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와 마귀 아버지
(요한복음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이 세상에 산재한 교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신자와 마귀를 아버지로 둔 존재가 있습니다. 이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 기독교 교회 안에서 모습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사람의 특징은 반드시 성령의 인도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귀를 아버지로 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육체의 의지로 살아갑니다. 육체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삶이 탐심에 작용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 받은 사람은 이런 인간 세계와 반대되는 하늘의 계시를 받은 삶이 주어집니다. 인간들이 육의 탐심으로 환호하는 곳에 상복을 입고 장송곡을 부르며 재를 뿌리는 사람이 됩니다. 인간 세계와 충돌하면서 인간 세계가 몽땅 심판 받는다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소망인 로마에서 독립의 길이 아닌 십자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육적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요한복음3:3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알게 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 핵심이 있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씀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육은 죽고 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태어남 입니다. 영의 생명을 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되기 때문에 위로부터 주어진 계시로부터 출발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은 절대 개입 되지 않습니다. 단지 십자가로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15)“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자가 들린다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은 육의 수준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 목적 입니다.
위로부터라는 말이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남' 이라는 말입니다.
율법 행함의 차원이나, 인간 노력과 의지의 차원이 아닌 육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라진 현장에만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6:6,7)“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고로 보편적 인간의 성공욕구는 십자가의 도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자기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5:15)“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로 세상 모든 인간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저변에는 그 밑바닥에 필히 육체의 연속과 확장과 성공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육의 인생은 실패하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신 모습과 똑같이 산다는 말입니다.
고로 죄의 종으로 산다는 것은 죄를 의식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와 죄의 구분을 못하는 것이 바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자기를 의로운 존재로 여기게 하여 은혜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하고 복음을 말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리를 만나면 나의 뿌리를 알게 되고 내 자아라는 영역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 무의미 하게 보게 되고 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 믿는다는 것의 진위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지 않는 사람들의 기쁨은 내가 커진다는 것이고 성령 받은 사람의 기쁨은 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함부로 나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로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고 성령 받고 난 이후에 비로소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로 와 버린 존재를 성령 받은 제자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실체는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실체를 메꾸기 위해서 종교단체를 만들고 실체 없음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들 교회와 교회끼리 교단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온갖 행사를 꾸미고, 목소리 높여 주여! 3창을 하고, 영혼을 보이스피싱 하고, 법으로 다스리고, 성령의 실체가 없으니 노래로, 목소리로, 지식으로, 자격증으로, 세례의식으로, 성만찬으로, 온갖 장식으로, 가운으로, 실체가 있는 것처럼 모든 장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와 전통, 운운 하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나온 종교입니다. 고로 그들은 세상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나의 주체를 위해서 라고 내면에 인간 탐심을 미끼로 사람을 사냥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예 뿌리를 말씀 합니다. “너희 아비는 악마” 라고 말입니다. 왜 극단적인 표현을 합니까? 하나님이냐 마귀냐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진실로 성령 세례 받고 진실로 예수 믿는 사람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정치, 세상 장단, 세상 유혹, 안개처럼 행적으로 보고 죽음 속에 있는 자신을 확인할 뿐, 자기 확장이나 세력이나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으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위에서 정과 욕심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