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다만 위에서 주장하는 본시의 왜(倭)가 아닌, 조선(朝鮮)인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가 설득력과 증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하는 거라고 봅니다. 본시 왜는 조선에 속한 종족이었죠. 그러나 중앙조정에서 밀려나 변방의 울타리노릇을 했습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위 조선왕조 왕궁은 모조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죠. 정확한 건축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허수아비 조선왕조를 반도를 만들면서 함께 건축된 것이라고 봅니다. 좋은 정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본문에서 이토가 1841년생인데 1850년에 일본으로 넘어오고 1876년 초대통감이 되었다는데 을사늑약이 1905년이고 을사늑약 이후에 초대통감이 되는데 늑약하기 30년전에 통감부터 먼저 한다? 1904년 화재로 불탄 덕수궁을 1904년부터 1906년까지 중건 했는데 1905년 12월에 통감이 된 이토가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을 이글에서는 임춘모라고 하는데 보통 <임이조(林利助)- 하야시 도스케 >라고 알려졌습니다. 보통 조부가 조선계 하급통역관이었다고 알려졌고 부친(<임십장林十蔵)-하야시 주조> 이 농민이었는데 1854년 조슈 번의 하급 병사인 이토 나오에몬(伊藤直右衛門)의 양자가 되면서 이토 성을 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라고 하네요. 이토가 조선통감이 된 것은 본문에서는 1876년이라고 하는데 아직 늑약도 안했는데 통감을 할수가 없죠.(이토-1841년생) 통감은 30년후 을사늑약(1905년) 후인 1906년 3월 부임합니다.
또한 덕수궁이 대륙 항주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한반도의 덕수궁은 이토가 만든게 아니라 성종때부터 있던 건물이고 1904년 화재로 불타서 1904년부터 1906년 사이 중건했고 경운궁이라 하던 것을 순종황제 즉위 후 아버지 고종의 장수를 기려 덕수궁으로 바꾸었죠. 덕수궁 대한문은 1906년 수리하면서 대안문(大安門)을 은하수를 상징하는 한(漢)으로 고쳐서 바꾸라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대한문...큰 하늘 문) 이토가 몰래 썻는지는 몰라고 당시 궁정대신 남정철이 썼다고 알려져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한문 덕수궁이라고는 안하지요. 덕수궁 대한문이라고 하지요...
첫댓글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다만 위에서 주장하는 본시의 왜(倭)가 아닌, 조선(朝鮮)인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가 설득력과 증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하는 거라고 봅니다.
본시 왜는 조선에 속한 종족이었죠. 그러나 중앙조정에서 밀려나 변방의 울타리노릇을 했습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위 조선왕조 왕궁은 모조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죠.
정확한 건축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허수아비 조선왕조를 반도를 만들면서 함께 건축된 것이라고 봅니다.
좋은 정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본문에서 이토가 1841년생인데
1850년에 일본으로 넘어오고 1876년 초대통감이 되었다는데
을사늑약이 1905년이고 을사늑약 이후에 초대통감이 되는데 늑약하기 30년전에 통감부터 먼저 한다?
1904년 화재로 불탄 덕수궁을 1904년부터 1906년까지 중건 했는데 1905년 12월에 통감이 된 이토가 만들었다?
이런 감정섞인 소설류의 글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다고 생각됩니다.
보다 많은 정보가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은 있는데 어디 사람이라는 것이 없잖아요. 호적등본 같은 거나 족보 같은 게 뒷받침 되면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고, 어렷을 적 친구들의 후손들이나 뭐 이런 객관적인 자료들이 더 나오면 대박일 것 같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을 이글에서는 임춘모라고 하는데
보통 <임이조(林利助)- 하야시 도스케 >라고 알려졌습니다.
보통 조부가 조선계 하급통역관이었다고 알려졌고
부친(<임십장林十蔵)-하야시 주조> 이 농민이었는데
1854년 조슈 번의 하급 병사인 이토 나오에몬(伊藤直右衛門)의 양자가 되면서
이토 성을 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라고 하네요.
이토가 조선통감이 된 것은 본문에서는 1876년이라고 하는데
아직 늑약도 안했는데 통감을 할수가 없죠.(이토-1841년생)
통감은 30년후 을사늑약(1905년) 후인 1906년 3월 부임합니다.
또한 덕수궁이 대륙 항주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한반도의 덕수궁은 이토가 만든게 아니라
성종때부터 있던 건물이고
1904년 화재로 불타서 1904년부터 1906년 사이 중건했고
경운궁이라 하던 것을 순종황제 즉위 후 아버지 고종의 장수를 기려 덕수궁으로 바꾸었죠.
덕수궁 대한문은 1906년 수리하면서 대안문(大安門)을 은하수를 상징하는 한(漢)으로 고쳐서 바꾸라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대한문...큰 하늘 문)
이토가 몰래 썻는지는 몰라고 당시 궁정대신 남정철이 썼다고 알려져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한문 덕수궁이라고는 안하지요. 덕수궁 대한문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