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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살아오시면서 들었던 인사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들었던 인사말이 무엇인가요?
우와! 그대는 산소같으신 분이세요.
뵐때마다 긍정에너지가 팍팍 솟아올라요.
우와!
당신이 그리웠어요.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최고의 분이세요.
당신을 생각하면 제 마음에 미소가 떠올라요.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든 금방 행복해져요.
...
어떤 목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여집사님께서 아주 반갑게 인사해 주셨습니다. 그 집사님이 이렇게 멋진 멘트를 날리셨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봐도 목사님 같아요."
그 인사말을 듣고, 목사님은 흡족해졌습니다. 우와 세상에 이런 인사말도 있군!
'밥 먹을 때도 목사 같고 걸어도 목사 같고, 당신은 언제 봐도 목사님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서 어깨를 으쓱하고 있는데, 그 때 그 목사님앞으로 은퇴하신 경건한 장로님이 지나가셨습니다.
그러자 좀 전에 인사를 나누어 주셨던 그 집사님이 장로님께 이렇게 인사하셨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은 언제 봐도 진짜 예수님 같으세요.”
금방 좋았던 목사님의 마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목사 같고, 목사님 곁에 계신 장로님은 예수님 같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에 그 목사님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목회를 오래 했으니 말투도 목사 같고, 기도할 때 단어 선택도 종교적으로 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표준화되었을 것입니다. 모태신앙이고 목사 같고 교인 같은데, 예수님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 그 장로님은 별 말씀도 없으시고, 인생의 모든 짐을 지신듯, 깊은 주름진 얼굴을 지니고 계신 분인데, 다른 그리스도인이 볼 때 '예수님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밤새 그 말이 목사님의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인사말 중의 하나는 이것이 아닐까요!
“언제 봐도 진짜 예수님 같으세요.”
“언제 봐도 진짜 그리스도인 같으세요.”
예수님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배려, 예수님의 향기가 삶에서 난다는 것이 아닐까요? 얼굴과 생김은 다 다른데, 어떤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풍겨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품이 아닐까요?
예수님 하면 어떤 성품이 제일 먼저 떠오르나요?
저는 예수님의 성품하면, 변치않는 사랑의 성품,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언급된 사랑의 특징보다 더 깊고 더 인자하신 사랑으로 배여있는 분이 주님의 성품이 아닌가 생각해요.
주님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어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예수님의 삶이 감동적인 이유는 우리와 상관없는 부유하고 고통을 모르는 삶이 아니라 그 많은 고난과 아픔, 눈물과 시련, 반대와 핍박 가운데서도 잃지 않는 평온함, 그것이 주님의 성품의 절정같아요. 아무리 미워하고, 미워해도 당신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시는 마음,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 그 마음을 생각하면 언제든 위로와 용기와 힘을 얻게 돼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인생의 많은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가슴을 찢는 듯한 예언이 자신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감당해야 했던 마리아라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예수님을 품을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어두운 가정사를 아실 것입니다. 후처로 들어가 전처가 낳은 자녀들이 최소한 아들만 4명 이상 있었고, 자신이 낳은 아들 예수가 그 복잡한 가정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어렵게 사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일찍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 오다가, 그것이 막상 자신의 삶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거룩한 두려움의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인생으로서 어떻게 이 삶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누가복음 1장 46절, 4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내가 만약 마리아였다면 그 삶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세계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내 삶에서 직접 이루어질 때, 그 거룩한 두려움까지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을 찾아보니 마리아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삶의 지배적 감정이었습니다.
심리학 용어에 '지배적 감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간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고, 고통, 아픔, 기쁨, 행복을 하루에도 여러 번 겪습니다. 그런데 내 삶을 지배하는 감정이 무엇이냐에 따라 아무리 좋은 조건에 있어도 우울한 사람이 있고, 감옥에 있어도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어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리아는 "나는 하나님을 기뻐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삶 중심에는 고난의 흔적들이 남아 있고 가야 할 길이 험난했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기쁨의 중심이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맺는 열매는 기쁨입니다. 마리아의 삶은 참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결과는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세상에서 환영받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 오는 것이 외롭다고 말씀하십니다. 또래 엄마들과 아이들 기다리며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교회에 오면 더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인생에는 십자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자식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배신을 당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에미의 심정, 자기 눈앞에서 채찍에 맞아 쓰러지고 쓰러지며, 십자가에 목박혀 신음소리를 내린 아들의 고통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런 삶 속에서 어떻게 기쁨을 찾았을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삶을 살펴보면, 혼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며 '확증'을 얻었습니다. 행복한 삶만 반복된 것이 아니라,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이 옳다는 확증을 얻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선택받았을 때 겪게 되는 외로움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견뎌냈습니다.
우리 하늘 가족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혹시 외롭지 않으셨습니까? 외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마리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피할 수 없었듯 어머니도 그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혼절까지 했겠습니까? 기절해서 끌려 나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식을 향한 간절함과 신앙, 그리고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그녀가 겪은 것은 기쁨인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바로 '부활'이 있었습니다. 3일만 견디면 되는 부활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부활신앙이 없었다면 어머니로서 겪는 고통이 전부였겠지만, 부활신앙이 있었기에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아들의 부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 중 십자가와 죽음의 고통이 부활의 영광으로 보상되는 은혜를 누린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 재림을 기다리며 겪는 십자가와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삶을 안식일의 평안 속에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은 마리아의 하나님이자 우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 앞에서 기절했다가 다시 그 무서운 장면으로 돌아왔습니다. 영감의 글에는 "그녀는 도무지 아들에게서 떨어져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도무지 떨어져 있을 수 없었기에 십자가의 길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피하고 싶은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닮아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했던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아 길렀고, 아들 예수는 어머니의 신앙을 보며 하나님을 닮아갔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님의 삶에도 외로움, 혐오, 눈물, 피, 십자가, 죽음이 있었습니다. 30여 년의 짧은 생애 동안 헌신적으로 사셨지만 세상적인 보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예수님의 지배적 감정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이 없고 늘 편안해서가 아니라, 배신과 조롱이 가득한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도 마음속 지배적 감정이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주시고도 평화를 누리신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기뻐한다."
합창이나 아카펠라를 할 때 음을 잡는 '피치 파이프(Pitch pipe)'라는 조율 도구가 있습니다. 이것을 불어 기준음을 잡으면 파트별로 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인생의 다양한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 삶의 기준음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여러 소리로 인해 무엇이 진리인지 흔들릴 때, 혹은 감정이 요동치고 미움과 용서 사이에서 갈등할 때,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피치 파이프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기준은 사랑이었고, 마리아의 기준은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진리의 확증이 이 안식일에 다시 한번 굳건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1장 28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복잡한 가정사와 고난을 겪어야 했던 마리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주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참된 기쁨을 찾지 못해 잠도 자지 않고 헤매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사진에서, 어린아이가 공원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 조형물을 보고 달려가 안아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상황의 전말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저 고통받는 분을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우리도 왜 이런 고통과 어려움이 삶에 허락되는지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사랑과 기쁨이 있기에 주님을 따르고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마리아는 기도의 힘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도하며 사는 것은 힘을 써야 가능한 일입니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줄여가며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처럼, 마리아는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라는 고백처럼, 예배당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 찬양으로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셋째, 마리아의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감정에만 치우친 신앙이 아니라, 말씀의 뼈대 위에 서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성령이 임하심으로 마리아의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사도행전 1장 14절과 2장 4절에서는 마리아가 제자들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성령 충만을 받는 것으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시작하여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어머니 마리아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을 기억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 그리고 그분의 순종을 마음에 새기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조건이나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본을 주목하여 바라보았습니다.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면 키가 작아도 꽃은 핀다"는 말이 있습니다. 키가 작고 낮게 피어 있어도 빛 가운데 있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이라는 빛 가운데 머물 때 우리 인생의 꽃도 피어납니다. 마리아처럼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쁨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한 여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림교회 진리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집에서 심한 핍박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기댈 곳이 없어 선교사 가정의 식모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영어를 배웠고, 홀로 고학하여 삼육학교를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해의 한 섬에 있는 학교로 부임했습니다.
그 섬에는 거칠게 살며 주먹을 쓰던 한 남청년이 있었습니다.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차별받고 방황하던 그는, 섬에 부임한 밝고 단정한 여교사를 보고 호감을 느껴 그녀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교사는 그 청년에게 청소를 맡기고, 찬양과 기도를 권하며 천천히 신앙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침례를 받고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청년은 야간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교수가 될 기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길 원한다"는 여인의 뜻을 따라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평생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90세가 넘어 치매를 앓게 되셨습니다. 치매로 인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목회자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하자고 하면 교회와 성도들과 목사를 위해 간절히 축복 기도를 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저의 부모님이십니다.
세상적으로 의지할 곳 없던 두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그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과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기도로 힘쓰며, 찬양과 말씀 위에 굳게 설 때 우리의 마음과 가정은 감사의 기쁨과 찬란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n2ISD9ewcKE?list=RDn2ISD9ewcKE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