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릴 적 배달의 기수들을 통하여 감명깊게 혹은 살벌하게 봤던 전쟁영화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보는 전쟁영화는 정말 수준에 못 미치는 목적성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배달의 기수도 티비에서 종영이 되지 않았나 싶다. 본인 잇빨중사가 봐온 국산 전쟁영화들 중에서 참으로 모순 많고 이상한 영화들의 여러 장면들을 끄집어 보겠다. 누군가 봐서 국산 전쟁영화에 참고가 되길 빌며… 주말 잘 보내시길…
1.
북한군은 아무리 쏴도 우리군은 안 맞고, 우리 특공대는 아무데나 쏴도 누군가 맞아 죽는다. 우리 특공대도 가끔 못 맞출 때가 있지만(부상당한 아군이 먼저 가라는 대사를 하거나 할 때) 그래도 두 발 째는 꼭 적군이 맞아 죽는다. 세 발째에 맞추는 것은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다(최고 악독한 북한군 장교가 잘 피하다가 세 발째쯤 맞는다). 주인공이 휘둘러 발악하듯 소리지르면서 쏠 때가 가장 잘 맞아 죽는다. 명중률 100%
2.
적 전차가 등장할 때는 항상, 지금은 안 쓰는 한국군 M-48전차가 풀을 꽃고 등장한다(티를 안나게 하기 위해서 등장시키려고 풀을 필요 이상으로 존나게 꼽는다). 어떤(신성일씨 주연)영화에서는 당시 없었던 UH-1H헬기가 등장해 특공대를 탈출시킨다. 짚차도 항상 풀을 많이 꽃고 다니는데, 난 아직도 그 짚차를 우리 집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행군을 할 때는 그 짚차가 항상 지나간다.
3.
국군은 항상 정예요원만 나오며 괴뢰군의 경우 억지로 끌려나온듯 전투 의지가 없다. 그들의 의상은 항상 가봉이 되지 않은 상태라 옷이 매우 헐렁하며, 머리도 항상 스포츠 머리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국군홍보관리소 상하의 장병으로 추측한다(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듯한 지루한 인상이다). 그리고 괴뢰군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도록 최대한 빨리 죽는다. 넘어지자마자 그대로 죽어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카메라도 죽은 것으로 간주, 절대로 더 이상 비추지 않는다. 그냥 달려와서 예상이라도 한 듯이 도미노처럼 쓰러져 죽는다(단, 적 첩자는 제외한다. 그는 최대한 야비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처참하게 죽는다)인원수가 열악한 경우, 많이 쓰러져 죽어도 항상 적군의 숫자는 거의 동일하게 추격해 온다. 아군의 총은 ‘빵빵’소리가 나고, 적군의 총은 ‘퐁퐁’소리가 난다. 평야지대에서 싸우더라도 적군은 항상 엎드려 쏴를 하다가 죽으며 아군은 서서 쏴로 싸워도 살아남는다.
4.
국군 특공대의 조직과정은 이렇다.
(1) 어느 장교가 영창에 와서 여러 인원을 호명한다.
(2) 그들은 반항하듯 따라나온다.
(3) 가장 나중에 용맹하게 될 반항적인 병사는 항상 철창의 그림자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첫 컷을 맞는다.
(4) 차출 장교는 자주 선글래스를 쓴다.
(5) 특공대 각자가 아주 특징 있게 소개된다.
(6) 도둑질을 잘하는 병사는 거의 한 명씩 꼭 낀다(그는 적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물건을 훔친다)
(7) 차량으로 이동한다. 모두가 다가올 강한 훈련에 아랑곳없이 떠든다.
(8) 하기 싫다는 식으로 어슬렁어슬렁 훈련장에 내린다
(9) 내무반에 들어와서는 힘있는 두 명 정도가 항상 싸운다(그들은 나중에 엄청난 전우가 된다).
(10) 싸우는 중 장교가 들어온다. 고도의 힘든 훈련이 시작된다
(11) 처음에는 너무 못한다
(12) 나중에는 너무 잘한다
(13) 항상 적지의 특별한 공장 같은 곳을 습격하거나 적 고위장교를 납치하러 간다.
(14) 신병 하나, 고참 하나 정도만 남고 다 죽는다(아예 깡그리 다 죽는 경우도 많다)
5.
특공대는 항상 기관단총으로 싸우며 예비 탄창이 없다. 탄창을 갈아 끼지 않고 무제한 쏜다(이것은 아군이나 적군이나 별 차이가 없다. 탄창을 갈아 끼우는 병사는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갈아 끼우는 장면은 그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모든 전투인원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특히 북괴군은 전쟁의 공포를 연기할 권한이 없다. 악만 남아 있다. 불사신처럼 싸운다. 어차피 죽을 거라는 예감을 가진 것처럼
6.
상당히 가까운 사정거리 내에서 엄청난 사격량으로 싸운다(원칙상으로 보면 거리와 실탄수로 보건대 양편 모두가 전멸할 만한 엄청난 양이다). 무거워서인지 북한군은 당시 소대지원화기인 기관총도 갖고 있지 않다. 아마 빨리 추격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군에서 월남전에서 노획한 RPD기관총을 만져봤는데, 정말 무거웠다. 그들이 안 들고 다니는 이유를 알았다. RPD는 전체길이가 1.5미터 정도이며 총열이 나팔처럼 되어 있고 총 위에 따발총식 원반형 탄창이 달린 무거운 총이다. 조수 없이는 절대 운반이 불가능하다. 한 8킬로그램은 넘을 것 같았다)
7.
어렵사리 준비하거나 빌려온 전차 등은 적 진지를 비출 때 항상 배경에서 달리고 있다. 절대 멈춰 있지 않는다(아마도 전차가 나오는 신은 항상 촬영 우선순위가 앞설 것으로 보인다. 군에 반납해야 하는 기한이 있으므로). 그리고 적 진지를 비출 때 항상 오와 열을 맞춘 인원이 구보로 지나가고 있다. 한 장면에서 적 장교가 국군 섬멸계획을 길게 말할 때 전차는 뒤에서 좌우로, 우좌로 계속 움직인다. 전차가 많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한 대 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8.
성격이 나쁘고 괴팍하면서 눈알을 무시무시하게 부라리는 적 고위 장교가 한 명씩 꼭 나온다. 가끔 이 자는 우리측의 미모의 첩자를 겁탈하려 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군 장교복을 입은 여자를 겁탈할 때 우리는 내용과 관계없이 묘한 오서독스를 느낀다. 대부분 나쁜 북한군이 겁탈을 할 때는 상의의 전면단추를 확 뜯어 풀어서는 속옷을 보여주는데(야비한 미소와 번득이는 이빨을 꼭 보이면서 그런다). 그런 장면이 특히 그렇다. 헉…
9.
군대 영창 출신 특공대원은 작전 시 갑자기 맥가이버로 변모해 적의 짚차, 트럭, 심지어는 탱크와 비행기도 조종한다(대부분 탈출시에 갑자기 조작방법을 알게 되며 작에 대한 가미가제 공격시에는 못해도 몰게 돼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고단위 수리기능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의 헛점은 특공대의 개인적인 놀라운 능력으로 커버된다. 그리고 기도 유지하면서 적을 대검으로 죽을 때에는 교범 그대로의 놀라운 솜씨이다.(죽는 병사는 결코 손을 허리 이상으로 올리지 않고 거의 빳빳하게 죽어야 한다. 주인공을 방해하면 그는 국군홍보관리소에서 잘려 전방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대검 공격을 당하는 북한군이 한마디라도 소리를 지르는 경우는 전혀 없다.
10.
대사는 성우의 전형적인 목소리로 더빙되어 진행된다. 그들은 북한의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할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는 합격할 가능성이 농후한 목소리이다.
11.
아군 중 철모를 삐딱하게 쓰는 사람이 한명씩은 꼭 있다(처음 입대해서 논산훈련소에서 해 봤는데, 너무 힘들고 불편하며 머리가 한쪽으로 기운다). 그리고 철모 턱끈은 웬만한 상황에서도 풀지 않고 늘어뜨린다.
12.
가끔 연기력이 별로 없는 외국인이 미군의 연락장교, 혹은 성공을 바라는 미군 고위장교로 나온다. 그들은 더빙된 한국말을 어설프게 구사한다. “킴 대위, 코옥 성공해야 합네다.”
13.
80년대 초에, 아군 특공대가 나오는 625특집 티비 드라마를 봤는데, 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들은 드라마 속에서 베레모와 당시 위장복, K-1A로 무장하고 적 레이더 기지로 가고 있었다.
어릴적 인상깊게 본 배달의 기수 장면:
전투경력이 없는 학도병이 진지로 왔다.
전투가 맹렬히 치뤄진다.
학도병은 부들부들 떨면서 진짤 머리를 박고 울부짖는다.
전투가 끝나고 추진되온 주먹밥이 온다.
하나씩 먹는데 안경 쓴 학도병은 두개를 숨기다가 선임하사한테 야단을 맞는다.
갑작스런 포격과 함께 전투가 시작된다.
전투가 끝나고 적군은 물러나고 선임하사는 본다.
죽은 학도병이 손에 든 주먹밥 두 개를…
첫댓글 잇빨중사님의 혜안에 감동드리며 보충판을 올려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은가요?
좋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