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40일 금식을 들어간 후 38일째 되는 날이다.
이틀만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몸이 25Kg이나 빠진 남편을 보면
시부모님들께서 기절하실텐데 이를 어쩌나 하고
걱정하던 저녁 무렵. 시부모님께서 내 방으로 들어 오셨다.
드디어 어머니 눈에 불이 난 것이다.
"사람들 혼빼는 년!
어서 내집에서 나가라! 내 아들 어디다 갖다 놓았니?
너희들 사업하다 망했다더니 내 아들 형무소에 가 있냐?
형무소에 가 있어도 먹을 것은 갖다 주어야지
왜 일주일에 한 번씩 서방 보러 간다면서
먹을 것도 안들고 네 몸만 달랑 갔다오는거냐?
오늘밤 너죽이고 나 죽을란다.
나는 살만큼 살았지만 너 안 죽이면 우리집 망한다.
사람 혼빼는 년아!
내 아들 혼 빼서 한창 돈 벌 나이에
신학인지 뭔지 다니게해서 깡통차게 했으면 됐지
막내 시누이 혼빼서 실업자 만들어 놓다니!
당장 저 년도 데리고 나가!"
그 날밤.
막내 시누이와 나는 거리로 쫓겨났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는 위험 상황 이었다.
어머니께서 거의 실성 하신 것 같은 상태였다.
미신을 섬기던 우리 시댁에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오더니
어느날 아들이 하던 사업을 그만 두고 신학을 간 것이다.
이것까지는 억지로 참으셨다.
그런데 이번엔 막내 딸이 또 예수를 믿더니
교사 임용 시험을 보아야 하는 날이 주일이라고
임용고사 시험장엔 안가고 같은 시간에 교회를 간 것이다.
여기에서 시부모님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다.
임용 고사를 치루는 날이 주일인 것을 알게 된 시누이는
며칠동안 깊이 기도하고 나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었다.
그 때는 예수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 봉사하는 분야도 없었다.
그러나 시누이는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선택했다.
실업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다급하게 쫓겨 나왔기 때문에 차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걷고 또 걸어서 친정 어머니에게 갔다.
아들이 없는 친정 어머니는 큰 언니와 같이 살고 계셨다.
오빠도 아닌 형부네 집에 시누이까지 데리고 들어 올 수는 없지 않은가
40일 금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을 어디로 모셔야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어머니는
"하나님이 좋은 곳을 예비 했을테니
믿고 푹 자거라." 하신다.
그 이튿날
우리는 이 넓은 하늘 아래서 하나님이 예비 하셨을 것이라는 곳을
막연히 찾아야 했다.
무조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어디쯤 내렸다.
마침 부동산 아저씨가 가게에서 나온다.
"저 아저씨 우리 방좀 얻으려고요."
"예~ 방 좋은 것 많지요. 얼마쯤 예산을 하는데요?."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하는데..."
"방 두 개라. 천 만원이면 그런대로 살만해요."
"그런데 돈이 없어요. 십만원 밖에..."
"젊은 여자가 돌았나? 십만원으로 어떻게 방을 얻어요?
내 참! 이상한 여자도 다 봤네! "
재수없다는 표시인지 신발을 툭툭 털면서 저 쪽으로 가 버린다.
시누이와 나는
이 곳은 아닌가봐 하는 표시를 웃음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길 모퉁이를 돌던 부동산 아저씨가
우리에게 잠깐 서 있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다시 돌아 온 아저씨는
"십만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딱 하나 있는데 귀신 나오는 집이야.
그런데 안되겠어. 그 집에 들어가서 죽기에는 당신들이 너무 젊어."
"아니오. 우리 그 집에 들어가게 해 줘요."
"아 글쎄 그 집은 귀신 나온다니까 그럼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마.
그 집은 그냥 들어가서 사는 사람도 없어. 그러나 십만원은 나한테 내!."
그 아저씨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동암역 북부 광장에 있는 넓고 큰 단층 집이었다.
전철이 수없이 와닿는 역전 광장에 이런 집이 있다니 넓은 마당에는 쓰레기가
썩어 대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방이 3개나 되는 집안 내부 역시 쓰레기가 쌓여 한 눈에 폐가임을 알 수 있었다.
친정 어머니와 시누이와 꼬박 한나절을 쉬지 않고 치우고 닦았다.
그 날밤은 친정 어머니 집에서 잤다.
그 이튿날. 40일 금식이 끝나는 남편을 데리러 철원에 갔다.
집으로 오면서 남편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금식하고 앙상하게 마른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자야 하는 곳이
귀신 나온다는 집이란 것을 미리 알려야 하기에...
내가 철원에 간 사이 어머니께서 우리가 급히 써야 하는 간단한
물건들을 장만해 놓으셨다. 어머니는 그 날밤을 나와 함께 있어 주셨다.
드디어 우리 네 사람은 귀신 나온다는 집에서의 첫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편은 앉아 있을 힘도 없어 자리에 누웠고 긴장한 우리는 저녁 9시 쯤 부터
크게 찬송을 불렀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새벽 4시쯤 되었을 즈음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밖에서 웅성 웅성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 이제야 귀신이 나타났나보다 하고 깜짝 놀라 일어 났다.
그랬더니 밖에 와 있는 사람은 귀신이 아니라 부동산 아저씨와
몇몇의 동네 사람들 이었다.
"죽었나 살았나 보러 왔구먼.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하루 가지고 그것을 어찌 알겠나?
우리는 오늘 죽었나 내일 죽었나? 하며 동네 사람들이 매일 들여다 보는 가운데
일년을 건강하게 잘 살아갔다.
일년이 되는 날, 집 주인은 동암역 앞에 새로 지은 다세대 주택 중에
방 2개 짜리를 전세 얻어 우리에게 이사하라고 했다.
그 집 전세금 천만원은 우리 것이란다.
십만원 내고 넓은 집에서 일년 잘 살고 천만원짜리 전세 얻어 공짜로 주다니!
세상에는 이렇게 고마운 사람도 있다.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했고 우리가 살던 귀신 나온다는 집은
큰 대문을 세운 숯불구이 불고기 음식점이 되었다.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 한 날 시어머님이 오셨다.
반갑게 뛰어나가 어머니를 맞으니
"너는 혼 빼는 재주는 여전하구나! 이번엔 귀신 혼을 뺐구나!" 하신다.
내가 처음 시집 갔을 때 시댁 식구들은
예수 믿는 며느리가 종가집 종부가 되었기 때문에 조상들이 노한다느니
혹 자신이 하는 사업이 안되면 그것도 예수 믿는 며느리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남편에게 나하고 이혼하라고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돋우었다.
이렇게 예수라면 이를 갈던 시댁 식구들 무려 40명이 혼이 빠졌다.
그 첫째는 나의 남편(목사)
그 둘째는 시누이(서울 중앙교회 목사 사모)
노할머니, 아버님(청평교회 집사), 어머님(청평교회 권사)
숙부님(할렐루야교회 집사), 숙모님(할렐루야교회 권사),
고모님(인천제이교회 권사), 시동생(푸른교회 집사)...
종가집에 제사가 없어지고 제사일에는 40명이 넘는 식구가 모여
다같이 우리 주님을 힘차게 찬양한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정말 혼빼는 여자인가보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수 있어서 행복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