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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치용(經世致用)
학문은 실제 사회에 이바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유학(儒學)의 한 주장이다.
經 : 글 경
世 : 인간 세
致 : 이를 치
用 : 쓸 용
(유의어)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事會) 등 국가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제도와 방법에 관한 구체적 지식이나 실천적 구현을 포함하고 있는 용어이다. 본래 경세(經世)와 치용(致用)은 두 가지 개념이다.
경세(經世)는 세상을 경륜한다는 말로, 국가사회를 질서 있게 영위하는 정치, 경제, 사회의 활동을 가리키고, 치용(致用)은 현실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성취해가기 위해 적절한 제도와 방법을 갖추고 실천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경세는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사회적 제도와 다양한 수단을 필요로 함으로 치용을 요구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한 두 개념이 결합하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경세치용이라는 용어는 고전문헌에서 사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근세의 학술용어로서 널리 사용되었고, 특히 청나라 초기나 조선 후기의 이른바 실학파에 관한 설명에서 일반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또한 경세치용은 실학파와 관련된 학문적 지식체계의 특정한 입장이나 방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만, 경세론과 치용론으로 분리하여 사용되는 경우와 그 의미를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세론 또는 경세학을 국가사회의 현실적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학문적 이론이나 지식체계라 한다면, 그것은 실학파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고대사상에서 부터 연원하는 기본적인 학문적 관심이며, 특히 유교사상의 기본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치용론 또는 치용학은 전한시대의 경학을 가리키는 경우에서 처럼, 유교의 경학이 현실 문제에 응용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경세치용론의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현실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방법에 관한 이론의 탐구를 뜻하기도 한다.
경세론은 유교의 근본원리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곧, 대학(大學)에서 제시된 명명덕(明明德)과 친민(親民)의 기본강령이나, 유교의 기본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수기(修己)와 치인(治人) 또는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의 원리에 있어서 친민, 치인, 외왕의 문제는 경세론의 영역으로서, 곧 명명덕, 수기, 내성의 문제인 수양론과 상응하는 두 가지 근본 원리의 한 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경세론은 내면적, 인격적인 수양론과 상호 조화적인 관련성을 추구하는 것이 유교이념의 근본입장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야만 경세론의 의미도 유교사상 속에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세론의 고전적 형태는 유교경전 속에 상당한 깊이로 제시되어 있다. 서경(書經)은 첫머리의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등을 통하여 성왕(聖王)의 통치원리와 통치형태의 모범을 제시하였으며, 홍범편(洪範篇)에서도 통치의 실제적 과제와 원리를 아홉 가지의 범주로 집약하여 체계화 시켜 주었다.
서경(書經)에서는 천명사상과 덕치의 정치이념을 기초로 하면서 제도, 법률, 생산, 재화, 의례, 천문 등 정치적 과제를 구체적이며 모범적인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경세론의 유교적 이상형과 연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주례(周禮)는 주나라의 관직제도에 관한 기록으로 전하며, 여기서 제시된 육관제도는 남북조시대의 북주에서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중국정치제도의 기본 형식을 이루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육부나 육조도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공자(孔子)도 춘추 말기의 혼란 속에서 정치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고, 덕치 내지 예치의 정치이념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맹자(孟子)에 이르면 왕도론을 통하여 민생 안정을 위한 정전제(井田制)의 원리나 세법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기반에 바탕을 둔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경세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시대(先秦時代)의 유학사상에서 이미 현실적인 경세론이 사상적 핵심의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음을 경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 때에 유교가 국가종교로 확립되면서 정치적 현실 문제는 항상 유교경전과 결합되어 해결방법이 논의되었고, 그만큼 경세론은 유학이념과 깊이 연관된 전통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교경전의 현실적인 경세론의 관심은 궁극적 초월세계나 인격적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과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사상적인 모순과 불균형을 노출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경세론의 사상사적인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송대의 도학파는 경세론의 현실적 관심이 형이상학적 근원성이나 인격적 도덕성에 근거를 확립하지 못하는 결함을 반성하면서 현실의 근거로서 이념적 근원성을 추구하는 철학적 영역인 성리학의 연구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성리학에서는 본말(本末), 체용(體用), 도기(道器), 이기(理氣) 등의 개념형식으로 문제를 분석하면서 본(本), 체(體), 도(道), 이(理)를 근본적이고 선행적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태극이나 천리(天理), 성명(性命) 등 형이상학적 성리학의 문제를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현실적 문제도 본에 대한 말, 체에 대한 용, 도에 대한 기(器)의 관계처럼, 서로 대대적(對待的)이고 상응적인 것인만큼 배제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학파에 있어서도 경세론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주희(朱熹)에 의해 제안된 사창법(社倉法)은 사회 및 경제정책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고, 도학파의 정치활동은 왕도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주자학의 철학적 이념에 기초를 둔 도학적 정치이념은 조선왕조의 통치이념과 정치질서를 형성해 갔다.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치전(治典), 부전(賦典), 예전(禮典), 정전(政典), 헌전(憲典), 공전(工典)의 육관제도에 따른 정치원리와 행정제도를 논의하였고, 경제문감(經濟文鑑)에서도 재상의 직무를 비롯한 각 관직과 군왕의 도리에 관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인식하려는 경세론의 체계적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도학의 정립에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던 조광조(趙光祖)의 경우에서도 그가 국가기강을 확립하여
왕도를 구현하고 지치(至治)를 추구하였던 것은, 곧 도학파에서 차지하는 경세론의 중요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이(李珥)는 성리학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호문답(東湖問答)이나 만언봉사(萬言封事) 등의 저술에서 현실적 정치질서의 확립을 위해 치밀한 분석과 대책을 제시하는 경세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수기, 정가(正家), 위정(爲政)을 기본 구조로 하면서, 위정에서 도학파의 정치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도학파의 경세론적 입장과 범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도학파에서 형이상학적 성리학의 문제나 도덕적 수양론에 치중하는 경향이 심화되었을 때 경세론은 관념적 체계의 제약을 심하게 받게 되고, 그만큼 경세론의 객관적 내지 실용적 독립성은 위축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실학파는 중국에서는 청나라 초기에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宗羲) 등에 의해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에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등은 실학을 추구하면서 도학파의 입장이나 체계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 독자적인 경세론의 영역을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경세치용이라는 용어는, 특히 이들 실학파의 학문적 관심이나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양계초(梁啓超)는 청나라 초기에 고염무에 의해 전개된 학문 연구의 방법인 귀창(貴創), 박증(博證), 치용을 분석하면서, 특히 치용론은 실용주의를 표방하여 학문과 사회의 관계를 긴밀하게 추구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일반적으로 그와 더불어 청나라 초기의 실학파나 청나라 말기의 공양학파(公羊學派)가 지닌 현실사회 문제에 대한 실용적 관심이 경세치용학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경세치용은 청나라 때나 조선 후기의 실학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이해되었으며, 경세론의 일반적
정치사회에의 관심을 넣어서 실학파의 경세론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 것이 통념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파에서 경세치용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업적을 남긴 대표적 사상가로는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정약용(丁若鏞) 등을 들 수 있다.
오광운(吳光運)은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隨錄) 서문에서 진한시대 이후로 옛 치도가 무너진 뒤 사대부가 경세유용(經世有用)의 학문이 있음을 모르고 있는데, 유형원이 홀로 경방제치(經邦制治)의 도리에 뜻을 두었으며, 그의 이론이 모두 실용에 적합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러한 지적은, 곧 유형원의 주장이 경세치용의 내용임을 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계수록(磻溪隧錄)은 전제(田制), 교선제(敎選制), 임관제(任官制), 직관제, 녹제(祿制), 병제, 군현제를 내용으로 하여, 제도의 합리적 형식을 검토하고 개혁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전제에 있어서 정전제를 바탕으로 균전법을 실현하려는 공전제를 주장하여 토지가 천하의 큰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토지제도는 사람을 기본으로 할 것이 아니라 땅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여 제도의 객관적 표준을 확립하려는 실학파의 사상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법제를 장인의 먹줄과 자[繩尺]에 비유하고, 야공(冶工)의 기본틀[模範]에 비유하면서, 척도가 없이 올바른 생산이 불가능한 것처럼 법제가 바르지 않고서는 정치가 온전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근본과 지말(枝末)이 서로 떠날 수 없다는 원리를 눈금[星]과 저울[衡]이나 그물코[目]와 벼리[綱], 또는 치[寸]와 자[尺]의 관계에 비유하여, 구체적 사무가 중요함을 역설함으로써 현실성과 실용성에 관심을 깊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익도 유형원의 경세치용론에 깊은 영향을 받아 정치제도의 실용적 개혁안에 관한 연구를 다양하게 하였다. 이익은 토지제도에 관해서 현실적으로 실행가능한 개혁방법으로 한전제(限田制)를 제안하고, 선비도 농업생산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무위도식을 금하게 하자는 사농합일(士農合一)의 주장을 비롯하여, 화폐나 조세 등 경제문제나 행정기구의 기능을 재검토하고 개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 밖에도 유수원(柳壽垣)의 우서(迂書)나 홍대용(洪大容)의 임하경륜(林下經綸) 등도 실학파에서 나온 경세치용론의 체계적 탐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사회의 제도 전반에 걸친 실용적 정리의 체계화는 정약용에 의하여 가장 방대하고 치밀하게 추구되었다.
그의 저술에서 1표2서(一表二書)라고 일컬어지는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행정제도와 기능에 관한 종합적인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주례(周禮)의 육관제도에 근거를 두어 전통적인 행정기구의 기본 형태를 받아들이지만, 각 직관에 따른 기능과 원칙을 실용적, 현실적 정신에서 철저히 검토하고 실천방법을 제시하였다.
경세유표(經世遺表)의 원래 명칭은 방례초본(邦禮草本)인데, 주나라 때 중국의 제도인 주례(周禮)에 상응하여 우리 나라의 현실에 적합한 제도로서 방례(邦禮)를 논의하는 경세치용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경세유표(經世遺表)의 서문에서도 성왕의 이상적 전형인 요순(堯舜)을 팔짱끼고 말없이 있어도 세상을 교화한 인물로 설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이라 하고, 천하 사람을 바쁘고 시끄럽게 노역시키면서 일찍이 숨 쉴 틈도 없게 만든 사람이 요순(堯舜)이라 하여 적극적 실천과 행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실천성은 곧 실용성을 내포하게 되며, 그만큼 경세론이 치용론과 결합된 실학파의 경세치용론으로
뚜렷이 드러날 수 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도 목민관이 실천해야 할 12강(綱) 72목(目)으로 체계화시키면서, 육관(六官)에 해당하는 육전(六典)의 직무와 더불어 목민관의 도덕적 기반으로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의 3강령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실학파의 경세치용론이 단순한 행정제도나 경제원리에 관한 현실적 정책론에 머물지 않고, 그 실천원리에는 도덕적 근거를 내포하며 도덕성과 정책론이 결합된 경세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실학파의 경세치용론은 유교사상의 기본 원리로서 수기와 치인 내지 내성과 외왕의 조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며, 선진유교의 경세론에서부터 도학파의 경세론으로 흐르는 전통의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道)와 기(器)의 문제에서 경세치용론이 기(器), 곧 제도 내지 현실에 치중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도(道)와 대립되어 기(器)를 추구하는 입장이 아니라 도(道)를 기반으로 하고 이상으로 지향하면서, 기(器) 곧 현실적, 실용적인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에 실천적인 해결방법을 탐구하고 제시해 가는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
토지개혁과 농민생활의 안정을 주장했던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정약용(丁若鏞) 계열의 학자를 가리킨다. 주로 상업발달과 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북학파)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경세치용이란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가리킨다. 17세기 이후로 중세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자 일련의 지식인들은 과거를 위한 경학공부에만 치중하거나 사회변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논리와 제도만을 고집하는 데 반대하여 경세치용을 위한 학문을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17세기 고증학의 제창자인 고염무(顧炎武)와 황종희(黃宗羲)의 학문을 경세치용학이라고 불렀다. 경세치용은 원래 유교경전에 있는 용어이다. 유학은 본질적으로 치자의 학으로 정치경제학을 포함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경세론이 항상 제기되었으며, 사회가 변혁기에 처했을 때 구태의연한 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며 유학의 본질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 경우는 많았다.
일례로 여말선초에는 정도전, 조준, 권근 등이 사장(詞章)에 빠진 학자들을 비판하며, 자신들의 개혁론의 사상적 기반인 정주학(程朱學)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또한 불교나 도교의 경세론으로서의 한계를 비판하며,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로도 사회의 폐단을 거론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학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양란(兩亂) 이후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농민층 분해의 진전, 신분제 붕괴, 서구 자연과학과의 접촉 등은 일련의 학자들이 지주제와 신분제에 기초한 중세사회의 원칙을 넘어선 개혁을 추구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후 실학자들이 주장한 경세치용은 중세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했으며, 주자학의 원리를 고수하며 부세제도 개혁과 국가기구 운영의 정상화 등을 통한 사회안정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경세치용학파 이론의 내용
경세치용학파 개혁론의 특징은 토지제도가 모든 개혁의 기초가 된다고 파악한 점이다. 이들의 토지제도개혁론은 전통적인 이상제도인 정전제(井田制)를 기반으로 했지만, 과거의 경구를 나열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먼저 유교의 원전과 고제를 다시 연구, 재해석하여 이들 개혁론의 이론적 당위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변화와 농업생산력 발전까지 수용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탐구했다. 유형원의 균전론(均田論), 정약용의 여전론(閭田論) 등은 모두 이런 연구의 산물이다.
토지개혁을 달성하고 그 성과를 국가체제 전반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정치세력의 개편과 정치 참여층의 확대가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관료제와 과거, 교육, 행정제도, 나아가 향촌사회 조직까지 새로 구상했으며, 이런 체제를 기반으로 조세, 군사, 군현제 등을 합리적으로 개혁하고, 양반층의 특권과 신분차별의 원리에 입각한 각종 폐단을 제거할 것을 주장했다.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고,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하는 태도는 철학과 역사학에도 반영되었다. 이전처럼 자연세계의 법칙에서 만물에 공통된 원리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사회의 원리를 분리하게 되었다.
이 결과 실제적인 것에서 사실을 발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하며, 격물치지와 같은 중세사상의 핵심적인 원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천문학, 의학, 수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이전에는 천시하던 자연개조와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도 변했는데, 이 역시 신분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작용했다. 중국이 아닌 한국의 현실에서 방법론을 찾는 태도는 한국사 연구와 역사지리 연구에도 적용되어 이 시기 이후로 많은 지리서와 지도가 편찬되었다.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조선 후기 실학의 한 분파로 상공업 발달을 중시한 학파이다. 실학은 조선 후기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산출된 사상으로서 무엇보다도 공리공담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그것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이다. 나아가 실제 사회에 이용될 수 있는 이용후생의 학문이었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수록된 이용(利用)이란 백성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각종 기계나 운송수단 등을 말하며, 후생(厚生)이란 의복이나 식량 등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실학의 흐름은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와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홍대용(洪大容)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및 완당 김정희(金正喜)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實事求是)학파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당시의 관념적인 주자학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을 지향하여 실용과 실증을 창도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그중 이용후생학파는 상공업의 유통 및 생산기구, 일반기술면의 발전을 지표로 하고 있어서 중상학파라고도 하며, 개혁의 모델을 청조(淸朝) 문물로 두고 있어서 북학파라고 지칭되었다.
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熱河日記) 도강록(渡江錄)에서 청국인들에 대해 ‘집 주위를 둘러본즉 고르고 단정하여 어느 하나도 함부로 한 것이 없거니와 한 물건이라도 난잡한 것이 없다. 이렇게 한 연후에야 물건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물건을 이용한 연후에야 생활이 넉넉할 수 있는 것이요, 생활이 넉넉한 후에야 마음을 곧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체 기물을 제대로 쓰지 않고서도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드물 것이다.’라고 하여 이용후생의 과학적 생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박지원의 사회개혁사상은 농업경제에 입각한 것으로 대토지사유화를 배제하고 농업생산력을 높여 농민경제를 안정시키고자 함에 있었다.
한전론의 구상이나, 과농소초의 편찬에서 이같은 논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생산력 발전을 위하여 농업을 기본으로 인정하면서도 광업, 수공업, 임업 등을 비롯하여 교통, 운수, 상업, 대외무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만이 이용후생(利用厚生)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모두가 자기의 직업에 안착하여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통운수 시설의 발전을 통해 군현내의 자급자족적 자연경제의 울타리를 넘어선 국내시장의 통일을 염두에 두었고 부국강병을 위한 광산자원의 적극적 이용과 산림개발을 주장했다.
한편 상공업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화폐문제를 올바르게 개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은화를 국제무역에 사용하는 대신 국내에서 화폐로 사용하자는 것으로 국내의 은을 전부 국가에 바쳐 5냥, 10냥 짜리로 주조하여 1/101세만 받고 도로 내주어 자유롭게 유통시키자는 것이었다. 또한 법화인 상평통보의 가치 하락화를 막기 위해 낡은 엽전과 새 엽전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단위를 달리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박제가(朴齊家)는 농업보다 상업에서 사회발전의 계기를 찾으려 했다. 상업을 발달시키려면 대부분의 실학자들조차 미덕으로 여겼던 봉건적 절검사상을 배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북학의 내편 시정(市井)조에서 소비는 단순한 소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자극하는 것이라 주장했고, 생산과 소비의 유기적 관계를 해명함으로써 이를 매개하는 상업의 중요성을 천명했다. 따라서 그의 생각도 상업이 발달하면 농업과 수공업도 아울러 발달한다는 중상적 경제이론에 도달해 있었다.
박제가의 화폐경제 발달론의 본질은 국가의 경제력을 증대시켜 이용후생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상업이 주가 되면서 농업, 공업이 유기적으로 발전해야만 가능했다. 이를 위해 수공업자에 대한 국가적 수탈의 금지, 대량 생산체제의 구축, 농업기술의 개량을 통한 농업생산성의 증진과 상업적 농업이 실시되어야 했다.
동시에 국가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통상을 통한 재화의 증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밀무역을 양성화시켜 정상적인 외국무역을 발전시킬 것과 충청도, 전라도 일대의 장진, 은진, 여산 등에 무역항을 열고 남중국 및 산둥[山東] 지방과 통상하다가 국력이 자라면 일본, 안남, 위구르 등 무역대상국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해외통상론은 단순한 경제발전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습득과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데 있었다. 이와 같이 이용후생학파의 상공업정책론은 점차 성장해가는 상공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며, 봉건사회의 해체를 촉진시키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시대적 산물이었다.
▶ 經(경)은 형성문자로 経(경)의 본자(本字), 经(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실사(糸; 실타래)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 세로로 곧게 뻗은 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옷감 짜는 날실, 씨실인 緯(위)에 대하여 일컬음이다. 經(경)은 경서(經書), 불경(佛經), 주기도문(主祈禱文), 판수가 외는 기도문(祈禱文)과 주문(呪文), 피륙에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는 실인 날실, 경도(經度), 경선(經線) 등의 뜻으로 지나다, 목매다, 다스리다, 글, 경서(經書), 날, 날실, 불경, 길, 법, 도리, 땅의 가장자리, 경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이(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치(治), 지날 력/역(曆), 경영할 영(營), 다스릴 리/이(理), 지날 과(過),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씨 위(緯)이다. 용례로는 액운이 지나감을 경겁(經劫), 약이나 세균 따위가 입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감을 경구(經口), 종교의 교리를 적은 글 또는 성인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글을 경전(經典), 경전과 그것의 해석서를 경전(經傳), 나라를 다스림을 경국(經國), 계속하여 그치거나 변하지 않음을 경상(經常), 두 지점의 정도의 차이를 경차(經差),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을 경학(經學), 현재까지 직업 상의 어떤 일을 해 오거나 어떤 직위나 직책을 맡아 온 경험을 경력(經歷), 경전을 실은 문장을 경문(經文), 인류가 재화를 획득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경제(經濟), 계획을 세워 사업을 해 나감을 경영(經營), 주로 회계 및 급여에 관한 사무의 처리를 경리(經理), 시비나 선악이 분간되는 한계를 경계(經界), 거치어 지나감을 경유(經由), 오장 육부에 생긴 병이 몸 거죽에 나타나는 자리를 경락(經絡), 경락에 있어서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에 알맞은 곳을 경혈(經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사업을 경국대업(經國大業), 나라 일을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함을 경국제세(經國濟世), 세사를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함을 경세제민(經世濟民), 온 세상을 다스림을 경천위지(經天緯地), 세상을 다스려 나갈 만한 재주를 경세지재(經世之才) 등에 쓰인다.
▶ 世(세)는 회의문자로 卋(세)의 본자(本字)이다. 세 개의 十(십)을 이어 삼십 년을 가리켰으며 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하므로 세대(世代)를 뜻한다. 삼십을 나타내는 모양에는 따로 글자가 있으므로 이 글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모양을 조금 바꾼 것이다. 世(세)는 지질(地質) 시대의 구분의 한 단위나 기(紀)를 잘게 나눈 것 또는 일부 국가에서 왕조의 임금 순위를 나타내는 말로 대(代), 이세(二世) 등의 뜻이다. 그래서 인간, 일생, 생애, 한평생, 대(代), 세대, 세간, 시대, 시기, 백 년, 맏, 세상, 성(姓)의 하나, 여러 대에 걸친, 대대로 전해오는, 대대로 사귐이 있는, 대를 잇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대신할 대(代), 지경 역(域), 지경 경(境), 지경 계(界), 지경 강(疆)이다. 용례로는 세대(世代), 세상(世上),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을 세속(世俗), 그 집에 속하는 신분이나 업무 등을 대대로 물려받는 일을 세습(世習), 조상으로부터의 대대의 계통을 세계(世系), 주로 명사 앞에 쓰여서 세상에서 흔히 말함의 세칭(世稱), 온 세상이나 지구 상의 모든 나라를 세계(世界), 세상의 풍파를 세파(世波), 세상의 돌아가는 형편을 세태(世態),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세상만사(世上萬事),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림을 세세손손(世世孫孫), 세상의 도의와 사람의 마음을 세도인심(世道人心), 세상 물정과 백성의 인심을 세태인정(世態人情), 세상일의 형편을 세간사정(世間事情), 세상이 그릇되어 풍속이 매우 어지러움 세강속말(世降俗末), 대대로 내여 오며 살고 있는 고장을 세거지지(世居之地), 여러 대를 두고 전하여 내려옴 세세상전(世世相傳), 대대로 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를 세록지신(世祿之臣), 세상일은 변천이 심하여 알기가 어려움을 세사난측(世事難測), 신세대가 구세대와 교대하여 어떤 일을 맡아 본다는 세대교체(世代交替) 등에 쓰인다.
▶ 致(치)는 형성문자로 緻(치)의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이를 지(至; 이르다, 도달하다)部와 매질하여 빨리 이르도록 한다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의 뜻이 합(合)하여 이르다를 뜻한다. 致(치)는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다하다, 이루다, 부르다, 보내다, 그만두다, 주다, 내주다,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을 꿰매다), 꿰매다, 빽빽하다, 면밀하다, 촘촘하다, 찬찬하다(성질이나 솜씨, 행동 따위가 꼼꼼하고 자상하다)(단), 곱다, 배다, 풍취(風趣), 경치(景致), 정취(情趣), 흥미(興味), 취미(趣味), 헌옷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를 도(到), 이를 계(屆), 이를 지(至), 이를 진(臻), 이를 흘(訖)이다. 용례로는 죽을 지경에 이름을 치명(致命), 고맙다는 인사의 치사(致謝), 남이 한 일에 대하여 고마움이나 칭찬의 뜻을 표시하는 치하(致賀),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됨을 치부(致富), 사물의 도리를 알아서 깨닫는 지경에 이름을 치지(致知), 사례하는 뜻을 표함을 치사(致謝), 있는 정성을 다함을 치성(致誠), 공양이나 공궤를 함을 치공(致供), 온 정성을 다함을 치관(致款), 나라를 잘 다스리기에 이름을 치리(致理), 가업을 이룸을 치가(致家), 경의를 표함을 치경(致敬), 죽음의 원인이 된 상처를 치명상(致命傷), 어떤 병에 걸린 환자에 대한 그 병으로 죽는 환자의 비율을 치사율(致死率) 등에 쓰인다.
▶ 用(용)은 상형문자로 감옥이나 집 따위를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의 모양 같으나 卜(복; 점)과 中(중; 맞다)을 합(合)한 모양이라느니 화살을 그릇에 넣는 모습이라느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건을 속에 넣는다는 뜻에서 꿰뚫고 나가다, 물건을 쓰다, 일이 진행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用(용)은 용돈이나 비용(費用), 어떤 명사 뒤에 붙어서 무엇에 쓰이거나 또는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쓰다, 부리다, 사역하다, 베풀다, 시행하다, 일하다, 등용하다, 다스리다, 들어주다, 하다, 행하다, 작용, 능력, 용도, 쓸데, 방비(防備), 준비, 재물, 재산, 밑천, 효용(效用), 씀씀이, 비용, 그릇, 도구, 연장, 써(=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사(捨)이다. 용례로는 볼 일을 용건(用件) 또는 용무(用務), 무엇을 하거나 만드는데 쓰는 제구를 용구(用具), 기구를 사용함을 용기(用器), 쓰고 있는 예를 용례(用例), 용도에 따라 나눔을 용별(用別), 사람을 씀을 용인(用人), 쓰는 물품을 용품(用品),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을 용역(用役), 어떤 일에 쓰기 위한 토지를 용지(用地), 사용하는 방법을 용법(用法), 사용하는 말을 용어(用語), 돈이나 물품 따위의 쓸 곳을 용처(用處), 쓰이는 곳을 용도(用途),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용변(用便),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을 용장용단(用長用短), 돈을 마치 물 쓰듯이 마구 씀을 용전여수(用錢如水), 대롱을 통해 하늘을 살핀다는 용관규천(用管窺天),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을 용의주도(用意周到), 일자리를 얻었을 때에는 나가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버리면 물러나 몸을 숨긴다는 용행사장(用行舍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