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의 영성을 살아간 사도, 토마스
에페 2,19-22; 요한 20,24-29 / 성 토마스 사도 축일; 2024.7.3.
오늘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그는 원래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이면서도 같은 어부 출신인 다른 제자들과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면모를 지녔던 인물이었습니다. 의협심이 강하고 고집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품은 의협심이 잘 드러났던 때는, 스승의 절친한 벗이었던 라자로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라자로가 살던 베타니아는 스승을 죽이려던 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위험하니까 가지 마시라고 만류하고 있는데, 오직 토마스만 오히려 스승과 함께 가서 생사를 함께 하자고 주장할 만큼 토마스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라자로와 예수님이 절친한 사이였음을 배려할 뿐만 아니라 스승께서 위험한 곳에 가신다면 자신들도 스승을 따라가서 지켜드려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던 거지요.
그는 성품만 강직했던 것이 아니고 매사에 선이 분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필 토마스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토마스가 돌아왔을 때 동료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ㄱ) 하고 전해주니까, 그는 기뻐하기는커녕 도리어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ㄴ) 하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냥 자기 눈으로 주님을 직접 보아야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도 확인해야 믿겠다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그도 역시 주님께서 부활하시기를 못내 바랐을 처지였겠지만, 철저하게 의심해 보고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야 믿는 경험적 합리주의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인 에페소 편지를 쓴 바오로 사도는 인간적인 강직함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사고방식의 철저함에 있어서나, 함부로 믿지 않지만 일단 확신을 하고 나면 목숨이나 일생을 바치고 마는 행동방식의 철저함에 있어서 토마스 사도에 못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율법에 대한 열성이 뻗쳐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서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녔던 박해자로서도 못말리는 열성 바리사이였지만, 다마스쿠스에서 겪은 벼락 체험으로 그분을 만나고 난 후에는, 그분이 하느님이신지를 확신할 때까지 십여 년 동안이나(갈라 2,1 참조) 잠심하면서 성서를 읽고 또 읽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숙고에 숙고를 더하면서 의심하고 또 의심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집에서만이 아니라 먼 아라비아 사막에까지 가서도 요즘으로 말하면 장기 피정을 하면서 기도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갈라 1,17 참조) 그리고도 나서지 않고 바르나바가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렸던 사람입니다.(사도 11,25-26 참조)
철저한 능동적 수동성으로 자신의 남은 일생을 그분의 선교사로 봉헌했던 에너지가 이 무렵에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바르나바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으며, 리디아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한없이 고마워하면서 에페소 감옥에 갇혀서 일을 하지 못해 선교활동비가 필요할 때에는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하고 아끼던 제자 티키코스도 필립비 공동체에 기꺼이 파견해 주던 사람이 바오로 사도이기 때문에, 토마스와 배짱이 통할만한 인물입니다.
이 두 사도의 공통점은 개인적 성품에서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살아간 생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 피로써 동지가 되기를 맹약한 사람들처럼 한결같이 예수님과의 관계에 충실했던 의리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성혈의 영성입니다. 그리고 이를 그림으로 잘 표현한 화가가 바로 지거 쾨더(1925~)입니다.
독일의 화가 신부인 지거 쾨더는 최후의 만찬을 표현주의 화법으로 그렸습니다. 어둔 밤 좁은 다락방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예수님을 직접 그리지 않고, 성혈에 비친 얼굴만 그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손으로 축복을 주시며 이 작품을 보고 있는 우리의 자리에 함께 앉아 계십니다. 빵으로는 원기를 주고자 하시지만, 포도주로는 당신 자신을 비추어 달라는 듯한 예수님의 성심을 그려냈습니다. 성혈의 영성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그림이 또 있을까요? 화가로서도 지거 쾨더는 사제답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와 바오로, 두 사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혈의 영성에 따라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갔던 인물로 보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도 토마스는 복음을 전하러 인도 남부에까지 가서 순교했고,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러 소아시아와 그리스에 공동체를 세우고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동방과 서방의 복음화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