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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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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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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기세덱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멜기세덱을 이해하는게 왜 우리에게 어려울까? 그것은 얼마나 오래 신앙 생활을 했느냐와 상관 없이 말씀의 기초가 없어 공의에 따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살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판단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 속에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결국 열매는 그에 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어린 신앙으로는 유업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갈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4:7)
어떤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위해 예언자를 찾아간다. 예언자를 찾아가는 것이 잘못된 행동은 아니지만 자칫 우리로 올바른 판단을 훈련받지 못하게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할 수 있다. 즉 길흉을 묻고 결정하는 무속 신앙과 같이 만들어 줄 수 있다(신18:14). 그러므로 결정을 앞두고 예언자들을 찾아다니는 습관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예언자도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린 스스로 옳고 그름을 공의에 따라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할 것이다.
네가 쫒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신18:14)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히5:12). 공의가 무엇이고 공의에 따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성장하여 성인이 될 수 있고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어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배워서 스스로 옳은 결정을 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쉽고 빠르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이 되기 까지 우리는 공의를 가르쳐야 하고 삶속에서 연습하게 해야 한다. 아직 믿음이 약해 땅에 속한 이스마엘과 같은 자라면 하늘에 속한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 성장했다면 멜기세덱에 대한 비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히5:14).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5:11-14)
2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 이유
백성이 레위지파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제단의 일을 섬기고 율법에 따라 판결하여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의의 길로 가게 하고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여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복을 받아 얻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제사장의 몫으로 드리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복을 받은 것은 레위지파 제사장이 자신의 거룩한 사명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사장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값을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가르칠 책임이 제사장에게 있는 것이다(신17:9-13). 그러나 이 말씀이 제사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고 거룩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가 가르치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두려운 말씀이다(말2:5-9).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말2:5-9)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을까? 아브라함이 그와 아무 관련이 없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라면 결코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큰 전쟁에 나간 것을 알 고 있었고 조카 롯에게 있던 일과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찾아갔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십일조를 드리고 받을 만큼 합당한 섬김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왔고 이제는 아브라함이 용사가 되어 주님의 뜻대로 싸우러 나갔고 마침내 승리를 얻게 하신 것을 축복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만약 멜기세덱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가까이 갈 수 있는지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법도를 배웠다면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이 경건해지고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면, 그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 영적 멘토, 영적 제사장과 같은 멜기세덱에게 자신의 모든 전리품중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십일조는 모든 것의 10%이지만, 상징하는 것은 자신이 취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취하게 하셨다는 고백과 같다. 즉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당신을 통해 가능했습니다라는 고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창14:16-20).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16-20)
3 멜기세덱은 사람인가? 천사인가? 예슈아인가?
성경은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과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인가? 물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예슈아를 말하는 것이다. 즉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 예슈아가 아니다. 예슈아를 닮은 사람이다. 그러면 예슈아께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가? 예슈아께서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육체적인 부모이다. 그렇다면 영적으로는 아버지가 없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도 논리적이지 않다. 예슈아께서는 아들로서 여호와께서 아버지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족보가 없다는 말을 통해 육체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신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으로서 그를 육체적으로 낳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예슈아께서는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아버지도 어머니도 족보도 없는 하나님(신)이시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신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멜기세덱은 예슈아의 신성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신)과 같지만 하나님(신)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좀 더 바람직한 번역은 '생명의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라고 해야 한다. 히브리서도 분명하게 멜기세덱은 '사람'이라고 증언하고 있다(히7:4).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예슈아도 천사도 아닌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하나님과 같이 보이는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히7:4)
4. 멜기세덱은 셈이다.
유대 랍비들은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누군지 모른다고 말하며 예슈아의 표상 혹은 예슈아께서 육체를 입고 구약 시대에 오신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뒤를 이어)로 예슈아께서 오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예슈아께서 멜기세덱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주장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 말이다.
성경 연대표를 보면 셈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400년 정도를 살고 있었고 심지어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삭이 태어나고도 100년을 살았고 그 아들 야곱이 태어나고도 50년을 더 살았다. 총 셈의 생애는 600년이었다. 그에 반해 아브라함은 175년을 살았다. 야곱은 147년을 살았고 점점 수명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셈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치 하나님의 아들(신)처럼 보였을 것이고 생명의 시작도 끝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살아 있는 한 셈은 항상 제사장으로 있었고 태어나기 전 400년 전부터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항상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이 셈으로부터 토라(율법)를 배운 것에 대해 야샬의 책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멜기세덱이 셈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셈을 모든 형제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모든 형제들을 그의 장막 아래 두셨다(창9:26,27). 그러므로 셈의 후손 아론을 통한 제사장 제도를 세우기까지 셈을 통해 하나님의 법도가 가르쳐지고 제사장으로 불리는 것은 예언과도 일치하며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9:26,27)
5. 하늘과 땅의 제사장 제도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다. 그는 성문법이 세워지기 이전에 항상 제사장이라 불렸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슈아께서 부활하신 후 이 신과 같았던 멜기세덱의 반차로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셨다고 말했다. 그럼으로써 멜기세덱 반차의 제사장 제도는 땅의 제도가 아니라 하늘 제도임을 말하고 있다. 즉 히브리서는 땅의 제사장 제도와 하늘의 제사장 제도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기 위해 십일조 예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십일조는 땅에 속한 예물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예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십일조를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책망하시고 우리의 삶에 메뚜기가 소산을 먹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는(재물이 빠져나가는) 저주가 있는 것이다. 온전한 십일조는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신다고 언약하셨다. 그만큼 십일조는 하늘의 것이고 하늘 창고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렇다고 부자가 되기 위해 십일조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용하여 맘몬을 섬기는 것이므로 저주가 있다. 오직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온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 재물을 구하지 않아도 당연히 따라오는 복인 것이다(말3:8-12).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3:8-12)
6 멜기세덱과 레위의 관계
레위는 아브라함을 통해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릴 때 그의 허리에 이미 레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이미 레위라는 땅의 제사장들을 축복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는 제사장이 있다고 해서 땅의 제사장 제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통해 레위를 축복했다는 것이다. 레위의 제사장 제도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제도가 높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이, 더이상 레위의 제사장 제도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였다. 즉 믿음에 대한 언약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믿음으로 유업을 얻을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은 축복했다(히7:6-10). 그리고 그의 허리에 12지파와 레위 지파, 율법(토라)에 대한 순종의 언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믿음의 언약은 순종의 언약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이처럼 멜기세덱 반차와 레위 반차의 두 관계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축복하고 축복을 받는 축복의 관계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3:31)
7 믿음의 조상을 통해 율법이 왔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 모든 레위가 십일조를 함께 드렸으며, 축복을 받음으로써 레위 제사장 제도도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시다. 그분께는 천년이 하루와 같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모든 제사장을 축복하고 그 제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즉 땅의 율법도 믿음의 조상을 통해서 왔다. 다시 말해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신뢰,충성)이다. 하나님을 정말 믿고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고 충성하는 것은 당연하다(요일5:3). 하나님께서 셈을 통해 찬송을 받으시고 그의 장막을 넓게 하여 그에게 속한 형제 이스라엘을 그의 장막에 두고자 하신 뜻을 믿는 자들을 통해 율법이라는 의로운 법도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언약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함에 이르게 하기 위한 그분의 계획이시다(창9:26,27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28)
8 멜기세덱은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축복했다
십일조는 모세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모세가 십일조에 대한 율법을 받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다. 이와 같이 율법도 여호와께서 강림하셔서 손가락으로 직접 써서 모세에게 주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전해 내려오던 구전 율법이 있었다. 구전 율법은 출처가 불분명하고 전하는 사람에 의해 쉽게 더해지거나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분명한 증거와 기준을 위해 성문법으로 직접 써 주신 것이다(출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31:18)
어떤 사람은 성문법보다 전해 내려오는 구전토라(율법)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필요도 써주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성문법으로 주시기 전에 율법이 없었는가? 물론 있었다. 창조와 함께 율법은 이미 주어져 있었다. 가인과 아벨이 번제와 소제를 하나님께 드렸고 노아가 이미 정결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기준을 알고 있었으며 아브라함이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준행함으로써 언약을 성취하는 것이다(창26:5).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는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축복했다면,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으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을 통해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기 위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으셨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26:4,5)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첫댓글
멜기세덱 = 구약시대에 활동하신 예수님~!!
예슈아께서는 멜기세덱의 뒤를 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을 닮았죠 ㅎ~~
@자유하라
뒤를 이은것이 아니고
멜기세덱이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들을 닮았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입니다.
@새하늘사랑(장민재) 반차는 무슨 뜻인가요?
@자유하라 반열...즉 신분을 뜻합니다.
@새하늘사랑(장민재) 히브리서 7:3하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닮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자유하라
다니엘의 "인자 같은 이"와 같은 표헌입니다.
모두 예수니이신 성자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성경입니다
@새하늘사랑(장민재) 반차는 계승, 직무상의 위계의 뜻입니다
멜기세덱이 에슈아시라면 스스로를 계승할 수 없고 스스로 위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하라
같은 신분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고...
시작과 끝이 없는 분으로..
이런 신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새하늘사랑(장민재) 다니엘 10: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다니엘이 말한 인자같은 이, 사람의 모양 같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하늘사랑(장민재) 히브리서 7: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성경은 멜기세덱이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하라
사람이 아니지요
사람처럼 보이시는 하나님.
즉 구약에서 활동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인자 같은 이 = 예수님.
(요한계시록 1장)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새하늘사랑(장민재)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신성을 닮았다고 표현입니다~~
번역이 헷갈리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
멜기세덱 = 구약시대에 활동하신 예수님~!!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이신 예수님이라고 말해야 맞는거죠
그럼 성경이 틀린 걸까요? :;;;
@자유하라
멜기세덱은 부활체...
예수님은 육체...
다른 형상으로 임하셨습니다~!!
구약에서 활동하신 예수님은
부활체로 현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110:4에서 장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 세우질 것이라고 한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그 예언의 성취임을 밝힙니다. 그러면서 이 시편이 기록될 당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있었음에도 이처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 나타날 것을 예언한 것은 때가 되면 율법에 의한 제사장직이 종료되고 별다른 한 제사장이 세워져야 함을 예고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즉 율법의 의한 제사장직은 불완전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장차 새 언약에 따른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장을 세우실 것을 맹세하며 약속하신 것으로서, 예수님은 이 약속을 따라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hmm =..=
댓글 감사합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허리에 레위가 있었죠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레위 제사장의 십일조를 이미 받은 것이고 그들을 축복한 것과 같습니다
레위 제사장직이 불완전한 것은 제도의 불완전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불완전함입니다
언젠가 불완전한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세상이 오겠죠
그때까지는 사람을 위해 세운 율법은 지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