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신체나 이성은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요 신성에서 왔다. 자연은 단순히 영성을 싸기 위해 만든 것이요 그 영성을 표현하기 위해 순서의 가장 외적인 형식에 상응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지상이나 우주는 천국의 상응물이다. 지상의 모든 사물은 세 종류 곧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로 나뉜다. 살아있는 동물계와 그저 자라기만 하는 식물계, 살아있지 않고 자라지도 않는 광물계도 상응물이다. 또 태양, 달, 별, 구름, 비, 번개 등도 상응물이다. 더하여 태양에 따라 생기는 밝고 어둡고 따스하고 추운 현상과 각 계절, 밤낮 등의 하루의 시기도 역시 천국의 상응물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상응물이다. 이 뜻은 자연계를 통해 영계를 보고 영계를 통해 주님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또 자연계의 모든 것이 영계와 관계를 가지며 영계가 참된 것이요 영원한 것이며 인간에게 참된 행복이 이곳으로부터 주어지고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상응은 알려준다. 나아가 자연계는 영계로부터 존속하며 자연계와 영계는 신성에 의해 존속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신적 질서이다.
신적 질서는 주께로부터 유출되는 신성으로 말미암아 진행되는 것이다. 무엇이나 질서에 따라 존재한 것이 상응이다. 전 세계에 있는 자연만상은 신질서에 따라 있는 것이요 선과 진리에 관련되고 있는 것이다. 또 무엇이나 신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선이요 이것으로 일을 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신성에서 생겨나 자연계에 존재하면서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형태를 갖추는 것이 동, 식물계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주어진 본능에서 잘 볼 수 있다. 벌은 꽃에서 꿀을 빨며 식량을 모아 겨울을 대비하고 자손을 늘이기 위해 여왕벌은 알을 낳으며 그것을 보호하고 감싼다. 밀은 인간을 위해 초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꿀은 인간의 음식이 된다. 또 동물 중에서도 가장 낮은 부류의 곤충을 보아도 그것들은 자신에 필요한 음식물을 어디서 취하는지 알고 스스로 일종의 보자기를 만들어 마치 태내에 있는 것처럼 그 속에서 동족을 부화시킨다.
어떤 곤충은 스스로 실을 뽑아서 저 자신을 감싸며 이 일이 끝나면 먼저와는 다른 형태로 그 곳에서 나와 나래를 가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교미하여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시킨다. 이 같은 본능은 영계의 유일한 원천에서 나온 것이며 자연적인 사물은 영에서 나온 사물에 형체를 입혀서 영적인 것을 원인으로 하여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자연계는 영적 내용 위에 입힌 옷이요 영적 원인에서 나온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동물들은 이 생명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았기에 영계로부터 받은 자신의 본능을 지키지만 사람은 이성으로 그것을 깨뜨려 질서에 위반하는 생활을 하여 나면서부터 신적 질서를 잃었기에 출생 후에 신적 질서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식물계의 상응은 작은 씨가 싹이 나고 나무가 되며 잎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은 후 다시 씨가 되어 종족을 번식시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순서가 변하지 않고 해마다 일정한 순서를 틀림없이 반복하는 사실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 신비한 일을 보라. 식물계의 모든 것은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 속에 있는 영적 사물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식물계의 모든 사물이 천국의 상응물이라는 것은 그곳에는 이 지상의 식물보다 더 종류가 많고 모든 부분에서 완전한 것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동물은 전체적으로 애정에 상응한다. 온유하고 유용한 동물은 선한 애정에, 사나우면서 무용한 동물은 나쁜 애정에 상응한다. 소나 송아지는 자연적인 마음의 애정에, 양은 영적인 마음의 애정에 상응하고 새들은 자연적이거나 영적인 이지에 상응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소나 양과 비둘기 등은 표상적 교회였던 이스라엘에 의해 희생이나 번제 등의 신적인 일에 바쳐진 것이다. 이들이 제단에 바쳐지는 것은 천국에서 사람들의 영적인 생활에 상응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생명은 주로 애정으로 되었고 각 동물은 그 생명의 애정에 따르는 본능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자연적인 사람에 관한 한 동물과 비슷하기에 성경에서 유순한 사람은 양에 비교되고 사나운 자는 곰이나 승냥이에, 교활한 자는 여우나 뱀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식물계에도 그 같은 상응이 있다. 전반적으로 정원은 천국의 이지나 지혜에 상응하기에 천국은 하나님의 동산 또는 낙원이라 부른다. 나무는 선과 진리의 지각이나 지식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상응의 원리를 잘 알고 있던 고대인들은 숲 속에서 예배를 올렸고 천국이나 교회, 사람 등이 포도나무나 감람나무, 송백나무에 비유되고 사람이 행하는 선행이 성경에서 과실에 비유되었던 것이다. 특히 나무나, 밭의 곡식으로부터 취하여 만든 식물이 사람의 자연적 생명을 지탱케 하는 것처럼 그것들의 상응인 선과 진리는 사람의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한다. 곡식으로 만든 빵은 생명을 뒷받침하고 모든 식물을 대표하기에 전체로 볼 때 모든 선을 위한 애정 중의 애정에 상응하고 있다.
이 상응으로 주님은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근원이라는 뜻에서 생명의 빵으로 불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제사와 우리의 예배에 빵과 포도주가 쓰이게 된 것이다. 주님의 나라는 일이 목적인 나라이다. 처음에는 천국에 일이 있고 다음은 그 상응으로 이 지상에 자연의 가장 외부적인 것까지 일이나 행위 즉 결과로 나타나도록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즉 천국의 일은 사람의 마음에서 이루어지고 거기서 비롯되는 이해와 의지에 의하여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행위를 산출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과 천국과의 상응이나 자연계와 영계의 상응은 모두 일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일이라는 것은 천국과 자연계를 연결하는 것이며 일이 옷 입은 모양이 상응이고 일의 형체는 결합이다. 따라서 일은 신성을 자연계에 나타내는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신성은 우주의 모든 사물을 통하여 자신을 상응물에 드러내는데 이것이 일이며 상응이고 또 그것은 신성과 그 상응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의 3계 곧 동물, 식물, 광물계는 질서에 따라 일의 형태, 즉 일을 위하여 일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이나 식물들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들 속에 우리는 신성의 일하시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일의 모습이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이 행하는 일의 형체는 외부에 나타나는 모양이 아니고 속에 있는 이성적인 것이 본질인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인애 속에 있는 한 그것은 형체를 입은 일이고 이것이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속에 자연계와 영계의 양편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은 자연계와 영계를 결합시키는 방편 곧 결합의 매개체이다. 비록 사람이 이 매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신성의 직접적인 유입은 그치지 않기에 이 세상에서 신성의 유입은 중단되지 않는다. 신적 질서에 상응하는 것은 모두 천국에 상응하고 그러지 못하는 것은 모두 지옥의 악과 거짓에 상응한다.
천국과 자연계와는 상응에 의해 연결되기에 사람이 천국과의 교제가 허락되었다. 천국의 천사들은 일이나 사물을 자연적으로 생각지 않고 상응에 의존하며 사람도 역시 상응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그 마음의 사고가 천국과 교통할 수 있고 영의 사람 곧 속 사람이 천국과 결합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들로 천국과 결합을 하도록 하기 위해 쓰여졌기에 말씀 전체나 각 부분에 있어서 사람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응의 뜻이 있다. 이 상응의 지식을 가지면 성경의 영적인 뜻을 알 수 있다. 성경의 문자에 나타난 뜻은 이 세상의 사물을 나타내고 그 문자의가 담고 있는 영적인 뜻은 천국의 사물을 나타낸다.
지난 날 지상에 살던 상고인들은 상응에 의하여 모든 사물을 생각하였고 눈 앞의 자연적 사물은 그들의 영적인 사고를 도울 뿐이었다. 그들은 천국과도 결합하고 있기에 천사들과 담화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 다음시대는 상응 자체보다는 상응의 지식으로 생각하였기에 황금시대보다는 덜하게 천국과의 교제가 이루어졌다. 또 그 뒤는 상응의 지식은 있었으나 영적 선보다는 자연적 선의 생활을 하였기에 상응의 지식이 실제가 되지 못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점점 외적이고 육체적이 되었으며 영의 기능을 잃게 되어 상응의 지식과 천국과 천국적 사물을 마음에서 잃고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제는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그들의 모든 사고가 되었다.
세상의 태양에서 나온 자연적인 사물은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태양의 영향 하에 생겨났기에 태양에서 나온 모든 것을 자연이라 부른다. 천국을 포함한 영계는 상응이 없이는 자연과 교통이 되지 않는다. 천국에도 태양이 있어 빛이나 열 그 외의 모든 것이 있는데 그 원천은 이 세상과는 다르다. 천국의 태양은 주님이며 빛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이고 열은 신적 선이다. 결국 천국의 전 존재는 신적 진리와 신적 선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주님 자체는 사랑으로 이 사랑이 태양으로서 빛나며 모든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천국에 있는 자들 중 사랑의 선에 의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오른 눈으로 보고 믿음의 선에 의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왼 쪽 눈으로 본다. 이들은 마음에 속하는 영의 눈으로 주님을 본다. 천사들에게 있어서나 사람에게 있어서 오른 쪽의 모든 사물은 진리를 가져오게 하는 선에 상응하고 왼 쪽의 모든 사물은 선에서 오는 진리를 상응한다.
신앙의 선은 그 본질이 선에서 오는 진리이다. 태양은 사랑을, 달은 믿음의 신앙을, 별은 선과 진리의 지식을 표현한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주님의 모습을 본 것은 그들이 신체로부터 떠나 천국의 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예배할 때 얼굴을 동쪽의 태양에 돌렸고 성전도 동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주님으로부터 나온 열이 이 세상의 태양보다 훨씬 뜨겁다는 것은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나타낸다. 그러나 주님은 태양같이 직접으로 비치지 않고 매개체를 통하여 천국에 유입한다. 그의 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사랑은 매개체에 의해 점차 누그러져 각 천인에 유입한다. 그렇지 못하면 강한 사랑으로 인해 해를 입기 때문이다. 저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멀리 혹은 가까이 위치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내적 상태의 어떠함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