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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독관 : 진준(陳遵)>등과총목(登科摠目) |…―* 카페장 미완성자료
과거등과총목(登科摠目) 태조 2년 계유 봄에 송개신(宋介臣) 등 33명을 뽑았다. 을과(乙科)에 3명, 병과(丙科)에 7명, 동진사에 23명, 다음은 모두 같다. ○ 지공거(知貢擧) : 설장수(偰長壽). 동지공거(同知貢擧) : 원굉(元紘) 동년(同年)에 감시(監試)에서 생원 박안신(朴安信) 등을 뽑았다. 5년 병자에 김익정(金益精)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 조준(趙浚). 동지공거 : 판삼사(判三司) 정도전(鄭道傳). 고시관(考試官) : 우승지(右承旨) 정탁(鄭擢). 좌산기(左散騎) : 이황(李滉). 대사성(大司成) : 함부림(咸傅霖). 판교서(判校書) : 유관(柳觀). 사헌중승(司憲中丞) : 이원(李原). 성균관 좨주(祭酒) : 장덕량(張德良). 전부(典簿) : 강사경(姜思敬) 동년에 생원 유학(幼學) 이수(李隨) 등을 뽑았다. 정종 원년 기묘에 전가식(田可植)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여흥백(驪興伯) 민제(閔霽) 동년 생원 유학 서미성(徐彌性)과 진사 의금부 진무 서진 등을 뽑았다. 태종 원년 신사에 즉위 증광시(增廣試)에서 조말생(趙末生)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영삼사(領三司) 하륜(河崙) 동년 생원 조종생(趙從生)을 뽑았다. 2년 임오에 신효(申曉)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권근(權近). 동지공거 : 이첨(李詹) 동년에 생원 민무회(閔無悔) 등을 뽑았다. 5년 을유에 유면(兪勉)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 별장(別將) 조서로(趙瑞老) 등을 뽑았다. 7년 정해에 중시(重試)에서 예문관 직제(藝文館直提) 변계량(卞季良) 등을 뽑았다. 독권관(讀卷官) : 권근(權近) 등 10명 8년 무자에 어변갑(魚變甲)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이조 판서 이직(李穆). 동지공거 : 병조 판서 유량(柳亮). 고시관 : 변계량ㆍ김여지(金汝知)ㆍ장자숭(張子崇)ㆍ박안신(朴安信)ㆍ장이(張弛). 대독관(對讀官) : 이간(李簡)ㆍ이안유(李安柔). 전시(殿試) 독권관 : 황희(黃喜)ㆍ이조(李慥) 동년에 생원 별장 윤수(尹粹) 등을 뽑았다. 11년 신묘년에 권극중(權克中) 등 33명을 뽑았다. 대책(對策) 시제(試題) : 치도(治道)의 본말(本末) ○ 지공거 : 하륜(河崙). 동지공거 : 성석린(成石磷). 고시관 : 양수(梁需)ㆍ윤회탁(尹會卓)ㆍ신유의(愼柳顗)ㆍ박서생(朴瑞生). 대독관 : ▶진준(陳遵)◀ㆍ양여공(梁汝恭). 전시(殿試) 독권관(讀卷官) : 유백순(柳伯淳)ㆍ김여지(金汝知) 동년에 생원 유학 권극화(權克和) 등을 뽑았다. 14년 갑오에 정인지(鄭麟趾) 등 33명을 뽑았다. 처음으로 1등 3명, 2등 7명, 3등 23명이라 했다. ○ 전시(殿試) 대책(對策) 시제 :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도리[天人相感之道] 동년 생원시에서 유학 조서강(趙瑞康)을 뽑았다. 친시 알성시(親試謁聖試)에서 권제(權踶) 등 25명을 뽑고, 정상(鄭常) 1명에게 급제를 은사(恩賜)하였다. 성균관에 행차하여 임금이 친히 시무ㆍ지인ㆍ임인(時務知人任人)을 시제(試題)로 내었다. 지인ㆍ임인(知人任人)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과 쓰는 것 16년 병신 친시(親試)에서 정지담(鄭之澹) 등 9명을 뽑았다. 대책(對策) 시제 : 충효(忠孝) 임금이 친히 중시(重試)에 임하여 김자(金赭) 등 5명을 뽑았다. 대책 시제는 위와 같다. 17년 정유에 식년시(式年試)를 식년 제도가 이해부터 시작되었다. 친시하여 한혜(韓惠)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시에서 유학 권채(權採) 등을 뽑았다. 세종 원년 기해 즉위 증광시(增廣試)에서 조상치(趙尙治) 등 33명을 뽑았다. 지공거 : 유관(柳觀)ㆍ변계량(卞季良). 고시관 : 허조(許稠)ㆍ박은(朴訔) 동년 생원시에서 유학 성이검(成以儉) 등을 뽑았다. 2년 경자 식년시에서 안숭선(安崇善) 등 33명을 뽑았다. 전시(殿試)의 대책 시제 : 무농(務農)ㆍ예양(禮讓)ㆍ성곽(城郭)ㆍ수군(水軍) ○ 명관(命官) : 우의정 이원(李原). 고시관(考試官) : 예조 판서 허조(許稠) 동년 생원시에서 유학 민원(閔瑗)을 뽑았다. 5년 계묘에 식년시에서 정집(鄭楫) 등 32명을 뽑았다. 김시석(金視石)이 전시(殿試) 전에 고향에 내려갔으므로 점수가 차지 않아 병오년 식년시에 추가하여 보게 하였다. 동년에 생원 유학 남계영(南季瑛)을 뽑았다. 8년 병오에 식년시에서 황보량(皇甫良) 등 34명을 뽑았다. 김시석(金視石)이 추가되어 붙었다. 동년에 생원 유학(幼學) 신석견(辛石堅)을 뽑았다. 9년 정미에 등극 친시(登極親試) 명 나라 선종(宣宗)이 등극(登極)한 경축겸 중시(重試)로 식년시에 당(當)하였다. 에서 남계영(南季瑛) 등 20명을 뽑았다. 표(表)의 시제 : 금ㆍ은의 방물(方物)을 면제해 주기를 청하다.[請免金銀方物] 대책 시제 : 토지 제도[制田之法] 중시 병오년 식년시를 연기하여 실시하다. 에서 정인지(鄭麟趾) 등 12명을 뽑았다. 1등 3명ㆍ2등 9명 11년 기유 식년시에서 허사문(許斯文) 등 33명을 뽑았다. 주문(主文) :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윤회(尹淮) 동년에 생원 유지(柳智) 등을 뽑았다. 친시 알성(親試謁聖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에서 조주(趙注) 등 3명을 뽑았다. 시제 : 본조(本朝)의 찬성(贊成) 권근(權近)이 7월 편도전[七月篇圖箋]을 바치다. 14년 임자 식년시에서 김길통(金吉通)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녹사(錄事) 정창(鄭昌)을 뽑았다. 16년 갑인 알성ㆍ친시에서 최항(崔恒) 등 25명을 뽑았다. 대책(對策) : □ 17년 을묘 식년시에서 이함녕(李咸寧) 등 33명을 뽑았다. 전시(殿試) 대책(對策) 시제 : 종학(宗學)ㆍ호구패(戶口牌)ㆍ병농(兵農) 동년에 생원 유학 남지(南輊)를 뽑았다. 18년 병진에 친시 명나라 영종의 등극 경축 겸 중시로 식년시에 당하였다. 에서 윤사균(尹士昀) 등 9명을 뽑았다. 중시(重試)에서 남수문(南秀文) 등 12명을 뽑았다. 이 시험 합격자는 국적(國籍)에 있지 않다. 20년 무오 식년시에서 하위지(河緯地) 등 33명을 뽑았다. 처음 진사시(進士試)를 설치하였다. 동진사(同進事)를 정과(丁科)로 개정 ○ 전시(殿試) 대책(對策) 시제 : 왕정(王政)의 손익(損益) ○ 시관(試官) : 판중추(判中樞) 허조(許稠) 동년에 생원시에서 유학 최청강(崔淸江) 등을, 진사(進士)시에서 유학 신숙주(申叔舟) 등을 뽑았다. 21년 기미 친시에서 최경신(崔敬身) 등 10명을 뽑았다. 명관(命官) : 우의정 신개(申槩) 23년 신유 식년시에서 이석형(李石亨) 등 33명을 뽑았다. 명관(命官) : 신개(申槩)ㆍ대제학(大提學) 권제(權踶) 동년에 생원 사정(司正) 이석형(李石亨) 등과 진사시(進士試)에서 사정(司正) 이석형 등을 뽑았다. 24년 임술 친시에서 이교연(李皎然) 등 8명을 뽑았다. 26년 갑자 식년시에서 황효원(黃孝源)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한백륜(韓伯倫) 등을 뽑았다. 무오년에 법을 정하여 연령을 25세로 한정하여 응시하게 하였다. 계해년에 법도에 어긋나게 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진사시를 정지시키고 개혁하였다. 병인년에 생원 2백 명을 시험보아 뽑았다. 29년 정묘 식년시에서 이승소(李承召)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탁중(卓中)을 뽑았다. 추과(秋科) 중시에서 성삼문(成三問) 등 19명을 뽑았다. 고관(考官) : 좌의정 하연(河演])ㆍ이조 판서 정인지ㆍ예조 판서 허조(許稠)ㆍ도승지(都承旨) 이사철(李思哲) 친시 중시(重試) 대거(對擧) 에서 강희맹(姜希孟) 등 26명을 뽑았다. 32년 경오 식년시 명나라 문종이 등극한 때이므로 실시했다. 에서 권남(權擥) 등 33명을 뽑았다. 임금이 낸 대책 시제 : 어진 이를 구하고 간(諫)하는 것을 따르며, 욕심을 적게 하고 정치를 부지런히 함[求賢從諫寡慾勤政] ○ 시관(試官) : 안지(安止) 동년에 생원 충순위(忠順衛) 홍숙부(洪叔阜)를 뽑았다. 문종 원년 신미 즉위 증광시(增廣試)에서 홍응(洪應) 등 40명을 뽑았다. 전시(殿試) 대책(對策) 시제 : 학문의 요령과 정치하는 방법. 시관(試官) : 영의정 하연(河演). 예조 판서 김양몽(金陽蒙). 이조 참판 이사철(李思哲) 동년에 생원 유학 손순효(孫舜孝) 등을 뽑았다. 단종 원년 계유 즉위 증광시에서 이숭원(李崇元) 등 40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유학 김상(金湘), 진사 유학 최한보(崔漢輔) 등을 뽑았다. 연령 제한 법을 폐지했다. 십운시(十韻詩)를 고시(古詩)로 개정했다. 가을 식년시에서 김수녕(金壽寧) 등 33명을 뽑았다. 전시(殿試) 대책(對策) 시제 : 수성난(守成難) 동년 생원시에서 유학 김성원(金性源)과 진사 유학에 윤탁(尹濯)을 뽑았다. 2년 갑술 증광시에서 정효상(鄭孝常) 등 33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군사의 식량[兵食] ○ 시관(試官) : 신숙주(申叔舟) 세조 2년 병자 식년시에서 임원준(任元濬) 등 33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현재(賢才)ㆍ용관(冗官)ㆍ성곽(城郭) ○ 시관 : 박중손(朴仲孫) 동년에 생원 민수(閔粹)와 진사시에서 박순(朴詢)을 뽑았다. 3년 정축 친시 명나라 영종(英宗) 복위 경축 겸 중시 대거 알성시를 치른 후 대궐로 돌아와 시권을 거두었다. 에서 강자평(姜子平) 등 13명을 뽑았다. 시관 : 신숙주(申叔舟) 중시에서 이영은(李永垠) 등 21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도적(盜賊)ㆍ육축(六畜)ㆍ군기(軍器) ○ 시관 : 영중추(領中樞) 이변(李邊) 별시에서 오응(吳凝) 등 13명을 뽑았다. 4년 무인 알성별시에서 도하(都夏) 등 5명을 뽑았다. 5년 기묘 식년시에서 고태정(高台鼎) 등 33명을 뽑았다. 사신이 입경할 날짜가 박두하였으므로 회시(會試) 제3장에서 단지 전책(殿策)은 1도만을 보였다. ○ 시관 : 박중손(朴仲孫) 동년 생원시에서 유순(柳洵)과 진사에서 이복선(李復善)을 뽑았다. 6년 경진 춘장(春場)에서 임금이 경회루(慶會樓) 아래에 와 초시 유생에게 강(講)을 시켰다. 이맹현(李孟賢) 등 4명을 뽑았다. 9월 별시에서 최경지(崔敬止) 등 20명을 뽑았다. 무과(武科)에서 1천 8백 명을 뽑았다. 겨울 평양(平壤) 별시 임금이 친히 부벽루(浮碧樓)에 임하였다. 에서 유자한(柳自漢) 등 22명을 뽑았다. 무과(武科) 1천 8백 명을 뽑았다. 7년 신사 별시에서 하숙산 등 3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우리나라 사방의 허실[我國四方虛實] 8년 임오 가을 식년과에서 유자빈(柳自濱) 등 33명을 뽑았다. 강경(講經)을 면제함. 전시 대책 시제 : 문무(文武) ○ 명관 : 신숙주 동년에 생원 배맹후(裵孟厚)와 진사 배맹후를 뽑았다. 가을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에서 강안중(姜安重) 등 9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예악(禮樂) 용인(用人) ○ 이 시험 합격자 명단은 국적(國籍)에 실리지 않았다. 10년 갑신 춘시(春試)에서 온양 온천에서 과거를 보였다. 이육(李陸) 등 13명을 뽑았다. 명관(命官) : 신숙주(申叔舟) 11년 을유 식년시에서 성진(成晉) 등 33명을 뽑았다. 강경(講經)을 면제하다. ○ 판관(判官) 현득리(玄得利)가 끝자리에 앉았다가 누이 아들 유양춘(柳陽春)의 시권을 몰래 바꾸어서 합격시켰다. 양춘이 주범으로 파면되자 제명되었다. 동년 생원 이창신(李昌臣)과 진사 정지(鄭摯)를 뽑았다. 7월 알성시에서 이봉(李封) 등 3명을 뽑았다. 12년 병술 봄에 고성(高城)에서 오대산에 행차하였다. 시험 보여 진지(陳祉) 등 18명을 뽑았다. 전시 대책 시제 : 순성(巡省) 명관 : 신숙주 봄 알성시에서 임금이 친히 문묘에 제사를 지내고 선비를 뽑았다. 참지(叅知) 신승선(愼承善) 등 17명을 뽑았다. 명관 : 신숙주 3월 중시에서 김극검(金克儉) 등 9명을 뽑았다. 명관 : 신숙주 5월 10일 발영시(拔英試)에서 지사(知事) 김수온(金守溫) 등 40명을 뽑았다. 대책 시제 : 치세(治世)에 유능한 신하요, 난세(亂世)에 간활한 영웅[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 명관 : 신숙주 등준시(登俊試)에서 판중추(判中樞) 김수온 등 12명을 뽑았다. 14년 무자 봄 식년시에서 이인형(李仁亨) 등 33명을 뽑았다. 강경(講經)을 면제하였다. ○ 시관 : 영순군(永順君) 보(溥)ㆍ판중추(判中樞) 정창손(鄭昌孫)ㆍ신숙주ㆍ김수온ㆍ지중추(知中樞) 어효첨(魚孝瞻)ㆍ홍응(洪應)ㆍ송처관(宋處寬)ㆍ서거정(徐居正)ㆍ이석형(李石亨)ㆍ대사성 김예몽(金禮蒙)ㆍ참의(叅議) 신후갑(愼後甲)ㆍ대간 상□(尙□)ㆍ승지(承旨) 이극증(李克增) 동년에 생원 조형문(趙亨門)과 진사 김흔(金訢)을 뽑았다. 2월 중시에서 영순군 보(溥) 등 5명을 뽑았다. 임금이 전시 대책을 출제하다. ○ 명관 : 신숙주. 온천 행차시 온양(溫陽) 별시에서 유자광(柳子光) 등 4명을 뽑았다. 예종 원년 기축 가을에 즉위 경축 채수(蔡壽) 등 33명을 뽑았다. 표(表)와 대책을 시험하고, 겸하여 글을 지을 수 있는 자에게는 이를 허락하였다. 명관 : 신숙주ㆍ노사신(盧思愼)ㆍ강희맹(姜希孟) 동년 생원시에서 김괴(金瑰)와 진사시에서 한언(韓堰)을 뽑았다. 성종 원년 경인에 별시에서 신준(申浚) 등 16명을 뽑았다. 2년 신묘에 봄 별시에서 김흔(金訢) 등 9명을 뽑았다. 3년 임진 봄 식년시에서 계묘년 식년시에서 사고가 있었으므로 연기 시행했다. 안양생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시에서 이승언(李承彦)과 진사시에서 유인종(柳麟種)을 뽑았다. 5년 갑오 식년시에서 최관(崔灌)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시에서 조지서(趙之瑞)와 진사시에서 신종호(申從濩)를 뽑았다. 6년 을미 친시에서 성균관에 거동하여 석채(釋菜)를 하였다. 박형문(朴衡文) 등 20명을 뽑았다. 7년 병신 별시에서 중시(重試) 대거(對擧) 윤희손(尹喜孫) 등 13명을 뽑았다. 중시에서 정회(鄭淮) 등 10명을 뽑았다. 8년 정유 봄 식년시에서 신계거(辛季琚) 등 33명을 뽑았다. 명관 : 판추(判樞) 김국광(金國光) 동년에 생원 남궁찬(南宮璨)과 진사 남세철(南世聃)을 뽑았다. 8월 친시에서 반궁(泮宮)에서 대사례(大射禮)를 행하였다. 권건(權健) 등 4명을 뽑았다. 표(表)의 시제 : 본조(本朝)에서 중국의 궁각(弓角)을 사들이는 것을 허락하여 주기를 청하다. ○ 명관 : 윤자운(尹子雲) 9년 무술 겨울 친시에서 권경희(權景禧) 등 5명을 뽑았다. 10년 기해 별시에서 중시(重試) 대거(對擧) 정광세(鄭光世) 등 10명을 뽑았다. 중시에서 조지서(趙之瑞) 등 5명을 뽑았다. 11년 경자 친시에서 최서(崔湑) 등 3명을 뽑았다. 석전(釋奠)을 친히 행하였다. ○ 표(表)의 시제 : 당(唐) 재상이 한유(韓愈)를 조주(潮州)에 귀양 보내는 것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다. 봄 식년시에서 신종호(申從濩)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시에서 최연손(崔連孫)과 진사시에서 이오(李鰲)를 뽑았다. 12년 신축 친시에서 윤달신(尹達莘) 등 13명을 뽑았다. 13년 임인 친시에서 진현시(進賢試) 대거(對擧). 성균관에 거동하여 석채(釋菜)를 행했다. 김기손(金驥孫) 등 11명을 뽑았다. 대책 시제 : 정통(正統) 진현시(進賢試)에서 이승건(李承健) 등을 뽑았다. 14년 계묘 봄 식년시에서 이문좌(李文佐)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강혼(姜渾)과 진사 이상(李瑺)을 뽑았다. 16년 을사 별시에서 정희왕후(貞熹王后)를 태묘(太廟)에 합부(合祔)하고 6월에 알성한 후 시험을 보여 뽑았다. 송영(宋瑛) 등 16명을 뽑았다. 17년 병오 겨울 식년시에서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과 민이(閔頤)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 김일손(金馹孫)과 진사 임희재(任熙載) 등을 뽑았다. 중시에서 신종호 등 8명을 뽑았다. 18년 정미 3월 별시에서 유순정(柳順汀) 등 5명을 뽑았다. 19년 무신 4월 별시에서 명나라 효종(孝宗) 등극 경축 이수공(李守恭) 등 4명을 뽑았다. 20년 기유에 식년시에서 김전(金詮)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시에서 김언평(金彦平)과 진사시에서 김천령(金千齡)을 뽑았다. 21년 경술 12월 별시에서 명나라 태자의 탄생 송일(宋軼) 등 10명을 뽑았다. 22년 신해 4월 별시에서 권세형(權世衡) 등 6명을 뽑았다. 23년 임자 식년시에서 강숙돌(姜叔突)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정희량(鄭希良)과 진사 윤효빙(尹孝聘) 등을 뽑았다. 9월 별시에서 명나라 황태자 책봉 경축 이희맹(李希孟) 등 40명을 뽑았다. 25년 갑인 별시에서 한훈(韓訓) 등 22명을 뽑았다. 연산군 원년 을묘에 즉위 별시에서 이목(李穆)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이장곤(李長坤)과 진사 조계형(曺繼衡) 등을 뽑았다. 2년 병진 식년시에서 을묘년 식년시를 연기 시행하였다. 김천령(金千齡) 등 33명을 뽑았다.동년에 낙서(洛西) 이항(李沆)과 생원 김극성(金克成)과 진사 김우서(金禹瑞) 등을 뽑았다. 3년 정사 9월 별시에서 성종을 태묘(太廟)에 합부(合祔)한 경사 겸 중시 대거 권홍 등 13명을 뽑았다. 9월 중시에서 윤장(尹璋) 등 10명을 뽑았다. 4년 무오 식년시에서 정인인(鄭麟仁) 등 33명을 뽑았다. 동년에 생원 김세충(金世忠)과 진사 이광조(李光祖) 등을 뽑았다. 별시에서 낙서(洛西) 이항(李沆), 김극성 등 6명을 뽑았다. 7년 신유 식년시에서 이부(李頫) 등 35명을 뽑았다. 동년 생원에 이수정(李守貞)과 진사 김안국(金安國) 등을 뽑았다. 8년 임술 별시에서 알성한 후 대사례(大射禮)를 행하였다. 송세림(宋世琳) 등 14명을 뽑았다. 9년 계해 별시에서 세자 책봉(世子冊封) 경사 권복(權福) 등 8명을 뽑았다. 10년 갑자 별시에서 윤은필(尹殷弼) 등 9명을 뽑았다. 식년시에서 이자(李耔) 등 31명을 뽑았다. 합격권에 들은 이세홍(李世弘)이 전시(殿試)를 보기에 앞서 집안 화를 당하였으므로 정묘년 증광시에 추가로 붙였다. 동년에 생원 유예신(柳禮臣)과 진사 정백붕(鄭百朋)을 뽑았다. 11월 별시에서 최세절(崔世節) 등 19명을 뽑았다. 12년 병인 4월 별시에서 김안로 등 17명을 뽑았다. 칠률추천시(七律鞦韆詩) ○ 4등까지로 구분하였다. [출처] 李世仁, 李沆의 과거등과총목(登科摠目, 李肯翊 著) |작성자 이택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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