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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별을 삽질하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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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삽질하다◎]
허문영 시집 / 당아실시선 019 / 주. 당아실출판사(2019.10.3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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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삽질하다
오대산 북대 미륵암에 가면 덕행 스님이 계시는데, 매일 밤 별이 쏟아져 내려 절 마당에 수북하다고 하시네.
뜨거운 별이면 질화로에 부삽으로 퍼 담아 찻물 끓이는 군불로 지피시거나, 곰팡이 핀 듯 보드라운 별이면 각삽으로 퍼서 두엄처럼 쌓아두었다가 묵은 밭에다 뿌려도 좋고, 잔별이 너무 많이 깔렸으면 바가지가 큰 오삽으로 가마니에 퍼 담아 헛간에 날라두었다가 조금씩 나눠주시라고 하니, 스님이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한참 쳐다보시네.
혜성같이 울퉁불퉁한 별은 막삽으로 퍼서 무너진 담장 옆에 모아두었다가 봄이 오면 해우소 돌담으로 쌓아도 좋고, 작은 별똥별 하나 화단 옆에 떨어져 있으면 꽃삽으로 주워다가 새벽 예불할 때 등불처럼 걸어두시면 마음까지 환해진다고, 은하수가 폭설로 쏟아져 내려 온 산에 흰 눈처럼 쌓여 있으면 눈삽으로 쓸어 모아 신도들 기도 길을 내주시자 하니, 하늘엔 별도 많지만 속세엔 삽도 많다 하시네.
생명의 길
그대 안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나는 나지막하고 구부러진 질을 좋아합니다. 그대 안에는 흙길도 있지만 돌길도 있습니다. 나는 쉽게 가는 길은 택하지 않을 겁니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있는 험한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대에게로 가는 길이 귀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힘들수록 지칠수록 그대와 가까워짐을 느낄 겁니다. 먼 길을 와서 그대를 만난 것처럼 쉽게 되돌아올 길은 가지 않겠습니다. 그대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길이나 떠도는 노숙자로 전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에게로 가면서 그냥 가지만은 않겠습니다. 남의 것은 빼앗지 않겠습니다. 그녀와 낳은 아이도 당신에게로 가겠지만 그대의 말과 글, 노래를 가르칠 것입니다. 그대 안에 길이 사라졌다면 새 길을 찾겠습니다. 방랑자라도 좋지만 그대라는 사원을 향해 가는 내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다듬기도 하겠습니다. 내 뒤에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기 어려운 길이라도 꼭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이르겠습니다. 바람의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나의 길도 정해져 있지는 않을 겁니다. 언젠가 다다를 마지막 장면에서 반갑게 그대를 껴안고 싶습니다
미싱
까만 칠을 한, 목이 좀 긴, 꼬부랑글씨가 써져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동물의 머리와 몸통이 네 개의 무쇠발로 서 있는 물건. 몸체 아래 구름판을 구르면 옆구리에 붙어 있는 바퀴가 피댓줄로 돌아가고 등 위에 실패에서 오색실이 풀려나와 노루발이 눌러주면서 박음질이 연주된다. 아버지 어머니 사이 같은 바늘과 실이 포플린 옷감 위에서 행진을 하며 우리 가족을 바느질한다. 조각났던 꿈이 모자이크처럼 꿰매지고 색동 치마저고리가 무지개처럼 뜬다. 가끔 발틀 밑으로 기어들어가 토끼처럼 놀기도 했다. 어머니는 버선발로 굴러서 식솔들의 미래를 누비질하는 것이었다. 바느질이 끝나면 호마이카 광택 나는 책상처럼 변신한다. 아버지는 두툼한 책을 올려놓고 공부하는 것이었다. 30촉 백열등은 밤새도록 졸지 않고 책갈피 속의 희망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발판을 구르며 잠에 들었다. 싱거미싱은 우리 집의 스핑크스였다
풍경
그대가 그늘진 처마 밑에 달아주고 떠난 작은 풍경風磬하나, 겨울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꼬리를 친다. 하얀 입자가 되어 퍼지는 소리는 때론 노래가 되어 중얼거리기도 하고 잠이 시작되는 꿈길 위에 하얀 소리로 쌓인다. 모든 나의 흔적을 지울만큼 아우성으로 쌓인다. 군불을 때본 지 오래된 방안에는 지난 겨울의 그림자가 안온하게 누워 있다. 해거름 들판에는 누가 신다가 벗어놓았는지 얼음 구두 몇 켤레가 내팽개쳐져 있다. 발이 시린 새들은 한 켤레씩 짝 맞추어 신어보며 언 발을 녹이고 있다. 조금 전 우편 마차가 전해준 하얀 편지에는 그대가 아지랑이처럼 쓴 듯한 글씨의 온기가 피어나와 폐가의 아랫목을 덥혀준다. 부러진 굴뚝에서는 모처럼 솜털 연기가 나고 있다. 겨울의 초입새부터 한 길도 넘게 쌓이던 하얀 소리가 이윽고 봄의 정령이 되어 그대에게 가는 길 위에 아지랑이로 피어날 것을 꿈꾸리니
첫 시집
-내가 안고 있는 것은 깊은 새벽에 뜬 별
어떤 서점에 갔는데, 내가 지은 시집이 꽂혀 있다. 이십오 년 전에 낸 첫 시집이다. 수십 년 만에 자식을 찾은 것 같이 기쁘기고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꺼내본다. 어린 시들이 고개를 내민다. 세상에 내놓았던 부끄러운 시편들.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질러보고, 노래 한 번 불러보지도 못한 채, 그저 주변 식구들 이야기만 했었지. 모든 것의 무게를 가족에게 둔 아프고 시린 시절, 잠시 페이지를 들추니 시집 제목으로 썼던 시 한 편.
흰 새벽에 잠을 깨서 그냥 서럽게 울던 늦둥이 어린 딸이었다
호박손
호박씨 심은 자리에 젖니처럼 떡잎이 나오더니 어린 잎가지가 기지개를 켠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가지에서 고사리손 하나가 세상에 안부를 전한다. 갓난아기들처럼 손을 꽉 쥐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불안했을 것이다. 적막한 노지露地에서 어찌 살아내야 할지 나뭇가지라도 붙들고 싶어 여린 손들이 어둠 속을 휘저었을 것이다. 차가운 새벽엔 손이 시려 두 손을 털가슴에 묻을 수 있는 다람쥐가 부러웠을 것이다. 두더지가 무너진 땅굴을 파헤쳐 나오듯 맨손으로 허공의 절벽을 올라야 하는 얄궂은 본능, 어딘가 분명히 가야 할 길이 없으면 어딘가 후회하며 돌아갈 길도 없다. 모래같이 새어나가는 속울음을 맨손으로 쥐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바람의 등허리를 올라탔을 것이다.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빗방울의 어깻죽지라도 짚었을 것이다. 땅거미같이 기어 다니다가 그리움의 촉수를 지팡이처럼 더듬으며 눈 뜬 맹인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황톳길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의 냄새, 어지럽게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향기, 곧 어두어지리라는 일몰의 긴 그림자들,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는 것들에게 기대다가 아무것도 잡히지 않으면 서로의 고사리손을 붙잡았다. 한 치씩 돌담을 감아 오르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녹슨 시간처럼 쌓인 이끼 낀 돌들의 뼈마디를 디디며 아직 올라설 꿈이 높다고 생각했다. 시한부 생명이 아닌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가시에 찔린 생인손도 거두지 않고 젖 먹던 힘이 다할 때까지 오르고 또 올랐다. 초가지붕 위에서 아득한 세상을 내려다본다. 한 집안의 어머니같이 당당하게 앉아 있는 맷돌호박 속엔 대를 물릴 씨앗이 여물어가고 다시 태어나도 하늘을 오르리라는 운명. 황금빛 주름진 생의 선물을 옆에 두고 아직도 덩굴손은 푸른 허공을 더듬고 있다
꾀꼬리단풍
이 말 아세요
꾀꼬리단풍이라뇨
꾀꼬리도 알고 단풍도 아는데
단풍이 꾀꼬리라뇨
못 찾겠다 꾀꼬리
그런 노래 가사도 있지요
꾀꼬리는 몰래 우는 새라고 하더군요
꼭꼭 숨어 있는 단풍인가요
국어사전 찾아보니
노랑, 빨강 등의 색이 섞여 있는 예쁜 단풍!
공작새 깃털 같은 단풍인가요
조류도감도 찾아봤어요
노란 털에 검은 선이 있는 날개!
부리만 약간 빨갛네요
특별한 색깔은 아닌 것 같아요
꾀꼬리 같은 소리로 노래 부른다는데
그렇다면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새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물들었나요
꾀꼬리단풍은 색을 듣게 하는 단풍
나 이렇게 생을 예쁘게 마감하는 거야!
올 가을 꾀꼬리단풍이 정말 징하네요
생각의 섬
우두커니라는
섬이 있어도 좋겠네
서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염없이라는
섬이 있어도 좋겠네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물끄러미라는
섬도 있으면 좋겠네
새벽 오줌
아버지 웬일이세요
여기 이른 새벽인데요
요새도 거시기 보시기 어려운가요
벌써 몇 번이나 깨셨어요
여긴 봄인데
거기도 꽃들이 피웠겠지요
돌 속에 계시니
아무래도 입술이 차갑겠지요
웃풍은 없나요
봄비는 들이치지 않나요
아직도 밤은 차니까
돌창문을 꼭 닫고 주무세요
가끔 나와서 별도 보세요
새로 생긴 손자들이 반짝일 거예요
새벽오줌을 누며
문득 거울을 보았더니
쉬, 쉬이……하시던
아버지가 서 계시네요
어머니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어
혼자
진지 드시겠지요
멀건 국에 식은 밥
말아 드실 때
금니 하나
별처럼 반짝이겠지요
어떤 문상
요즘 꽃들
순서도 없이 피고 지는데
목련꽃 지는 모습
철쭉꽃이 보고 있더이다
먼저 핀
빨간 철쭉꽃
그대로 펴 있는데
나중에 핀
하얀 목련꽃
먼저 떨어지더이다
수 백 켤레
흰 고무신 같은 목련꽃
마당에 흩어져 있는데
바람이 신고 가더이다
일찌감치 핀 철쯕꽃
고개 숙여
백목련을 문상問喪하더이다
피고
지는
꽃들의 경계
봄비가 이별을 다독거리더이다
쇠똥구리
경단을 굴리고 간다
흙길을 가다가 구덩이에 빠뜨렸다
밀어 올려보지만 진흙탕 속이다
겨우 빠져나왔더니
깡패 같은 놈이 뺏으러 온다
홀로 싸워야 한다
누구는 함께 굴리는데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갑자기 내린 비에 경단이 물러졌다
더 이상 굴릴 수가 없다
꾸덕꾸덕 볕에 말려야 하는데
해가 나오지 않는다
바람에라도 말려볼 참인데
청솔모가 밟아버렸다
으깨져버린 꿈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희망을 갖는 일
더러운 똥을 굴리는 나는
곤충강 딱정벌레목 풍뎅이과
고상한 말을 하고 다니는 너는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에 속하지만
하늘 아래에 함께 세 들어 산다
재수 없는 날이 많지만
젖은 날개를 펴고
굽은 어깨를 펴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하여 날아가야만 한다
옥수수 풍장
한 생애 싱그러웠던 몸
바람이 거세도
아직 허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가끔은 뼈마디 아스러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옷깃을 여며보아도
말라가는 몸은 추수를 수 없다
한 두어 자루 열매만을 남기고
먼지 부스러기가 되어가는 몸이지만
겨우내 눈 부릅뜨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면
더 나 따로 없이 말라가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랑도
그렇게 부스러져가는 것이다
공동묘지 같은 묵밭에서
아름다운 시절이 말라 부스러져간다
푸른 식솔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흘겨진다
내 밥일랑
절대로 뺏길 수 없다는
법칙이 회충처럼 준동한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자동무한반복학습의 결과다
범인을 끄집어내니
여덟 마리 한 가족이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벌레들
겁에 질렸는지 무서워
온몸이 새파랗다
아슬아슬한 세상
보호색으로 몸을 감추고
연한 배춧잎에서
만찬을 즐겼을 한 가족이다
산세 험한 잎맥을 넘나들고
찬 서리 내리는 밤이면
서로를 부등켜안고
나비의 꿈을 꾸던 한 가족이다
맨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푸른 식솔
삶의 견고한 법칙 앞에서
참수를 목전에 둔 인질같이 떨고 있다
봄의 전령傳令
바다로 가는 길목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들불 번지듯 벚꽃도 피어날 텐데
주꾸미가 나면 동백꽃이 피고
도다리가 나면 벚꽃이 핀다는데
꽃필 때를 주꾸미가 맞추는 건지
물때를 동백꽃이 맞추는 건지
봄꽃 피는 바닷가는 궁합도 잘 맞추고
봄 주꾸미, 봄 도다리에
사람들은 입맛을 다시면서
알록달록 꽃 차림새로 어시장을 쏘다니고
바다에선 생선이 꽃인겨!
바다에서 비린내가 꽃향기여!
그려, 그려, 참 예쁜 꽃들이지유!
충청도 사투리에
화신花信이 추임새를 하고
어신魚信이 장단을 맞추는 마량포구
봄의 전령들이 뒤섞여
그리운 모두 다
꽃향기가 되는 중이다
진달래가 피면
꽃게도 날 보러 오려나?
山-사람
-故 박희선 테라코타 작품‘山-사람’을 보고
나무를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는 그에게
누가 그리도 빨리
운명의 도끼날을 찍었나
가지런한 두 손
그냥 잠들어 있기엔
너무나 아깝게 보이는
‘山-사람’
꼭 그의 얼굴을 닮았다
그토록 그렸던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제 한 몸
생의 분신分身으로 남긴 것인가
아직도
이 나라는
도끼날들이 허공을 휘젓는 나라
흙이 되어
땅이 되어 산이 되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천재 조각가
그가 만든 ‘山-사람’
북두칠성 위에 누워 있다
파랑주의보
-말(言), 또는 말(馬)
바다는 푸른 말이다
말 갈퀴를 휘날리는 기마 군단이다
파도는 수 만 개의 말발굽이다
기마병들이 아우성치며 내 인을 쳐들어온다
파도 소리는 말들의 포효다
편자 자국이 화인火印처럼 모래사장에 찍힌다
풍랑은 고삐 풀린 말의 분노다
달빛도 말 발자국에 짓밟히고 있다
바람의 날개도 찢어지고 있다
모래톱은 학익진鶴翼陣을 펼치며 파도를 썰어보지만
톱밥만 남긴 채 물거품처럼 물러서기만 한다
밀물은 점령군의 무리다
술병에 바다를 담아보기도 한다
파도 소리를 알약처럼 약병에 담아두기도 한다
달려오는 말, 말, 말발굽
함성은 지축을 끊을 듯 달려오는 질풍노도다
등대는 방안의 기마 인물형 신라 토기를 비춘다
한 생애의 바다에 파랑주의보가 내려졌다
원고지를 찢어버리며
목숨의 방파제로 뛰쳐나온 시인이 있다
헌책은 없다
너를 다시 읽는다
쿰쿰한 너의 체취
페이지를 넘기니 곰팡이 냄새가 난다
비좁은 책장 속에 끼인 채
모진 세월을 견뎠구나
누렇게 변색된 갈피 속에서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싱싱한 활자들
따라 읽어가니
또다시 젊은 날의 질풍노도다
나에게 잠시 왔다가
제대로 읽혀지지 못했던 철학서
지루하다 싶어
슬그머니 꽂아 놓았던 대하소설
모두 다 묵은 향기가 새록새록 나는 책이다
보약을 끓이는 약단지처럼
문향이 피어오르고
오래 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으니
인삼 녹용이 따로 없다
오래된 책은 있어도 헌책은 없다
우물과 시
누구나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누구나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불러보고 싶은
누구나 두레박 내려
한 바가지 퍼 올리고 싶은
누구나 마셔보고
이런 물맛 처음이라고 말하는
웅숭깊은 우물
메마른 가슴속에 파보았으면
거기서 샘솟는
시 한 편 써보았으면
세상 들녘
사소한 곳이라도
조금씩 적실 수만 있다면
매일 밤 달이 되어
우물 속에 빠질 수도 있겠다
애인
볼 것은 보게 하고
못 볼 것도 보게 하고
지겨운 책도 읽게 하고 따듯한 밥도 먹게 하고
사랑하게도 하고 미워하게도 하고
그대를 통해 세상을 보는 투명한 감옥
생의 원근을 헤아려주고, 삶의 명암을 분별해주고
나의 철학
이미 한 몸이 된 사이
나의 애인
못 쓰는 시도 끝까지 쓰게 하고
나의 문학
다양한 시간이 다초점 렌즈에 서려 있다
내가 잠들었을 때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니?
무엇을 생각하고 있니? 차라리 눈을 감고 있니?
나의 분신, 나의 사랑, 나의 미학
머리맡에 있는 그대에게
나처럼 슬픈 꿈도 꾸는지 묻는다
분서焚書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오래된 시집들, 연구실 서가에 꽂혀 있다. 보낸 곳이 더 이상 없었거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여섯 권째 냈으니 남아버린 책이 생각보다 많다. 반품되어 되돌아오고 폐지로 그냥 버린다는 말에 주섬주섬 가져도 왔다.
나의 분신, 그 속에서 꿈틀거렸던 청춘
나의 결정체, 그 속에서 헤매었던 인생
나만의 향기, 그 속에서 쌓아왔던 철학
그냥 버릴 순 없고, 어디론가 옮겨야 한다. 방을 빼야하는 처지에 복안은 있다. 산방山房으로 가져가서 불쏘시개로 틈틈이 쓸 요량이다
타고 남은 재
채마밭의 거름이 되어
다음 생엔 시집 말고
채소나 과일로 태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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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정년퇴직이 되었다.
이제야 전업 시인으로 갈 수 있을까?
시를 쓸 수 있는 곳을 마련해야겠다.
가상 공간이라도 좋겠다.
그곳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 시를 써야겠다.
그네나 사다리 같은 시를 쓰면 좋겠다.
사람들이 타고 또 오르면서
아! 이 느낌 좋아!
그게 바로 나의 시가 되어야겠다.
2019년 가을
약산재藥善齋에서
허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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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詩集 [※별을 삽질하다※]
[ 해설 ] -
그리움이 완전히 소진된‘풍장’
혹은 죽음에 맞닿은 절정의‘서정’
박성현 시인
허문영 시인의 문장을 읽으며 몇 해 전 청량산에 머물 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그의 문장이, 계절이 외투를 갈아입는 듯 천천히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인의 여백들이 초록이 적막하게 우거진 능선으로 나를 이끈 것이다. “하루 종일 오름에서/그리움이나 파던 헌 삽자루처럼/아직도 그대의 마음에/허름하게 기대어 서 있”(「제주오름에서」)다는 문장에서 나는 잠시 시를 멈췄다.
청량산 중턱 어딘가에 자리 잡은 허름한 민박집에 들고, 거기서 며칠 묵었다. 마루라고는 하나 겨우 사람 하나 앉을 자리였지만, 나는 그곳에 앉아 낮은 담장 밖에 지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사람이 없을 때는 날벌레나 다람쥐 같은 작은 짐승들을 살폈고, 물기에 젖은 초록이 스며들며 서로 물들어가는 것도 보았다. 능선을 타고 여기까지 내려온 바람은 덥고 습한 날씨를 풀어놓았는데,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면 더러는 쓴맛이 나기도 했다. 아마도 나뭇잎이나 길게 자란 풀들이 비벼대며 쏟아낸 기운인 듯했다.
밤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밤이 찾아오는 소리는 좀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하며 빨래며 설거지를 해댔다. 어두워지기 전에 늦은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와 좁은 마루에 앉았다. 방바닥에서 올라와 온몸을 휘감았던 찬 기운은 여전했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산산이 부서져버리고 싶은/너를 향한/투명한 슬픔”(「고드름」)과도 같은 것이다. 담장 밖은 원근이 분명했으나 닿지 않았다. 암실에서 갑자기 바깥으로 던져졌을 때의 비현실적인 모호함이었다. 사흘을 그렇게 보내고 나흘이 되자 나는 간이옷장과 이불만 있는 방이 좀 지겨워졌다. 능선을 타고 밀려오는 바람에 기대어 그 소슬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나의 변덕은 불편한 것이다. 턱 밑까지 차오른 초록이 헐겁기고 하고 눈물겹기도 했다. 하지만 초록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8월의 폭염도 여기서는 바다 저편의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허문영 시인처럼 어떤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리움이나 파던 헌 삽자루”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인데, 삶의 고비마다 들이닥치는 한계를 넘기 위해 헌 삽자루가 감내해야 했던 인내의 무게들이, 그 치욕과 고통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과연 나는 헌 삽자루처럼 이가 다 닳도록 나에게 닥쳐온 한계와 싸웠을까. 울음이 완전히 소진되도록, 그리움조차 단 한 방울도 남지 않도록 ‘당신’에게 가고 있던 것일까.
*
시인은「생명의 길」에서 그동안 몰입한 ‘시 쓰기’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대’안에는 많은 길이 있지만 결코 ‘쉽게 가는 길’은 택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그는 나지막하고 구부러진 길이나 돌길을 갈 것이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있는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그대에게로 가는 길이 귀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대’에게 바쳐진 이 ‘길’은, “나도 얼른/아무도 몰래/사랑한다고 궁체宮體로 쓰고//겨울바람을/우표 대신 붙이고/까치밥으로 봉랍封蠟한 하얀 편지/그대에게 보낸다”(「겨울 서신書信」)는 부끄러움의 소박한 정서가 녹아내려 있지만, 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삶의 ‘방법’이고, 윤리와 도덕이 한 데 어우러져 펼쳐지는 ‘장소’이며, 파레시아(parrhesia)라는 진실 말하기의 뚜렷한 자기-확신의 시간을 형용한다.
요컨대, 시인의 고백에서 ‘그대’는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절대적 존재로서 확정되며, 이러한 삶을 완성할 구체적 지향으로서의 시-쓰기로 변용된다. 이러한 방법적 성찰을 통해 그는 실로 자기 자신을 ‘주체 안의 타자’로서 혹은 ‘주체와 타자의 변증’으로서 온전히 세우고, 시 쓰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시인은 “밥이 희망이 되던 시절/어스름처럼 번져오는 허기/별이 되어 서녘 하늘에 떠오르고요//개밥그릇에 담긴 별/내 밥그릇에 담긴 별//새벽녘엔 샛별로 떠서/누군가의 희망이 되었으면”(「개밥바라기별」)한다고 노래한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은 그의 욕망은 참으로 보편적이면서도 소박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구체적이다. 그가 문장 안에 담은 ‘누군가’란 바로 배고픈 자들이다. 이를테면, 매일 밤 절 마당에 수북이 쌓인 별을 부삽으로 퍼 담아 찻물 끓이는 군불로 쓰거나 묵은 밭에 거름으로 쓰는 마음 좋은 ‘덕행 스님’(「별을 삽질하다」)이고, ‘친지로부터 받은 블루베리 화분’이지만 내 자식으로 삼아버린 ‘꽃나무’이며(「꽃나무 입양」). 시인은 “내친 김에 나무보육원에서 매화, 산수유, 소나무 한 그루씩 더 입양키로 했다”고도 말한다. 겨울의 초입새부터 한 길도 넘게 쌓이던 순백의 ‘풍경(風磬)-소리’(「풍경」)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며 나무의 생애를 출렁거려야”(「통나무다리」)했던 시인에게 타자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시선을 넘어서서 ‘눈부처’와 같은 존재에 다름없다.
그러므로 시인의 서정적 시선이 향하는 모든 장소와 시간이, 다시 말해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골의 낮은 담장 그늘이나 그늘에 버려진 햇볕 한 줌이 “채마밭의 거름”(「분서焚書」)으로 분절되는 바로 그 뜨겁고 치열한 사태-속-에 허문영 시인의 시가 존재한다.
눈밭 위에 찍은 나의 발자국
강추위에 그만 얼어붙은 신발이 되었네
겨울바람이 흩어진 신발들 짝을 맞춰놓았네
발 시린 고라니 제 발에 맞는 것 신고 산으로 갔네
어둠이 검은 발을 넣고 눈밭을 쏘다니네
봄이 오면 녹아버릴 미끄러운 얼음 신발들!
-「얼음 신발」 전문
눈밭을 걷는다. 발자국이 시인의 무게만큼 패어 있다. 바닥의 모양도 신발과 같아 신고 다니면 그만이겠다는 농담 같은 생각을 한다. 멀리서 걸어온 길은 되돌아보니 더러는 깊고, 더러는 고요하며, 더러는 창백하다. 햇볕이 한 움큼 눈을 집으면 그 온기에 서슴없이 사라질까. 눈밭을 걸으면 이력처럼 발자국이 나고, 그 발자국은 언제나 지금의 ‘나’로 향한다.
시인은 눈밭을 걷고 있다. 몸의 무게와 발바닥이 땅을 밀어내는 힘만큼 자국이 함께 따라온다. 당연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 크기는 모두 시인의 내력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그는 저 무수한 발자국들이 언 발을 보듬고 감싸는 신발과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얼음 신발이라는, 동화적이면서도 유쾌한 발견이다. 이를 증언하듯 강추위를 몰고 오는 겨울바람도 웅크려 앉아 흩어진 신발들의 짝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발 시린 고라니들이 발에 맞는 ‘얼음 신발’을 신고 산으로 가고, 맹렬한 어둠도 검은 발을 넣고 눈밭을 쏘다닌다. 비록 “봄이 오면 녹아버릴 미끄러운 얼음 신발”이지만, 적어도 한기(寒氣)만은 비켜가도록 하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도 세계를 담고 뱉어내야 함께 호흡하고 그 꿈들을 소진하는 문장들이다. 적어도 허문영 시인에게 시는 헐벗고, 배고픈 세계의 온갖 것들의 희망과 허기를 달래주는 공토의 ‘경험’이자 ‘이해’다. 시인은 노래한다. 시란 “누구나 들여다 보려고/고개를 숙이는//누구나 그리운 이름/소리쳐 불러보고 싶은//누구나 두레박 내려/한바가지 퍼 올리고 싶은//누구나 마셔보고/이런 물맛 처음이라고 말하는//웅숭깊은 우물”(「우물과 시」)이라고. 그의 시가 숱하게 바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타자를 만나고 스며들며 함께 어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자연을 감추지 않고 대립하지 않으며 자연을 통해 삶의 이치, 그 간결하고 수더분한 방식들을 이끌어낸다.
비탈밭을 빌려
콩 농사를 짓는데
산짐승에 밭이 상하면
속이 쓰리고
땡볕 아래
피땀으로 가꾼 콩밭이라
소출이 적은 듯 생각하다가도
콩을 털어
서 말이 난다면
도지로 한 말 내고
산짐승이 한 말 먹고
땅은 소중하니
놀리지 않아서 좋고
산토끼 고라니 놀러오니
외롭지 않아서 좋고
농사짓는 재미도 소소하니
삼분의 일이면 족하다
-「소출」 전문
시인은 비탈을 빌려 콩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비록 중년은 지났으나 땅을 일구고 씨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는 것도, 아직은 힘에 부치지 않는다. 땅과 함께 일어났으니, 땅과 함께 황혼을 바라보는 것도 이치에 합하지 않는가. 메마른 비탈이지만, 흘린 땀과 보낸 시간만큼 내게 올 ‘소출’을 생각하면 이 소소한 삶도 나쁘지 않다.
비탈밭을 빌려 콩을 심는다. 메마른 땅을 딛고 새파랗게 일어서는 저 줄기들이 어여쁘기만 하다. 땡볕 아래 앉아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때로는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이 향기로웠는지 콩 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튼실해졌다. 가끔 산짐승이 내려와 밭을 헤집을 때도 있었고, 정확히 새순만 골라 작물을 상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문제가 아니다. 소출이 예상 밖이어도 비탈을 일궈 ‘나’만이 아니라 산토끼나 고라니까지 어울려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 콩을 털어/서 말이 난다면/도지로 한 말 내고/산짐승이 한 말 먹고//땅은 소중하니/놀리지 않아서 좋고/산토끼 고라니 놀러오니/외롭지 않아서 좋고//농사짓는 재미도 소소하니/삼분의 일이면 족하다” 노래한다. 과유불급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 곳에 메꾸면 그만이다. 부족하더라도 어울리면서 같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자연이고 오롯한 마음이자 안위며 ‘시 쓰기’가 아닌가. 세상살이 힘들다 해도/잠시 쉴 곳이 여기에 있네//수심은 얕아도 물색은 깊고/낚시 드리울 만큼 마음이 넉넉해“(「산중해(山中海)」)진다고 쓴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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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시인은 ‘모루’를 시 쓰기의 모태로 삼는다. 모루란 시뻘건 쇳덩이를 받치고도 대장장이의 억세고 거칠기만 한 망치질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는 바, ‘어머니’의 이미지를 축조하며, 동시에 ‘시’-쓰기의 본질을 대칭한다. 요컨대, 시 쓰기 자체가 죽음을 체험하는 일, 곧 파랑주의보가 내려진 난바다에다 “원고지를 찢어버리며/목숨의 방파제로 뛰쳐나”(「파랑주의보」)오는 일과 같으며, 그러한 까닭으로 ‘시’가 세상의 쓸모 있는 연장으로서 모양을 갖추도록 함께 견디고 살펴보며 울어야 한다. 바로 이 공간이 모루와 어머니, 그리고 시 쓰기가 서로 접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루’가 ‘어머니’나 ‘시 쓰기’에 맹렬하게 조응하며 허문영 시인만의 독특한 내력을 생성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모루’에서 ‘어머니’와 ‘시 쓰기’로 이어지는 지속은 개별자와 보편자의 동시성을 매개하며, ‘우주’와도 같은 까마득한 시공의 끝없는 펼쳐짐과 “내 마음속에 낡은 라디오”(「꿈-설계 상담일지」)를 정확히 이끌어낸다. “수 억 년 전 화석”과 “가을꽃 떨어지는/시월의 마지막 날”(「압화(押花)」)이 현재로 접속될 수 있고, ‘이른 새벽 총총한 작은 별’들과 ‘부룩에 뿌린 씨앗들’도 대등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밭에도 별이 뜬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옥수수 풍장’이라는, 죽음에 맞닿은 절정의 서정을 만나게 된다.
한 생애 싱그러웠던 몸
바람이 거세도
아직 허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가끔은 뼈마디 아스러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옷깃을 여며보아도
말라가는 몸은 추수를 수 없다
한 두어 자루 열매만을 남기고
먼지 부스러기가 되어가는 몸이지만
겨우내 눈 부릅뜨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면
더 나 따로 없이 말라가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랑도
그렇게 부스러져가는 것이다
공동묘지 같은 묵밭에서
아름다운 시절이 말라 부스러져간다
-「옥수수 풍장」 전문
한철, 뙤약볕을 견디며 싱그럽게 옥수수로 자랐던 몸이다. 수많은 알갱이를 영글게 하며 단단하고 서늘한 말들을 쏟아냈던 몸이다. 폭우가 내려도, 태풍이 몰아쳐도 대지를 움켜쥔 손으로 꿋꿋하게 버텼던 몸이다. 가끔 뼈마디가 아스러지는 소리에도 놀라지만 내 몸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다. 상징이나 은유와 같은 빗겨가는 말로는 절대로 형언할 수 없는 살과 뼈와 피의 맹렬한 실체다. 나는 ‘옥수수’이며 ‘시 쓰기’ 자체이자 ‘나’ 자신이다.
바람이 거세다. 하지만 나의 허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싱그러웠던 한 생애를 보냈지만, 나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은, 그 감각의 세밀한 구체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말라가면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계절이다. 몸을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소진된 근육들이 사소하게 흩어진다. 햇볕은 시간이 갈수록 모호하고 나는 그 모호함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더욱 또렷해지는 시간이다. 내게 찾아온 사랑도, 당신의 뚜렷한 발자국도, 입술과 온기도 나의 풍장처럼 부스러져갈 것이지만, 나는 단지 “겨우내 눈 부릅뜨고 서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시절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굴까. “이별하기 위해/만나는”(「작별상봉作別相逢」)자들 또한 누구일까. “쓰레기통 옆에 나뒹구는 두 개의 북/오랫동안 장단을 맞추었을 사랑하던 사이인 것 같아/나도 모르게 트렁크에 싣고 말았지만/때가 되면 버려진 듯/그렇게 사라지는 것도 옳은 것이라고/매일같이 나의 한 복판腹板을 두드리는/그 분”(「귓속말」)은 누구였을까. 옥수수의 풍장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사람은 또.
그러나 나의 먼지에 박힌 별빛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새벽이다. 모루와 같은 어머니들을 부르고 돌려세우기를 반복하는 시간이다. 한없이 투명한 울음을 뱉어내며 나의 풍장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한 두어 자루 열매만을 남기고/먼지 부스러기”가 될 터이지만, 내 몸에 새겨진 세상의 이름들은 잊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너 나 따로 없이 말라가는 것”인데, “공동묘지 같은 묵밭에서/아름다운 시절이 말라 부스러져”가는 것인데 “새벽오줌을 누며/문득 거울을 보았더니//쉬, 쉬이……하시던/아버지가 서 계시”(「새벽오줌」)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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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시인의 문장은 놀랍도록 단단하다. ‘너 나 따로 없이말라가는’ 삶에서 허문영 시인은 생(生)의 오롯한 결을 매만지며 그 속에 새겨진 잔잔함의 너울을 살핀다. 청량산에서 내가 기울어졌던 것처럼. 그의 문장은 ‘다가오게 하는 힘“이 있다. 사로잡히게 만드는 구절 또한 별 밭처럼 많다. “그리움이나 파던 헌 잡자루”(「제주 오름에서」)가 우리의 곁에 다소곳하니 마당에 수북이 쌓인 별을 우리가 먼저 공양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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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말문이 터진 쇠똥구리의 노래
이번 시집은 “늦게 서야 터진 말문으로 새어나오는 시”(「말문」)들로 가득하다. 시인은 시를 향한 지고지순한 정진 끝에 마침내 말문이 터졌다. 자유롭고, 또한 자재로운 시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인은 스스로를 ‘지중화地中花’(「지중화」)라고 자조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인은 시라는 ‘경단’을 쉼 없이 굴려온 ‘쇠똥구리’에 가깝다. 하여, “홀로 싸워야 한다 / 누구는 함께 굴리는데 / 나는 언제 나 혼자였다”라는 구절이 더 없이 가슴을 울린다.
― 이홍섭. 시인
최문영 시인의 문장은 놀랍도록 단단하다. “너 마 따로 없다 말라가는” 삶에서 허문영 시인은 생生의 오롯한 결을 매만지며 그 속에 새겨진 잔잔함의 너울을 살핀다. 청량산에서 내가 기울어졌던 것처럼, 그의 문장은 ‘다가오게 하는 힘’이 있다. 사로잡히게 만드는 구절 또한 별 밭처럼 많다, “그리움이나 파던 한 삽자루’(「제주 오름에서」)가 우리의 곁에 다소곳하니 마당에 수북이 쌓인 별을 우리가 먼저 공양해야 할 때가 아닌가.
― 박성현 시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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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영 시인∥
∙ 1989년『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내가 안고 있는 것은 깊은 새벽에 뜬 별』『고슴도치 사랑』『물속의 거울』『사랑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왕버들나무 고아원』
∙ 시선집『시의 감옥에 갇히다』
∙ 에세이집으로『네 곁에 내가 있다』『생명을 문화로 읽다』
∙ A4동인, 표현시 동인, 춘천수향시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춘천문인협회 회원, 강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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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달빛자락 / 명상음악
*출처: 이동활의 음악정원(http://cafe.daum.net/musicgarden/5r73/4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