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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다리를 많이 다치셨나 봅니다. 조심하셔야겠어요. 날씨도 추운데..> 압박 붕대로 질끈 동여맨 내 발을 보고 묻지도 않은 언사를 힘 안 들이고 마구 쏟아내는 아저씨가 실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사인데 그냥 지나치기도 뭐해 <아, 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지나친다. 차에서 내려 은평경찰서 교통과 문을 들어서려는데 건물 밖에 서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이런 인사를..
문 앞으로 다가서는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 아저씨 또 묻는다. 속으로 정말 실없는 아저씨네 하면서 <면허증 찾으러 왔는데요.> 조금 뚝뚝하기는 하지만 묻는 말마다 꼬박꼬박 대답하는 나는 또 뭥미? 면허 따 놓고 한 반년 시골 길 오갈 때만 운전하다 늦둥이 막내 들어서는 바람에 그만, 장롱면허 23년째 있으나마나 그래도 갱신해 준다니 면허증 찾으러 간 길이다.
그 순간 아저씨 <신분증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니요? 신분증이 있어야 되나요?> 되물으며 세상엔 참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도 많기도 하지 이러고 차에 앉은 울 서방님을 쳐다보고 어떡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니 서방님도 다 듣고 있었던지 아니 신분증도 안 가지고 오는 사람이 어딨냐고 타박이다.
고런 땐 어이 그리 귀도 밝으요 서방님! 중 중대며 문을 밀려니 이 아저씨 앞장서 문을 열고 서서 <아, 미인이십니다.> 뜬금없어 <네?> 휙 쳐다보니 <신분확인 될 만 한 게 뭐 없을까요?> 되묻는다.
매사에 감이 느린 나 경찰 정복이 아니고 점퍼 차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제서야 순간 아, 이 아저씨도 경찰이시구나 감을 잡고. 어쨌거나 열어준 문이니 들어가긴 해야겠지라우, 히히 황송하기도 혀라. 문 안으로 들어서며 <그런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 얼굴로 확인하면 안될까요? > 어디서 그런 똥배짱이 올라오는지. 나이 먹었다는 표시를 줄줄 흘린다.
지금에사 말이지만 그 아저씨야 말로 속도 좋다. 진짜 실없기 그지없는 말을 대답이라고 흔연스레 내어 놓으며 창구를 훑어 보는데 <아, 아주머니 미인이십니다.~> 에고에고 이 아자씨 또 묻지않는 말을 두번씩이나. 으쪄? 그리고는 창구를 향해 <면허증 찾으러 오셨는데 신분증을 안가지고 오셨다네~ >룰루랄라 중계를 한다. 창구에 앉아있던 앳된 여경 벌떡 일어서더니 그 분의 생중계는 뒀다 엿바꿔 먹을건지 아랑곳 않은 채 <신분증 가져오셨나요?> 앵무새처럼 무미건조 하게 같은 말을 하고.
나는 나대로 방금 문 앞에서 뒤지던 가방을 다시 뒤적이며 좀 전에 했던 대로 <안 가져왔는데요, 이 얼굴 면허증이랑 대조하면 안 될까요?> 높게 올라온 데스크 위로 얼굴을 쓱 디민다. 좀 민망스럽긴 하다. 여경 흠칫, 눈으론 내게 옆 칸에 나이먹은 여경을 가리키고 입은 나이 든 선임을 향해 <이분이 신분증을 안가져 오셨다는데.. > 퍼 머리의 아줌마 여경은 눈길 한번 찔끔 주더니 카드 도난신고를 온 남자와 대화 잇는 중이고.
내 뒤에 섰던 경찰 아저씨는 어느새 창구 안쪽으로 들어가 여경에게 들으라는 듯 <얼굴로 확인해 드리지 뭐.> 동시에 서랍을 열어 노랑 고무줄로 다발지어 놓은 면허증을 꺼내시더니 양손으로 한장씩 옮기다 말고 또 <아, 아주머니 정말 미인이십니다.> 이런이런. 이 아저씨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혹 날 닮아 있는 걸까? 당혹스럽기도 하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세 번씩이나 대놓고 미인이란 소릴 할 수 있는 저 형사 양반의 배짱도 배짱이려니와 그의 옛날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좀 난감하기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머리 없는 이 아줌시 딱히 할 말도 못 찾은 지라 쿡쿡 그저 소리도 못내고 <미인이라 하시니 감사하긴 한데요, 이 나이에 그런 말씀 첨 듣습니다. 근데 어떡하죠? 대접할 것도 없~ 고> 나는 순간 모면용 멘트를 날린다. <있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할 말 다하는 이 경찰 아저씨는 아마, 나서 미인을 본 적이 없던지 미인에 무지무지 굶주렸던지 아니면 나이 들어 미인의 기준을 깜빡깜빡 하는 중이거나 그도 아님 은평경찰서엔 나만도 못한 인물의 여인들만 맨날 드나들었던지 이중의 어느 한 가지겠지.ㅋ
어쩜 길거리에 나설 땐 이쁜 여자를 보면 흘끔거리지 말고 질끈 눈을 감고 다니라는 아내의 엄명을 완수하던 완벽한 공처가였다가 이제 나이들어 그나마 싸나이 기질의 호르몬 줄대로 줄고 여성 홀몬이 급상승 양기가 입으로 올라 슬슬 아줌마 기질이 발동하는 수다 맨? 남성 갱년기에 든 비련의 남자이련가. 별별 생각이 다들어 머릿속이 복잡해 지려는 찰나
아, 요런말은 울 오마니가 좀 들으셔야 하는데~ 울 오마니께 당신딸을 누가 미인이라 합디다요. 요런말을 전해드리면 울 오마니 대바람에 하시는 말씀이 있지 아이구~ 조선팔도에 미인이 다 나자빠져 무선을 했대디? 너 같은걸 미인이라고 그러게? 요러실텐데.ㅋ 요 복잡한 순간에 요런생각을 해대는 나도 못말리지만 그래도 아쉽다. 뭐. 히히히
이 아저씨, 면허증이 얼릉 찾아지질 않으니 이거 맨 뒤에 있나 본데요 혼잣말을 하다 꽁무니에서 몇장 안 남겨놓고 내 걸 찾아 냈는지 눈꼬리를 치키며 입은 헤벌쭉 그야말로 히히낙락 장원급제면 저리 좋을까. <사진도 이쁩니다. 아주 잘 나왔는데요.> <아주머니 화장 좀 하시고 차려입고 나서시면 정말 대단 하시겠어요!> 목소리도 크다. 예서제서 일하다 말고 얼굴을 든다. 아이구 이노릇을 증말로 어쩐담? 여경도 이때는 생글거리며 정말 미인 이세요 한마디 거든다. 내가 민망해 하는 줄 눈치 챈 모양.
갈수록 태산 넘을수록 심산 이라더니 딱 그짝이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 아자씨 이젠 시민의 밍숭밍숭 맨얼굴에 화장까지, 집에서 입던대로 편안한 옷차림에 좀 더 차려 입으시라 차림새까지 논하시는 도다. ㅋ 내 의상이 은평구민의 차림으론 좀 부적격이었나?
나 참, 이러나저러나 속수무책 도무지 할 말이 없어 시선을 돌리려니 앳된 여경 면허증을 받아 들여다 보며 <정말 이쁘신데요~> 한마디 더. 민망도 도를 넘어 이젠 나도 뻔뻔모드로 중무장하고 나선다. <내가 원래 사진발이 잘 안 받는데 그 사진은 이뻐요? 웬일이래요? > 맞장구를 쳐가며 <어디 나도 좀 볼까요.> 뺏다시피 받아드니 면허증 보호 필름 광택 때문인지 돋보기도 안 쓴 내 눈엔 잘 뵈지도 않는 구먼 그 난리다.
저쪽에 우리집 양반 들어와 우산을 접으며 빙그죽 웃고 섰다. 저 양반 저 웃음의 의미는 또 뭐꼬? 신분증이 없다니 자기 신분증이라도 가지고 나서볼 요량이었던지 아님 시커멓게 생긴 아저씨가 마누라한테 자꾸 실없는 소리 늘어놓고 직접 대는 것 같아 따라왔는지 아무튼~ 그때 뒤적이던 지갑 갈피에서 내 얼굴 박힌 신분증이 잡힌다.
계면쩍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얼마나 반갑던지 <신분증 여기 있네요!> 얼른 내밀어 줘 확인을 시키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남긴채 서방님 등 떠밀어 나오다 생각하니 정신머리 없는 나. 그게 주민등록증이었는지 면허증이었는지 헷갈리는 고로 다시 돌아서 신분증 나 안주셨지요? 물으니 여경 아가씨 면허증이라 자기네가 수거를 한단다.
등 뒤로 받는 인사는 신경도 못 쓰고 서둘러 돌아 나와 차에 올라앉으니 울 서방님 갱신된 면허증 좀 보잔다. <아니, 증명 사진값도 아낀다고 포토샵에도 안 가고 집에서 애린이가 폰으로 찍어 인터넷으로 면허갱신 접수를 해 준거 아니오? 이게.> 내 말에 <아, 그래도 마누라 이쁘다고만 허던데, 뭘.> 이 양반도 실없기는... 참. 내친김에 나도, <아이구 내가 잔돈이 있었더라면 고맙다고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씩 돌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슈~ >한마디 내던진다. 그래도 마누라 이쁘다는 소리가 싫지는 않던가 보네 그려요. ㅎㅎ
지금 내 옆에서 밍그적거리는 막내에게 면허증을 보여주며 엄마 이쁘냐? 물으니 묵묵부답 꿀먹은 벙어리다. <야, 이놈아 엄마 이쁘냐고?> 귓전에 대고 소리치니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엄만?> 웬 생뚱이냐 이말인지 버럭 이다. <아이구 이놈아,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고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그래, 버럭은 아무때나 버럭이냐 늙은 엄마한테 빈 말이라도 이쁘다고 한마디 인심 쓰면 어디 덧난 대디? 이 나쁜놈아! 은평 경찰서 아저씨들은 첨 보는 엄마한테도 이쁘다고 잘만 하더만.> 나도 지지 않고 한마디 아니 대여섯마디 응수 중.
돌아오는 길 한빛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으며 면허증 찾아오다 생긴일 풀어 놓으며 이 나이에 대놓고 이쁘단 소리 첨 들었다며 웃자 하니 임선생 무슨 말씀이냐 자기도 첨 뵙고 미인이시다 멋쟁이시다 했지 않았느냐며 한 술 더 뜬다. 오늘 미인 소리가 난데없이 풍년인 걸 보니 내가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진 않았나 보다. ㅎㅎ
그려 골 백 살을 먹어도 나도 여자는 여자일터 이쁘다는 말이 어찌 싫을까 보냐? 솔직히 싫지는 않네! 뭐. 으히히.. 그럼 나도 이제부터 꽃보다 누나?! ㅋㅋ 왝~~~~~ 그나저나 나도 이젠 살짝 맛이 가긴 갔나벼. 맹숭맹숭한 정신에 내 입으로 요로콤 썰(說)을 풀고 있는 걸 보면 말이시. 흐흐!
2013.12.9 월 자정 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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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이~~ 그 아저씨두
당연한걸 몇번씩이나 ㅎㅎ
그려 댁도 날 갖고 놀으셔 ~~~
그냥 봐 줄텡께! ㅎㅎㅎ
얼굴이 이쁘면 모든 게 OK!!!
만사가 OK로 통하게 이뻐봤음 쓰겄다 .나도.~~~~ㅠㅠ
ㅋ ㅋ누군 얼굴안예쁘고싶냐
못생긴것도 죄인가~~~~
연욱이 미모는 초딩때부터
영원 해~~~ 부럽다 요
ㅋㅋ ㅋ~~~~
왜 또 그러시남유~
웃자고 헌 소리여~
울 친구들 이거이 미쳤나 그러고 웃으라고~~~~ ㅎㅎㅎ
완전신났어 ~~~~~~``
ㅋㅋ~~~~~~~~좋아요 좋아요
우리 나이엔 이런 음악을 들어야 혀~
무조건 흔들고~ㅎㅎㅎㅎㅎ
거 완죤히 미친놈일세.
남의 여자한테 한번도 아니고...
어쨌거나 여자들은 이쁘다면 죄다...
워쪄 그러삼?
이 나이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뿌다헝께 좋기만 허드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