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생각건대, 도(道)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로써 도를 표현한 것이옵니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에 이미 분명하고도 빠짐없이 적혀 있으니, 글로써 도를 구하면 이치가 나타날 것이옵니다. 다만 근심이 되는 것은 그 책의 규모가 너무도 방대해서 요령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정(先正.程子)께서 먼저 《대학》을 드러내어 규모를 잡았사옵니다. 성현의 천 가지 계책과 만 가지 교훈이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니, 이 책이야말로 요령을 잡는 법이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진덕수)가 이 책을 미루어 넓혀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만들면서, 경전(經傳)의 글들을 널리 인용하고 사적(史籍)을 끌어다 쓰기도 하였습니다. 배움의 근본과 다스리는 차례가 환하게 조리를 갖추었으면서 임금에게 중점을 두었으니, 참으로 제왕이 도에 들어가는 지침이옵니다. 다만 권수가 너무 많고 문장이 방만하며 일을 기록한[紀事] 글 같고 실학(實學)의 체계대로 엮은게 아니니, 참으로 아름답기는 하나 좋은 것을 다 갖추지는 못하였사옵니다. 배움은 마땅히 넓게 해야 하고 지름길로 요약해서는 아니되옵니다. 다만 배우는 이가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굳게 세우지 못한 채, 먼저 넓히는 것만 일삼으면 마음과 생각이 전일하지 못하여, 버리고 취하는 것이 정밀하지 못해서 중요치 않은 것들로 인해 진실을 잃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먼저 요긴한 길을 찾아 확실하게 문정(門庭)을 열어 놓은 뒤에야 제한없이 널리 배우고 연관된 것들로 미루어 가면서 학문이 향상될 것이옵니다. 더구나 임금이란 나라의 모든 일이 모이는 자리라서 일을 처리하는 때는 많고 글을 읽을 때는 적습니다. 만약에 줄거리를 잡아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를 정하지 않고 오직 넓히는 데만 힘을 쓰면, 글을 대할 때 기억하고 외는 습관에 얽매이거나,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빠져서 궁리(窮理)ㆍ정심(正心)ㆍ수기(修己)ㆍ치인(治人)의 도에는 참으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신은 못난 선비로서 밝은 세상을 만났습니다. 전하를 우러러 바라보건대 천품(天禀)이 총명하고 지혜로우십니다. 진실로 학문에 힘쓰시어 마음의 힘을 길러 성취해 나가 그 기량(器量)을 채우신다면 요순(堯舜)의 다스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천 년에 한 번 있을 놓쳐서는 안 되는 때입니다. 생각건대 신은 재주와 기량이 경솔하고 차분하지 못해 별 볼 일 없는 데다 학술이 또 엉성하고 흐지부지하여 거칩니다. 그러다 보니 규곽(葵藿.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성향을 빗대어 군왕이나 장상의 덕을 경앙하는 뜻)의 정성은 간절하오나 충성을 다할 방도가 없사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대학》은 본래 덕에 들어가는 문인데, 진씨(眞氏)의 《대학연의》는 간결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진실로 《대학》의 뜻을 본떠 차례를 나누고 성현(聖賢)의 말씀을 정선(精選)하여 충실히 채워, 절목(節目)을 자세하게 하고 말은 간략하게 하되 이치를 다하면 곧 요체를 잡는 방도가 여기에 있을 것이옵니다. 이것을 우리 임금께 올리는 일은 미나리와 햇볕을 바치는 것[芹曝之獻]과 같아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나, 반딧불이나 촛불 같은 작은 빛이라도 해와 달이 밝게 비추는 데 도움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다른 일을 덮어 두고 사서(四書)와 육경(六經), 선유(先儒)의 학설과 역대의 역사서까지 깊이 탐색하고 널리 찾아서, 핵심이 되는 것을 채집하고 차례를 분류하고 번다한 것을 삭제하여 요점을 잡았습니다. 깊이 연구하고 반복해서 수정하여 두 해에 걸쳐 모두 다섯 편을 편성하였습니다. <중략>
전하께서 ‘5백 년마다 성왕(聖王)이 나온다는 때[五百之期]’를 맞으시어 군사(君師)의 지위에 계시고 착한 것을 좋아하는 지혜[智]와 욕심이 적은 어짊[仁]과 일을 결단하는 용기[勇]가 있으시니, 진실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학문에 힘쓰신다면 막중하고도 원대한 임무를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다만 어리석은 신(臣)은 견문이 넓지 못하고, 지식과 생각하는 것이 투철하지 못하여, 차례를 갖추는 데 순서를 잃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용한 성현의 말씀은 천지에 세워 놓고 보아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되는 것이 없으며, 뒷날의 성인이 보더라도 의혹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신하가 조리(條理)를 잘못 구분하였다고 해서 전현(前賢)의 교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더러 어리석은 신이 한 번 터득한 말을 그 사이에 섞은 경우도 있사오나, 모두 삼가 성현의 교훈을 상고하여 거기에 맞도록 문장을 지었고, 감히 제 의견을 함부로 내뱉어 종지(宗旨)를 잃지는 않았사옵니다. 신은 여기에 정력을 다 바쳤사오니, 열람해 주시고 늘 책상 위에 두고 보신다면, 전하께서 천덕(天德)을 밝히시고 왕도를 이루시는 학문에 작은 보탬이 없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 책은 비록 임금의 학문에 주안점을 두었사오나 실제로는 상하에 두루 통하는 글입니다. 배우는 사람들 중에 널리 보긴 하였으나 넘치는 지식을 추스르지 못하는 자도 여기에서 공(功)을 거두어 요약하는 방법을 얻어야 하고, 배우지 못하여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자도 여기에 힘을 다하여 학문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배움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으나 모두 유익함을 얻을 것입니다. 이 책은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으로 가는 계단[階梯]입니다. 만약 부지런히 노력하기를 싫어하고 간편한 것을 편안히 여겨서, 학문의 공(功)이 여기에서 그친다면 이것은 그 문과 뜰만 구하고 그 방은 찾아 들어가지 못한 것이오니, 신이 이 책을 엮은 뜻이 아니옵니다. 을해년(1575, 선조8) 가을 7월 16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 홍문관부제학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弘文館副提學知製敎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 신(臣) 이이(李珥)는 손을 모아 엎드려 절하옵고 삼가 서(序)를 쓰옵니다.
註: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조선 선조(宣祖)때, 율곡 이이(李珥)선생이 제왕의 학문을 위하여 지은 책으로 《대학(大學)》의 본뜻에 의거하여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고증, 해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