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꿀벌 실종 사건, ‘생태계 붕괴’ 방아쇠 당기나
해충-농약에다 기후변화까지 작용
작물 재배 못하고 축산업에도 피해
전국 양봉농가의 벌통에서 월동 후 꿀벌들이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제공
미국의 미생물기업 시드는 2019년 사람의 식단이 꿀벌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뉴욕 식당들과 협력해 꿀벌이 멸종하면 사라질 수 있는 음식들을 제외한 아침식사를 선보였다. 식탁에는 꽃가루받이 없이도 자라나는 뿌리채소로만 가득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샐러드에는 아보카도, 자몽, 베리, 오이, 완두콩 등 꿀벌의 수분이 반드시 필요한 작물들이 사라졌다. 당연히 드레싱으로 뿌릴 꿀도 없었다. 소의 사료인 작물이 줄어들면서 유제품뿐 아니라 소고기도 사라졌다. 단백질로는 캐비아만큼 비싸진 민물 생선구이 한 토막이 올라왔다. 꿀벌이 사라지면서 생태계가 망가져 물고기 개체수가 줄기 때문이다.
꿀벌의 멸종을 가정한 이유는 그 징후가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06년 꿀벌 집단이 갑자기 실종되는 ‘군집 붕괴 현상’이 처음 보고됐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해충, 농약, 새로운 병원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2010년대 들어 꿀벌의 30∼40%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유사한 현상이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전국 양봉농가 곳곳에서 월동을 한 후 다시 움직여야 할 꿀벌이 집단 실종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2일 기준 전국 227만6593개 벌통 중 39만517개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월동에 들어갈 무렵 벌통 한 개 안에 사는 꿀벌 개체수는 약 1만5000마리다. 전국에서만 약 6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 1500종 중 30%의 수분을 책임지는 꿀벌의 실종은 모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의 수분에 인간의 개입이 필요해진다. 식물들의 서식지가 바뀌고 벌을 먹는 새들도 사라지면서 먹이사슬에 영향을 준다. 새뮤얼 마이어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은 2015년 국제학술지 ‘랜싯’에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양봉업계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꿀벌이 사라진 것은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 65% 이상이 실종된 이후 두 번째다. 이번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은 해외 사례처럼 복합적 원인이 겹친 현상으로 분석됐다. 농진청은 올해 1월과 2월 전국 양봉농가 99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꿀벌 실종은 꿀벌응애류 발생과 말벌류에 의한 폐사, 기후변화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심화하는 기후변화도 피해를 가속시켰다. 지난해 9∼10월에는 저온현상이 발생해 꿀벌 발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11∼12월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했다. 꿀벌이 화분 채집을 나섰다 체력이 소진되며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실제로 기온이 높은 전남과 경남, 제주 지역 피해가 다른 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 등 꿀벌 피해를 이미 크게 본 지역에서는 꿀벌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을 양봉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영국 월드비프로젝트는 전 세계에 5만 개의 지능형 벌통을 구축하고 오러클과 협력해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으로 벌집의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