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성 (流星)
- 문하 정영인
‘유성(流星)’과 ‘별똥별’은 같은 뜻의 단어인데, 불러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유성은 한자어이고, 별똥별은 토속어이다. 이게 말이 주는 품격일까?
하기야 우리말 중에 ‘똥’자가 들어간 말치고 고급스런 말은 없는 듯하다.
애기똥풀, 개똥참외, 개똥지바퀴, 똥바가지, 똥통…….
여기가 한자어에 익숙함에서 오는 사대적, 차별적 의식이 아닐는지.
‘유성이 흘렀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뭔가 확실히 다른 느낌이지만 꼭 집어서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 유성이 떨어졌다, 별똥별이 흘렀다’ 보다는 앞에 것이 제격이다.
확실히 말에도 격(格)이 있다. 어울리는 격이 있다.
어렸을 적, 한 여름밤에 멍석에 누워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본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엄마는 별똥별이 하얀 줄을 그을 때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했다. 나는 별똥별을 보고
수도없이 소원을 빌었지만 그 소원을 끝낼 수가 한번도 없었다. 너무나 찰나적이고
내 소원은 너무나 길었나 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기 소원에 ①, ②, ③ 정해 놓고
“①번!” 하면서 빌었다 한다. 하지만 줄어든 그것도 너무 긴 소원이 될 것 같다.
또 한 가지 별똥별이 떨어질 때, 엄마의 중얼거림은 “오늘은 누가 돌아가시는구나!”
하셨다. 그런 것을 보면 삶이나 죽음은 찰나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어머니는 유성처럼 살다가 돌아가셨다.
유성은 언제나 곧은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굽은선으로 떨어지면 시간이 좀더 걸렸을 텐데…
그랬으면 엄마는 좀더 사셨을 것 같다. 다음에 유성을 볼 수 있으면 엄마 한번 잠깐이나마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겠다. 아니, 그걸 ①번 소원으로 해야겠다. 별똥별 본지 오래다.
내가 있는 밤하늘은 별똥별을 보여주지 않는다.
유성이 떨어진 저 편에 별똥별의 무덤이 있을 것이다. 제 몸을 부지런히 태운 별들은 주검이
없겠지. 다 못 태운 유성은 그 시체가 있지 않을까. 그 비싸다는 운석(隕石)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죽어서 잘 썩으면 좋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풍장(風葬)이나 조장(鳥葬)도
시체가 잘 썩거나 뜯기면 좋은 세상에 갔다고 한다. 인간 주검의 운석은 혹시 사리(舍利)가
아닐까. 별똥별이 자기 공동묘지에 가지 못하고 지구에 떨어지는 것이 운석이다.
이 운석이 똥값이 아니다. 엄청 귀한 값을 받는다고 한다. 하여간에 기똥찬 별이 되나보다.
별똥별은 결국 자기 몸을 불살라 생을 마감한다. 유성은 한마디로 별들의 화장이다.
별똥별을 본지 참 오래다. 도시 하늘에서 별도 잘 보이지 않으니, 별똥별이 보일 리 만무다.
나는 누구의 말처럼 유성 사냥꾼이 되고 싶다. 별빛이 흐르는 곳에서……. 장대 들고 망태 메고
고향 뒷동산에서 유성을 주울 수 있을는지. 망태에다 개똥을 주워 담던 우리네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유성은 흐르고, 별똥별은 떨어진다. 진짜 별의 똥이 있는 것일까. 개똥참외 열듯 별똥을 주워다
흙에 심으면 별똥참외가 열릴까?
유성의 일생이 밤하늘의 빛을 가르며 그 짧은 찰나적 존재는 사람의 일생도 그렇지 않은가. 한순간,
한순간 삶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