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가서 돈 자랑 하지마라
산 구 름
오늘은 6월 첫 토요일,실컷 늦잠을 자고나서 아침을 먹을까말까 하고 있는데 대학 선배 박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날씨도 좋고 하니 자기가 점심식사 대접을 할테니 멀리 등산겸 바람이나 쏘이러 가자는 것이다. 평소에는 자기 돈 함부로 쓰는 박사장이 아닌데 오늘은 어쩐 일이다냐 하면서 기꺼이 동행하기로 하였다. 깨끗하게 세차까지 한 박사장 차에 오르니까 그는 오늘 등산은 담양 방면으로 가기로 하고 도중에 순창에 들러 순창에서 유명한 백반집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박사장 자신도 주위 사람들한테 그집 식당 잘 한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들었는데 기회가 안 다 여지껏 못 가봤다는 것이다.
나한테 순창 음식에 대한 추억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부터 30여년전 농협으로 발령이 난 친구가 순창에 한 번 놀러 오라고 사정하다시피 독촉을 하는 지라 늦여름 직행버스를 타고 순창을 가게 되었는데,그 해에는 콜레라가 발생하여 전남 해안가에서 부터인가 북상을 하고 있어 이에 감염된 환자가 적지 않은데 순창에서도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였다며 어제 아침부터 뉴스시간마다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특히 생선은 날 것으로 절대 먹지말라고 주의를 당부하였다.
버스가 순창인근으로 들어서고 있는 도로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버스를 세우더니 차에 올라와서는 콜레라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접종을 꼭 하여야 된다고 해서 나는 차 안에서 예방주사를 맞고 터미널에 내렸다. 마중을 나온 친구가 반색을 하며 근처 허름한 식당으로 데려가서는 이 집 가물치회가 최고라며 가물치회를 시켰다. 나는 속으로 이 친구 너무 바쁘다보니까 요즈음 뉴스도 못 보는 모양이다 하면서 떨떠름하게 앉아 있는데 회가 나왔다. 친구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날더러 맛보라고 재촉을 하는 지라 주저주저 하며 한 점을 맛보았더니- 쫄깃쫄깃 씹히는 가물치회의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또 한가지 추억은 지금부터 수십년전 순창에 고추장공장이 막 들어설 무렵 순창등기소에 출장을 나갈 때면 군청 직원들이 하숙을 하는 가정집에다 점심을 예약하는데 차려져 나온 밥상이 어찌나 정갈하고 반찬 한가지한가지마다 어찌 그리 입맛에 맞는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입가에 군침이 돈다. 특히 상에 올라 온 찹쌀고추장과 고추장에 잘 익은 국산 더덕 장아찌의 깊은 그 맛을 지금도 못 잊는다.
이런 사연이 있는 순창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한 나들이고 보니 산행은 차후의 일이다.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순창을 지나 삼나무 가로수가 울창한 담양으로 들어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소쇄원만 구경하고 바로 옆에 있는 가사문학관을 지나쳐 순창으로 되돌아 오니까 시간이 열두 시 반경이었다. 박선배는 군청옆 냇가에 있는 "옥천식당 "을 쉽게 찾았다. 가서보니 넓은 주차장에 승용차가 꽉차게 들어서 있고 도로변에는 관광버스도 두 대나 정차하고 있었다.
넓디넓은 식당 마당에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로 즐비하였는데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포만감에 젖어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잇빨을 쑤시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나도 얼마 후에는 저런 표정을 짓고 나오겠고나 하면서 마당옆에 물려 나온 밥상을 보니 상 위의 반찬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그득하였다. 식당안으로 들어가서 기세 좋게 백반 둘이요- 하였더니 주인 여자 통 반응이 없다. 그러면서 한참 있다가 "백반 두 상 나올려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리겄는디요-" 하는 것이었다.이렇게 배가 고파 미칠지경인데 한 시간을 어떻게 참는담- 도로 나오는 수밖에. 박선배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속셈이 있었다.순창에 이렇게 미어터지는 식당이 있다면 반드시 경쟁 식당이 있을 것이다,그 식당을 찾아가 보자 하는. 아닌게 아니라 "새집식당"이라는 한정식당이 근처에 있었다. 이 식당은 군청직원들 하숙을 치던 옛날 그 집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음식 단가를 보니 한정식 2인분에 30,000원 이었다. 아까 그 식당에서는 1인분 10,000원씩 이었는데 이 집 단가가 비싸니 손님 박대는 하지 않겠구나 하면서 적쇠에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안으로 들어가 백반 2인분 주문을 하니까 역시나- 방 안에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한시간도 넘게 걸리겠다는 거였다.
배가 너무 고파 눈에 보이는게 없다.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나오는데 박선배는 시장터로 한 번 가보잔다. 순창 시장터안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대집이 다닥다닥 들어 서 있다고 하였다.그래서 차를 타고 시장으로 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이 바로 순창 장날이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순대골목을 들어서는데 순대집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였다.우리는 음식맛 있어 보이는 순대집을 찾은게 아니라 제일 한적한 식당을 찾아들었다. 그러면서도 조마조마 하였다. 여기서도 또 한 시간 넘게 기다린다면 나는 완전히 케이오 되는데. 테이블에 앉아 국밥을 시켰는데 달랑거리는 필리핀 새댁이 금새 펄펄끓는 국밥 두 그릇을 내려놓아서 야-이렇게 빨리 하면서 막 수저를 들려고 하니까 이 새댁이 "아니요-"하면서 다른 손님들 거라며 얼른 도로 가져가버린다.간신히 순대국밥을 먹고 나니 두 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식당을 나오면서 박선배더러 "순창에 와서 돈자랑 했다가는 싸대기 맞겠수-" 하였더니 "그러네- 그려" 하면서 하품을 해대었다.
( 이 글은 한 학기동안 보잘것 없는 저의 글을 성원해 주신 월천 문우님들께 가이드 서비스 해드리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순창에는 위 두 식당말고 "청사초롱"이라는 한정식당이 또 있답니다)
첫댓글 산구름님 한 학기동안 좋은 글로 그리고 주간반에서는 따뜻한 점심 대접 등 여러가지 고마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좋으신 문우 한 분 만났다고 생각했었고 항상 근면하심에 본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노털들 끼리만 뭉치어 회포를 푼 일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월천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 주실것을 기대하겠습니다. 한 학기동안 고생많으셨고 대작 집필하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변함없는 성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옥천식당,새집식당 ..저도 꼭 가보렵니다...^^ (아님 산구름님께 때부려 같이 가자고..ㅎㅎㅎ)....그런데 그 30년전에 회를 드시고 괜찮으셨나요?...내일 주간반 수업 할때 그 식당 한번 같이 가보자고 말씀들이 나올듯 한데....우리 산구름님 클나셨네...ㅎㅎ 가신다면 이 총무 협박(?)을 해서라도 방학때 날짜 잡습니다..ㅎㅎ~ 어떻게 할까요?..ㅎㅎ
순창하면 몇가지가 떠오릅니다. 회문산 항일무장투쟁, 강천산,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고추장, 정동영 국회의원 --- 이 밖에도 많겠지만 제 머리속에서는 이것밖에 없네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산구름님께서 식사를 하신 순대국밥집을 추가하고 싶습니다만... 하여튼 그건 그렇다치고 ()안 글로 봐서는 이별을 작정이나 한 것처럼 뭔가 서운한 감이 잡힙니다. 저는 감히 생각조차 못한 일인데 가이드 서비스 글까지 챙기신 마음이 너무 고맙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3학기째인 저로서도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회의에 젖어 집어치워버리곤 합니다. 잘 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