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눈앞에 있는 일들 하나하나 처리하고.
2011년 7월 7일, 오전 5시경에 잠자던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본능적으로 아랫도리를 감싸 안는다. 몸 아래로 갑자기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많이 놀랐는데 뱃속의 아기를 감싸고 있던 양수가 터진 것이다.
둘 다 늦은 나이에 가진 아이였고 그렇다 할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터라 그저 몸을 추스르고 급히 준비하여 진료를 받던 병원(대구 동산의료원)으로 달려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아내를 차에 태우고 대구 남쪽 끝자락인 가창에서 시내 중심에 있는 병원까지 서둘러 달렸다. 가면서 병원 응급실에다 전화하니 응급실로 들어오지 말고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니 곧바로 가라고 한다.
아내 나이 40세에 아이를 낳으니 ‘노산 老産’이고
첫 아이이니 ‘초산 初産’이다.
그리고 예정일보다 37일 일찍 나오니 ‘조산 早産’이고
양수가 터졌으니 ‘난산 難産’이다.
네 가지 세트가 완벽하게 다 모였다.
그렇게 아내는 오전 5시 30분경에 병원에 도착하여 온종일 힘겹게 기다리다가 오후 6시 4분에 주치의 산부인과 신소진 교수님과 의료진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가운데 자연분만으로 2.25kg의 아들 노엘을 순산했다.
예정일보다 일찍 나와서 아기는 보름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는데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몸의 수분이 마르니 몸무게가 1.95kg이 되기도 했다.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두고 아내는 병원에서 이틀을 더 머문 뒤 퇴원하여 집으로 와서 편히 쉴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내가 대단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모유를 짜서 아이스백에 넣어 병원으로 배달하는 일이었다. 이는 조금이라도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기가 굶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기쁨으로 열심히, 시간에 맞춰서 배달하였다. 병원 신생아실의 간호사들이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젖을 짜내는 유축기와 젖병을 소독하고 아내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도 다 해야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하던 일들에 더하여 아내가 하던 모든 일에다 아기에게 해 주어야 할 일들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나는 한숨도 돌릴 겨를이 없으리만치 일에 일이 연결되어서 한 가지 하고 나면 이내 다음 일이 달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정말 그만큼 바빠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때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들을 부지런하고도 신속하게 해내는 훈련을 아주 잘 받았다. 비결은 성실하고도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찮아하는 대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내 인생의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며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거룩한 일에 더욱 최선을 다하여 쉼 없이 성실함과 기쁨으로 행할 수 있음은 아이가 태어날 때 아내를 돌보고 아기를 보살핀, 내 인생 최대의 그 바빴고 분주했던 날의 경험이 멋진 도움이 되었다.
요즘도 하루를 시작하거나 그 전날 잠들기 전에 내일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는데 늘 길다란 목록을 적게 된다. 그때마다 어려움 없이 하나하나 잘 해나가고 있다. 훈련이라는 것이 그렇게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경건의 훈련에도 물론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