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화)
큐티 묵상 - [성령과 함께 자유하라]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3:12~18
절대적 가치를 두고 제한적 가치를 의식, 고려,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지닌 영광은 모세가 누렸던 어떤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에게 절대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반면 제한적 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모세가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할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얼굴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왜냐하면, 주목해야 할 것은 자기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령강림의 사건 내용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며, 이어서 3장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이 나옵니다. 당시 이적이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서 이를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모여드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합니다. 또 계속해서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5-16)라고 외칩니다. 즉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친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우리를 주목하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도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 의한 이와 유사한 이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도 이를 목격한 군중들이 크게 놀라 자기들만의 방언으로 소리 지르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강림하셨다’면서 소동을 일으켰으며,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 지내겠다고 소와 화환들을 준비하여 무리와 함께 바울과 바나바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고 저들에게 뛰어 들어가 소리쳐 이를 제지합니다. 우리 역시 당신들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또 지금 당신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이같은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한 것이었다며 겨우 막았습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주목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기를 좋아하고 심지어 신격화하고 싶어 합니다. 여배우를 향해 ‘여신’이라 말하고, 인기 있는 그룹을 ‘아이돌(idol)’ 즉 ‘우상’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자랑하고, 목사를 자랑하면서도 예수를 자랑하지 않는 교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모세가 받은 그 얼굴의 광채는 한시적 영광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는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의 기능은 완료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유하라’고 말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절대적 가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수많은 제한적 가치에 얽매이게 됩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더 영광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광을 위한 순례의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동원 목사님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요약된 문서로라도,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깨달음’으로 순례자의 여정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