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교회의 목적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명확하고 간단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이중적이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야하며, 그들을 그분을 믿는 믿음에로 인도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들을 그리스도에로 침례를
베풀어야한다는 것이다(마 28:19). 둘째, 교회는 이들 순종하는 신자들을 그들이 그분 안에 세워지고 형성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르쳐야한다는
것이다(마 28:20). 이것이 교회가 가진 유일한 임무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에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잃은 영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계속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세계의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
2. 선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전도에 대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는 선교라는 단어이다. 선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전은 선교라는 명사를
"일종의 소명, 특히 어떤 종교를 전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 즉 어떤 특별한 섬김을 위해서 특정한 능력을 가진 자를 보내는 행위 또는 보냄을
받은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선교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는 없다. 그것은 "내가 보낸다."는 의미의 라틴어 "Mitto"에서 왔다. 선교사란
"보냄을 받은 사람" 또는 "어떤 임무에 보내어진 자"이다. 그것은 "사도" 즉 "내가 보낸다."는 의미의 헬라어 "Apostello"와
동의어이다. "선교"라는 말은 위대한 교회의 목적, 즉 온 세계 전도에 대한 현대적인 용어이다.
3. 기독교는 타고난 선교사이다.
종종 이런 물음이 제기된다. 이미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 왜 선교사들을 보내는가? 다른 나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수백만 달러와 수천 명의 선교사들을 보내야하는 정당성이 무엇인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그냥 내버려두고 그들을 이 새로운
가르침으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만약 기독교가 수많은 종교들 중의 한 종교에 불과하고, 또 만약 그리스도가 수 많은 구세주들
가운데 한 구세주에 일뿐이라면, 가는 것에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에게 열려있는 다른 구원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의 정당성은 기독교 자체의 바로 그 본성에 있다. 기독교를 선교사로 만드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점들이
있다. 이것들은 기독교의 배타적 주장들과 인간관이다.
A. 기독교는 유일무이한 참 종교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독교로 하여금 일세기의 로마인들과 갈등을 겪게 하였으며, 오늘날의 불신자들 사이에서는 지속적으로
적대감을 낳고 있다.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제국내의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 한 종교로 점차를 인정을 했지만, 기독교 신앙의 배타성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기독교가 모든 다른 종교들을 거짓 종교로 단정하는 데에 적대감을 표시하였다.
신약성경이 그것의 메시지로 배타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호와는 한 신(神)이 아니다. 그분은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예수 그리스도는 한
구세주가 아니다. 그분은 유일한 인간들의 구세주이시다. 예수에 대해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다. 이것이 기독교가 선교사인 이유이다. "만일 복음이
인간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라면, 어떻게 나는 계속 침묵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구원 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 나는
나의 구원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가? 바울이 로마서에서 '내가 빚진 자라. . . .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고
말한 것처럼 느끼지 않아야 하는가?"(Harold R. Cook,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Christian
Missions, p. 23).
B. 기독교의 인간관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죄로부터와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 죄가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킴으로써 모든 세계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고, 저주와 죽음을 가져왔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롬 3:23), 누구도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로부터의 구원이 발견될 수 있다. 이 신념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집과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 죄로 죽어가고 있는 자들에게 구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다가 고난과 박해와 죽음에 직면하게 한 거역할 수 없는 힘이었다. 교회의 이
두 가지 신념들은 바로 그 기독교의 본성으로 인하여 기독교를 선교사로 만든다.
C.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이시다.
선교에 대한 세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모범에 있다. 예수께서는 선교를 가르쳤고, 선교를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다. 요한은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보냄을 받은 자"이신 선교사이셨다. 그분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보냄을
받으셨다. 주님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또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
그분의 목적은 오늘의 어떤 선교사의 것과도 동일하였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들, 즉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선교사역을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인간들의 구원을 가능케 하시려고 천상을 떠나 지상으로 오신 때, 시작하신
위대한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4. 선교의 동기
동기란 사람을 행동하도록 촉진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어떤 것을 하도록 움직이게 하거나 강요하는 하나의
힘이다. 선교사로서 간다거나 다른 사람을 파송하는 적절한 동기는 무엇인가? 참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많은 동기들이 있지만, 우리는 다만 몇
가지만 여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A.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예리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세상의 절실한 필요에 대한
자각.
사람이 참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그분이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것을 이해하게 될 때, 그는 다른 사람에게 그분에
대해서 말하기까지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가 생명수를 맛본 후에 한가하게 서서 이 물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볼
수 없다. 이것이 세계 전도에 대한 가장 위대한 동기들 가운데 한 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의 참된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갈보리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표현된 사랑의 메시지로 인하여 결코 이기적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요한복음 3장 1절의 의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그분의 아들을 잃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셨다. 예수는 사랑하셨고, 그들의 몸값으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롬 5:6-8). 하나님의 자녀로써 오늘의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잃은 형제와
하나님의 자녀를 찾아 안전하게 그들의 하늘 아버지께로 되돌려질 때까지 이 탐구를 계속해야한다.
B. 그리스도의 명령
예수는 선교를 가르치고 실천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명령하셨다. 모든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그분의 대위임을
이런 저런 모양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는 그것을 좀더 짧은 형태로 소개하였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누가는 그분의 위임을 다음과 같은 말로 소개하고 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6-49).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첫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우리들은 동일한 위임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표현을 읽게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그분의 명령이 큰 위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권위에
전심으로 복종하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하는데서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그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자
노력하면서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는 영광으로 인해서 기뻐할 것이다(고후 5:18-20).
신자는 단순히 그분의 존재, 즉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복된 특권임에 틀림없다. 한편 순종하지 않을 경우 받게되는 심판이란 부가된 동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가 하든지 않든지 간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나는 선교를 믿지 않는다"는 진술로써 쉽게 그 주제를
무시하려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결코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았거나 명령하지 않으신 것처럼 그것과 관련된 일을 게을리 행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주라"는 대위임의 명령을 등한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너희는 온 천하로
가라"(막 16:15)는 예수의 말씀부분에서는 거리낌없이 등한히 할 것이다. 침례를 명령하신 동일한 주께서 또한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 인간은 주의 명령의 일부만을 복종하고 나머지는 무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것을 행한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살아온 삶을 해명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말하고
있고, 이어서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한다"(고후 5:11)고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전도는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불순종에 대한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그는 순종치 않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신의 느낌들을 좀더 명확하게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 거룩한 두려움을 회복하고, 세계를 복음화하거나 심판 때에 그분의 진노를
직면해야 한다.
C. 구원에 대한 감사
신문들은 의사로부터 무서운 질병을 고침 받았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보도하였다. 의사에게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한 주요고속도로 세워진 한 커다란 광고판을 임대하였다. 그는 거기에 커다란 글씨로 의사의 이름과
그의 치유 이야기를 적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질병을 고침 받은 죄인은 우리들의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하는 은혜에
대해서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선교를 위한 강제적 동기이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원받는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 . .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4-15)고
하였다.
5. 누가 선교에 대해 책임이 있는가?
예수는 사도들에게 대위임을 주셨다. 그러나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는 그것이 모든
신자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빌립은 최초의 봉사자들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전도자 빌립"(행 21:8)이라고 불린 영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스데반 사후, 교회가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졌을 때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행
8:4)고 성경은 말한다. 이 흩어진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행 8:1). 이 흩어진
분들은 교회의 성도들이었다. 모든 신자들은 그 말의 참된 의미에서 볼 때 전도자였다. 계시록 22장 17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분의 마지막 대위임이 기록되어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듣는 자는 누구든지, 믿고 영접한다는 의미에서 즉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명수에로 부르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누가 선교사의 일을 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또 공동적으로는 교회가 해야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든지 보내든지 신성한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 그는 가장 먼저 자기 이웃사람들에게로 가야한다. 또한 주께서 그를 다른 나라에 가라고 부르실 지도
모른다. 만일에 그가 외국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는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힘닿는 데까지 필요를 공급해야 한다. 주께서는 심판 때에 "너희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였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너는 선교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였느냐?"고 물을 실 것이다. 개개인 신자들이 이런 개인적
책임감을 느낄 때까지는 세상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지 않을 것이다.
주여, 당신은 제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높고 거룩한 베푸심입니다.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저는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의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를. 당신은 하늘로부터 강한 무리를 보내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할 천사의
무리를. 그러나 당신의 겸손한 사랑 속에서 사람들에게 당신은 영광을 주셨습니다.
저의 믿음에 신실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그 이야기를 전하게 하옵소서. 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저의 발에 힘을 주옵소서. 저의 믿음에 신실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써 주옵소서. [Robert
Hall Glover, Quoted in The Bible Basis of Missions(Los Angeles,
California: Bible House of Los Angeles, 1946), p. 208.]
6. 선교의 방법
선교방법들의 언급은 즉시로 사도행전을 생각나게 한다. 이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현존하는 선교에 관한
가장 좋은 교과서로 채우셨다. 한 저자는 사도행전을 "권위를 인정받은 교회의 선교 안내서"라고 말한다(Glover, The Bible Basis
of Missions, p. 26).
사도행전에 있는 선교방법들에 관해서 책들이 저술되었다. 여기에 그 몇 가지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A. 전도장소선택
바울은 전도여행에 관한 그의 전 일정을 계획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실 여지를 남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전도여행에 있어서 그의 전도장소들에는 한 가지 유형이 있다.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사도 바울은 로마의 길들을 따라 여행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이들 도로들을 따라 중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무역, 정치, 또는 교육을 위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도시들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수리아 안디옥은 대략 50만의 인구를 갖고 있었다. 안디옥은 지중해연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였고, 수리아도의 로마장관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바울이 그의 선교노력들을 집중시키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주변 세계에 미칠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브로는 비록 작은 섬이었지만 복음화를 위한 훌륭한 출발지점을 제공하였다. 그 섬은 세 대륙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편리한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에베소는 아시아도의 상업적 정치적 수도였다. 여기서 바울은 2년 3개월을 머물렀다.
바울은 전략적 중심지역들에 교회를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인근지역들을 복음화하였다.
B. 전도와 기도
바울은 사역지를 선정한 다음에는 설교와 교육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나갔다(비교: 행 14:1; 17:1-3,17;
18:5; 19:8-9). 바울은 전도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잃은 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이 전도는 믿음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필수적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로마서 10장 14-15절에서 그는 전도의 중요한 필요성을 피력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바울에게 있어서 전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수단이었다.
기도는 바울에 의해서 사용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을 통해서 그의 동료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였으며, 그도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점을 그들에게 확신시켰다. 그는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살후 3:1), 큰
위험들로부터 건짐을 위해서(고후 1:10-11),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이 보내는 예물들을 받아드리도록(롬
15:30-31), 그리고 그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파할 기회가 주어지도록(골 4:3) 기도를 부탁하였다. 그는 또한 그의 개종자들에게 그가
그들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켰다(빌 1:3-5).
바울은 그의 삶의 추진력으로서 개인기도생활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기도를 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진전을 위한 결과들을 틀림없이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C. 바울은 토착교회들을 설립하였다.
토착적이란 교회가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자전(self-propagating)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자치(self-governing)-사도행전공부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바울이 지도력개발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교회를 감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배운다. 그의 제1차 선교여행에서 이 점은 분명하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교회들을 세웠다. 그들이 교회들을 격려하고 강권한 후에 돌아갈 때,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였다"(행 14:23)고 누가는 기록한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우리는 에베소교회에 장로들이 있었음을 주목하게
된다(비교: 빌 1:1). 디도는 그레데섬의 모든 도시들에서 장로들을 임명하도록 지시를 받고 있다(딛 1:5). 이들 지역교회들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는 동안 계속해서 교회를 가르쳤고 감독하였다.
(2)자립(self-supporting)-자립은 바울이 시행했던 두 번째 원리였다. 자립이란 개교회가 교회 자체의
재정적 필요를 해결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들에 도움이 필요한 때에는 한 교회가 다른 자매교회를 돕고있는 사례들이 있다. 예들 들면,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냈다(행 11:27). 바울은 유대지방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아시아와 그리스에서 연보를
모았다(고전 16:1-2; 롬 15:3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교회가 그들의 통상적인 지출을 위해서 돈을 받았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후원하도록 지시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자립의 이 원리는 오늘날에 주의 깊게 주목받아야 한다. 선교교회의 존립을
선교사들이 후원하는 돈에 의존케 하는 것은 상당한 해악이 될 수가 있다. 그것은 선교지역 성도들에게서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기인된 영적 성장과
축복들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 교회로 하여금 개교회 사역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도록 만들 수가 있다. 그 반대로, 만약 그들이 적절하게
가르침을 받고 그들 자신의 일들에 대한 책임성에 대해서 배운다면, 그들은 대체로 훌륭하게 자신들의 일들을 처리해나갈 것이다. 그것은 1세기에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하였고, 20세기에도 그러해야 한다.
(3)자전(self-propagating)-이 원리는 앞서의 두 원리에 크게 의존되어 있다. 왜냐하면, 교회가
자치적이지 못하고 자립적이지 못할 때, 거의 자기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신약성경에서,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교회의 형제들에게서
드러난 대로 아주 분명하다. 바울은 말한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8). 대다수의 사례에서 선교지역출신의 사역자들은 외지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기 백성들을 인도할 수가 있다. 다른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이들 교회들에게 그들 주변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쳤을
때, 바울은 목회사역에 있어서 소수의 급여를 받는 사역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협력을 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엡
4:11-12).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또한 타당하고 필요하다.
질문들-교회의 선교
토론
1. 왜 기독교는 타고난 선교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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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울이 교회들을 개척할 때에 어떤 형태의 도시들을 선택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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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신에게 있어서 선교사역을 하는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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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착 교회의 세 가지 특징들을 열거하시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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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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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위임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다. 따라서 나는 그 위임에 책임이 없다."는 반박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을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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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어휘들을 정의하시오.
1. 선교사(Missionary) -
2. 토착(Indigenous) -
3. 선교(Mission) -
4. 동기(Motive) -
5. 위임(Commission) -
Denver Sizemore, 13 Lessons in Christian
Doctrine(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1991), pp.
143-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