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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지사의 발언을 비롯하여
요즘 유행이다 시피한 매국노들의 자진 검증 발언은
한마디로 캐수작이다
이미 조선,대한제국은 유럽의 거대 기업들과 선박및 항로 그리고 철도와
산업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근대화가 진행중이었다
그 일례만 소개하자면
)최초의 무역회사 이화양행(펌)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회사가 설립된 곳을 아십니까?
개항의 도시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회사인 이화양행(怡和洋行)이 설립됐다.
영국계 상사인 이화양행은 1880년대 조선 정부가 개화 정책 수행을 위한 몇년간의 준비끝에 만들어낸 무역채널이다. 조선 정부는 1880년 통리기무 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했고 1882년 이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으로 개편했다. 당시 조선 정부는 기선 도입이 절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외국 기선을 유치해서 이용하는 방안을 강구했고 결국 청 나라의 자문을 얻었다.
조선 정부는 청의 추천으로 독일인 묄렌도르프(穆麟德, Paul Georg von Moellendorff)를 고문으로 받아들여, 조곡의 징수와 수송 문제, 그리고 관세에 관한 사항을 담당토록 했다.
통리교섭사무아문의 정권사 당상(征權司 堂上)이 된 묄렌도르프는 1883년 영국계 상사인 이화양행(怡和洋行, Jardin Matheson Co.)과 기선 운항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
또 660톤 급의 기선 ‘남승호’(南陞號, s/s Nanzing)를 나가사키(長崎)와 부산을 경유, 인천과 상해를 연결하는 정기 항로를 개설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이화양행은 못쓰게 된 폐선을 인천항의 중국인 거주 지구 앞에 세워 놓고 이를 사무실 겸 창고로 사용하면서 선박을 취항시켰다.
이렇게 문을 연 이화양행이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회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화양행의 정기선 운항은 누적된 운항 결손으로 1년만에 운항을 중단하고 말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선 운항이었다.
이화양행에 의한 정기선 취항이 끊긴 이듬해인 1885년에 조선 정부는 다시 묄렌도르프의 주선으로 독일계 상사인 세창양행(世昌洋行, E. Meyor Co.)과 동업 형태로 기선을 용선하여 전라도 지역의 조곡을 인천까지 수송하도록 했다고 한다. <자료제공 인천시>
이 자딘그룹(이화양행)이 얼마나 거대한 그룹인지를 설명하자면
과거 아편전쟁의 시초가된 기업으로
홍콩 전체를 관장하던 기업이다
hsbc와 함께 일제가 이땅에 철도를 놓기 훨씬전부터 중국 전역에 철도를 놓았던 기업이며
인천,서울간 철도도 원래 이 기업이 하기로 되어있었다
오늘날의 자딘그룹을 살펴보자....(펌)
해외여행을 하기 어려운 1980년대 초에 필자가 홍콩에 처음 와서 묵은 호텔이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이었고, 그 당시의 직장인 불란서은행 홍콩지점이 있던 곳이 랜드마크 (The Landmark) 빌딩이었다. 당시에 한국에서 보기 힘든 지상1층과 지하에 입점한 명품가게를 보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그 뒤에 홍콩에 출장 와서 몇 군데 은행을 방문했는데, 대부분의 큰 은행들이나 금융기관들이 자딘하우스나 Exchange Square에 입점해 있었다. 꽤나 으리으리한 건물들을 보고 궁금한 것은 누가 이 빌딩들의 주인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난 2001년 8월에 홍콩으로 부임하여 사무실을 얻으려고 돌아다니면서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만다린오리엔탈호텔과 그 빌딩들을 자딘그룹 (Jardine)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딘그룹은 스와이어(Swire)그룹과 더불어 영국계 자본이 영국식민지 기간 동안 홍콩에서 부를 축적한 ‘Hong’ 이라고 부르고 있는 대표적인 그룹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발행된 Fortune 잡지의 홍콩특집에서 홍콩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의 순서를 매긴 적이 있는데, 홍콩에 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 자키클럽, 두 번째가 怡和(자딘그룹), 세 번째가 홍콩상하이은행(HSBC), 마지막이 홍콩총독으로 보도되었었다. 이 정도로 자딘은 홍콩에서 너무나 유명해왔다.
자딘그룹은 우리의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먹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피자헛(Pizza Hut)과 스타벅스의 홍콩파트너, 우유를 생산하는 데일리 팜, 청콩그룹의 Park N Shop과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웰컴(Wellcome) 슈퍼마켓, 만닝스(Mannings), 세븐 일레븐(7-Eleven)이 있다. 만다린오리엔탈호텔, 홍콩섬 센추럴의 유명건물들인 The Landmark, Jardine House, Exchange Square를 소유하고 있는 홍콩랜드(Hong Kong Land)도 자딘그룹에 속한다. 아울러 조립식 가구인 이께아(Ikea)와 벤쯔 승용차의 홍콩판권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최고의 보험회사인 Jardine Lloyd Thompson과 제2금융권 은행인 Pacific Finance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선박회사인 Jardine Shipping Services 도 자딘 소유다.
자딘그룹의 역사
자딘그룹은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인 1832년에 광동에서 스콧 윌리엄 자딘(Scots William Jardine) 과 자딘의 대학후배인 제임스 매치슨(James Matheson)에 의해서 설립되고, 홍콩에서는 1834년에 영업을 하게 됐다. 현 자딘그룹의 홀딩회사인 Jardine Matheson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자딘의 한자이름인 ‘행복한 하모니란’ 뜻의 이화(怡和)란 말도 이 때쯤 생겼다.
자딘은 상하이나 동경의 지번 1번을 매입하여 지금의 부동산 재벌의 기초를 세웠다. 인도와 중국 사이를 운행하는 증기수송선을 띄우고, 홍콩에서 최초의 방직공장을 세우고, 광동과 구룡을 잇는 철도를 가설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1941년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홍콩의 모든 사업이 폐쇄했다가 종전 후 홍콩에서는 최초로 사업을 개시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의 사업은 1979년 중국이 개방할 때까지 중단 됐다. 그 뒤에는 중국에 사업투자는 조금씩 했지만, 옛날의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 버뮤다로 본사를 옮기게까지 됐다.
1970년대에는 홍콩의 주요 증권회사 중의 하나였던 Jardine Fleming 증권회사를 설립하여 2000년에 체이스맨하탄은행에 매도했다. 1981년에 7- Eleven 편의점을 개설했고 그 뒤에는 피자헛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인수했다.
자딘그룹의 지주회사는 자딘 매치슨과 자딘 스트레직(Jardine Strategic) 등 2개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자딘 매치슨이 주요 지주회사로써 자딘 스트레직의 주식을 2002년 12월 현재 79%가지고 있으며, 자딘 스트레직은 교차로 자딘 매치슨의 주식 51%를 가지고 있다. 두 주식 모두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으며, 싱가폴과 버뮤다에도 상장되어 있다.
자딘그룹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수요저널의 명 칼럼리스트이고 몇 달 전에 책까지 발간한 유주열씨의 나의트레일 (수요저널 홈페이지 www.wednesdayjournal.net > WJ Column 2000년 6월14일, 6월23일, 6월28일자 ) 에 잘 나와 있다. 필자는 홍콩회사를 소개 하는 것이 주 목적이므로 자딘그룹의 각 회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홍콩랜드 (Hong Kong Land)
홍콩랜드 회사도 지주회사 형식으로 운영되며, 버뮤다에 설립되어 주식들은 런던과 싱가폴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홍콩에서 소유하고 있는 주요 건물들은 센추럴의 주요 건물들로써 이미 소개한 자딘하우스, Exchange Square I, II, III, 알렉산드라 하우스(Alexandra House), 차터 하우스 (Charter House), 랜드마크(The Landmark), 프린스빌딩 (Prince's Building), 홍콩클럽빌딩(Hong Kong Club Building) 등이 있다. 센추럴에서 홍콩랜드의 땅을 밝지 않고는 다닐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요 건물은 홍콩랜드가 소유하고 있다.
지금에야 새로운 IFC 빌딩과 홍콩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하여 사무실 얻기가 많이 쉬워졌으나, 몇 년 전만해도 상기의 주요 사무실빌딩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을 기다리고 고가의 임차비용을 부담했어야 했다.
홍콩사람들이 홍콩랜드에 대한 태도는 거의 경외심에 가까웠고, 수많은 부동산 재벌들은 홍콩랜드를 벤치마킹까지 해왔다. 실제로 1987년에는 홍콩의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 청콩그룹의 리카싱, 뉴월드그룹의 청유퉁(鄭裕彤), Citic Pacific 그룹의 양치킨(榮智健) 핸더슨그룹의 리샤우키가 힘을 합하여 홍콩랜드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으나, 자딘그룹과의 마라톤협상 끝에 7년간은 조용히 있기로 '신사협정'을 맺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신사협정이 유효한 지 홍콩랜드는 아직도 자딘그룹에 그대로 있다.
홍콩랜드는 국제적인 신용평가사인 S&P와 Moodys사로부터 한국의 국민은행과 같은 신용등급인 BBB+와 A3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2003년 12월말 현재 총자산은 미화 66억불 (한화 약8조원, 1불을 1,200으로 환산)로 엄청난 자산이며 그 중에서 부동산에 관련된 자산은 미화 55억불 (한화 6조6천억 원)이다. 총 부채는 미화 30억불(한화 3조6천억 원)이고 총자본금은 36억불(한화 4조3천억 원)이다. 부채비율은 83%로 부동산 회사로써는 매우 좋은 재무 구조다. 2003년 1년 동안의 매출은 미화 3억8천만불(한화 약4천6백억원)로써 이 중에서 임대수입수수료는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96%가 홍콩에서 일어난 매출이다. 임대수입이 1년에 미화 3억불(한화 3천6백억원)이라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2003년에 영업수익은 미화 2억6천만 불(한화 3천억 원)이었으나, 홍콩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부동산 평가손 8억2천만 불의 반영으로 2003년에는 미화 약5억7천만불의 적자를 기록했다.
데일리 팜 (Daily Farm)
데일리 팜이 직영하거나, 합작하거나,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웰컴(Wellcome), 이께아(Ikea), 맥심식당(Maxim), 싱가폴의 콜드스토리지(Cold Storage), 한국의 CJ와의 합작인 Olive Young, 세븐 일레븐(7-Eleven) 등이 있다. 주로 아시아 지역에 밀집된 매장은 약 2천5백 개가 있다.
데일리 팜은 비상장회사다. 2003년에는 미화 약 45억불(한화 5조5천억 원)의 매출, 미화 1억2천만불(한화 1천4백억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만다린오리엔탈 호텔 (Mandarin Oriental Hotel)
만다린 호텔의 영업은 1963년 홍콩에서 시작됐다. 1974년에는 세계호텔 품평에서 항상 상위 랭킹을 유지해온 방콕의 유명한 The Oriental을 45% 인수함으로써, 일약 호텔업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1985년에는 그룹 이름을 정식으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로 명하고, 1987년에는 홍콩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아시아에 12개 호텔, 미국에 9개, 유럽에 3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만다린 호텔은 수많은 잡지에 의해서 베스트 호텔로 지정되어 왔었다. 올해 초에도 Travel & Leisure사에 의해 최고의 호텔로 지정됐다.
지난 2003년은 사스 발생으로 홍콩과 아시아 지역의 호텔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만다린 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출은 2002년과 비슷한 미화 5억4천만불(한화 6천5백억불) 이었으나 당기순이익은 미화 3백만불(한화 36억원)을 기록했다. 총자산은 미화 약 13억불(1조 6천억 원), 총 부채는 미화 약7억불(한화 8천억 원) 총자본은 미화 약6억불(한화 7천억 원) 이다.
자딘 로이드 톰슨 (Jardine Lloyd Thomson)
자딘 로이드 톰슨은 유럽에서 가장 크며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보험회사이다. 30개 국가에서 영업을 하며,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주식가치로는 미화 15억불 (한화 1조8천억 원)이다. 자딘 로이드 톰슨은 1971년 설립된 자딘 보험회사가 1981년에 합병된 Lloyd Thomson과 1997년에 합병됨으로써 탄생했다. 그 뒤에도 수많은 회사를 인수 합병하여 오늘의 대 그룹이 탄생했다. 자딘그룹은 이 회사에 32%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대 주주다.
2002년 12월 현재 총자산은 미화 약 40억불(한화 4조 8천억 원)이며 총자본금은 미화 약 2억5천만불(한화 3천억 원)이다. 2002년 1년 동안의 매출은 미화 6억불(한화7천2백억불), 당기 순이익은 미화 4천5백만불 (한화 5백4십억원)이다.
History
- 동인도 회사 출신의 William Jardine & James Matheson
- 현재 오너 가문은 윌리엄의 여동생 집안인 Keswick 가문
- 1817년 'Country Trade'(영국을 제외한 곳에서의 무역) 로 시작
- 1832년, 법인 설립
- 1834년, 동인도 회사 특허권 만료
- 1840년, 아편전쟁(아편을 압수당한 Jardin Matheson사의 영국 정부에 항의가 시초)
- 1841년, 홍콩 개발 시작
최초로 부지 인수한 회사 중 하나가 됨
- 1842년, 홍콩에 본사
이후 Jardin Matheson의 임원이 홍콩 입법/행정부에서 종종 겸직
- 1875년, the Shanhai & Hongkew Wharf, 상하이 지역 항구 합병, 후일 태평양 전쟁 때 대파됨
- 1881년, Indo-China Steam Navigation Company, 난립하던 쉬핑 업체를 합병
- 1898년, HSBC와 중국 철도 개발
- 1907년, 패키징 공장
- 1919년, 방적 공장
- 1920년, 냉동 창고, Egg 등, 영국으로 계란 수출 쏠쏠
- 1923년, Jardine Engineering Corporation, 중국이 수입하던 기계류 대체위한 제조업체 설립
- 1932년, 일본 제국, 15년 전쟁 시작, Jardin Matheson 사의 영업에 큰 장애가 되고 일부 시설 파괴 or 점거됨
- 1947년, Trust 결성
- 1994년, 홍콩에서 상장 폐지, 영국으로 이동 --> 중국 정부에 찍힘
- 현재, 직원 24만명, 매출 270억불 이라고 알려져 있음
홍콩에서 정부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임
대략 동인도 회사의 독점이 무너질 무렵에 등장해서
차/실크/아편 등의 무역을 하였는데
"속도/효율"의 면에서 경쟁사보다 앞섰다는 듯 합니다.
아편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고,
이후 난징 조약으로 영국이 받은 홍콩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는데
기후/역병 때문에 초기에 고생이 많았다고 하네요.
규모를 키워면서 운송 업체나 항구 등을 병합해 나가고
무역 뿐 아닌 제조업 등을 중국에 투자했지만 1932년부터 시작된 15년 전쟁으로 상당수 시설을 날렸다는 거 같습니다.
2차 대전 후에는 상장도 한 듯하고..
여전히 차 무역에서는 전세계 50% 정도를 점유한다는 듯하기도 하네요.(미확인)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상장폐지하고 런던으로 옮겨서 중국 사업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오너였던 William Jardin 이라는 인물은 중국 무역 쪽으로 전설적인 거물이라고 하네요.
좀 더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들
- "Taipan" 이라는 단어들이 실제 가르키는 사람들.
- 동인도 회사의 무역선에서는 선원들에게 상자 2개 분량 정도를 소지할 수 있게 해줌.
- 아편 전쟁은 자딘 마테슨에서 정부에 꼰지른 게 시초..
- 19세기 무역, 운송 방식의 혁신, 냉동 창고 등의 보관 방식의 혁신 주효
- 스티브 마빈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자딘 플레밍이 자회사였음
- 무역 시대에 패키징도 쏠쏠 했겠다.
- 회사의 임원들은 초기 홍콩 입법부/행정부에서 겹치게 일을 받는 경우 종종 있었음
(미국, 벤자민 프랭클린 케이스 대입되는 듯)
- 1834년 동인도 회사 특허권 상실 --> 1840년 아편 전쟁 --> 1867년 메이지 유신
이런 인과관계도 충분히 만들어 볼 수 있겠다.
- 19세기 속도로 무역 경쟁하던 'Clipper' 라는 선단들의 로맨틱한 매력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전부터
이미 조선과 이들 유럽의 기업들은 청나라를 통한 무역과 함께
국가 기반산업에 대한 상호 존중의 방식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있었다
물론 대원군에 의한 일시적인 쇄국정책은 있었으나
일련의 조선왕실의 내부문제가 해결되면서
보다 본격적인 근대화가 진행하던 중이며
이러한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경계하던 일본은
강화도에 일본군을 주둔시키며 직접적 위해를 가함으로서
대한제국의 자치권을 강탈하였을 뿐이다
현실적으로도 후에 일본의 조선 철도 공사는
거의 모든 기술,원자재 등을 이들 유럽의 기업들에게 위탁하였으며
그 공사대금은 강탈한 조선인들의 재산이었다
이외의 지방 농지개간,측량,농수로 공사들도 엄연히 조선인의 재원으로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이루어 진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자국의 극심한 기아와 아사자 문제를
조선에서의 강제적 미곡 강탈로 해결하였으며
조선의 가정마다 모든 놋그릇과 쇠 농기구 까지 강탈할 정도로
엄청난 물자징발을 통한 무역과 군수물자 생산으로
2차대전 직전의 급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이 철도를 놓았다고?
그 레일을 어디서 만들었으며 기관차는 어느나라 것인가?
기관차 미카호는 미국제이다!ㅋ
첫댓글 다른건 몰라도 러일전쟁전까지의 일본의 공업력을 생각하면 조선의 '근대화'라는 것을 과연 일본 힘으로 했냐는 것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군사력으로 조선왕목아지에 칼대고 관급공사만 따내서 막대한 중간이익을 챙기고 기술은 중국에 진출한 유럽회사들에게서 빌리고 인력은 조선인력으로 쓰지 않았냐는 건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딘 창업자 관련해서 "노블 하우스"란 2부작 드라마 있었죠. 상당히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의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이었죠. TV에서 이전에 해 준 적 있습니다. 구할 수 있으면 구해서 보세요.
식민지 근대화는 사실 조선에 투입된 자본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일본에 의해 도입된 공정한 사법체계(행정과 사법의 분리)란 측면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이건 제대로 얘기하자면 말도 못 하게 길어지니 이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