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는 원주 신림면 치악산(雉岳山, 1,288m) 정상 아래 1백50m,
남대봉기슭 해발 1,150m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남대봉(해발 1,182m)바로 아래 벼랑끝 상원사 계수나무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 1320~1376)선사가 중창하였고,
월봉(月峯), 위학(偉學), 정암(靜巖), 해봉(海峯), 삼공(三空) ·
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해발 1,150m의 치악산 상원사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을 국태안민(國泰安民)을 위한
기도처로 삼았다고 하며,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하였다.
1988년 경덕(敬悳)스님이 대웅전, 범종각, 일주문을 신축하였다.
치악산 상원사 탐방로 출발점
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른 쌍탑, 불상의 광배와 연화대좌가 있으며
특히 이 사찰은 은혜를 갚은 꿩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이 전설에서 유래하여 치악산이 되었다고 한다.
치악산 이름에 걸맞게 가파른 돌길들이 이어진다
상원사 오르는 길
화려했던 계절을 말해주는 마른 단풍
치악산 바위계곡의 폭포들
드디어 마주하는 치악산 일주문
치악산 상원사(雉岳山 上院寺)
마지막의 오르막 나무계단
치악산 벼랑끝의 계수나무와 범종각
발아래 굽어 보이는 산하
상원사 입구의 심검당과 가람들
치악산 상원사 사적비, 보은의 종 유래비(앞면), 유래비 내력(뒷면)
치악산 상원사 보은의 종 전설
경상도 의성의 한 나그네가 과거길에 올라 치악산을 지나던 중
어디선가 꿩의 비명이 처절하게 들려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꿩을 잡아 먹으려는것을 보고 나그네는 활을 당겨 구렁이를 쏘아
꿩을 구하여 주고는 길을 재촉하였다.
상원사 동.서탑과 범종각
산은 깊고 어두워 지는데 인가가 나타나지 않아 헤매던 중
멀리 불빛을 보고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여인이 반가이 맞는지라
나그네는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를 자다가 잠결에
온 몸이 답답하여 눈을 뜨니 커다란 구렁이가 온 몸을 감고,
상원사 범종각
"오늘 낮에 내 남편을 죽였으니 보복을 하겠다" 하므로 나그네는
"살생하는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느냐" 하며 반문하니 "그러면 이 절뒤
높은 종루의 종을 세번만 치면 살려 주겠노라" 하였다.
나그네는 몸이 묶여있는 상태여서 어쩔 수가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종루에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세번 울렸다.
직경 1m, 높이 3m, 무게 6t의 상원사 범종
몸을 감고있던 구렁이는 사라지고 나그네는 신기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려 종루에 올라가 보니 세마리의 꿩이 피투성이가 된채 죽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적악산(赤岳山)을 치악산(雉岳山)이라 불렀다.
대웅전앞 석탑옆의 불상 뒤를 받치던 광배
이 광배는 불상을 받치던 대좌로 광배에는 부처님의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둥근 선으로 새기고, 밖으로 불꽃 무늬를 화려하게 조각 하였다.
탑을 보수할 때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 4점이 나왔으며,
이 광배도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과 심검당 사이의 불상
치악산 상원사 사적비 등
영산전
산신각
산신각에서 보는 상원사
관음전
관음보살상과 불상
계수나무와 전설의 종루
상원사에서 보는 산하
세번 종을치고 소원을 빈다는 보은의 종을 돌아보며 하산
구비구비 하산길
상원사계곡의 6개 다리 중 상원6교
낙엽 쌓인 상원사(남태령)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