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종학 풍수칼럼. 어느 묘소의 꿈 이야기(2)
출처 2015.05.11. 지종학 http://cafe.daum.net/ipungsu/EuBA/154
충청도 모처에서 근자에 장사를 치룬 사례다. 의뢰인의 부친이 고령의 노환으로 자리에 눕자 자식들은 부친을 선영에 모시기로 하였다. 현장을 둘러보니 깨끗하게 정비된 선영에는 의뢰인의 조부모 묘소와 큰아버님 묘소 등 10여기가 들어서 있다. 이곳은 의뢰인의 부친께서 40년 전에 장만하여 자신의 부모님을 비롯해 형제들에게 묘 터를 나누어주고 비로소 자신의 유택을 정하게 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곳 땅을 매입할 때 돌보지 않는 고총이 묘역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총은 마치 고분 같이 매우 클 뿐 아니라 묘역의 가장 중심지점을 차지하고 있어 불편한 상태였다. 이때 대개 보통 사람들은 임자 없는 고총이기 때문에 거침없이 파묘하겠지만, 의뢰인의 부친께서는 “이 땅의 주인은 고총이다. 우리가 조금 불편해도 고총의 주변에 묘를 쓰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는 반드시 이곳에 올 때마다 고총에 먼저 술을 부어 예를 표한 다음 참 배를 하거라. 우리 조상이라 생각하고 깨끗하게 보존해라” 선영은 약 2000평 정도지만, 고총 주변에만 묘를 쓸 수 있어 장소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친의 마음 씀은 실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고총은 알지 못하는 남으로부터 40년간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부친께서는 85세의 고령으로 이곳 고총 아래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의뢰인의 부친께서는 생전에 자신의 묘 터를 이미 마련한 상태였다. 그러나 의뢰인은 조심스럽게 그곳이 최선인지 몇몇 사람에게 감정을 받았는데, 다들 뜬 구름 잡는 허황된 말로 좋다고만 말해서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필자에게 점검을 부탁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부친의 신후지지는 전면에 수많은 군봉이 내려다보이는 장관을 이룬 곳이다. 하지만 능선과 능선 사이 작은 계곡이어서 가장 중요한 용맥을 벗어난 자리였으니, 앞의 전경에만 도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기존의 장소가 아닌 고총의 한쪽 아래에 새롭게 묘를 장만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의뢰인의 부친께서 숨을 거두셨다는 연락에 장사를 치르게 된 것이다. 필자가 선정한 포인트 주변의 나무를 제거하고 조심스럽게 표피를 걷어내자 특이하게 온돌방의 구들장과 같은 넓적한 돌이 여럿 나온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피자 이번에는 깨진 백자 그릇이 곳곳에서 출토되었다. 짐작하건데 묘를 쓰고자 했던 곳은 집터였던 것이다. 그 옛날 누군가 자신의 부모님을 장사지내고 그 자손이 시묘살이를 하던 초막이 있던 곳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과 봉분의 크기로 보아 고총의 주인은 조선시대 명망 있는 집안이었으나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후손들이 묘를 멸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총의 주인은 비록 직계후손은 아니지만, 새로운 후손(?)을 만나 지금까지 香火를 받아왔던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사연을 뒤로 한 채 장사를 진행하였다. 광중의 토질은 작은 돌조각 하나 없는 곱고 밝은 흙으로 형성되었고, 안산이 정면으로 조응해주는 지극히 편안한 터였다. 그리하여 참석한 몇몇 친지들은 그토록 오랜 세월 다녔어도 이러한 땅이 남아 있었는지 몰랐다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치다.
장례를 치룬 다음날 새벽 의뢰인은 기이한 꿈을 꾼다. 자신이 6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토록 생생하고 선명한 꿈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의뢰인의 검지 손가락에 독지네가 마치 반지처럼 둥글게 들러붙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무서운 마음에 독지네를 떨구기 위해 세차게 손을 흔들어도 지네는 의뢰인의 손가락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네는 앞을 향해 짙은 독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란색의 짙은 독을 뿌리더니,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차츰 옅은 독을 뿌리는 것이다. 그렇게 의뢰인의 주변에 세 차례 독을 부린 지네는 그제서야 슬며시 손가락을 풀고 숲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자동차를 타려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뒤 트렁크에서 꽃사슴 암컷이 튀어 나온다. 그리고는 의뢰인 부부에게 절을 하면서 다른 많은 사람과 동물들에게 알리고 모아서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이상이 부친의 묘를 마련한 다음날 망인의 둘째아들 꿈이다. 필자는 꿈 해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흉한 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독을 품은 지네가 자신의 몸에 붙었으나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위협적인 요소를 제압하는 모습이니, 지네는 자신을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로 보인다. 그리고 꽃사슴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모아 오겠다는 것 또한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언가 의뢰인의 신변에 변화가 있음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켜볼 일이다.
이번에는 삼우제를 치르고 난 다음날 의뢰인 어머니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의뢰인 모친과 형님이 계신 집에 오후 3시경 갑자기 안방의 문이 조금씩 열리며 작은 소리를 내고 있다. 평소에 아무 문제가 없는 문일 뿐 아니라 바람 한 점 없는 집안에서 그 소리와 열림은 수 분간 계속되는데,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하였다. 기이한 마음에 의뢰인의 형님과 어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형님이 말하기를 “아버님이 오셨군요... 아버님 이제 저희들 걱정은 마시고 저 세상에서 편안히 영면하세요. 어머님은 저희들이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맞으시면 이제 3번만 더 문을 두드려 주세요.” 어머님도 말씀하시기를 “여보 당신이유.. 나도 곧 갈 터이니 조만간 만나자구요,” 그러자 거짓말 같이 문이 3차례 더 소리를 내더니 감쪽같이 소리를 멈추고 열림이 멈추었다. ... 이상은 장사를 마치고 나서 망자의 두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둘째아들의 꿈도 예사롭지 않지만, 어머님 댁에서의 기이한 일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마치 데미 무어가 주연한 ‘사랑과 영혼’의 영화 속 스토리 같은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고인께서는 생전에 고총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셨기에, 고총의 주인이 망인을 이곳으로 인도해 준 것으로 보인다. 필자 또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터에서 이만한 땅을 찾은 것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모님 묘소 근처에 이름 모를 고총이 있다면, 한번쯤 망자의 입장이 되어 술 한 잔 부어주고 잡초 하나 뽑아준다면 그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