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스콘신주 천체연구소에 근무하던 찬드라세카르(Chandrasekhar)박사는 시카고 대학에서 겨울방학 동안 고급물리학 특강을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몇 주 후, 학생 수가 너무 적어 강의를 취소해야 한다는 전화가 왔다. 박사는 몇 명이 등록했는지를 물었고, 학교에서는 두 명이라고 대답했다. 찬드라 세카르 박사는 학생의 신상을 물은 뒤 두 학생을 위해 강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난히 추운 겨울방학이었지만, 그는 한 주에 두 번씩 두 시간을 달려와 두 학생을 위해 열심히 강의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 두 학생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됐다. 그들은 ‘첸넝양’과 ‘충도리’라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였다. 수상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셨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이 저희들을 이 자리에 서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만남이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우리 일생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부모, 친구, 선생님, 동료와 주변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과 어떻게 만나 어떤 일을 도모하며 어떤 길을 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모든 행위는 결코 어떤 행위가 됐건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 관계가 부모와 자식이건, 선생과 제자건, 친구와 주변의 동료가 됐건, 수직적이건 수평적이건, 가르침이 됐건, 나눔이 됐건 결국은 교육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부모라면 자녀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내가 목사라면 교인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내 친구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우는가? 교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런 의식이 없다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 찬드라 세카르 박사처럼 나를 통해 무엇을 배우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그 해답을 소크라테스의 일화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스 역사 철학자 크세노폰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테네 군관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청년 장교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자기가 공부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자랑했다. “우리 선생님이 언제든지 좋은 사람은 행렬의 앞과 뒤에 세우고 나쁜 사람은 가운데 세우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매우 좋은 가르침일세. 그러나 너희 선생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분간하는지를 가르쳐 주더냐?” 이 말에 당황한 청년 장교는 “그것은 안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돌아가서 네 월사금(月謝金)을 도로 찾아 가지고 오너라”고 했다. 이처럼 선과 악의 구별과 그 판단의 기준을 가르쳐 주지 않는 교육은 어떤 종류의 교육을 불문하고 기본적인 인간교육에 실패한 교육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모습인 것 같다. 큰 경기가 있는 날이 주일일 때 명확히 드러난다. 어떤 교회는 교인이 운동구경하느라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예배시간을 변경했다는 소식도 있다. 어떤 모양이든지 예배를 드리면 그만이란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세상의 약속을 변경 혹은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의 약속을 위해 하나님과의 약속을 변경할 것인가? 하찮은 질문 같은 가? 그렇지 않다. 이런 질문에 정답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영적인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나님과의 약속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니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 찢겨 피 흘려 죽게 까지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우선순위 제1에 두는 교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회라는 확신이 서게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소크라테스가 다시 힐책(詰責)할 것이다. 네가 다니는 교회가 좋은 교인과 나쁜 교인을 어떻게 분간하는지를 가르쳐 주더냐 라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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