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미래 / 최백규
이제 네가 신이 되었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닥에 눕혀진 나를 내려다보며 전해주었다
나무로 되어 조용히 망가진 교실에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서럽게 울면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죽으면 다 끝이라고 반복했다
열린 창을 통해 온몸에 빛이 쏟아지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쓸어내리듯 바람이 가벼웠다
신은 왜 나에게 신을 주었을까
바다에서 썩지 못하고 다시 밀려온 소년을 바닷가에서 수습하듯이
여름 내내 살의와 선한 마음들이 세계를 둘러싸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긴 싸움이 이어졌던 것이다
나의 몸 위로 수많은 꽃이 쌓이고
환하게 웃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미래를 마주하고 온 것처럼 살가운 눈물로
더 이상 막아야 할 슬픔도 지켜야 할 행복도 없지만 아직도 구름이 흘러서
신이 된 첫날에는 인간들을 죽이고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
죽기 싫었다
- 『창작과 비평』 2022년 겨울호 --------------------------
* 최백규 시인 1992년 대구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4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동인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
▶순수한 분노의 잔여적 미래
그의 말처럼 "여름 내내 살의와 선한 마음들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세계 속에 시인이자 신은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머무름은 단순한 일치 혹은 무가치한 세계에 동화된다는 의미를 지니진 않을 것이다. '살의'와 '선한 마음'은 '비웃음과 무시' 그리고 '따스함'처럼 너무나도 다른 시공간에 속해 있으니까. 이 측면에서 시인의 존재론적 목적이란 "살의"의 신과 맞서는 "선한 마음들"의 시인이자 신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를 향해 있는 것이라 해야 한다. 이 시인이자 소년은 "바다에서 썩지 못하고 다시 밀려온 소년"이자 시체이며 동시에 죽은 자신을 "바닷가에서 수습"해야만 하는 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요컨대 자신의 죽음 그 자체를 손에 쥐며 죽음을 통과한 소년이자 시인이 스스로를 다르게 인식하기. 그렇다면 죽은 그는 죽은 자신의 시체를 손에 쥐고 나서 시인/신으로 재탄생하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죽기 싫어서', 즉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어서.
죽음을 통과한 자의 눈으로 현실이란 세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그 부정의 함과 비순수에 대한 분노를 사유하기. "더 이상 막아야 할 슬픔도 지켜야 할 행복도 없"는 지금의 세계에 무가치한 우리 "인간들을 죽이고 도망치는 꿈을" 꿀 수 있는 그러한 시인이자 신인 자. 이 이탈한 자이자 우리의 지금을 전부 부정할 수 있는 기억의 시공간과 아우라를 지닌 죽은 자. 바로 그러한 자가 비로소 시인의 이름에 걸맞는 존재일 따름이다. 오해하지 말자. 그의 증오와 분노는 단지 부정과 파괴만을 향한 것이 아니니까. 그 순수한 증오와 순수한 분노를 지닌 자가 "환하게 웃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아"즐 수 있으며 '미래를 마주하는 살가운 눈물'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것. 그러하기에 이 죽은 자의 근원적 시선은 과거의 시간이자 공간이며 실로 죽어 있는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할 어떤 장소를 끊임없이 향할 따름이다. 마치 죽은 '나의 몸에 수많은 꽃들이 쌓여가는' 흔적처럼 말이다.
- 김정현 (문학평론가).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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