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우크라이나가 반격작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설'(說·미 뉴스위크 보도)은 말 그래도 '설'로 끝났다. 그 다음은 5월 9일 러시아 전승일 반격설이다.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는 듯하다. 우크라이나군의 유력한 반격 루트로 꼽히는 남동부 지역의 날씨는, 그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때쯤 멎고 기온도 20도 가까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있다. 또 최종 공격 명령권을 가진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 등 최고 수뇌부의 입에서 최근 반격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 매체들이 '아직 미흡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준비'. '우크라이나 반격을 지연시키는 3가지 요인' 등 다양한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영국의 '더 타임스'는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공격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이 기대하는 '투자 수익'(군수 물자 제공에 따른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에 '반격 명령'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곧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분석과 맥을 같이 한다.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사진출처:우크라 국방부 SNS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레즈니코프 국방장관은 지난달 28일 "봄철 반격작전 준비를 거의 끝냈으며 (최고 사령관의) 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격 개시 시점을 묻는 질문에 "받은 서방 무기에 대한 숙달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 기준으로 우리는 준비됐다"며 "신의 뜻과 (공세에 유리한) 날씨, 사령관(대통령)의 결정만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레오파드-2와 챌린저 등 전차(탱크)와 브래들리와 마더, 스트라이커, C90 장갑차 등 매우 현대적인 장비를 받고, 이 장비들의 숙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기대하는 미국의 에이브럼스 탱크를 반격 작전에 동원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인정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과 나토(NATO)가 잇따라 반격에 필요한 거의 모든(95~98%)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권부(대통령실)는 '약속된 모든 무기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군부의 입장과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며 "반격작전이 실패하더라도, 그 근본 원인을 무기의 공급 부족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이 설치한 대전차 장애물인 '용의 이빨'과 유사한 장애물 돌파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군의 독일제 '마더' 장갑차/영상 캡처
레즈니코프 장관이 인정하듯, 현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주로 '날씨'가 거론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폴란드 언론 매체 '폴란드 생각'은 '진흙탕 장군'(라스푸티차 현상)이 러시아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 동부지역은 5월 2일까지 계속 비가 내리고, 그 이후에도 간간이 '비 예보'가 들어 있다.
서방 언론의 분석은 보다 본질적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지연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러시아군이 구축한 철벽같은 방어 요새다. AFP 통신은 남부 헤르손에서 북동쪽으로 800㎞나 뻗어있는 최전선은 대전차 참호와 장벽, '용의 이빨'로 알려진 삼각형 방어물, 지뢰밭 등 3중, 4중으로 요새화됐다며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은 두 번째 장애물에서 저지당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간신히 통과하더라도 세 번째 장애물에선 막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매체 RGru(로시스카야 가제타)에 따르면 미 CNN은 지난 29일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러시아 방어요새 △기습작전 불가능 △ 러시아의 제공권 등 3가지를 들었다.
CNN은 "러시아의 방어요새는 무려 6개월에 걸쳐 구축됐다"며 "위성 사진을 보면 가장 유력한 반격 루트인 자포로제(자포리자)주(州) 남동쪽 넓은 지역에 수천 개의 방어 진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공격 개시 지점으로 꼽히는 '폴로기' 방어를 위한 러시아의 대전차 도랑은 무려 30㎞에 걸쳐 길게 뻗어 있으며, 이어지는 '토크마크' 주변도 요새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 방어요새 위성 사진/사진출처:스트라나.ua
미 브래들리 장갑차와 소련제 T-55개량형 전차의 합동 훈련/사진출처:스트라나.ua
CNN은 또 우크라이나군이 지난해 9월 하르코프(하르키우) 지역을 전격 점령한 것과는 같은 '성동격서'(聲東擊西) 기습작전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하르코프 기습은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 탈환을 위해 남부 헤르손 지역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유포시킨 뒤, 실제로는 북부 하르코프 지역을 덮쳤다. 이같은 기습작전으로 우크라이나 기갑부대는 러시아군 방어선 중 가장 약한 지점을 재빨리 돌파해 군사물자의 공급루트 차단에 성공했고, 하르코프 주둔군이 자칫하면 고립될 것이라고 판단한 러시아군은 전략적으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군 방어태세가 달라졌다. 러시아는 예상되는 모든 반격 지점에 방어 요새를 구축했고, 지난해 가을 동원된 예비군으로 병력을 강화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기갑부대가 약한 다층 방어선을 뚫고 러시아군 후방으로 빠르게 기동함으로써 러시아군 지휘부와 물자 보급망을 위협하는 '제 2의 하르코프 기습작전'을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적진 깊숙히 들어간 우크라이나 기갑부대가 러시아군에 포위돼 전멸한 위험도 없지 않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CNN과 정치전문 폴리티코는 지난달 하순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반격의 개시 시점및 위치를 속이기 위해 많은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헬기의 미사일 공격/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군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장애물은 러시아의 제공권이다. 워싱턴은 우크라이나의 F-16 전투기 요청을 계속 거부했고, 우크라이나의 대공방어망 체계도 심각한 탄약 부족에 허덕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기갑부대는 러시아군의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은 아직 서방 제공 무기및 장비를 다루는데 미숙하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군은 반격을 위해 각각 4,000명으로 편성된 12개 여단(총 4만 8,000명)을 보유하고, 미국 MaxxPro 장갑차와 MRAP 대지뢰 차량을 최전선(우글레다르)에서 운용하고 있으나 조작에 서툴다고 지적했다.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는 "미국제 Mk-19 유탄 발사기를 지급받았으나 사용 방법을 알 수가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미국이 핵 폭발 여부를 감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방사능 센서(측정기)를 제공했다는 NYT 보도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이를 포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워싱턴은 우크라이나 반격시 초래될 최악의 결과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크림반도로 진격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전술핵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토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핵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더라도, 키예프의 반격 작전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 서방측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반격작전이 일정 수준의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지원이 점차 약해질 수 있다. 나아가 현 상태에서 전쟁을 종식하거나 동결하는 '평화 협상'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전쟁의 피로를 호소하는 서방측 일각에서는 그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탱크 공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폴리티코는 지난해에도 전쟁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질 즈음, 하르코프 기습작전의 성공과 뒤이은 헤르손 탈환으로 협상 압력은 쑥 들어갔다며 "어쩌면 이번에는 더 큰 승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중국이 러-우크라 전쟁의 중재자로 나선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자칫하면 서방 측에 협상 요구의 빌미가 줄 수 있다"며 "키예프는 목표의 수위 조절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7월 11, 12일로 예정된 빌리우스(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담을 지목하면서 키예프에게는 반격과 협상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