 의궤)를 하루에 몇 번 수행해야 된다는 식으로 관정을 준 아사리가 제자에게 수행 의무를 줄 때가 있다. 만일 이때 수행을 하기로 발원하고 스승에게 약속했다면 이를 꼭 준수해야 한다.
[56] 불교 교단의 스승의 총칭
[57] 만다라(Skt. mandala, Tib. dkyil ‘khor)는 금강승에서 본존이 거처하는 궁전과 정토 등 성스러운 환경을 가리키며 본존의 성불(成佛)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만다라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본존이 갖고 있는 공덕, 지혜 등을 의미하는 심오한 상징들이다. 만다라는 본래 3차원적 공간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탕카나 모래 등으로 조성한 만다라는 그것을 2차원적 평면에 구현한 것이다.
[58] 본 영상은 카비타 발라(Kavita Bala) 코넬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와 당시 재학생이던 엘리자베스 포폴로(Elizabeth Popolo)가 제작하고, 남걀사원 불교학연구소(Namgyal Monastery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 구성원들이 감수했다. 남걀사원 불교학연구소는 달라이 라마의 주석(主席) 사원으로 칼라차크라 의식을 전문적으로 주관하는 남걀(Namgyal) 사원의 북미(北美) 분원이다.
[59] 통상적으로 야만따까 딴뜨라는 부속(父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겔룩에서는 부속과 모속(母續)의 핵심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야만따까 딴뜨라의 특징 중 하나로 본다.
[60] 헤바즈라 딴뜨라를 중시하는 싸꺄에서는 헤바즈라 딴뜨라를 부속과 모속의 핵심을 모두 갖춘 불이 딴뜨라로 본다.
[61] 남방 상좌부 전승에도 호주(護呪)에 해당하는 빠릿따(paritta) 게송이나 소위 "상좌부 밀교(Esoteric/Tantric Theravada)"로 일컬어지는 보란 깜맛타나(Borān kammaṭṭhāna) 전승 등이 존재하지만 4부 딴뜨라 분류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62]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관점에 따르면 반야바라밀은 성문ㆍ연각ㆍ보살의 공통된 원인으로 차이가 없으며, 대신 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삼승(三乘)으로 구분된다. 성문ㆍ연각은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출리심을 바탕으로 공성을 수습(修習)하며, 보살은 일체중생의 성불을 추구하는 보리심을 바탕으로 공성을 수습한다. 이 때 수습의 대상인 공성은 삼승에 따른 차이가 없으며 모두 동일한 공성이다.
귀류논증 중관학파에서는 소승의 설일체유부, 경량부나 대승의 유식학파, 자립논증 중관학파같은 하위 학파의 견해를 따를 경우, 공성에 대한 견해가 불완전하여(하위 학파에서는 부정해야 할 대상인 일체법의 자성(自性)을 일부만 부정하기 때문이다) 아집(我執)을 남김없이 제거할 수 없기에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 가운데 어떤 승을 수행하더라도 최대 가행위(加行位)까지가 성취할 수 있는 과위(果位)의 한계라고 본다. 즉,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 견도위(見道位) 이상의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을 막론하고 모두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견해를 따라야 한다.
[63]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삼업(三業)을 정화하는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식 발음으로는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공성 진언이 업을 정화하는 진언으로 개변된 이유는, 한역(漢譯) 밀교 의궤들에서 나타나듯 공성 진언이 참회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인도-티베트 불교에서도 공성의 인식을 통해 참회, 정화 등을 성취한다. 참회의 직접적 조건이 사대치력(四對治力)이라면, 참회의 보조적 조건은 참회의 세 가지 요소인 삼륜(三輪)-참회의 주체, 참회의 대상, 참회해야 할 업과 습기-이 공(空)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삼륜이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라 그 자성(自性)이 공하므로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진정으로 공성을 인식하게 되면 인과에 대한 확신 역시 강해지므로, 자신이 지은 악업이 반드시 과보를 맺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치는 진정한 참회가 가능해진다. 공성을 인식하였다고 인과를 폐기하는 것은 공성을 잘못 인식하여 단변(斷邊)에 치우친 것이다. 공성과 인과ㆍ연기는 상호의존관계로서 인과ㆍ연기를 토대로 공성이 성립하므로, 공성을 제대로 인식했다면 동시에 공성의 토대인 인과에 대한 변함 없는 확신이 생겨야 한다.
[64] 앞줄 좌(左)부터 닝마의 뒤좀(Dudjom) 린뽀체, 까르마 까규의 제16대 까르마빠(Karmapa), 사캬의 제41대 사캬 티진(Sakya Trizin), 겔룩의 제14대 달라이 라마(Dalai lama), 제6대 링(Ling) 린뽀체, 제3대 티장(Trizang) 린뽀체, 제19대 바꿀라(Bakula) 린뽀체. 달라이 라마는 겔룩 소속이지만 종파를 초월하여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 전체를 대표하고 수호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 밖에 사진 속 인물들 모두 티베트 불교 각 종파를 대표하는 주요 지도자이자 저명한 고승들이다.
맨 앞 줄의 겔룩 인사 중 링 린포체, 티장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들이다. 링 린포체는 1965년 겔룩의 종정인 제97대 '간덴 티빠'로 임명된다. 바꿀라 린포체 역시 겔룩에 속한 승려로 라다크 지역 불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이자 몽골 주재 인도 대사를 역임한 주요 인사이다.
닝마는 전통적으로 종단의 대표 내지 종정이 따로 없는 6개 본산(本山)의 연합체였다. 그러나 인도 망명 이후 각 종파의 대표를 선임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뒤좀 린포체가 처음으로 닝마 전체를 대표하는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2018년 당시 닝마빠 종정이었던 까톡 게체 린포체가 입적하고, 그의 뒤를 이을 후보 2명이 모두 "닝마빠 전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종정 추대를 거절하면서 다시 닝마의 종정 자리는 공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65] 사캬의 실질적인 성립은 꾄촉 겔뽀의 손자인 사첸 꿍가 닝뽀부터 시작된다. 본 탕카는 지금강불 아래에 꿍가 닝뽀를 위시한 다섯 명의 사캬 창시자가 좌정(座定)한 모습을 묘사하였다. 1. (가운데) 사첸 꿍가 닝뽀(Sachen Kunga Nyingpo) (1092–1158) 2. (왼쪽 위) 소남 체모(Sonam Tsemo) (1142–1182) 3. (오른쪽 위) 제쭌 닥빠 갤첸(Jetsun Dragpa Gyaltsen) (1147–1216) 4. (왼쪽 아래) 사캬 빤디따(Sakya Pandita) (1182–1251) 5. (오른쪽 아래) 도괸 최걀 팍빠(Drogön Chögyal Phagpa) (1235–1280)
[66] 1열: 석가모니불. 2열: (左) 쫑카빠의 두 수제자인 제2대 간덴 티빠(dga’ ldan khri pa) 겔찹 제(rgyal tshab rje), 초대 판첸 라마(pan chen bla ma) 케둡 제(mkhas grub dge). 중앙: 쫑카빠(Tshong kha pa) 3열: (左) 문수보살, 호법존 깔라루빠, 백색 따라.
[67] 좌(左)로부터 1열: 틸로빠(Tilopa), 지금강불(Vajradhara). 나로빠(Naropa). 2열: 성취자(siddha) 마이뜨리빠(Maitripa), 샹빠 까규(Shangpa Kagyu)의 창시자 케둡 큥뽀 낼죨(Kedrub Kyungpo Naljor). 중앙: 마르빠(Marpa). 3열: 밀라레빠(Milarepa), 감뽀빠(Gampopa). 4열: 까르마 까규(Karma Kagyu)의 창시자 두숨 켄빠(Dusum Kyenpa), 팍두 까규(Pagdru Kagyu)의 창시자 팍모 둡빠(Pagmo drupa).
[68] 로짜와(lotsawa)는 '역경사(譯經師)'라는 뜻의 티벳어이다.
[69] 좌(左)로 부터 1열: 보신불 금강살타(Vajrasattva), 법신불 보현왕여래(Samantabhadra, 8대보살 중 하나인 보현보살과 명칭은 같지만 여기서는 족첸 전승의 법신불에 해당하는 본초불(本初佛, Adi-Buddha)를 가리킨다), 화신불 가랍 도제(Garab dorje). 2열: 법신 아미타불, 보신 관세음보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빠드마삼바와는 법ㆍ보ㆍ화 삼신(三身)의 관계로 알려져 있다). 3열: 예세 초겔(Yeshe tsogyal), 빠드마삼바와의 적정존(寂靜尊) 구루 촉게 도제(Guru Tsokyé Dorje), 만다라와(Mandarava). 4열: 빠드마삼바와의 분노존 구루 닥뽀(Guru Dragpo), 여성격 호법존 싱하무카(Simhamukha) 5열: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 티송 데첸(Trisong detsen)
[70] 《티베트 사자의 서》로 알려진 《바르도 퇴돌 첸모》도 까마가 아닌 뗄마 전승에 속한다. '바르도 퇴돌 첸모'란 '중음(中陰, 죽음과 환생 사이의 시간)에서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해탈'이란 뜻이다.
[71] 정치적 이유가 주(主)이고 사상적 문제는 부수적이다. 17세기 중반 제5대 달라이 라마와 그를 지원하는 몽골 세력이 중앙 티베트인 짱(Tsang) 지역 지배권을 두고 조낭과 충돌하면서 조낭은 겔룩 세력권인 짱 지역에서 축출된다.
[72] '대중관'이란 표현은 타공론자(gzhan stong pa) 뿐만 아니라 자공론자(rang stong pa)들도 "위대한 중관(혹은 중도)"라는 의미로 중관 사상(특히 귀류논증 중관)을 예찬할 때 종종 사용하므로 티베트 불교에서 반드시 대중관이 타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도르지 왕축(Dorji Wangchuk)의 설명처럼, "대중관"은 겔룩(dGe-lugs)의 학자인 케둡제 (mKhas-grub-rje, 1385–1438)가 주장한 “자공(自空)이라는 대중관(大中道)”(rang stong dbu ma chen po)이나 될뽀빠(Dol-po-pa, 1292–1361)가 주장한 “타공(他空)이라는 대중관(大中道)”(gzhan stong dbu ma chen po)이라는 견지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불성·여래장사상의 형성 수용과 변용》
[73] 될뽀빠는 《보성론》 등 《미륵오론》과 《승만경》등 여래장 계열 경전 외에도 나가르주나의 《중론》, 《찬법계송》을 자신들의 논거로 삼았다. 그들은 《찬법계송》의 "화완포(火浣布:타지 않은 직물)가 불 속에 들어가면 더럽혀지지 않고 때를 제거하면 베는 본래같이 더욱 빛나는" 비유처럼 '지혜의 불이 객진번뇌를 태워도 광명심 혹은 법계는 불변하다'는 해석으로 타공설을 뒷받침하였다.
[74] '타공'은 될뽀파 등에 의해 새로이 창안된 용어이며 이전 인도, 티베트 문헌에서는 그 용례(用例)를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공이란 용어는 겔룩의 종파주의에 대항하여 서로 다른 종파들 간의 사상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태그라인(tagline)처럼 여러 종파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대체적으로 타공은 밀교에서 주로 논하는 미세한 수준의 의식 상태를 가리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타공의 세부적인 의미는 이미 서술하였듯이 종파, 전승, 인물마다 차이가 있다.
[75] 물과 우유는 서로 화합하되 일치하지 않는다. 《섭대승론》에서도 청정한 법계(法界)의 흐름인 바른 문훈습(聞熏習)과 근본식인 아뢰야식이 서로 공존하는 양상을 물과 우유의 화합에 비유하였다. 인도 설화에 등장하는 거위 '함사'(haṃsa)가 물과 함께 섞인 우유 중 우유만을 골라마시는 것처럼, 《섭대승론》에서는 근본식은 멸하더라도 근본식이 아닌 문훈습과 같은 청정한 종자는 멸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76] 물론 겔룩에서는 쫑카빠의 견해를 귀류논증 중관으로 본다. 그러나 미팜은 쫑카빠가 대상 그 자체가 아닌 대상이 진실로 성립하는 것만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자립논증 중관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77] 조낭빠 깔라차끄라 딴뜨라, 닝마빠 족첸의 체험적 공성과 시간의 개념을 비교하고 이를 들뢰즈의 시선에서 바라본 티베트학자 조석효의 논문도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조낭의 될뽀파가 깔라짜끄라와 여래장을 결합하여 '항상한 실재'를 상정한 반면 닝마의 롱첸빠는 족첸과 귀류논증 중관을 결합하여 '궁극적인 것의 비결정성(불확정성)'을 주장한 점, 조낭은 동시적 수행을 부정하고 점진적 수행만을 인정한 반면 닝마는 동시적 수행을 강조하는 기조 속에 점진적 수행이 병존하여 둘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 등이 두 교파의 주요한 차이점이다. 조석효, 《공성과 아이온의 시간: 티벳 불교 수행 해석의 한 가능성》
[78] 족첸의 유래에 관해서는 뵌 기원설, 닝마 기원설, 뵌-닝마 공통기원설, 외부 기원설 등 다양한 이설이 존재한다. 족첸이 뵌교나 중국 선종에서 유래하였다는 타 종파의 비판에 대해 닝마에서는 그들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정하며 족첸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강변하였다.
[79] 자공론자들은 스스로를 '자공론자'라고 칭하지 않는다. 타공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유(實有)를 인정하지 않는 중관학파(dbu ma pa)와 그 외 실유를 인정하는 학파들이 존재할 뿐 중관학파 내에서 자공과 타공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타공은 왜곡된 중관 내지 중관 외적(外的)인 견해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80] 《바세》의 필사본 종류에 따라 '김 하샹' 대신 '니마 하샹'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고 서사 구조에도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81] 중국 삼계교(三階敎)에 의한 찬술설, 혹은 삼계교를 믿는 신라인 승려에 의한 찬술설도 제기되었다.
[82] 썸네일에 나온 탕카 속 원(元)의 제후 복장을 한 인물이 충선왕일 것으로 추정된다.
[83] 유배오기 전 충선왕은 고려의 신하 권한공(權漢功)과 함께 대도(大都)에 남아있던 조현의 거처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권한공은 《영국공제분매(瀛國公第盆梅》라는 시를 남겼다. '영국공(瀛國公)'은 조현이 원에 투항한 후 받은 작위이다.
[84] 조현은 티베트어역 경전과 한역 경전을 상호 번역ㆍ교정ㆍ비교하는 작업으로 명망을 얻었다. 티베트 기록에는 '하쭌(Lha btsun)', 혹은 '하쭌 최끼 린첸(Lha btsun chos kyi rin chen)'이라는 법명으로 등장한다. '하쭌'은 티베트에서 출가한 왕족을 일컫는 존칭이다.
[85] 조현이 싸꺄 사원의 총지(總持), 즉 티베트어로 '찌진(spyi ’dzin)'의 직위를 맡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며 조현이 싸꺄 사원 내에서 거주하던 숙소인 '짚으로 만든 은둔 수행처(Tib. spyil po/spyil bu, Skt. tṛṇakuṭi)'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조현이 싸꺄 사원의 사원장이었다는 티베트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86] 출처: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당대 원나라의 한자식 인명 표기를 고려하면, 여기서의 자(刺)는 자형이 비슷한 랄(剌)의 오기로 추정된다. 剌자는 '라(la)'를 음차하기 위해 자주 쓰인 글자였다.
[87] 밀교 종단인 대한불교 진각종의 주관 하에 불교학자 최로덴이 《마니 깐붐》을 한국어로 완역한 바 있다.
[88] 명(明)의 황제들은 까규, 사캬, 겔룩의 지도자들에게 각각 대보법왕(大寶法王), 대승법왕(大乘法王), 대자법왕(大慈法王) 등의 법왕 칭호를 하사하며 국사(國師)로 대우하였다. 이 중 까르마 까규의 수장 까르마빠에게 수여된 대보법왕의 서열이 가장 높았다. 명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존숭에는 원(元), 청(淸)이 그러했듯 종교적 이유 뿐 아니라 이민족인 티베트를 통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락제는 티베트 불교 내 다른 종파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까르마빠가 속한 까르마 까규를 선양한다는 명목으로 티베트에 군대를 파견하고자 했으나, 제5대 까르마빠는 다양한 종파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영락제의 제안을 거절한다. 덕분에 명대(明代) 300년 가량 티베트는 중원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원대(元代) 싸꺄의 지도자였던 도괸 최걀 팍빠 역시 서로 다른 근기와 성향을 가진 중생들을 위해 다양한 종파들이 필요함을 쿠빌라이 칸에게 역설한 바 있다).
[89] 명대(明代) 이전에는 원(元) 세조(世祖) 쿠빌라이 칸이 사꺄의 지도자 도괸 최걀 팍빠(ʼgro mgon chos rgyal ʼphags pa)에게 '대보법왕'(大寶法王)이란 칭호를 봉한 바 있다. 이후 '대보법왕'은 티베트 불교 지도자를 지칭하는 중원의 칭호 중 가장 존숭받는 칭호가 되었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영락제가 원 세조의 선례를 따라 제5대 까르마빠 데신 셱빠에게 대보법왕 칭호를 수여했다. 청대(淸代)에는 겔룩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빤첸 라마도 세간에서 '대보법왕'이란 칭호로 일컬어졌다. 각 종파의 지도자가 '대보법왕'으로 일컬어진 시기(사꺄-까르마 까규-겔룩 순)와 해당 종파가 종교적, 세속적 권력의 우위를 점했던 시기가 대략 일치한다. 현대 중화권에서 '대보법왕'은 주로 까르마 까규의 지도자인 까르마빠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 제5대 까르마빠는 1403년 영락제의 초청으로 티베트에서 출발하여 1407년에 이르러서야 난징에 도착하는데 그 때 그의 나이 만 23세였다. 안노생은 1406년 명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1407년 조선으로 돌아온다.
[91] 영락제의 찬불시 전문(全文)이 태종실록 동일 기사에 수록되었다.#
[92] 실록 원문의 '마정수기언'(摩頂授記焉)을 '이마를 땅에 대고 기(記)를 받았다'라고 옮긴 국사편찬위 조선왕조실록 DB의 번역은 명백한 오역으로 사료된다. '마정수기'(摩頂授記)란 부처가 제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미래세에 성불(成佛)할 것을 예언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고유 명사를 일반 단어들의 조합처럼 풀어 해석하는 오류는 실록 번역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의 문제점 문단 참조.
[93] 실제 까르마빠가 사신들에게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마정수기는 부처가 보살의 정수리를 만지며 미래세(未來世) 성불(成佛)을 알려주는 예언적 행위를 가리킨다. 티베트 불교에는 마정수기를 주는 의례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설사 까르마빠가 활불(活佛)의 자격으로 마정수기를 준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에게 무분별하게 수기를 내릴 리 만무하다. 티베트 불교에서도 간혹 스승이 제자의 성취를 예언하는 일이 있지만 뛰어난 근기를 가진 몇몇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라마(lama)들이 상대방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어 가피를 주는 일상적인 행위로서 '손으로 주는 관정'이란 뜻의 '착왕(phyag dbang)'을 동아시아의 불교 상식에 의거하여 마정수기로 해석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열하일기》에도 빤첸 라마가 그를 친견한 자의 이마에 손을 대어준다는 대목이 등장하며, 현재까지도 린뽀체들은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하는 신도들에게 답례처럼 착왕을 주곤 한다(심지어 '발로 주는 관정'이란 뜻의 '샵왕(zhabs dbang)'도 있는데, 가령 대중이 너무 많이 운집한 경우 고승이 대중들 위를 걸어가며 발로 가피를 줄 때도 있다). 착왕에는 마정수기처럼 미래세에 결정코 성불한다는 예언의 의미는 없다. 티베트 불교 문화에 익숙치 않은 동아시아에서 관정이나 착왕을 마정수기로 착각하는 일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종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