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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불교화엄종 약사사 원문보기 글쓴이: 지족 (知足)
불교용어(1):가릉빈가~견성
1. 가릉빈가 (迦陵頻伽)
가릉빈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사성 기원정사에서 사리불, 마하가섭 등 제자들 과 대중들에게 설한 <아미타경>에 처음 등장한다. 부처님이 아미타 극락정토의 모습을 설하되, 그 곳에는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舍利鳥)와 가릉빈가와 공명조(共命鳥), 한 몸뚱이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새와 같은 여러 새들이 밤낮으로 여섯 때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라 했다.
또한 그 국토의 중생들이 가릉빈가의 소리를 듣고 나서 모두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고도 했다. <묘법연화경>에서는 부처님의 음성을 가릉빈가 음성에 비유하여 말했고, 후세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미화하여 선조(仙鳥)ㆍ호성조(好聲鳥)ㆍ묘음조(妙音鳥)ㆍ미음조(美音鳥)ㆍ옥조(玉鳥)라고 불렀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음악신 또는 음악의 창시자로 믿고 있는데, 이것은 인도
음악의 기원 전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의 고대 전설에 의하면, 설산(雪山,히말라야산)에 신기한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늘 무시카(Musikar)라고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일곱 개 구멍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계절을 변화에 따라 달랐다. 소리의 높낮이와 곡조의 조화가 미묘하여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천 년을 산다고 하는 가릉빈가는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그 주위를 돌면서
각종 악곡을 연주하며 열락의 춤을 추다가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는다. 그러나 곧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부화하여 과거의 환상적 생활을 계속하다가 또 불 속에 뛰어들어 타 죽는다. 이렇게 하면서 생사의 순환을 계속한다. 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가릉빈가에 대한 전설은 대대로 전해져 지금도 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가릉빈가는 불경에 나타나는 상상의 새로서 극락에 깃들며, 인두조신(人頭鳥身)에 용꼬리가 달린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 또한 매우 아름답고 묘하여 묘음조(妙音鳥), 호음조(好音鳥)라 하며 극락에 깃든다하여 극락조라고도 한다.
가릉빈가의 형상은 중국 한(漢) 대 이후에 등장하며, 그 후대의 고분벽화 또는 무덤의 화상석각에서 볼 수 있다. 당대(唐代)의 기와 마구리에 나타나는 가릉빈가의 무늬는 대체로 새의 형체를 구체화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는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마구리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단청 문양으로 이용되는 가릉빈가의 모습은 대개 다리와 몸체와 날개는 새의 형상이고, 얼굴과 팔은 사람의 형상이다. 몸체는 깃털로 덮여 있고, 머리에 새의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쓴 경우도 있고,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창방 등 계풍의 별화로 그려진다.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2. 가부좌 (跏趺坐)
스님들이나 수행자들이 정각을 이루기 위하여 수행할 때 앉는 자세를 말하며 결(結)가부좌와
반(反)가부좌가 있다. 결가부좌에는 발의 위치에 따라 길상좌(吉祥坐)와 항마좌(降魔坐)로 나누며
반가부좌는 반가좌 또는 보살좌(菩薩坐)라고도 한다.
일부 언론이나 문학작품에서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것을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본래 의미와는 다른 뜻이며 오히려 묵묵히 한길을 걷는다는 뜻으로 스님이나 수행자들의 앉는
자세를 가부좌 (跏趺坐)라 한다.
3. 가사 (袈裟)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겉옷 위에 가사라는 것을 입는다. 가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놓은 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지게 수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속고의 위에 바로 가사를 둘렀다. 즉 겉옷과 가사의 구별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가사가 곧 겉옷 이였다. 물론 더운 인도에서는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중국, 한국, 일본의 경우는 추운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에 겉옷을 입고 그 위에 가사를 두르게 되었다.
가사는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asaya)의 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카사야는 ‘적갈색의’ 라는 뜻이다. 그래서 염의(染衣), 간색의(間色衣), 적혈의(赤血色衣), 괴색의(壞色衣) 등으로 번역된다.
인도의 불교도는 교단에 입문하면 먼저 머리털과 수염을 깍고 적갈색의 옷을 입게 된다. 그 적갈색의 옷이 가사이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불교의 수행승이라고 구분되었다.
고대 인도인은 남자나 여자나 일상 생활에서는 속고의와 웃옷밖에 입지 않았다. 속고의는 안타리야 (antariya), 안타르 바스트라 (antar-vastra), 안타르 바사르 (antar-vasas)등으로 불렀다.
그 어느 것이나 ‘안에(안타르) 입는다’라는 뜻이다. 또한 웃옷은 웃타라상가 (uttarasanga)니 웃타리야 (uttariya)니 한다. ‘위에 (웃타라) 입는다’라는 뜻이다.
불교도들은 그런 습속에 따라 속고의와 웃옷을 입었다.
그 음이 안타회(安陀會)라고 표기되고 중의(中衣), 중착숙의(中着宿衣)라고 번역되는 것이 안타리야,
즉 속고의이다.
울다라승(鬱多羅僧)으로 그 음이 표기되고 상의, 상착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웃타라상가 즉 웃옷이다.
그 밖에도 상가티(samghati)라는 것을 입는다. 승가리(僧伽梨)라고 그 음이 표기되고 대의(大衣),
중의(重衣)라고 번역된다. 탁발하러 나가거나 왕궁에 초대받았을 때에 입는 정장용의 옷이다.
승가리, 울다라승, 안타회를 三衣라고 부르는데 불교도는 이들 삼의만을 입게 되어 있었다.
삼의에는 청, 항, 적, 백, 흑 등 다섯 가지의 화려한 색깔은 피하고 칙칙한 느낌을 주는 괴색이 쓰였다.
그 색은 원래 카사야이다. 당초에 삼의는 사람들이 내버린 넝마를 주워다 빨아서 지었으므로 분소의
(糞掃衣)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규정된 삼의만으로는 추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 옷을 더
껴입게 되었다. 극채색을 쓴 화려한 가사도 나타났다.
안타회는 5조 가사가 되고, 울다라승은 7조, 승가리는 9조가 되었다. 그 어느 것이나 금란(金襴),
금릉(金綾) 그리고 무늬와 솔기가 가해지고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으로 변형되었다. 게다가 값도
엄청나게 비싼 것이 되었다.
☀ 가사 십리 (袈裟十利)
가사를 착용함으로써 얻는 열 가지의 이익이 가사십리(袈裟十利)다.
첫째가 몸을 가리어 수치(羞恥)와 참괴(慙愧)를 여위는 것이요,
둘째는 추위, 더위와 모기, 벌레 등의 해를 막는 것이며
셋째는 사문(沙門)의 상을 나타내어 보는 이가 기뻐서 사심(邪心)을 여의 게 되며
넷째 인천(人天)의 보탑의 상(想)이 생(生)하여 모든 죄가 소멸됨이고
다섯째 보는 이는 병난이 없고 음식이 풍족해 지며
여섯째 괴의(壞衣)로써 탐욕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일곱째 부처님의 정의(淨衣)로 깊이 번뇌를 끊고 좋은 복전을 지음이며
여덟째는 죄가 소멸하고 십선(十善)을 을 생(生)함이요
아홉째는 좋은 복전과 같아서 보리의 씨앗이 증장하게 함이요
열 번째로는 갑주(甲冑)와 같아서 번뇌의 독전(毒箭)이 해치지 못함이다.
<한국불교대사전, 보련각, 1982, 38쪽>
이처럼 가사의 공덕은 무궁하며 가사는 단순한 의복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강한 불교의 상징과 이미지이며 부처님 사상을 실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복이며, 종교적인 실용성을 겸비한 하나의 복합체로서 또 하나의 몫을 하고 있다.
☀ 가사의 크기는 실용성을 감안하여 적당한 크기여야 하는데 ‘율’에서는
‘자기의 몸을 재서 적당한 분량으로 맞게만 입으면 된다’고 했다.
대가사는 이의를 갖추어 의식을 집전할 때 수하는데 가로 180-240cm, 세로 85-120cm의 장방향이다.
야외법회 또는 예불을 올릴 때나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하여 수하는 반가사는
보통 가로160cm~170cm, 세로 60cm~70cm의 크기로 한다.
☀통문(通門)이란?
마름질한 조각들을 연결해 만들어내는 가사는 일반 바느질과는 달리 그 연결 부위에 통문(通門)을
만든다. 통문은 콩을 넣었을 때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연결 부위마다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 통문을 통해 부처님이 통하는 것이다.
가사를 수한 스님에게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사천왕이 외호를 한다. 부처님께서는 우주와 법계에
가득한 참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 문을 통해 다가오는 것.
☀ 가사의 다른 이름
가사는 용도 모양 공덕 색에 의한 명칭이 다 다르다. 염의(染衣) 적혈색의(赤血色衣) 괴색의(壞色衣)
간색의(間色衣)는 색깔을 나타낸다.
신도들이 시주함으로 복을 짓기에 복전의(福田衣), 속념을 떠나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효과를 지녔다
해 해탈복(解脫服)이라고도 불린다.
이밖에 여법의(如法衣) 응법의(應法衣) 항마의(降魔衣) 자비복(慈悲服) 분소의(糞掃衣)
공덕의(功德衣) 라는 명칭도 가졌다.
☀ 조계종 통일가사의 품계는 법계에 따라 조의 수(數)로 구분된다.
‘법계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종사(명사)법계는 25조, 종사(명덕)법계는 21조,
종덕(현덕)법계는 19조, 대덕(혜덕)법계는 15조,
중덕(정덕)법계는 9조, 견덕(계덕)법계는 7조, **( )안은 비구니.
법계를 수하지 않은 사미(니)는 단일 조로 이뤄진 만의를 수하게 된다.
4. 가전연존자 (迦旃延尊者): 논의제일 가전연존자
가전연 존자는 서인도 아반티국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국왕의 명을 받고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갔다가 설법을 듣고 도를 이루었습니다. 존자는 다시 아반티국으로 돌아가서 국왕에게 여덟 가지 꿈의 인연(因緣)에 대해 설법하여 국왕을 교화하였습니다.
존자는 부처님께서 간략히 설한 법문을 널리 분별하여 논리정연하게 해석하였으므로, 부처님의 법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비구들은 가전연 존자를 찾아와 그 뜻을 물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전연 존자는 인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불법을 펼쳤습니다.
특히 인도 서북부의 마투아 지역에서 행한 가전연 존자의 교화활동은 그의 진면목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마투아 지역은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는 등 다섯 가지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교화에 나서지 않았던 곳입니다.
존자는 이 황량한 곳에 처음으로 교화의 발길을 내딛어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습니다.
상대방의 그릇에 맞는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여 설법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전연 존자의 일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더합니다.
<월간 법공양:조계종 원로위원 석주스님 글>
5. 가책 (呵責) ☀불교에서 나온 말
본래 ‘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수행자와 ‘노자라’ 라는 수행자가 다투기를 좋아해 수시로 싸움을 벌일 뿐
아니라 주위의 수행인들을 부추겨 싸움을 자주 일으키자, 부처님께서 이 두 사람을 꾸짖어
‘가책갈마(呵責鞨磨)’를 제정했다고 한다.
비난하다, 꾸짖다, 비난해서 물리치고 배격한다, 는 의미로 사용되어 오던 것이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망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6. 각단예불 (各壇禮佛)
불보살님들께 예참하는 의식이다. 큰 법당에서 드리는 예불문과 각 전각에서 드리는 예불문이 있다.
큰 법당에 드리는 예불문에는 향수해례, 오분향례, 칠처구회례, 사성례, 대예참례, 관음예문례 등 아홉
종류가 있다. 그리고 각 전각에 드리는 예불문도 극락전, 팔상전, 약사전, 용화전, 대장전, 관음전, 나한전, 명부전, 신중단, 산왕단, 조왕단, 칠성단 등이 있다.
향수해례란 연화장엄세계에 두루 계시는 모든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15배의 절을 하는 것이고, 대예참례와 소예참례는 시방삼세 부처님의 명호와 이력을 낱낱이 부르면서
예참하는 것이다.
오분향례는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의 오분향으로써 예불을 드 인격형성의 다섯 가지 과정을 상징한 것이다.
칠처구회례는 ‘화엄경’에서 아홉 번 설법한 것을 낱낱이 기억하여 예배드 리는 것이다.
사성례는 극락세계에 있는 아미타불과 관세음, 대세지, 일체청정대해중보 살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극락전 의식은 아미타 삼존불께 지심으로 귀의하는 예배를 하고 찬게를 한다.
무량광중 화불다(無量光中 化佛多) 앙첨개시 아미타(仰瞻皆是 阿彌陀)
응신각정 황금상(應身各挺 黃金相) 보계도선 벽옥라(寶繫都旋 碧玉螺) 라고 찬게를 하고
‘고아일심 귀명정례 (故我一心 歸命頂禮)’ 하며 마친다.
(무량한 광명가운데 화신불 헤아릴수 없어
우러러 바라보니 모두 다 아미타부처님이시네
응신불은 각각 황금상 모습으로 출현하시고
보계의 모두 돌리신 모습은 벽옥의 소라같네
그러므로 저희들이 일심으로 귀명하여 정례드립니다.
6. 각단정근 (各壇精勤)
☀ 석가모니불 정근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석가모니불”
석가여래종자심진언 (釋迦如來種子心眞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박 (3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천상천하 어느누가 부처님과 견주오리 시방세계 둘러봐도
비길자가 전혀없고 이세상의 모든것을 남김없이 살펴봐도
부처님을 따를자가 천지간에 하나없네.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
고아일심귀명정례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供德 故我一心歸命頂禮)
시방세계 모든먼지 몇개인가 헤아리고 큰바다의 많은물을
남김없이 들이켜도 저허공의 크기재고 바람묶는 재주라도
부처님의 크신공덕 다말하지 못하리라.
원멸 사생육도법계유정 다겁생래제업장 아금참회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願滅 四生六道法界有情 多劫生來諸業障 我今懺悔稽首禮 願諸罪障悉消除 世世常行菩薩道)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當生極樂國 同見無量壽 皆共成佛道)
사생육도 법계중생 여러겁에 지은업장 원하건대 죄업장이 모두소멸
하여지고 제가지금 참회하고 머리숙여 절하오니 원하오니 죄업장이
모두함께 소멸되고 세상마다 보살도를 실천하여 닦아옵고
원하오니 이공덕이 모두에게 두루미쳐 저희들과 중생들이 극락국에
태어나서 무량수를 친견하고 모두성불 하여지다.
☀약사여래정근(藥師如來精勤)
나무 동방 만월세계 십이상원(南無 東方滿月世界 十二上願 藥師如來佛)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십이대원접군기 일편비심무공결 범부전도병근심 불우약사죄난멸
(十二大願接群機 一片悲心無空缺 凡夫顚倒病根深 不遇藥師罪難滅)
지극한 마음으로 동방만월세계 열두 가지 높은 원을 성취하신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열두가지 큰원으로 중생들을 건지시니 한결같은 자비심은 한 치의
빈틈없네 뿌리깊고 뒤집힌 범부들의 번뇌병은 약사여래 못만나면
죄업소멸 어려워라.
☀ 아미타불정근(阿彌陀佛精勤)
나무 서방정토 극락세계 무량수여래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無量壽如來佛)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 (阿彌陀佛 本心微妙眞言)
다냐타 옴 아리 다라 사바하 (3번)
계수서방안락찰 접인중생대도사 아금발원원왕생 유원자비애섭수
(稽首西方安樂刹 接引衆生大導師 我今發願願往生 唯願慈悲哀攝受)
서방정토 극락으로 중생인도 하옵시는 아미타불 부처님께 머리숙여
절하오며 일심정성 귀의하여 극락왕생 발원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원멸 사생육도 법계유정 다겁생래제업장
아금참회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3번)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 관음정근(觀音精勤)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南無 普門示現 願力弘深 大慈大悲 救苦救難)
(지극한 마음으로 보문에서 나투시는 깊은 원력 지니신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께 절하옵니다.)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觀世音菩薩 滅業障眞言)
옴 아로늑계 사바하 (3번)
구족신통력 광수지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具足神通力 廣修智方便 十方諸國土 無刹不現身)
팔만사천 신통력을 남김없이 갖추시고 한량없는 방편의힘
고루고루 지니시어 시방세계 펼쳐있는 중생있는 모든국토
나타나지 않는곳이 한군데도 없으셔라.
원멸 사생육도 법계유정 다겁생래제업장
아금참회계수례 원제죄장실소제 세세상행보살도 (3번)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 지장정근(地藏精勤)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南無 南方化主 大願本尊)
“지장보살 ~~~~지장보살” (地藏菩薩)
지장보살 멸정업진언 (地藏菩薩 滅定業眞言)
옴 바라 마니다니 사바하 (3번)
지장대성위신력 항하사겁설난진 견문첨례일념간 이익인천무량사
(地藏大聖威神力 恒河沙劫說難盡 見聞瞻禮一念間 利益人天無量事)
지장보살 큰성현의 위대하신 그신력은 항하사겁 찬탄해도
다말하지 못하리라 보고듣고 예배하는 한생각의 공덕에도
한량없는 이익주어 인천계를 도우시네.
☀ 신중정근(神衆精勤)
나무 금강회상 “화엄성중~~~화엄성중” (南無 金剛會上 華嚴聖衆)
화엄성중혜감명 사주인사일념지 애민중생여적자 시고아금공경례
(華嚴聖衆慧鑑明 四洲人事一念知 哀愍衆生如赤子 是故我今恭敬禮)
제석천의 큰지혜는 거울처럼 밝고맑아 사대주의 사람일을
한생각에 살피시고 중생들을 아들처럼 사랑으로 감싸시니
그러므로 우리들은 공경예배 올립니다.
☀ 칠성정근(七星精勤)
나무 북두대성 “칠원성군~~~칠원성군” (南無 北斗大聖 七元星君)
영통광대혜감명 주재공중영무방 나열벽천임찰토 주천인세수산장
(靈通廣大慧鑑明 住在空中映無方 羅列碧天臨刹土 周天人世壽算長)
신령스런 신통력과 넓은지혜 밝게살펴 허공중에 머물면서
아니비춤 전혀없네 푸른하늘 자리하다 이국토에 내려오셔
천상계와 인간계에 수명복덕 증장하네.
☀ 산신정근(山神精勤)
나무 만덕고승 성개한적 (南無 萬德高僧 性皆閑寂 山王大神)
“산왕대신~~~~산왕대신”
영산석일여래촉 위진강산도중생 만리백운청장리 운거학가임한정
(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嶂裡 雲車鶴駕任閒情)
오랜옛날 영산화상 여래부촉 받으시고 크신위엄 갖추시여
중생제도 하시오니 수만리의 흰구름과 깊고푸른 산속에서
학이끄는 구름수레 한가로이 지내시네.
☀ 용왕정근(龍王精勤)
나무 삼주호법 위태천신 (南無 三洲護法 韋駄天神 龍王大神)
“용왕대신~~~~용왕대신”
시우행운사대주 오화수출구천두 도생일념귀무념 백곡이리해중수
(施雨行雲四大洲 五花秀出救千頭 度生一念歸無念 百穀以利海衆收)
이사천하 사대주에 구름펴고 비뿌리니 다섯꽃이 빼어나서
많은사람 구원하네 중생제도 일념마저 무념으로 돌아갈때
많은중생 백곡으로 이익주고 거두시네.
☀ 독성정근(獨聖精勤)
나무 천태산상 독수선정 (南無 天台山上 獨修禪定 那畔尊者)
“나반존자~~~~나반존자”
나반신통세소희 행장현화임시위 송암은적경천겁 생계잠형입사유
(那畔神通世所稀 行藏現化任施爲 松巖隱跡經千劫 生界潛形入四維)
나반존자 지닌신통 세상에는 드물어서 숨었다가 나타내길
마음대로 하신다네 솔숲바위 자취묻고 일천겁을 지내시고
중생계에 모습감춰 사방팔방 자유롭네
☀ 나한정근(羅漢精勤)
나무 영산당시 수불부촉 불입열반 현서선정 천상인간 응공복전
(南無 靈山當時 受佛咐囑 不入涅槃 現棲禪定 天上人間 應供福田)
“나한성중~~~~~나한성중” (羅漢聖衆)
사향사과조원성 삼명육통실구족 밀승아불정녕촉 주세항위진복전
고아일심 귀명정례
(四向四果早圓成 三明六通悉具足 密承我佛叮嚀囑 住世恒爲眞福田
故我一心 歸命頂禮)
사향사과 일찍이 원만히 이루시고 삼명과 육신통을
두루두루 갖추셨네 비밀스레 부처님께 법의부촉 받으시고
사바세계 늘머물며 참복전이 되시옵네.
☀ 미륵존불 정근 (彌勒尊佛)
나무 현거도솔 당래교주 (南無 現居兜率 當來敎主 彌勒尊佛)
“미륵존불~~미륵존불”
고거도솔허제반 원사용화조우난 백옥호희충법계 자금광상화진환
(高居兜率許躋攀 遠俟龍華遭遇難 白玉毫輝充法界 紫金光相化塵寰)
높고높은 도솔천서 중생교화 하옵시고 멀고멀어 만나기힘든
용화세계 기다리네 백호에서 나온광명 온법계에 가득하여
자마금상 모습으로 온세상을 교화하네.
☀ 조왕정근(竈王精勤)
나무 팔만사천 “조왕대신~~조왕대신” (南無 八萬四千 竈王大神)
향적주중상출납 호지불법역최마 인간유원래성축 제병소재강복다
(香積廚中常出納 護持佛法亦催魔 人間有願來誠祝 除病消災降福多)
향이쌓인 부엌에서 출납맡아 다스리며 불법을 지키시고
마귀들을 꺾으시네 소원가진 사람들이 정성으로 축원하면
병과재앙 없애주고 많은복록 내리시네.
8. 각덕 (覺德)
각덕은 신라의 스님으로 성품이 총명하고 학문이 광박하였다.
도를 배우려는 이는 모름지기 스승 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어늘, 편안하게 지내려고만 하니 이는 불제자의 은혜 갚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양(梁)나라로 건너갔다.
이가 곧 신라 스님으로 중국에 가서 법을 구한 시초였다.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유명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고 도학(道學)이 더욱 높아졌다. 서기 549년(진흥왕 10년)양나라 사신과 함께 부처님 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이때 우리나라에 부처님 사리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다. 임금은 백관으로 하여금 예의를 갖추고 흥륜사(興輪寺) 앞길까지 나가서 그를 맞게 했다 한다.
9. 간경 (看經)
간경은 경전을 읽고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립문자를 표방하는 선사상(禪思想)을 실천하고 이해하기 위함이다.
경전은 삶의 바른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창고로서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공덕이 된다.
원래 경전은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널리 펴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즉 경전을 통해 깨달음을 이해하고 그와 같이 실천하기 위해 읽었으나 후에는 읽고 외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법으로 인식됐다. 또한 부처님 앞에서 경전을 읽으며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며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을 것을 다짐한다. 또는 죽은 자를 위해 독경을 함으로서 그를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간경(看經)은 경전을 읽는 모든 행위를 일컬으며 읽는 방법과 의미를 구분해 풍경(諷經), 독경(讀經),
독송(讀頌) 이라고도 하며 독경과 예배를 부지런히 하는 것을 근행(勤行)이라고 한다.
10. 간화선 (看話禪)
교리중심의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형성된 수행법의 하나가 간화선이다. 한국불교가 다른 나라의 불교와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참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선불교에 있다. 선은 부처님의 깨우침을 얻는 직접적인 의 변화가 있었다.
이른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인데 이는 하나의 문제를 깊이 참구해 그것의 본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간화선으로의 변화다. 이 수행법은 화두를 통해 수행자가 큰 의심을 일으키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는 수행법으로 언어에 숨겨져 있는 근본 내용을 정확히 깨달아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선종의 중심인 된 간화선은 달마대사를 초조(시조)로 삼아 혜능스님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발달하였다. 이때 정리된 1천7백여개의 화두가 정리되어 한국에 도입되면서 한국 선불교 수행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11. 감로 (甘露)
‘감로’는 글자대로 풀이하면 ‘단 이슬’인데 그 기원은 중국인지 인도인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불경에
‘감로’라고 번역되어 있는 경우는 대개 산스크리트어 암이타(amrta)를 번역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암리타를 불사(不死)라고 해석하면 불사의 영약(靈藥)으로서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으므로 어원해석이 불사로 정착되었고 또한 암이타는 열반(니르바나)의 동의어로서도 쓰이는 수가 흔히 있다.
불교를 ‘감로의 법문(法門)’이라고 부르는 경우에도 불사의 실현이라고 할 열반을 암리타에 견준 것이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불사(不死)가 얻어졌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법륜을 펴기 위해 나는 베나레스로 간다.’라고 말했다. 신들은 암이타를 마시고 불사(不死)에
이르렀다고 한다.
12. 강당 (講堂) ☀불교에서 나온 말
인도에서 시작된 말로 집회장소를 의미하는 그라아사다 사브라 산타가라를 한역한 것으로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진 말이다.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도 ‘사찰에서 경전을 강(講)하거나 법을 설(說)하는 장소’
‘불교경전을 강론하는 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행자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장소로 스님들이 운집해
경전을 강독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곳이 강당이다.
한국과 고대 일본사찰에서는 부처님이 모셔진 금당(金堂)뒤에 강당을 세웠는데 경주불국사와 황룡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많은 이들이 모여 진리를 논했던 곳이 강당이고 요즈음엔 학교나 관공서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곳이 강당이다.
13. 걸식 (乞食,탁발)
‘남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일’ ‘얻어먹는 일’ 그것이 걸식(탁발)이다.
범어 ‘Pinda-pata'에서 나온 말로 ’음식을 주는 것‘ 이란 뜻에서 '음식을 구하는 것’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부처님은 걸식에 있어 지켜야 할 네 가지를 당부하셨다.
1)심신을 바르게 하여 계에 머무를 것(住正戒)
2)용모를 바르게 하여 위의를 지켜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경과 신심을 일으키게 할 것(住正威儀)
3)부처님이 가르치신 법도에 맞게 할 것이며, 다섯 가지 부정을 여윌 것 (住正命)
4)육신은 苦의 원인이며, 음식을 먹는 것은 몸을 유지하며, 수행을 위한 것으로 알 것(乞食四事)
우리나라에서도 걸식수행(托鉢修行)을 한 바 있으나 지금은 사회적 현실 을 고려해 종단 차원에서 금하고 있다.
14. 겁 (劫)
겁은 구족하게는 겁파(劫波,劫跛)라 음역한다. 분별시분(分別時分), 분별시절(分別時節), 장시(長時),
대시(大時)라 번역한다.
인도에서는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사억삼천이백만년을 1겁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보통
연월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을 말한다. 대개 겁을 개자(芥子)와 불석(佛石)의 두 가지
비유를 든다.
겨자겁이란 둘레 사십리 되는 성중에 개자를 가득 채워놓고 장수천인(長壽天人)이 3년 마다 한 알씩
가지고 가서 죄다 없어질 때까지를 1겁이라 한다. 또한 불석겁 또는 반석겁(磐石劫)이란 둘레 사십리
되는 돌을 하늘 사람이 무게 3수(銖)되는 천의(天衣)로서 3년마다 한 번씩 스쳐 그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1겁이라 한다.
대비바사론(大毘婆娑論)》《대지도론(大智度論)》 등에도 같은 내용의 비유가 있다.
앞의 것을 겨자겁[芥子劫], 뒤의 것을 반석겁(盤石劫)이라고 한다.
겁(劫)을 소(小)ㆍ중(中)ㆍ대(大)로 나누어 이 세계의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이 진행되는
기간을 일대겁(一大劫)이라고 하기도 한다. 석가가 발심해서 성불할 때까지 수행에 소요된 시간을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 백대겁(百大劫)이라고 한다. 아승기(asamkhya)는 무수(無數)라고 옮기며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또 겁에는 대, 중, 소의 3종이 있다. 둘레 40리 되는 성 또는 돌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는 것을 1소겁, 둘레 80리를 중겁, 120리를 1대겁이라 한다. 혹은 인수(人壽) 팔만사천세 때로부터 백년마다 한 살씩 줄어 10세 때까지 이르고 다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 인수(人壽) 팔만사천세에 이르되 한 번 줄고 한 번 느는 동안을 1소겁이라 하고 20소겁을 1중겁, 4중겁을 1대겁이라 한다.
또 한 번 늘거나 한 번 주는 것을 1소겁, 한 번 늘고 한 번 줄어드는 동안을 1중겁이라 한다. 성겁(成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을 각각 20중겁씩 합하여 80중겁을 1대겁이라 한다.
15. 격죽 (擊竹)
향엄지한(香嚴智閑)이 출가하여 위산의 회상에 있었는데, 위산이 법기(法器)인 줄로 알고 지혜를
끌어내기 위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너의 평생 공부한 지혜나 경권(經卷)에서 얻은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네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 동서를 분간할 줄 모르던 때의 본분사(本分事)를 한마디 말해 보라. 내가 너에게
수계(授戒)하려 한다.”
지한이 아득하여 대답하지 못하고 얼마 동안 망설이다가 소견대로 몇 마디 대답하였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한이 간곡히 부탁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위산이 말했다.
“내가 내 소견을 말하더라도 너의 안목에는 아무 이익도 없을 것이 아니냐?” 지한은 이에 자기 방에 들어가 기록하여 두었던 스님들의 어구(語句)를 두루 찾아보았으나 한마디도 대답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책에 쓰기를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림의 떡만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 지한은 그때까지 공부한 책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밥중 노릇을 면치 못하리라.”
지한은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梁)에 가서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유적을 보고 그곳에서
수행했다.
하루는 산중에서 풀을 베어 버리는데 마침 옆에 기왓장이 있어 그것을 던지다가 대나무에 부딪쳐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쳤다. 그러자 지한이 문득 웃으면서 곧 돌아가 목욕하고 향을 꽂고 멀리
위산을 향하여 절하면서 말했다.
“화상의 큰 자비여! 은혜 부모보다 크옵니다. 그 때에 만일 나에게 말씀하셨던들 어떻게
오늘 이 일이 있겠나이까?”
하고 게송을 읊었다.
16. 견문각지 (見聞覺知)
견문각지란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와 혀, 몸으로 냄새와 맛과 촉감을 알고,
뜻으로 법을 아는 것을 견문각지라 한다.
즉 심식(心識)이 객관세계에 접촉함을 총칭한 것이다.
17. 경허성우선사 (鏡虛惺牛禪師)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선사의 속명(俗名)은 동욱(東旭), 법명은 성우(惺牛),
법호는 경허(鏡虛)이다. 본관은 여산(廬山)으로 조선 헌종 12년(1849) 전북 전주 자동리에서
부친 송두옥과 모친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절에 와 있던 어느 거사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고 기초적인 불교교리를 익혔다.
이후 당시 교계의 태두였던 동학사(東鶴寺)의 만화(萬化, 생몰년 미상) 강백에게 천거되어 불교경론
(佛敎經論)을 배우니 이로써 불교의 일대시교(一大示敎)뿐만 아니라 유서(儒書)와 노장 등의 사상을
고루 섭렵하였다. 그리고 23세에 스승인 만화 강백의 뒤를 이어 동학사 강백으로 추대되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어느 날 옛 스승인 계허스님을 찾아가던 중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문자공부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사무치게 절감하고 대발심하여 동학사로 돌아와 강원을 철폐하고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도 가지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 화두를 참구하여
철저히 수행하다가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확철대오하니, 1879년 34세 때였다. 고종 17년(1880) 봄에 연암산 천장사에 들어가 보림장양에 들어가니 이듬해 6월 활연대오하여 오도가
(悟道歌)를 불렀다.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홀문인어무비공 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유월연암산하로 야인무사태평가)
문득 사람들이 콧구멍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즉시 삼천세계가 나의 집임을 알았네
6월 연암산 아래 길에서 야인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
18. 경운선사 (慶雲禪師)
경운선사는 1852년 경남에서 탄생하였으며 속성은 김씨이다.
선사는 구한말의 유명한 교학자요, 강백이요, 사경사(寫經師)로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그는 1910년
서울에 처음으로 중앙포교당이 창립될 때 교화사업을 벌였고, 1917년에 조선불교 선, 교 양종교무원이
창립될 때 교정에 추대되기도 했다.
선사는 사경으로 유명한데 통도사 금자(金字) <법화경,法華經> 사경에 관한 예기가 유명하다.
선사의 나이 29세 때에 당시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된 불사로, 비단 위에다 금박으로 <법화경> 1질을
모두 사경했다.
이때 선사가 거처하는 방에 누런 족제비 한 마리가 들어와서 자꾸 맴을 돌고 있었는데 화상은 이것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옳지, 저놈이 비록 미물일망정 우리가 이번에 사경불사(寫經佛事)하는 것을 보고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구나.”
그리고는 족제비의 털을 베어서 붓을 만들고 또 그 붓으로 사경불사를 끝냈다고 한다.
이때 쓴 금자 <법화경>은 양산 통도사에 지금껏 전해지고 있는데 그 단정하고 고운 서체는
29세 젊은이의 필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선사의 나이 45세 때는 선암사에서 6년 동안에 걸쳐 <화엄경>을 사경하였는데 이때 한 행을 쓰고
일 배를 할 정도로 정진하는 자세로 사경하였다고 한다.
그는 1936년 선암사에서 열반하였는데 세수 85세였다.
1 9. 건달 (乾達) ☀불교에서 나온 말
국어사전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짓 또는 그러한 사람’으로 실려 있으나
건달의 본래 의미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고대인도 설화에 등장하는 불법의 수호자에서 유래한
건달바(乾達婆)의 줄인 말이 건달이기 때문이다.
인도신화에서는 천상의 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 그 소마는 신령스런 약으로 알려져 왔으므로 건달바는 훌륭한 의사이기도 하며, 향만 먹으므로 식향(食香)이라고도 한다. 식향(食香)ㆍ향음(香陰)ㆍ
심향(尋香)ㆍ심향행(尋香行)등으로 한역되며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긴나라와 함께 제석천의 음악을 담당하는 신이며,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향만을 먹는다.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정법을 찬탄하고 불교를 수호한다. 인도에서는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둘째는 사람이 죽은 뒤 다른 몸을 받기 전인 영혼신(靈魂身), 곧 중음신(中陰身)ㆍ중유(中有) 등으로
한역한다. 태어날 다른 곳을 냄새로 찾아 다닌다고 하여 심향행이라고도 불린다. 모두사자의 갈기와 같은 관을 쓰고 있다.
석굴암의 8부중, 경주남산의 동서 3층 석탑,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8부중의 석재, 경주박물관 소장
8부중에서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건달패"라는 용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 또는 불량배 집단을 일컫는다고도 한다.
20. 견성 (見性)
견성은 ‘중생의 성품을 깨닫는다.’는 의미로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표현하고 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며 깨우침을 얻는 종교다.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통해 시작된다. 그러나 그 깨우침의 방법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왔다. 근본불교 대승불교를 거쳐 선불교에 이르러서는 깨침의 방편을 ‘직접적으로 마음을 탐구하는 것(견성:見性)’을 중시한다.
견성(見性)을 중시하는 선불교에서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단박에 깨우침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바른 마음을 일으켜 마음을 보면 성불한다(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는 것이다.
‘물을 마셔봐야 물의 시원함을 알 수 있는 것<단경>’처럼 수행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흐리는
여러 현상에서 벗어나고 보면 본래의 “나”를 깨우칠 수 있다.
견성은 자기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살아 있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