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녀貧女의 일등一燈
-가난한 노파의 연등 공양
아사세왕이 어느 날, 석존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다.
식사가 끝나 석존이 정사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왕은 아직 공양이 부족하다고 느끼므로, 가신에게 상담하자, 등불을 바쳐 공양을 하시면 어떠하냐고 하는 의견이었다.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百石의 기름을 준비시키고, 王城의 문에서 정사까지의 길에 쭉 등을 달게 하고,
佛前에도 무수한 등을 공양하게 하였다.
그 이야기는 금방 시내에 퍼졌다.
도시에서 벗어난 곳에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늘 부처님에게 뭔가 공양올리고 싶다고 원하고 있었지만,
신분도 낮고 게다가 음식에도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왕이 만등을 바쳐 부처님께 공양하신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
대단히 감격하여 자신도 등 하나를 바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름을 살 돈도 없다.
노파는 거리에 나와 걸식을 하여 2전의 돈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2전을 가지고 기름을 사러가자, 주인은,
“가난한 그대가 2전이나 기름을 사서 무엇을 하는가.
그것보다도 먹을 것을 사서 생명을 잇는 것이 선결문제가 아닌가”
라고 말한다. 노파는 답한다.
“아니오. 나는 늘 부처님을 백겁에 한번밖에 만날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부처님과 같은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늘 공양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왕이 대공덕을 쌓는다는 것을 듣고 애가 타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단 한 등이라도 올려서 후세를 위하여 공덕을 쌓고 싶다.”
기름집 주인도 그 말에는 깊이 감동을 받고,
2전으로 2홉의 기름인데, 3홉의 기름을 준 것이었다.
노파는 너무 기뻐하면서 정사에 가서 한 대접의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염했다.
‘만일 나의 정성이 통한다면 이 빛이 온 종일 꺼지지 않도록’
칠흙 같이 어두운 밤이 밝아짐에 따라 왕이 밝힌 무수의 등은,
혹은 바람에 꺼지고 혹은 기름이 다하여 점차로 꺼져 간다.
병사가 기름을 다시 채우거나,
불을 붙이거나 하면서 돌아다니지만, 좀처럼 다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파가 올린 한 등불만은 바람에도 꺼지지도 않고,
기름도 다하지 않고 점점 더 빛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밤이 다하여 새벽이 오므로,
석존은 목련에게 이제 등을 끄라고 지시하셨다.
목련은 즉시 남은 등을 끄러 돌아다녔는데
단 하나 이상한 등이 있었다.
꺼도 꺼도 또 다시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세 번이나 꺼도 세 번 불이 붙었으므로,
이번에는 가사를 흔들어서 끄려고 했지만,
등은 오히려 밝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목련은 신통력을 가지고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런데 등은 밝게 대광명을 발하여 위로는 범천으로,
아래는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보신 석가세존은,
“목련이여, 이제 그만두라. 이것은 후세에 나오시는 부처님의 공덕에 의하는 것으로, 그대의 신통력으로도 끌 수 없다.
이 등을 바친 노파는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30겁 후에 부처님이 되어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고 이름지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아사세왕수결경』 현우경빈녀난타품,에 있는 유명한 <빈녀의 일등>의 이야기다.
이와 같이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정성이 중요하다.
너무 형식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 사람, 그 경우에 어울리는 형을 가지고 정성을 나타내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가난한 노파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가난한 노파의 등불은,
자신이 그 돈을 가지고
끼니를 때워야 하는
자신의 전재산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쳐서 공양올렸기 때문이다’라고.
자신 같으면 가능할 수 있을까?
-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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