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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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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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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론의 반차는 온전하지 않다
아론의 반차 제사장은 온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를 예슈아와 비교한다면 우리도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우린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이 땅에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들이 백성을 중보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그 제도는 영원하지 않다. 이 땅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우리도 육체를 벗을 것이다. 우리가 육체를 벗었을 때 이 땅에서와 같이 율법을 지킬까? 이 땅이 사라진 후에도 즉 하늘 나라에서도 율법을 동일하게 지킬까? 율법이 죄를 위해 있다면 부활체를 입은 우리에게 율법이 과연 필요할까? 우리가 부활체를 입는다면 더이상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중에 최소한 속죄제, 속건제는 없어질 것이다.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인 아버지의 나라에는 성전이 없으므로 성전에서 행하는 율법도 없을 것이다(계21:22). 이처럼 율법은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 밖에 없다. 이는 율법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쓰기에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위 계통의 직분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율법이 불의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쓰기에 합당치 않고 이 땅에서 쓰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계21:9,10,22,23)
2 예슈아는 멜기세덱이 아니다.
성경은 예슈아께서 멜기세덱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의 헬라어 뜻은 '닮음, 유사함'이다. 영어로는 similitude 이다. 즉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계승한 것이지 예슈아께서 멜기세덱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론의 반차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사장들이 모두 아론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론의 뒤를 이었다는 의미인 것과 같다. 누구도 스스로를 계승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위계 질서를 지키는 사람도 없다. 멜기세덱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예슈아께서 오셔서 다시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어 하늘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을 성취하게 하신다. 이를 통해 제사장 멜기세덱은 아론 반차의 제사장들이 세워지기 전에 먼저 일어나 그들을 축복했고 땅의 제사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도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즉 멜기세덱 반차의 제사장은 땅의 제사장 제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에 이 세상 나라가 필요 없다면 여호와께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있으면서 현 세상이 잠시 잠깐 존재하는 것처럼, 멜기세덱 반차의 제사장이 영원히 존재하면서 현 세상에서 아론 반차의 제사장 제도가 잠깐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가 있기에 그림자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위해 그림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현 세상에서 실체를 연습하기 위해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를 통해서이다(골2:16,17).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 존재함으로 그림자인 아론 반차의 제사장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신 예슈아가 계시므로 더 이상 제사장들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제사장들과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예슈아께서는 더욱 온전하게 되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2:16,17)
3 율법은 무익하므로 폐하는가?
땅에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제단의 일을 담당하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슈아께서는 제단의 일과 상관 없는 유다 지파이시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셔서 불멸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여기서 '계명'의 헬라어 뜻은 '명령'으로서 모든 율법을 포함한다. 율법은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 비해 연약하고 무익하다. 왜냐하면 영원한 나라를 땅의 율법으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죽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제사장이 필요 없고 결혼도 죄도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이다. 영원한 나라에서 죄를 속죄하기 위한 속죄제나 속건제 제사가 없다면 번제나 소제, 화목제와 같은 제사가 없다면 더 이상 제사를 위한 제사장도 필요 없는 것이다. 이는 율법이 연약하고 무익해서가 아니라, 천국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 땅에서 중요한 돈이 하늘에서는 무익한 것과 같다. 이처럼 하늘에서 무익하다고 해서 이 땅에서도 무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믿음과 긍휼과 정의이다(마23:23). 이들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의 강령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마22:37-40).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중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고전13:1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신뢰할 것이고 그분 안에서 소망을 가질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의 본질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13)
4. 예슈아께서 오시지 않으면 부활도 없다
만약 예슈아께서 이 땅에 나셔서 죽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오직 모세와 율법, 선지자만 있다면 어떨까?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약 예슈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부활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한다 해도 부활이 없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으며 양심을 씻어주는 성령이 없으므로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 것이며 영생도 하나님 나라도 없을 것이다. 즉 예슈아의 부활이 없다는 것은 이 세상 삶만이 존재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죽었지만 그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이 전부인데 헛된 언약을 붙들고 고난을 인내하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아담을 통해 불법한 자들이 모두 사망하게 되었다면 예슈아를 통해 순종하는 자들이 모두 부활하게 되었다(고전15:16-21).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슈아의 부활은 복음중의 복음이며 우리의 믿음을 갖는 이유이고 언약의 성취이다. 즉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주신 부활의 표증이며 소망인 것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15:16-21)
5 예슈아만이 계시록의 인을 떼신다
예슈아께서는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죄를 이기셨으며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사셔서 아버지께 드리시고 우리로 왕노릇하는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계시록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 유일한 사람이 되셨다. 즉 현세의 생명을 드리고 영생을 사신 것이다. 자신의 부활 뿐아니라 예슈아처럼 여호와께 순종하는 우리도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특히 예슈아의 부활이 우리가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왕노릇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슈아의 부활은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부활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계시록에서 인을 떼심으로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열쇠가 되신 것이다(계5:2-5 9,10).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5:2-5 9,10)
6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율법은 왜 아무것도 온전하게 하지 못할까?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율법을 왜 주셨을까? 그리고 그 율법을 왜 이 땅에 강림하셔서 손가락으로 써 주셨을까?(출31:18) 율법이 완전하지 못한 이유는 그 용도에 있다. 율법은 이 땅에서 사용하는 법도이다. 즉 죄인들을 위해 죄를 이기라고 주신 법도가 율법이다. 그러나 율법이 죄는 아니다. 율법은 죄가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죄가 없고 불의함이 없다면 죄를 알게하는 율법도 없을 것이다. 이 땅은 반드시 사라질 것이며 우리의 육체는 썩어질 것이다. 썩을 육체를 위해 주신 법도가 율법이다. 즉 샤밧은 지키기 위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다. 그러나 샤밧을 지키는 육체로는 유업을 받을 수 없다. 즉 육체 그 이상, 율법 그 이상이 필요하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15:50)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이 필요하다. 그것은 구원이라는 유업이다. 영생이라는 더 좋은 소망이다.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는 율법에 따라 세워진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세워진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필요하다. 즉 율법이 온전하지 않은 이유는 온전하지 않은 곳에서 사용하는 법도 즉 육체의 예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땅에서는 율법이 거룩한 진리이다. 다만 영원한 하늘을 위해서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다.
7 거룩하고 악이 없는 대제사장
땅의 제사장들에 비해 예슈아께서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시므로 항상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는 거룩하고 악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셨으므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합당하시다(히7:25,26). 이 땅에서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영으로는 대제사장이신 예슈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비로소 온전함에 이를 수 있다(롬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히7:25,26)
8 율법이 언제 폐하고 바뀌는가?
이 땅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으므로 제사장이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도록 율법으로 정하셨다(레16:16).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속죄제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더이상 동물의 희생 제사가 필요 없다. 이처럼 율법이 폐하였고 바뀌었다. 그렇다면 언제 이렇게 바뀌는가? 언제 더이상 죄를 위한 희생 제사가 필요 없어지는가? 예슈아께서 부활하셨고 희생 제사가 필요 없어졌는가? 그래서 성전이 무너졌고 앞으로도 제사를 위한 성전이 필요 없는가? 그러면 왜 예슈아께서 피로 우리의 양심을 씻으셨는데 우린 계속 죄를 짓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땅에 속해 있으므로 육체를 따라 세우신 아론의 반차 제사장이 필요한 것이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죄를 짓는 한 속죄제가 필요하고 회개와 용서가 필요하다. 즉 율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를 벗었을 때 우리의 영을 위하시는 대제사장 예슈아께서 온전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존재 즉 죄와 사망을 이긴 존재가 되어 영원히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폐하고 바뀌는 때는 순교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할 때이다. 그때에는 부활한 자들이 살아있는 자들을 예슈아와 함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통치할 것이다(계20:5,6). 그때는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 제사장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체를 입은 자들과 육체를 입은 자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후 모든 원수들이 망하고 사망이 멸망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율법이 온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즉 육체를 벗는 것이 기준이 되어 첫째 부활 때 율법이 변하고 바뀌기 시작하여 모두가 부활할 때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계21:1,2). 그럼에도 예슈아께서 죽어서만 필요한 분이 아니시다.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에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온전히 이루기까지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이기도록 도와주실 대제사장이신 예슈아께 담대히 나아갈 때 은혜를 입게 하실 것이다(히4:15,1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5,6,10)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1,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5,16)
9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다
동물의 희생 제사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날마다 해마다 드려진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속죄제, 화목제로 한번 드리심으로 희생제사를 이루셨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두번 드릴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한 자신을 한번 드려 영원히 거룩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슈아께서 희생 제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더이상 제사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슈아의 직분과 역할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 땅에서는 자신의 죄를 위해 아론의 반차에 따라 속죄제를 드리는 것이 율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렇게 드려도 죄가 생각나고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이 현재의 삶이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하늘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로 죄의 헌물이 되셨고 완전히 이루심으로 영원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다시는 속죄제가 필요 없도록 단번에 이루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린 영원히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양심을 씻어주셨음에도 이 땅에서는 여전히 죄를 짓고 회개하지만 순종하는 자로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 성소에 속하게 되면 죄도 사망도 아픔도 없어지는 것이다. 단번에 제사를 이루신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시점을 초림에 두면 우리가 계속 범죄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가 사라지고 영원한 존재가 되는 시점인 부활에 두어야 한다. 물론 초림을 통해 양심을 씻는 거듭남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 언약을 성취하는 때는 육체를 벗고 부활한 후인 것이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천국(안식의 나라)의 표적을 샤밧에 많이 보이신 것이다. 그러한 회복이 초림에 시작했으나 우리가 아직 육체에 있기 때문에 영으로는 대제사장이신 예슈아가 필요하고 육으로는 아론의 반차가 필요한 것이다. 두개의 반차가 공존한다. 다만 천년왕국에서는 예슈아께서 눈에 보이게 이땅에 오셔서 다스리지만 지금은 영을 통해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후 새하늘인 새예루살렘에서 아론의 반차가 폐하고 온전히 율법이 이루어질 것이다(사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61:1,2)
10 율법은 약점을 가진 제사장을 세웠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워진 제사장들은 연약한 사람들로 세워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제사장이라도 사람으로서 스스로 연약하기 때문에 무식하고 미혹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용납해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하여 복 주시기를 원한다. 악한 자라도 회개하여 죽지 않기를 원하신다(겔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33:11)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연약한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온전하게 되신 예슈아를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더이상 속죄제가 없으며 다시 말해 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히 거룩하게 되신 예슈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시고 중보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나은 소망이 있다. 영생에 속한 언약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더 나은 언약은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한 자들에게 속하는 맹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실질적인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부요함을 주시고 억압에서 자유케 하시며 머리가 되고 거룩한 나라와 백성이 되게 하신다. 그러나 영원히 거룩한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에 속하여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은 이 땅에서 잠깐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제사장들은 율법(언약)을 따라 세우셨지만 이보다 더 좋은 언약에 속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을 위해서는 맹세로 세우셨다(시110:4).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직책이다. 그렇다고 더 나은 직책이 있으므로 율법에 따르는 직책을 폐하거나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따라 그분의 사랑으로 세우는 제사장이 이 땅에서 사용하기에 온전한 법도인 것처럼, 하늘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로 세우시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하늘에서 사용하기에 합당한 법도인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110:3,4)
11 율법이 이루어진 나라
이 땅에서 율법을 살게 하시는 이유는 죄를 이기게 하기 위함이다. 즉 죄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을 이 땅에서 연습함으로 순종의 종이 되어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을 통해 거룩함을 이룬 사람들의 세상이다. 즉 율법을 통해 순종함으로 구원의 유업을 이룬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순종과 믿음은 같은 뜻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안식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순종하지 않아서 즉 믿지 않아서였다(. 헬라어로 믿음은 순종이다. 이 땅에서는 율법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고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우게 하신다. 그래서 법이 없이도 사는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사람으로 훈련하시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거룩하게 되어 죽고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들에게 더이상 율법이 필요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고 죄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며 죄를 이기신 예슈아의 중보와 도우심이 필요하다(히4:15,16). 그리고 예슈아의 길을 순종으로 걷는 자들, 고난으로 순종을 배운 자들이 구원의 유업을 받게 될 것이다(히5:8,9). 또한 예슈아의 생명을 얻게하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의 법 즉 불순종에서 해방시킨다. 즉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던 자들을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롬8:2,3,7). 그러므로 순종을 위해 그리고 언약을 성취를 위해 예슈아의 죽으심과 부활은 꼭 필요하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8:2,3,7)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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